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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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이수명
저자 이수명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김구용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2001년 『시와반시』에 「시론」을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1995),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1998), 『붉은 담장의 커브』(2001),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2004),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2011), 『마치』(2014), 연구서 『김구용과 한국현대시』(2008), 시론집 『횡단』(2011), 번역서 『낭만주의』(2002), 『라캉』(2002), 『데리다』(2003), 『조이스』(2006) 등을 펴냈다. 박인환문학상(2001), 현대시작품상(2011), 노작문학상(2012), 이상시문학상(2014)을 수상했다.
목차
- 책머리에 7
1990년대 시란 무엇인가 17
육체와 사물의 시대로-김기택의 『태아의 잠』 35
잉여이자 공백, 이자(利子)의 세계-장경린의 『사자 도망간다 사자 잡아라』 50
거대한 것과의 대결-함성호의 『聖 타즈마할』, 노태맹의 『유리에 가서 불탄다』 65
점들의 공습, 무심한 콜라주-최정례의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83
자동 육체, 모든 치욕의 패권이라는 핍쇼-김언희의 『트렁크』 99
피의 카니발, 빛의 언어-진이정의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116
나는 미정의. 미완의. 그 무엇이며. 사라지는 중이다 -박상순의 『6은 나무 7은 돌고래』 130
소년 시대, 단일 주체가 사라지는 방식에 대하여-함기석의 『국어선생은 달팽이』 148
누군가 나 아닌 다른 걸 빌려 입고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아요-환멸의 배우론
-강정의 『처형극장』 168
모든 무게들이 튕겨져오르는 순간-황인숙의 『슬픔이 나를 깨운다』 185
바이오맨에서 울트라맨으로-서정학의 『모험의 왕과 코코넛의 귀족들』 200
빛을 피해서 한없이 걸어가는-허연의 『불온한 검은 피』 220
책 속으로
앞으로 12회에 걸쳐 쓰일 1990년대 시문학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1990년대에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하되, 단지 1990년대를 조망하는 범주들의 개괄적 적용이 아니라, 앞 시대의 사유나 감각에 맞서는 독자적인 작은 기준과 감각의 양상, 언어의 입체적인 운동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작은 기준은 이를테면 1990년대 시적 자아의 특성이나 세계와의 거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1990년대의 자아는 1980년대의 거대 자아를 어떻게 무력화시키면서 특유의 방식으로 나타났는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자세, 새로운 발성, 새로운 감각, 1990년대 자아의 새로운 표상을 추적해봄으로써 1990년대 시에 다가가 볼 수 있다. 이는 주제나 소재 차원의 거대 서사가 아니라 자아가 어떻게 세계와 대면하고 있는가, 어떤 호흡으로 서 있는가를 직시해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1990년대 들어와 변화된 환경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적 자아의 위치와 태도, 감각이기 때문이다.-「1990년대 시란 무엇인가」22~23쪽
장경린이 1990년대에 퍼뜨린 利子는 세계를 기호로 축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2000년대에 도래하게 될 시편들에 나타나는 진공과 진동에 직간접으로 연동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이후의 시들은 일종의 利子와도 같은, 유령이나 귀신, 아이, 게이 같은 기호들을 들고 예측할 수 없는 각도로 휘어지거나 튀어오르면서 아주 멀리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利子의 실험의 성과 위에서 가능해진 현상이다.-「잉여이자 공백, 이자(利子)의 세계」64쪽
『트렁크』로 말미암아 과잉은 상징이나 암시와 같은 문학성, 예술성에의 의문 제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기성의 미학적 은닉 자체를 폭발시켜버리고 대상 자체를 내세우는 동력으로 자리할 수 있었다. 육체의 과잉을 통해 비로소 이데올로기와 역사의 정신적 예인선을 붕괴시키는 새로운 세기의 시들이 본격적으로 촉발되었던 것이다.-「자동, 육체, 모든 치욕의 패권이라는 핍쇼」115쪽
박상순의 『6은 나무 7은 돌고래』는 1990년대 초반, 1993년에 나왔다. 예외적인 시집들이 흔히 그렇듯이 이 시집은 아무 예고도 없이, 전조도 없이 와서, 아무 파란도 없이 처음에 왔던 그 자리에 아직도 서 있는 듯 보인다. 1990년대나 그 이후는 이 시집의 이상한기운을 충분히 호흡하지 않은 것이다. 어떤 거리감을 갖고 바라보았을 뿐이다. 이 말은 이것이 아직도 소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좋은 시집은 대개 시집의 크기만큼 충분히 소비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소비가 불가능한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시집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중요한 내용들을 품고 있음이 틀림없다.-「나는 미정의. 미완의. 그 무엇이며. 사라지는 중이다」 130쪽
