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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박범신
1946년 충남 논산군 연무읍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낸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인기 절정의 작가였던 그는 1993년 돌연 문학과 삶과 존재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자기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갖기 위해 절필을 선언하고 깊은 침묵에 들어가 커다란 파장을 불러왔다. 1996년 유형과도 같은 오랜 고행의 시간 끝에 작품 활동을 재개한 그는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세계로 문학적 열정을 새로이 펼쳐 보이고 있다. 1981년 장편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신인 부문)을, 2001년 소설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로 제 4회 김동리문학상을 수상, 2003년 만해문학상, 2005년 한무숙문학상 수상했으며,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장편소설에는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돌아눕는 혼] [겨울강 하늬바람] [불꽃놀이][밀월] [숲은 잠들지 않는다] [우리들 뜨거운 노래] [불의 나라] [물의 나라] [잠들면 타인] [황야] [수요일은 모차르트를 듣는다] [틀] [개뿔] [킬리만자로의 눈꽃] [침묵의 집] [와등] 등이 있고, 소설집에 [토끼와 잠수함] [덫] [그들은 그렇게 잊었다] [식구]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이, 연작소설에 [흉기] [흰소가 끄는 수레]등이, 산문집에 [무엇이 죽어 새가 되는가]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적게 소유하는 자가 자유롭다] [젊은 사슴에 관한 은유] 등이 있다.
목차
- 폭설
새날들의 시작
검은 보랏빛 바다의 중심
아버지
세기말
정체성
블랙홀
여름의 끝
소유와 유랑으로부터의 자유
반역
빈 중심
해설
작가의 말
책 속으로
평생의 모든 삶을 바쳐 소유한 전부를 버리고 나서, 멀고 먼 유랑 끝에서 비로소 얻었다고 믿었던 자유, 아니 믿고 싶었던 그 자유의 중심이 텅 비어 있는 걸 나는 너무도 또렷이 본 것이었다. 그곳은 그저 어둡고 차가운, 동시에 깊고 부드러운, 꺼진 자궁 같은, 침묵의 집이었을 뿐이었다. 돌아보면 내 명치에 걸려 있는 낚싯바늘의 정체를 전혀 예감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순간 너무나 또렷하게,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전신이 와르르르 떨리는 것조차 제어할 수가 없었다. 지구의 중심에 도달했으나, 텅 비어 있어, 이미 중심이 아닌 것을 확연히 알아차린 기분이었다.
자유의 중심만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유랑의 중심도 비어 있었다. 나는 허깨비를 쫓아 파 멸을 마다하지 않고 허위허위, 예까지 달려온 셈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을 터였 다. 나는 발작적으로 달려가 팽개쳐진 그녀의 시집을 발로 꽉 밟았다.
그녀에 대한 놀랍고도 잔인한 적개심이 나를 사로잡았다.
(본문 451쪽 중에서)
출판사 서평
화제작 ‘침묵의 집’을 전면 개작, 다시 쓴 소설.『주름』
박범신 장편소설 『주름』이 출간되었다.『주름』은 1999년에 출간되었던「침묵의 집」을 전면 개작, 재출간한 장편소설이다. 박범신 장편「침묵의 집」은 그 당시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었다. 절필 선언이후 첫 장편이었고, 세기말의 불안성과 실존적 위기의 징후를 포착해냈다는 평을 받았던 박범신의 야심작이기도 했다. 그런「침묵의 집」을 7년여 만에 다시 수정하고 퇴고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미 한 작품으로서 지위와 인정을 받은 소설을, 그것도 2600매나 되었던 분량을 1000매 가량 줄여 출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주름』의 ‘작가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나치게 말이 많았거나 참을성 없이 비명을 질러댄 것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완간된 책을 받아든 날은 너무 가슴 속 등통이 심해 우황청심환을 씹어 먹고 그것도 모자라 깡소주를 병째 마셨다. 뭐랄까, 앞으로도 오래「침묵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그 작품으로부터 내가 떠날 수 없을 것 같은 불온한 예감이 드는 것이었다.”
