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허기질 때 어린이책에서 꺼내 먹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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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에서 꺼내 먹은 것들
지금의 나를 만든 열일곱 가지 맛
궁리 에디션L 시리즈 네 번째 주자로 나선 이 책 『마음이 허기질 때 어린이책에서 꺼내 먹은 것들』은 저자가 17권의 국내 어린이책에서 건져올린 음식에 관한 에세이다. 저자 김단비는 오랜 시간 동안 어린이책을 만들어온 편집자이자, 『일곱 살의 그림일기』 『봄 여름 가을 겨울 맛있는 그림책』 등 십수 권의 책을 써온 작가다.
이 책은 그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건너오면서, 입으로 또 마음으로 삼킨 맛들을 써 내려간 첫 에세이다. 그러나 단순한 음식 탐방이 아니다. 이 음식들을 맛보던 시간, 함께 먹었던 사람들을 한데 버무렸다.
그동안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한 음식을 매개로 그것을 분석하거나 추억 여행을 떠나는 책은 많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책들과 결이 비슷하면서도, 국내의 어린이책을 기준으로 선별했다.
작가정보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동안 생태잡지를 만들었다. 세밀화 책으로 널리 알려진 어린이 출판사에서 편집을 하다가 인문사회과학 책을 펴내는 출판사로 옮겼다. 그 뒤 어린이책 브랜드 ‘웃는돌고래’를 시작해 지금도 열심히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다.
마흔한 살에 얻은 아이와 함께 『말로 쓰는 시』 『일곱 살의 그림일기』를 썼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맛있는 그림책』 『우리는 꿀벌과 함께 자라요』 『나무 심으러 몽골에 간다고요?』 『찔레 먹고 똥이 뿌지직!』 『어린이 먹을거리 구출 대작전!』 등을 썼다. 『우리 마을 소방관은 맨날 심심해』 『우리 마을 환경미화원은 맨날 심심해』등 ‘심심한 마을’ 시리즈도 썼다.
목차
- 들어가는 글 | 어린이책과 떠나는 열일곱 가지 맛의 여행 ㆍ 5
넉넉한 맛, 퍼낼수록 더 풍성해졌던 외갓집 이야기 ㆍ 15
이억배 그림책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따뜻한 맛, 밥만 같이 먹는다고 다 식구는 아니더라 ㆍ 27
백석 그림책 『개구리네 한솥밥』
노동의 맛, 짭짤하고도 시큼한 ㆍ 37
이현 동화 「짜장면 불어요!」
기억의 맛, 달콤하거나 씁쓸하거나 ㆍ 49
이분희 동화 『한밤중 달빛 식당』
삶의 맛, 오래도록 입가에 남은 다디단 맛 ㆍ 59
현덕 동화 「포도와 구슬」
모자란 맛, 떫으면서도 달콤한 ㆍ 69
박완서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추억의 맛, 짱뚱이는 못 말려 ㆍ 81
신영식 · 오진희의 고향 만화 시리즈
까칠한 맛, 인생의 묘미는 바로 거기에 ㆍ 91
김리리 동화 『만복이네 떡집』
가난의 맛, 설거지 냄새를 아는 아이와 모르는 아이 ㆍ 101
전미화 그림책 『미영이』
결핍의 맛, 그러나 마음까지 가난할 수는 없었던 날들 ㆍ 111
고정욱 동화집 『가방 들어주는 아이』
눈물의 맛, 기어코 살아남아 행복해지자 ㆍ 121
권정생 성장소설 『몽실 언니』
세월의 맛, 슴슴하면서 오래 남는 ㆍ 131
유은실 동화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
자연의 맛, 땀 흘려 일하면서 살던 그 몸과 마음 그대로 ㆍ 141
아이들 시 모음 『일하는 아이들』
충격의 맛, 천연기념물을 먹는다고? ㆍ 151
한병호 그림책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그리움의 맛, 마음을 다해 부르면 ㆍ 161
정채봉 동화집 『오세암』
치유의 맛, 잊지 않으려는 안간힘 ㆍ 171
김기정 동화 「길모퉁이 국숫집」
상상의 맛, 네 마음을 들려줘 ㆍ 181
강소천 동화집 『꿈을 찍는 사진관』
책 속으로
외갓집에 간 엄마는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신문지에 둘둘 싸인 참기름 병이 보따리 한 귀퉁이를 고소하게 채우고 있었고, 깨, 콩, 고춧가루, 온갖 말린 나물이며 잡곡이 야물게 싸매져 있기도 했다. 그걸 푸는 데만도 한나절이었다. (…) 이제 어른이 되고 보니, 엄마가 그때 어떤 마음으로 외갓집으로 갔을까 궁금해졌다. 곤궁한 살림살이를 표내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퍼주시는 대로 가득가득 가지고 오면서 기뻤을까. 아니면 다음엔 꼭 용돈이라도, 외할머니가 바를 화장품이라도, 아니면 작은 선물 하나라도 꼭 가지고 와야지, 그렇게 다짐하기도 하셨을까. (19-20쪽)
