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의 문화방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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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경향신문 > 2013년 4월 3주 선정
작가정보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1946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일본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이다. 미숙아로 태어나 자가중독 증세 탓으로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는 할머니의 과보호를 받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44년 가큐슈인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 아버지가 권하는 대로 도쿄 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그는 재학 시절 근로 동원 중에 패전 소식을 듣게 된다. 열세 살 때부터 조숙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미시마가 일본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한 것은 1946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단편 '담배' 가 '인간' 지에 실린 덕분이다. 1949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대장성에 근무하지만 일 년도 채 안되어 사표를 제출하고 본격적인 전업작가로 출발하게 된다. 그 무렵 가와테쇼보로부터 장편소설 집필 의뢰를 받고 쓴 것이 바로 '가면의 고백' 이다. 미시마는 화려한 문장으로 독자적인 미의 세계를 구축하여 '사랑의 갈증', '푸른 시절', '금색' 등의 수작을 잇달아 발표하였으며, '금각사'로 불과 31세의 나이에 문학적 절정기를 맞이한다. 1970년 11월 25일 오전, 마지막 원고를 잡지사에 넘긴 그는 자신의 추종자 네 명을 데리고 일본 육상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에서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뒤 할복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향년 만 45세였다. '가면의 고백' 은 미시마 유키오가 전업작가로 출발하면서 쓴 첫 장편소설로서,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일본문학의 20세기가 시작된다' 는 등의 격찬으로 이 새로운 문학의 등장을 반겼다. 그 자신의 내밀한 성향을, 출생부터 성인이 되기까지의 성장과정 및 주변환경과 결부시켜 논리적으로 피력한 것 자체가 당시 일본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삶 그 자체를 최고의 예술로 생각한 미시마 유키오의 심미주의 세계관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역자 남상욱은 1972년 경기도 포천 출생이며, 경희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했다. 도쿄대학 총합연구과 비교문학/비교문화로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2011년 미시마 유키오를 미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고찰한 『미시마 유키오의 ‘미국’』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성균관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동아시아학술원이 추진하는 CAMPUS Asia 프로젝트의 코디네이터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일본국헌법을 통해 보는 ‘전후일본’ - 미시마 유키오의 일본국헌법 인식을 중심으로」가 있다.
목차
- 1. 미시마 유키오, 혁명과 문화를 말하다
반혁명 선언
반혁명 선언 보주
문화방어론
하시카와 분조 씨에게 보내는 공개장
도의적 혁명의 논리
자유와 권력의 상황
2. 미시마 유키오, 좌파 거장 이이다 모모와 정치를 말하다
정치 행위의 상징성에 대해
3. 미시마 유키오, 국가 혁신의 원리를 주제로 학생들과 난상토론을 벌이다
히토쓰바시 대학에서
와세다 대학에서
이바라키 대학에서
4. 미시마 유키오, 그래도 다하지 못한 말을 전하다
자주방위의 길 - 『문화방위론』 후기
지키지 못한 약속 - 내 속의 25년
본서 관련 일지(1968년)
서지 정보
옮긴이의 말 - 미시마 유키오가 오늘날에 던지는 돌직구
책 속으로
혁명이 그 자체로 변증법적인 산물이라고 한다면, 그 혁명이 반혁명을 낳고 반혁명이 또다시 혁명을 낳는 현상을 한층 더 유물변증법적으로 논증하려는 삶의 방식과, 그것을 단지 한 가지 현상의 반작용으로 파악하고 반작용이 또 다른 반작용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보통의 논리적 해석, 두 종류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혁명에 대한 반혁명의 움직임을 혁명의 피할 수 없는 한 과정이며, 그 과정을 통과함으로써 가장 커다란 정반합이라는 형태로 혁명이 진행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라면, 한편으로는 혁명을 하나의 현상을 일으키는 계기의 법칙으로 파악하는 방법도 엄연히 존재한다.(15쪽)
우리가 ‘문화를 지킨다’고 말할 때 상상하는 것은 박물관적인 죽은 문화와 태평하게 죽은 생활, 이 두 가지다. 이 두 가지가 융합되어 안전하게 화합했다. 그 화합물이 우리를 고민하게 만들지만 문화에 대한 사물로서, 문화재로서,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존중은 민주주의 국가, 사회주의 국가(중화 인민 공화국 같은 극단적인 예외를 빼면)를 가리지 않는다.(37쪽)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화가 문화를 지킬 수 없으며, 언론에서 언론을 지키려 하는 시도는 반드시 실패하거나 단순히 눈가리개를 해주는 데 지나지 않는다. ‘지킨다’는 것은 늘 검劍의 원리다. 지킨다는 행위에는 이렇게 반드시 위험이 도사리고, 자신을 지키는 데 있어서도 자기 방기가 필수적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늘 폭력의 용도가 필요하며, 지키는 대상과 지키는 행위 사이에는 영원한 패러독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문화주의는 이 패러독스를 회피하고 스스로의 눈을 가리는 자라고 할 수 있다.(52쪽)
