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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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미하엘 엔데는 1929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초현실주의 화가였던 아버지로부터 풍요로운 예술적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영혼이 피폐하고 세상이 어렵던 시절에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환상과 꿈의 세계를 되찾아 준 작가이다. 동화 외에도 아름다운 그림책과 어른을 위한 판타지소설, 희곡, 시 등 다양한 작품을 썼고, 그 가운데 여러 편이 영화와 방송극으로도 만들어졌으며, 독일 청소년문학상·유럽 아동문학상·안데르센 문학상 명예상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의 작품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더불어 외국소설 중 가장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였던 『모모』는 그로부터 30여 년 뒤 인기 TV 드라마의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하여 또다시 초특급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젠 시대를 뛰어넘는 영원한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대표작으로 『모모』, 『끝없는 이야기』, 『마법의 설탕 두 조각』, 『오필리아의 그림 극장』, 『자유의 감옥』, 『거울 속의 거울』 등이 있다. 1995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 언론들은 그를 단지 작가가 아니라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기술과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고발한 철학가’로 재평가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역자 이병서는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독일 아헨대학 및 아이히슈테트대학에서 독문학과 교육학을 공부했으며, 옮긴 책으로 『자유의 감옥』, 『거울 속의 거울』, 『보도 섀퍼의 돈』 등이 있다.
목차
- 긴 여행의 목표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
교외의 집
조금 작지만 괜찮아
미스라임의 카타콤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
자유의 감옥
길잡이의 전설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기억? 그러나 이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그리고 그 기억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의식은 또 얼마나 빤한 것인가? 우리가 말하고, 읽고, 행동하는 것은 이미 그다음 순간에는 더 이상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말하는 ‘현재’라는 것도,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기가 무섭게 지나가 버리고 마는 미분(微分)의 찰나에 불과하지 않던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난 삼십 년, 백년, 혹은 천년에 대한 기억이 사실은 오늘 아침, 한 시간 전, 혹은 바로 이전 순간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도대체 그 기억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또한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우리는 알지 못하지 않는가. 그리고 ‘시간’이라는 것이, 애당초 시간 없이 존재하는 이 세계를 우리 의식이 인지하는 방법이라고 전제한다면, 어째서 가까운, 혹은 먼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기억’은 있을 수 없는 것인가?
-본문 80~81쪽
어느 황야 한가운데 값진 보석이 있다. 그곳은 사람의 발길이 아직 한 번도 닿지 않았고, 앞으로도 신의 의지에 의해 아무도 그곳을 밟지 못할 것이다. 만약에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본다면, 그 보석은 현실 속의 보석이 아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현실이란, 단 한 사람의 의식 속에서만이라도 ‘이것은 현실’이라는 개념을 형성할 때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이나 천사는 현실도 비현실도 알지 못한다. 동물은 아무 개념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순전히 정신적 존재인 천사는 완전한 개념과 자신이 온전히 하나이기에 그렇다.
현실은 무엇이 ‘단순히 있다’는 사실 외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의식’이 전제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는 이 말의 의미를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 ‘현실의 성질’은 ‘의식의 성질’에 의해 좌우된다고 대담하게 추론해 볼 수 있다. 특히 후자, ‘의식의 성질’은 모든 민족, 모든 인간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으므로, 이 지구상의 수없이 많은 장소에는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현실이 존재할 뿐 아니라, 한 장소에도 여러 현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본문 105~106쪽
감히 그 누구도 의심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공식 교의(校醫)에 따르면, 그림자들이 먹고 자고 일하고 번식하며 살고 있는 이 미궁, 미스라임 세계만이 유일한 현실 세계였다. 통로와 계단, 강당과 창고, 갱도와 허방으로 이루어진 이 카타콤의 구조를 분석한 학자들은 이곳이 우주와 같은 ‘무한 공간’의 세계는 아닐지라도, 공간의 경계를 초월한 ‘초공간’의 세계는 된다고 늘 강조해 왔다. 예를 들어, 어느 가상의 보행자가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만 전진한다면, 이 보행자는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한 ‘공간의 만곡(灣曲)’을 따라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여행을 한 뒤에, 공간을 한 바퀴 돌아 원래의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중간에 기존의 통로나 터널을 이용하든, 굴을 새로 뚫고 지나가든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따라서 미스라임의 경계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만큼 어리석은 질문은 또 없다는 것이 이곳 그림자들의 생각이었고, 따라서 그 누구도 그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바깥이란 ‘그냥’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설사 그런 것이 있더라도 이내 미스라임의 한 부분으로 흡수되어 버리므로, 더 이상 그것은 바깥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있었고, 계속해서 생성 발전하는 세계는 오로지 이 카타콤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 그림자들이 이 카타콤 안으로 들어왔는가, 하는 의문 역시 대책 없는 무식함의 발로로 다른 그림자들의 비웃음을 살 뿐이었다. 나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요컨대, 의미니 이유니 하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야말로, 이 카타콤 세계에서 교양 있고 깨어 있는 그림자로 인정받는 지름길이었다. 그림자들이 이러한 자기기만이나 미망(迷妄)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이들이 바로 이곳의 학자들이었다.
-본문 178~179쪽
출판사 서평
“먼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기억”은 있을 수 없는 것인가?