소설가로서 한 작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는 불온한 예감. 소설가에게 작품이 던지는 무섭고 예리한 질문이었다. 그는「침묵의 집」이 출간되고 나서 계속 그 불온한 예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고 말한다. 세기말이 지나 “신세기의 시간은 가파르게 다가와 횡포하게 흘러만” 가고, “맹목적인 분노와 비탄과 자학이 때때로 나를 괴롭혔다” 라든가 또는 “뒷 머리털을 쭈뼛 세우려는 듯이 등 뒤로부터 나를 날카롭게 잡아채는 것, 움찔해서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지만 분명히 거기에 존재함으로서 나의 오십대를 잔인하게 가두고 있는 것이 바로「침묵의 집」이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작품의 무서운 그림자는 소설가 박범신의 뒷덜미를 계속 잡아챘던 것이었다. 마침내 2006년, 그는 버리고자 했던 무서운 질문 앞에 당당히 섰다. 7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를 옭아매고 있는 질문을 풀기위해 소설가 박범신은 다시「침묵의 집」으로 귀환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침묵의 집」이『주름』으로 재탄생 될 수 있었다.
소멸하는 존재들에 바치는 ‘시간의 주름’에 관한 기록.
장편소설『주름』은 어느 일상적인 50대 중반 남자의 파멸과 생성에 관한 기록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문득, 시인이자 화가인 천예린을 사랑하게 된 주조회사 자금담당 이사인 김진영은 그녀를 보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만다. 그가 사랑한 천예린은 그보다 연상일 뿐 아니라 매혹적이면서도 사악한 팜므파탈적인 오십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김진영은 “잔인하고 황홀한 탄생의 시작”이라 표현할 만큼 천예린에게 깊이 빠져들고 만다. 그는 천예린을 만나고부터 “지금까지의 삶은 헛것이었다.” 며 자신의 삶에 대해 “황홀한 반란”을 꿈꾸기도 하고 동시에 삶의 정체성을 깨닫기도 한다. 그러고부터 얼마 후 김진영은 사회적 기득권은 물론 가족마저 팽개치고 회사의 자금을 횡령해 자신을 떠난 천예린을 쫓아 떠난다. 김진영은 천예린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아프리카 대륙을 거쳐 스코틀랜드를 지나 시베리아 바이칼에 이른다. 어렵사리 도착한 시베리아의 바이칼에서 김진영은 “내 생의 마지막에 찾아와서 뒷덜미를 사정없이 후려친 여인, 그녀와의 광포한 사랑에 나는 매일 죽었고 매일 다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더 다가 갈수도, 붙잡을 수 없는 기이하면서도 ‘광란’같은 사랑을 나눈다. 그런 그들에게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주름』은 사실, 두 50대 남녀의 별로 아름답지 않은 사랑이야기다. 한 남자의 눈물겨운 순애보도 아니며, 광란적인 사랑의 기록도 아니다. 박범신은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보다 근본적으로 실존의 문제를 다룬 겁니다. 죽음과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상반된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 영혼과 시간에 매달린 가파른 실존을 그린 거지요.” 또는
“나는 시간의 주름살이 우리의 실존을 어떻게 감금해 가는지 진술했고, 그것에 속절없이 훼손당하면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반역하다 처형된 한 존재의 역동적인 내면풍경을 가차 없이 기록했다”라며 이 소설을 정의하고 있다. 일탈과 절망의 기록인 아닌, 단순한 사랑의 열망과 냉혹한 죽음의 비정함이 아닌, 사랑과 죽음, 그 두 가지를 극한으로 몰아붙여 인간의 실존적 물음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소설. 즉, ‘삶은 과연 무엇인가’ 혹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되묻는 소설. 이런 면면이 박범신 장편소설『주름』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동시에 박범신의『주름』이 독자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하고도 명징한 ‘화두’인 것이다.