따라서 우리는 체코 문제로 돌아오는 것이다. 체코가 추구한 자유란 어떤 자유인가. 우리가 일단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정치 체제하에 생활하면서도 그 자유의 위험에 언제나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상황을 고려하면, 체코가 마지막까지 추구한 것은 그와 같은 ‘위험이 없는 자유’, 그와 같은 파괴 충동에 사람들을 몰아넣을 염려가 없는 자유 그리고 그에 대해 최소한의 보호 권능을 가진 국가를 꿈꾸고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된다.(149쪽)
각목은 단순한 게바보일 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은 힘없는 자의 무기입니다. 무기라는 이름조차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들은 그런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나아가는 인간입니다. 그것은 알겠습니다. 단지 그들이 허사로 믿고 있다면 어딘가에서 무력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력감과 영구 혁명은 언제나 타협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차피 글렀다고 생각하면 이상이 매우 관념적이 되지요. 어차피 글렀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무섭습니다. 나는 그런 인간의 유토피아에 조금 질려버렸습니다. 최근에 질려버린 게 아닙니다. 일본 근대 문학의 역사에서 질려버린 것입니다. 질려버렸을 때 세상이 믿지 않는 것으로부터 행동을 일으키게 되니까 정말 당혹스러운 것입니다. 이이다 씨처럼 거기서 출발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겠지만요. 근대 문학은 이미 백 년이나 해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167쪽)
국가란 무엇입니까? 국가는 자기 권력의 존속이라고 합니다. 나는 국가를 보편적인 정치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19세기 주권 국가의 이론으로 일본의 국가를 규정하고, 그 국가를 지키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국가는 여러 가지입니다. 국가는 우리입니다. 그것은 미국과 일본을 한번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민족이 유럽으로부터 잔뜩 들어와서 그곳에 여러 인종이 모여 하나의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국의 성조기를 만든 것입니다. 성조기에 대한 미국인의 관념은 대단합니다. 성조기를 발로 차거나 흙탕물을 처바른다면, 그들은 매우 화를 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자기들 국가 관념의 상징으로는 깃발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다민족에 의한 추상적인 국가 형태입니다. 워싱턴DC를 상징하고 있는 것은 워싱턴DC에 정치권력이 있고, 그것으로 각 주가 주 법에 의해 지방 자치를 각각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나이티드 스테이트가 생겼습니다. 그런 국가와 일본은 전혀 다릅니다. 일본은 어떤 추상 개념도 필요하지 않고, 추상적 규정이나 분석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태고 이래 이 하나의 섬 안에서 같은 민족이 같은 문화,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긴밀하게 이어져왔고, 스스로 이 나라를 이뤘습니다.(348쪽)
출판사 서평
『문화방위론』은 문화, 폭력, 자유 사상이 담긴
미시마 유키오 행동의 이론화다
『문화방위론』에는 1967년부터 1969년까지 3년에 걸쳐 미시마 유키오가 혁명과 문화에 대해 주장한 정치 논문, 정치에 대해 좌파 거장과 나눈 대담, 정치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 대해 학생들과 나눈 대담이 담겨 있다. 소설 『영령의 목소리』를 쓴 후부터 이런 종류의 문장을 쓰는 것은 예정되어 있었다고 미시마는 말한다.
미시마는 정치적 입장에서 자신만의 독자성이 있다면 문장에 의해 행동과 결의를 굳히고, 굳히면서 쓰고, 쓰는 것에 의해 한층 더 굳혀 행동의 단서에 도달한 후 그 증거로서 또다시 문장을 쓰고, 이런 문장에 의해 행동과 책임이 규제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미시마의 문장은 행동의 이론화다.
이런 상관관계는 본래 문학 세계에는 없고 정치 세계에만 있는 것으로 『문화방위론』은 정치적 언어로 썼다고 미시마는 말하며, 예외적으로 「도의적 혁명의 논리」만 가장 문학적인 언어로 썼다고 덧붙인다.
「반혁명 선언」은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방패회’의 모태를 이뤘던 잡지 ≪군사 저널≫에서 발표한 것이며, 각 조항의 사상적 배경은 원래 「문화방위론」에 있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라는 가장 긴급한 과제에 응하기 위해 쓴 이 논문은 조금 우회했고, 신의는 오히려 「하시카와 분조 씨에 대한 공개장」에 잘 드러나 있다.
『문화방위론』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일본이라기보다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일본 그리고 우리가 좀처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오늘날 한국의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미시마 유키오, 문화란 전복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한다
1960년대 일본의 경제는 도쿄올림픽 개최로 파급된 엄청난 흑자, 소니와 도요타 등 대기업의 급성장 덕분에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다. 사회적으로는 ‘전학공투회의(전공투)’로 대표되는 학생운동 등 좌익의 잦은 데모로 혼란스러웠지만 경제 성장 덕분에 정치보다는 경제에 관심이 쏠렸다. 경제가 발전하자 문화에 많이 투자해 2차 세계대전 전의 문화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 문화는 기업에 의해 진화되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미시마의 문제의식은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다.