생일이나 되어야 제대로 거한 밥상을 받아볼 수 있었던, 일 년에 딱 한 번 자신을 위한 밥상을 받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어린 일꾼들 모두가 지금은 날마다 생일상처럼 귀한 밥상을 삼시세끼 받고 있기를 바란다. 간절히. (34-35쪽)
노동이 즐거우려면 그 노동의 결과물로부터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내가 비빔밥집에서 일할 때, 메뉴 가운데 가장 비싼 불고기는 한 번도 먹어보질 못했다. 새우 한 마리가 들어간 된장찌개, 때로 설렁탕 한 그릇, 그것이 최대치였다. 손님들이 시키는 불고기를 먹으려면 그날 하루 일당을 다 써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번 5일치 임금을 한순간에 옷값으로 써버리는 사장님 딸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쓴맛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46-47쪽)
아버지에게 요리는 무엇이었을까.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을 채우기 위해 요리를 한다는 건 가당치 않았던 일이었겠다. (…) 아버지를 고향으로 타임슬립 시키는 맛은 할머니의 고추장과 김치 맛이다. 맛있어서라기보다 그 시절, 공부하면서 오가던 길이 그리도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53, 55쪽)
지금 아이들은 자기가 갖지 못한 닌텐도를 가진 옆집 친구를 부러워하고,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처럼 되고 싶어 한다. 세상이 변했으니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기동이가 끊임없이 노마와 똘똘이, 영이를 찾아다니면서 제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같이 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들려주면 좋겠다. 나 혼자 잘 살면 재미없다,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혼자 놀면 재미없다, 혼자 먹으면 맛없다, 나눠 먹어야 훨씬 맛있다, 하고 말이다. (66-67쪽)
때로 어떤 음식들은 입이 아니라 머리에 깊이 새겨지기도 한다. 특정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제멋대로 후각을 자극해 곤란하게 하기도 한다. 시장 두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맛을 경험한 덕분에 ‘손맛’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다. (134-135쪽)
봄이면 엄마가 만들어주는 쑥버무리에서 들판의 생기를 느끼고, 여름이면 오이냉국 한 그릇에 살아 뛰는 계절을 몸에 담았다. 가을이면 도토리묵을 먹고 겨울이면 값이 한없이 싸지는 홍합탕에서 온기를 얻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계절을 먹게 했던 엄마의 밥상. 이미 우리 집에 마고할미가 와서 살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139쪽)
인간 세상이 코로나로 시끄럽거나 말거나, 어름치들은 입에 자갈을 하나씩 물고 옮기면서 알이 안전하게 머물 자리를 만들었겠지. 어쩌면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날이 온다 해도 이 순한 눈을 가진 물고기들은 변함없이 계곡 한쪽에서 삶을 이어갈지 모르겠다. 모쪼록 사람들이 지금보다 십 원어치쯤이라도 자연 앞에서 겸손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159쪽)
그때 먹은 참새가 진짜 맛있었다고, 우리 아버지는 참 자상한 분이었다고 얘기하는 남편의 얼굴은 중년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 아이의 얼굴이었다. 남편에게 참새구이는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막강한 요리다. 유년의 따뜻했던 한순간, 그립고 고소한 그 시절의 기억으로 남편은 외롭지 않게, 충만한 상태로 어른이 될 수 있었다. (168쪽)
출판사 서평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은 소박한 음식이기 쉽다.”
