환대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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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장이지는 2000년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추천으로 등단했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시집으로 『안국동울음상점』(2007), 『연꽃의 입술』(2011), 『라플란드 우체국』(근간), 연구서로 박사학위논문을 개고한 『한국 초현실주의 시의 계보』(2011), 번역서로 아즈마 히로키의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2012), 편저로 『이수복 시전집』(2009) 등이 있다. 『연꽃의 입술』로 2012년 제2회 김구용시문학상을 수상했다. 계간 『리토피아』 『포지션』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시 동인 ‘불편’의 멤버다.
웹 기반 사회로의 진전, 지구화, 신자유주의의 팽창, 출판상업주의의 심화 등 시적 환경의 변화를 시 비평의 영역에 끌어들였다. 언어물신, 알레고리 등을 중심으로 2000년대 한국시의 향방을 탐색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목차
- 서문
등질공간에서 시의 공공성을 묻다
시적 환경의 변화와, 환경 부적응자의 이상한 옹호 - 고도자본주의 웹 기반 사회에서의 시
영원회귀의 에티카, 혹은 아무튼 씨의 탈주선 - 김중일론
세계관과 상상력, 덧붙여 시의 언어
게임적 불안, 분기형 미로에서의 결단 - 데이터베이스 소비 시대의 시를 사유한다
하이퍼텍스트 시대의 인간형식과 물질성
정담: 세계의 구조, 가능성의 시 - 김병호×장이지
범용한 것들이 몰려온다 - 2010년 봄의 한국시
외래어 물신은 노래한다 - 유형진, 황병승, 이제니, 박희수의 시를 중심으로
사랑의 소모성, 표상공간 구축 반복(충동) 전말 - 유형진론
‘골목’의 발견과 ‘숙녀’의 발명 - 최하연과 박상수의 경우
유서와 연서 사이 - 안현미 시를 이해하기 위한 각서
디즈니화한 세계에서 자아 찾기 - 하재연의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세 ‘한스들’의 지난한 성장기
결핍과 골몰의 지리멸렬 - 진은영의 「그런 날에는」
‘지속’의 처연함 - 박형준의 「버스가 옛날에 살던 동네를 지나가는 동안 」
서정의 기능부전과 서정시인의 운명
자연과 인간을 잇는 지평, 서정의 유형학 - 2008년 ‘올해의 시집’에 부쳐
문학, 그 지질함의 물화, 혹은 ‘쓰기’의 중단 - 박준 근작시의 밀도
애도의 안쪽, 무늬 중독자의 표정 - 이용임론
‘이발소’와 ‘봄볕’, 그리고 배덕자가 되어야 사는 남자 - 강우식 불륜시의 한 풍경
변경의 고독과 구원에 대해 - 마종기 시의 지형과 지향
정담: 끌어안기 혹은 시적 대안의 모색 - 장이지×이이체
괴물적인 것, 혹은 서정의 파열부 - 김안론
자기징벌의 시학 - 김근론
기담, 참혹한 것의 심리학 - 김경주론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 박시하론
우기(雨期)의 소년들은 자란다 - 서윤후 근작시의 발심
점액질과 도시적 상상력 - 상상력의 비평적 기능을 위하여
마을의 ‘정치’, 혹은 자연에 지지 않는 범부의 지혜 - 「비에도 지지 않고」를 둘러싸고
인용ㆍ소개된 시집과 시
책 속으로
자본주의는 강하고 시는 소멸을 향해 간다.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시는 존중을 받지 못한다. 화폐의 순환이라고 하는 거대한 고리에 끼어들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를 옹호해야 한다. ‘어떤 시’가 아니라 우선 ‘시’를 옹호해야 한다. (…) 소멸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소멸할 때 하더라도 시는 이 세계의 ‘바깥’을 궁리해야 한다. 나는 그런 시를 옹호하고 싶다. (…) 나는 미래를 낳는 시를 옹호하고 싶은 것이다. (43쪽)
근본적으로 ‘데이터베이스 소비’는 인터넷 웹 페이지에 표시되는 정보들을 유저가 수용하는 메커니즘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인터넷 웹 페이지에는 심층은 없고 기표들이 둥둥 떠다니는 표층만 있다. 웹 페이지 속에 포함된 각 요소의 논리적 관계를 지정하는 HTML 언어는 형식상 유저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유저가 마음만 먹으면 이 HTML 소스 코드를 에디터를 통해 열어서 확인해볼 수도 있다. 요컨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 비근한 예로 대학생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을 편집해서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그것이 표절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을 뿐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윤리적인 차원에서만 다루기 곤란한 면이 있다. 그들은 데이터베이스의 표층을 부유하는 정보를 ‘모에’적인 것으로 수용해서 공유했을 뿐 이야기 자체를 흉내 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92~93쪽)
시의 영역에서도 서사의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데이터베이스 소비, 캐릭터의 자율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웹 환경의 진전과 따로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 (…) 웹 환경이 보편화되면서부터는 ‘체험’이나 ‘문학사’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데이터베이스가 기능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고독이나 이질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마녀’라고 하는 코드를 등장시킨다거나, 가족 내부의 상처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밥상머리에서 어머니와 내레이터가 대화하는 장면을 삽입하고, 예술가 시에는 ‘현금(弦琴)’과 ‘악사’라는 코드를 사용한다. 문학사와 데이터베이스의 차이는 데이터베이스의 이 자동성, 심층(고민) 없음에서 찾을 수 있다. (79쪽)
좋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좋은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묻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좋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문학적 수월성’이라는 다분히 형식주의적인 개념으로 귀결되고 만다. 세상에는 잘 구성된 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억지로 못 쓴 시’도 그 존재 가치가 없지 않다. 시성(詩性)을 거스르는 반항도 의미가 있다. 그런 것들을 역시 좋은 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것들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
(…) 기질의 시인이라고 하는 것은 시에 대해서 계속 떠들어대는 사람이다. 피 자체가 잉크가 되어버린 사람! 시로 삶에 맞서는 모험가, 삶과 시로 대결하는 모험가다. 시밖에 모르는 삶! 세사에 얽매이지 않는 삶! 배워서 시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감지한 것을 행하는 사람이 기질적인 시인이다. 그들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가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세상에는 이 기질의 시인에 반한 나머지 밤낮 술이나 마시고 자기 시가 최고인 것처럼 착각하는 그냥 단순히 어리석은 시인들도 없지 않다. 그들은 기질의 시인이라고 할 수 없다. 시를 흉내 내려고 하면 안 된다. (32~33쪽)