1960년대 미시마의 눈에는 현재 융성하고 있는 건전한 일본 문화와 그 문화를 존재하도록 만든 기원 사이의 고리가 끊긴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1960년대 일본에서 문화는 그것의 중요한 성격 중 하나인 신비와 동시대에 대한 폭력성이 모조리 배제된 채 기획되고 전시되고 소비되고 마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미시마가 문화적 천황제를 주창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의회주의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전통과 역사를 보장할 수 있는 문화 개념으로서 천황제, 즉 천황이라는 것을 일종의 문화, 국민 문화 공동체의 중심으로 삼는 정치 형태가 되어야 하며 그래야만 진정한 토착적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미사마는 힘주어 말한 것이다.
미시마가 던진 메시지는 결국 평화와 문화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전후 민주주의로 향한다. 폭력적인 것이라고 하면 모든 혐오하는 평화주의와 문화라면 모두 평화적이며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국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훌륭해 보이지만 절대로 멋진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시마의 문장을 읽다 보면 “쓰는 순간이, 읽는 순간이 진짜 혁명이자 문화다”라는 짜릿함을, 오싹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미사마 유키오, 극우이자 과격한 민족주의자라 불렸지만
이제는 열정이 가득한 사상가라고 부르고 싶다
『문화방위론』 저자 미시마 유키오의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平岡公威이며, 1925년 도쿄 출생이다.
농림성에 근무하던 아버지와 귀족의 혈통을 계승한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대부분을 외할머니와 함께 보내며 가부키 등 전통 문예에 대한 소양을 익혔다. 황족과 화족 자녀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던 가큐슈인學習院 초등과에 입학했으며 이후 중등과로 진학하면서 문예부에 가입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문학적 수업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던 해인 1941년 일본낭만파 계열의 국어교사 시미즈 후미오淸水文雄를 통해 잡지 ≪분계문화≫에 미시마 유키오라는 필명으로 『꽃이 만개한 숲花ざかりの森』을 발표했지만 태평양 전쟁이 격화되어 빛을 보지 못했다. 19세에 가큐슈인 고등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쇼와 천황에게서 은시계를 받고 같은 해 도쿄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20세에 입영통지서를 받고 입대검사를 받던 중 군의관의 오진(?)으로 당일 귀경했으며 패전을 맞이했다.
1947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대장성 은행국에 근무하나 이듬해 퇴직하고 창작에 전념해 1949년 24세에 동성애자의 내면을 고백하는 장편소설 『가면의 고백假面の告白』으로 일약 문단에서 주목받은 후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1년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아사히신문사 특별 특파원이라는 신분으로 북미, 남미, 유럽 등에서 체류했다.
1954년 젊은 남녀의 순수한 사랑 얘기를 그린 『파도소리潮騷』가 베스트셀러가 되며 제1회 신초샤문학상 수상했고, 1956년에 발표한 『금각사金閣寺』로 제8회 요미우리문학상을 받는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에 올랐다. 한편 『파도소리』가 1956년 미국 출판사 크놉에 의해 영어로 간행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후부터 미시마의 주요 작품은 거의 동시대에 영어로 번역되었다. 195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주선에 의해 만난 화가 스기야마 야스시杉山寧의 장녀 요코瑤子와 결혼하면서 미시마 유키오는 복싱, 검도 등을 시작했다. 1960년에는 영화 ≪강바람 사나이からっ風野郞≫에 배우로 출연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혔다.
1961년 2ㆍ26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젊은 군인 부부의 적나라한 성애와 할복을 표현한 「우국憂國」을 발표한 이후부터 전후 일본의 정치사상과 문화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우국」을 직접 단편영화로 제작한 1965년부터 불교의 윤회와 유식 사상, 일본의 미학 등을 기반으로 일본 근현대사를 조망한 장편소설 『풍요의 바다豊饒の海』 4부작을 연재했다. 1967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베 코보 등과 함께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해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어서 자위대 체험 입소했다. 1968년 7월 젊은이들을 이끌고 다시 한번 자위대에 입소한 후 「문화방위론」을 집필했다. 이후 이 젊은이들로 사병조직인 방패회楯の會를 결성했다.
1970년 11월 25일 장편소설 『풍요의 바다』 최종회 원고를 넘긴 후 방패회 회원 젊은이 4명을 이끌고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 동부 방면 총감실을 찾아가 총감을 볼모로 삼고, 자위대원들에게 전후 헌법의 개정과 절대천황제의 부활을 위해 궐기하자는 의미의 일장 연설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총감실에서 바로 할복했다.
45년 동안 전집 42권의 소설, 희곡, 평론, 에세이를 남긴 미시마 유키오는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사상가이며 행위예술가로서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 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57077344 |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04월 17일 | ||
쪽수 | 400쪽 | ||
크기 |
104 * 200
* 30
mm
/ 486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文化防衛論/三島由紀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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