|저자의 말|
이 소설 ‘주름’을 읽는 당신에게도 당연히 단독자로서의 당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예순 살이나 된 내 주인공의 치명적인 유랑과 반역적 모랄리티, 그리고 피고름을 기꺼이 먹는 끔찍한 성적(性的)자멸의 상세묘사에 대해 혐오와 불화살의 비난을 아끼지 않더라도, 그것조차 당신의 권리이다. 분노해서 소리쳐 욕을 하거나 더러워 욕지기를 해도 상관없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고 내 주인공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사족으로 붙여 충고하거니와, ‘주름’을 단순히 부도덕하고 더러운 러브스토리로만 읽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시간의 주름살이 우리의 실존을 어떻게 감금해 가는지 진술했고, 그것에 속절없이 훼손당하면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반역하다 처형된 한 존재의 역동적인 내면풍경을 가차 없이 기록했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단두대를 준비해두고 있다. 당신과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칼날에 목을 들이대기 위해 생을 진행해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나와 함께 전광석화처럼 뒤돌아보자. 혹시 우리가 쓰고만 패드처럼 버렸던 ‘옛 꿈’들이 나를 원망하며 서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검은 망토를 걸치고 바쁘게 달려가는 내 등 뒤에 우두커니 서서 따라오는 그자, 옛 꿈의 유령들. ‘옛 꿈’들과 함께 갈 때, 아마도 다가오는 실존의 시간들이 그나마 환해질 것이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시간을 돌아보지도 않고 스스로 여전히 젊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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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은 겉으로 보면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익숙한 서사들의 관습에 따라 ??주름??을 읽었다간 크게 고생한다. 나는 이토록 추악하고 폭력적이고 과감하고 아름답고 비루하면서도 숭고한 사랑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읽은 적도 없다. 만약 사랑에도 ‘극한’이란 것이 있다면, ??주름??의 문장들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주름??은 극한의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표면 서사와 달리 ??주름??은 또한 20세기말과 21세기 벽두,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기형적인 모더니티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고속 성장의 신화를 일구어 온 우리 시대의 가장들에겐 누구나 할 것 없이 “등 뒤에서 유령처럼 서 있는 나의 옛 꿈”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모든 가장들의 꿈을 유령으로 만들어 놓은 한국적 모더니티는 그 자체로 기형적이고 죄스럽다. 소설 ??주름??은 구제 금융 시대를 맞은 한 가장이, 한국적 모더니티가 앗아간 자신의 오랜 꿈 하나를 다시 회수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꿈을 되찾기 위한 김진영의 고군분투는 소박한 것이 아니다. 주인공 김진영은 처음엔 오로지 한 여자를 좇아 일상을 버렸으나 종래엔 성과 사랑과 죽음과 자아에 관한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깨달음을 좇아 나날의 유랑을 감행한다. 이것은 시간의 역동성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훼손되어 가는 존재의 반역이며, 살아있는 것이 ‘시간의 주름’을 어떻게 거슬러 올라가는지에 대한 처절한 기록이라 할 만 하다. 그는 마침내 몸으로 철학하는 자, 성(性)을 통해 도(道)를 구하는 요가승이 된다. 그 유랑의 끝엔 ‘텅 빈 중심’이 있다.
텅 빈 중심에 대한 <주름>의 지혜는 마치 수천수만 년을 격렬하게 살아낸 현자의 입에서 나온 전언처럼 강렬하다. 김진영과 천예린이 그렇게 실천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아낸, 아니 죽음을 향해 돌진한 몇 년은 일상인의 시간으론 수천수만 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주름>을 읽는다는 것은, 수천수만 년을 읽는다는 말에 다름 아니겠다. 그리고 그 점이야말로 우리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다. 독자 입장에서 <주름>은 매우 불온하고 위험한 충격이 될 것이다.
김형중 <문학평론가>
기본정보
ISBN | 9788959868988 |
---|---|
발행(출시)일자 | 2006년 07월 18일 |
쪽수 | 478쪽 |
크기 |
140 * 210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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