“빈 공간만이 빽빽이 꽉 찬 공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독일 환상문학의 거장 미하엘 엔데 말년의 걸작 『자유의 감옥』
우리에게 시간은 현재와 미래만 존재하며 미래 또한 끝없이 다가오는 현재일 뿐이지만, 미하엘 엔데에게 시간은 ‘우리 의식이 세계를 인지하는 방법’일 뿐, 순서가 없다. 아니, 시간 자체가 없다. 따라서 그에게는 ‘장례에 일어날 일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고, ‘시간의 흐름을 잴 수 있는 그 어떤 변화도 없는’ 무정형의 ‘지금’만이 존재하며, ‘찰나’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본질을 꿰뚫는 영원이 존재한다. 그가 구축한 세계는 앞뒤 순서도 없는 무한한 시간과 마찬가지로 공간 또한 3차원의 상식을 벗어난다. 겉만 있고 속은 없어 ‘빈 공간만이 빽빽이 꽉 찬’ 집 안은 절대 들어갈 수 없고, 지구상에는 ‘찾으려’ 하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빈자리가 있으며, ‘자동차에 자기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차고가 있기도 하다.
총 8편의 단편이 담긴 『자유의 감옥』에서 미하엘 엔데가 구축한 위와 같은 시공간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적 인식 너머에 있는, 우리의 현실과 평행한 또 하나의 현실이자, 인간 내면세계의 거처이다. 엔데의 작품이 ‘환상문학’인 이유는 장르적 속성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내면의 자아가 살아가는 시공간을 형상화해 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공간의 해체는 우리의 자동화된 기계적 사고를 비틀고, 고정관념과 관습에서 벗어나도록 해 준다. 그리고 타자적 존재로서의 세계가 아닌, 신비적이고 신화적인 세계로의 이동을 통해 가상의 시공간에서 역설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된다.
“내 앞에는 나의 길이 놓여 있다.
나는 이미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삶은 여행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다……, 인생을 달관한 듯한 이런 비유들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무척 보편적인 사고이다. 엔데는 이 비유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절묘하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보여 준다. 『자유의 감옥』의 한 단편인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의 주인공 막스 무토는 여행을 하고 있다. 그 여행은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알파’를 해결하기 위해 ‘베타’가 필요했고, ‘베타’는 ‘감마’ 없이 해결이 불가능했다. 단 하나의 과제도 풀지 못한 채 과제와 과제가 맞물린 연쇄 속에 빠진 막스 무토. 최초의 과제가 무엇이었는지조차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그 여행은 내내 목적의 문턱에서 뒷걸음질 치며 점점 멀어져 가는 ‘방황’일 뿐이다. 그래서 막스 무토는 곳곳을 여행하며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신기한 일을 마주하고 어려운 과제를 맡았지만, 자기 ‘존재의 허무맹랑함’을 확실하고도 뼈아프게 느낀다.
내가 수행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서 뛰어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타인으로부터 부여된 과제라면, 그것은 결국 타인에게 바쳐질 수단으로서의 인생이다. 그래서 미션을 수행하고 레벨을 높이는 삶에서 주인공은, 미션을 달성하는 나 자신이 아니라 그 ‘미션’을 만든 기존의 권위, 한정된 관습인 셈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삶’의 상징처럼 보였던 ‘여행’은 곧 그 허위를 드러내고 자신을 잃어가는 ‘방황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순간, 예기치 않게 막스 무토는 가장 최근에 맡겨진 과제를 해결할 기회를 맞는다. 이제 여행의 시작이었던 ‘알파’에 도착할 수 있는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여행의 끝, 방황의 끝을 의미하며 그동안 걸어온 발자국을 되돌려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 선택의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다. ‘목적지’가 이미 결정된 기성품적인 삶과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삶 중 나라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헤매지 않고서는 결코 자신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왜 다시 미하엘 엔데인가?
판타지에 녹여 낸 보편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
1995년 미하엘 엔데가 타계했을 때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그를 작가가 아닌 사상가로 재평가하며 작품과 그에 대한 수많은 찬사를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자유의 감옥』은 매우 잘 쓰인 작품인 동시에, 지극히 구체적이고 세밀한 구조 위에 세운 환상문학이며 작가가 가진 놀라운 상상력을 잘 보여 준다.
감춰진 공간들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그림, 진행 방향을 따라 시각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일정한 비율로 점점 줄어드는 통로, 바깥은 있을 수 없는 카타콤, 목소리가 전혀 전달되지 않는 도시 등, 8편의 소설 속 공간은 비현실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이 공존하는 꿈속과 같은 세계이다. 하지만 ‘꿈’의 세계가 우리 ‘정신세계’의 반영이라면, 미하엘 엔데가 구축한 가상의 세계는 정신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며, 인간의 사고와 감정, 감각의 총체인 보편 인간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미하엘 엔데를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의식과 세계, 내면세계와 외부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통로를 건너는 것과도 같다.
“인간이 자기에게 내면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자신의 진정한 가치도 잊는 것이다.”
미하엘 엔데의 이 말은 『자유의 감옥』을 이루고 있는 8편의 소설에 흐르고 있는 일관된 주제 의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실 세계의 법칙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판타지로 가득하지만 허점 없는 논리로 읽는 이를 설득하며, 신화적이며 인류에게 내재된 원형과도 같은 세계에 이르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책의 제목만큼이나 모순된 인간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지도라고 할 만한 『자유의 감옥』은 특히 직관적이고 감정적이며, 자율적인 사람들을 향해 보내는 초대장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61705769 |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11월 30일 (1쇄 2005년 03월 05일) | ||
쪽수 | 360쪽 | ||
크기 |
128 * 196
* 31
mm
/ 491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에프 모던 클래식
|
||
원서명/저자명 | Das Gefaengnis der Freiheit/Ende, Michael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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