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의 현재적 의미
이제 일본정치는 아베 신조(安部晋三) 총리의 시대가 열렸다. 태평양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전후 세대에 속하는 그의 정치적 이념은 전후 체제와의 결별이다. 평화헌법과 자위대라는 전후체제의 상징성을 근본적으로 폐기하거나 수정하여 ‘강한 보통국가 일본’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현대사를 1945년을 경계로 전전(戰前)과 전후(戰後)로 나누는 시대 구분에서 벗어나 2차 세계대전의 속박에서 자유로운 새 시대를 펼쳐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전후 세대보다 앞선 세대들은 과거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스스로 파멸을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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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의 현재적 의미
이제 일본정치는 아베 신조(安部晋三) 총리의 시대가 열렸다. 태평양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전후 세대에 속하는 그의 정치적 이념은 전후 체제와의 결별이다. 평화헌법과 자위대라는 전후체제의 상징성을 근본적으로 폐기하거나 수정하여 ‘강한 보통국가 일본’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현대사를 1945년을 경계로 전전(戰前)과 전후(戰後)로 나누는 시대 구분에서 벗어나 2차 세계대전의 속박에서 자유로운 새 시대를 펼쳐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전후 세대보다 앞선 세대들은 과거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스스로 파멸을 초래했던 경험에 대한 자의식이 강했다. 따라서 이들은 ‘군사력’ㆍ‘국가안보’ 등 전쟁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같은 거부감을 보였지만, 전후 세대들은 그런 알레르기 반응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아베총리가 전후 세대라는 점에 국내외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전후 세대에 의한 전후 체제의 해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후 세대에 의한 전후 체제의 해체를 우리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 해답의 실마리를 본서는 근대 일본의 사상사적 측면에서 제공하고 있다.
전후 근대 일본 사상연구의 원점
이 책은 1959년부터 1961년까지 2년 간 치쿠마서방(筑摩書房)에서 출판된 『근대일본사상사강좌(近代日本思想史講座)』 시리즈 중 제1권 「역사적 개관」을 완역한 것이다. 본 시리즈의 제2권 이하는 각기 문제사적인 각도에서 고찰을 한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고, 본서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근대 일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저서 및 번역서들은 다수 출판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근대 일본사상의 입문서인 이 책을 번역한 이유는 근대 일본의 사상을 연구함에 있어서 이 책이 지니는 연구사적 의의에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적 입장에서 보자면, 태평양전쟁의 패배로부터 약 14년이 지났을 때 출판된 이 책은 아마도 ‘철 지난’ 50여 년 전의 연구서로 생각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1950년대 말은 일본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으로 다시 국제사회에 복귀하고, 한국전쟁의 후광으로 고도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다. 따라서 일본사회에서는 ‘더 이상의 전후(戰後)는 없다’는 자신감이 표출되었고, 이를 배경으로 전전(戰前)의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전후 일본사회의 변화는 당시 학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전쟁과 그 결과인 패전을 일시적인 착오, 또는 일부에 의한 실수로 치부하며 이를 근대 일본의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1968년을 전후로 한 일본정부의 ‘메이지 백주년 기념사업’에서 극명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전후 일본사회의 변화에 대해, 이 책을 포함한 총 7권의 시리즈는 근대의 ‘보통국가’였던 일본이 형성해 온 정신구조는 무엇이고, 왜 그것이 일단 붕괴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재생의 계기는 어디에 있는지를 찾기 위한 전후 일본 지식인들의 움직임이 만들어 낸 첫 결과물이었다. 즉 전후 근대 일본 사상 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집필진에 이에나가 사부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타케우치 요시미, 카토 슈이치(加藤周一) 등 전후 일본의 사상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당시 소장학자의 신분으로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근대 일본 사상사’를 습득하는 단순한 텍스트의 기능을 넘어서, 전후 일본의 사상학계가 근대 일본의 무엇을 화두로 삼아 출발하였는지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재료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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