자본주의는 강하고 시는 소멸을 향해 간다.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시는 존중을 받지 못한다. 화폐의 순환이라고 하는 거대한 고리에 끼어들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를 옹호해야 한다. ‘어떤 시’가 아니라 우선 ‘시’를 옹호해야 한다. 모든 것을 교환의 논리로 환원해버리는 자본주의의 폐단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 용인이야말로 시의 종언을 알리는 타종(打鐘)이다. 시가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우리가 시에 요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시에 자본주의의 ‘바깥’을 상상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꿈을 깨지 말라고 해야 한다. 그것 이외에는 우리가 시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없다. (…) 나는 미래를 낳는 시를 옹호하고 싶은 것이다. (43쪽)
달변인가 눌변인가를 떠나서 자기와 자기가 속해 있는 세계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분도 있을 수 있다. 눌변도 자기와 자기가 속해 있는 세계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시인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눌변 중에서 시인이 나올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아닐까.
(…) 세계는 몸짓으로 가득 차 있고, 시인은 그 몸짓들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물론 시인에 대한
출판사 서평
시의 소멸, 혹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어느 시인이 강의하는 한 대학의 시창작연습 시간. 시는 소멸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하자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했다. “시는 소멸하면 안 되나요?” 순간 시인은 당황했다. 시인은 저도 모르게 시는 소멸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는 소멸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소멸해가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애도에 휩싸인 기분이었던 것이다. 시인은 시가 과연 소멸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위의 이야기는 장이지 시인이 대학 강의에서 직접 겪은 일이다. 2000년 등단해 시집 『안국동울음상점』 『연꽃의 입술』을 펴내고 2012년에 김구용시문학상과 바움젊은시인상을 수상한 장이지 시인은, 위와 같은 고민들을 바탕으로 2000년대 시를 해석하고 경향성을 탐색하는 문학 평론가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환대의 공간』은 이런 저자의 비평들을 한데 모은 첫 문학 평론집이다. 이 책에는 그간 저자가 기고해온 주제론과 서평, 작가론과 단평, 총론과 정담(인터뷰)이 자유롭게 교차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환대의 공간’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뿐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끼리도 즐겁게 대화하는 장이며, 경계선 없이 이질적인 것들이 용인되는 공간이다. 제목에 걸맞게 저자는 이 책에서 다른 질감의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들과 그 작품들을 환대의 언어로 맞이한다.
고도자본주의 사회, 시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저자는 시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점검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시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천착해왔다. 현대 사회는 웹?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면서, 자본주의의 고도화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온라인으로 확장되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인 소통은 점점 더 협소해지고, 다차원적으로 결정되던 ‘가치’가 단일한 척도, 교환의 논리에 의해 수치화된다. 이런 환경에서 시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저자는 시가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해야 하며, 그런 시를 우리가 존중하고 감싸 안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문학 환경의 디지털화, 시는 어떻게 변화했나
저자는 웹?디지털 기반 사회로의 이행이 이루어지면서 문학과 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한다. 2000년대 한국시는 언어물신, 알레고리 등을 중심으로, 심층을 파고들기보다는 표층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텍스트는 링크를 통해 ‘하이퍼텍스트’적으로 소비된다. 이야기는 더 이상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 위에 있지 않고, 인터넷의 링킹(linking) 시스템에 의해 비선형적으로 비약한다.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시대에 이야기의 지위는 저하되고, 거대 서사의 공유 압력도 낮아지며, 캐릭터는 자율화·상투화된다.
시인조차 모르는 시의 비밀을 발견하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작품들은 주로 2000년대의 시다. 『환대의 공간』에서 저자는 2000년대 현대시의 경향과 특징을 통찰력 있게 조감하는 한편, 김경주, 김중일, 박준, 김안, 김근 등 젊은 시인들에 관한 작가론과 서평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저자는 “평소에 만난 적이 있는 시인이 아니면, 작가론이나 서평은 잘 쓰지 않는 편”이라고 고백하면서, “시인을 직접 만나 시에 대해 오래 이야기하다 보면, 그 시인조차 미처 모르고 있던 시의 비밀을 발견해내는 때”가 있다고 밝힌다. 그리고 “비평이 시나 소설과 같은 창작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독자성을 띠게 되는 순간은, 문체의 아름다움과 같은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발견’에 의해서 열린다.” 저자가 각 시인에 육박해 들어가 캐어낸, ‘그 시인조차 모르던 시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환대의 공간』을 통해 독자들이 현대 한국시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가지기를 희망해본다.
기본정보
ISBN | 9788965640790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09월 02일 |
쪽수 | 376쪽 |
크기 |
135 * 200
* 30
mm
/ 500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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