흔하지만, 흔해서 힘이 센 음식들을 먹고 자란 시간
긴 시간 어린이책을 만져온 이력 덕분일까. 그는 이 책을 통해 『몽실 언니』(권정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와 같은 성장소설부터 『오세암』(정채봉), 『꿈을 찍는 사진관』(강소천)과 같은 동화집, 『미영이』(전미화)와 같은 그림책까지, 한국의 어린이책을 골고루 꺼내 맛 보여준다.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은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의외로 소박한 음식이기 쉽다. 그것이 싱아처럼 들판에 흔했던 풀일 수도 있고, 다시 찾아갈 수도 없는 외진 시골 어딘가에서 얻어 먹은 갈치김치 한 보시기일 수도 있다. 그 음식이 무엇이든 순식간에 과거의 어느 곳인가로 돌아가게 한다면 말 그대로 ‘힐링푸드’ 아니겠는가. 백 원짜리 떡볶이든, 오십 원짜리 핫도그든, 절대 성공 못 한 설탕 뽑기든 말이다. _본문에서
물론 국내 어린이책 속 음식이라고 한국의 향토음식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또 특별히 값비싸거나 거창한 음식들도 아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고된 농촌활동을 끝낸 뒤 노동의 가치를 깨달으며 먹은 불어터진 ‘짜장면’ 한 그릇(42쪽) 같이, 지금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그뿐 아니다. 저자는 17권의 어린이책에 나오지 않는 음식들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낸다. 어린 시절 시장에서 무른 딸기를 왕창 사들인 엄마가 내내 불 앞에서 졸이다가 식빵에 슥 발라준 ‘딸기잼’(63쪽)이며, 일곱 식구의 빠듯한 입을 채우기 위해 라면 다섯 봉지에 국수를 섞은 다음 질리도록 먹었던 ‘국수 라면’(74쪽), 평소에는 생각도 나지 않다가 꼭 호되게 아픈 날에는 환장하게 먹고 싶던 엄마의 ‘쑥버무리’(174쪽)가 그것이다.
무슨 음식이든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나눠 먹는’ 것
‘혼밥’의 시대에 백석의 ‘한솥밥’을 내밀다
책에는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특히 백석의 「개구리네 한솥밥」에 저자가 설파하는 ‘나누는 것’ 미학이 잘 드러나 있다.
(…) 모두가 서로를 도와준 덕에 동물들은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게 된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지금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볼까? 안타깝게도, 혼자만 따순 밥 먹고 살라고 가르치는 무한경쟁 시대에 통하는 정서일까, 하는 슬픈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어린이의 눈에 비친 지금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런 세상이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_본문에서
물론 아이들은 앞으로 홀로 살아남는 법을 배울 것이고,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모여앉아 먹는 집밥보다는 편의점의 즉석 식품이나 배달 음식이 더 친근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무슨 음식을 먹고 자라든, 저자는 하나의 진심을 전할 뿐이다. ‘아무리 맛있더라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고,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혼자 가지고 놀면 재미없다’고(66쪽).
내가 그러했듯, 모두가 어린이책의 깊은 맛에 빠져주기를
어른이 되어 그림책을 보고, 동화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감탄하는 순간들이 많다. 어렸을 때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서 어린 나의 가난했던 책장이 안쓰러워진다. _본문에서
저자는 먹을거리만큼이나 읽을거리도 부족한 시절을 건너왔다. 그때는 지금처럼 어린이를 위한 책이 많이 출판되지도 않았고, 집안 환경도 막내딸의 독서를 신경 써줄 만큼 풍요롭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그 시간을 지나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그는 지금 아이들이 어린이책의 매력에 폭 빠져주기를 바란다. 학습 만화 대신 만화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짱뚱이 시리즈’(신영식ㆍ오진희)를 읽어주기를 원한다.
자신과 다른 것을 문제 삼지 않는 여리고 고운 마음들이 있어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왔다. 물질적으로 많은 것들이 모자랐던 시절을 건너왔지만, 마음까지 가난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다 그 친구들 덕분이다. _본문에서
그가 어린이책에서 꺼내 먹은 것들은 음식만이 아니다. 한 사람의 몸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채운 것은 그 음식을 함께 나눠 먹었던 사람들과의 시간이고, 그들과 나눈 마음이다. 저자는 무수한 어린이책을 통해 이러한 삶의 태도를 길러냈다. ‘글을 쓰고 보니 내가 부르지 않았는데도 어린이책이 먼저 한 권 한 권 따라왔다’던 저자의 말처럼, 책장을 덮고 나면 어린이책들이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58207535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1월 26일 | ||
쪽수 | 192쪽 | ||
크기 |
129 * 190
* 19
mm
/ 309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에디션 L(Edition 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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