함기석의 『국어선생은 달팽이』는 1998년에 나왔다. 이 시집을 펼치면 제일 먼저 느껴지는 것이 2000년대와의, 그리고 2010년대를 넘어선 현재와의 놀라운 친연성이다. 시간에 가속이 붙은 것처럼 감각이나 감수성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기에, 2000년대를 16년경유한 시점에서 1990년대의 시집을 보며 간극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간극은커녕 이 시집은 현재와 동등한 감각의 포지션을 지니고 있다고까지 여겨진다. 1990년대가 아니라 최근에 간행된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감각의 현재성이라는 것은 좋은 시라면 지녀야 될 기본적인 덕목이지만 이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시간의 그늘 아래 놓이며 역사가 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함기석의 시에서 시간의 더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시집이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현재형임을 시사한다. 아직도 현재의 시가 그의 감각을 읽고 공유하고 분배한다는 것이다.-「소년 시대, 단일 주체가 사라지는 방식에 대하여」 148~149쪽
출판사 서평
“1990년대 한국시를 우리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시인 이수명이 새롭게 정립해본 1990년대 한국시문학사
『공습의 시대』
“1990년대 시들에는 1980년대의 거인과 2000년대의 유령들이 동시에 어른거린다!”
1994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이후 이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시세계를 펼치며 한국시문학사에 독특한 개성으로 자리하게 된 시인 이수명. 그가 새로운 책 한 권을 들고 우리 앞에 등장했다. 이번 책『공습의 시대』는 ‘1990년대 한국시문학사’라는 부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 본격적이고 포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던 1990년대 한국시들을 처음으로 정리하고 연구해봤다는 데서 일단 큰 의의를 가진다 하겠다.
2000년대에 들어선 지도 15년을 훌쩍 넘긴 시점이지만, 1990년대 시문학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우선, “현재가 과거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가 현재에 의해서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T. S. 엘리엇의 말처럼 현재의 시가 부단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17쪽
1990년대의 한국시에 대해, 시인 이수명은 “1980년대를 벗어나느라고 1980년대적인 것을, 새로운 것을 추동하느라고 2000년대적인 것을 상상하며 이웃하였다”고 개괄한 바 있다.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시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1990년대 시의 주요한 정향을 살피고 그들의 움직임을 추적하기 위해, 이 책은 동시대에 나온 수백 권의 시집 중에서 1990년대적 새로움을 담고 있는 극히 일부의 시집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어떠한 기준에도 의존하지 않고 이전 시대의 발성이나 호흡과 다른 것을 생성시킨 시집들을 오래 들여다보며 논지를 끌어왔는데, 지금은 중견 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첫 시집이 주요 대상이 되었다. (황인숙 시인의 경우만 두번째 시집.)
첫 시집을 대상으로 한 것은 1990년대에 첫발을 디딘 시인들의 최초의 발성 속에 새로운 시도들이 출현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뤄진 시인은 김기택, 장경린, 함성호, 최정례, 김언희, 진이정, 박상순, 함기석, 강정, 황인숙, 서정학, 허연까지 총 열세 명이다.
1990년대의 시의 특징에 대해서는 몇몇 개괄이 있다. 논자들이 기술하고 있는 1990년대 시는 상당 부분 이와 같이 변화된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깊이나 높이보다는 넓이의 시대인 1990년대에 그동안 잠재적이거나 가라앉아 있었던 개인, 일상, 문명, 여성, 몸, 생태와 같은 담론들이 발견되고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에 주목한 것이다. 그들의 의견처럼 이들 문학 담론의 생성 자체가 1990년대의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전시대와 구별되는 이러한 다양성이 1990년대의 자리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21~22쪽
이쯤에서 제목 속의 ‘공습’이란 단어에 주목을 해볼 필요가 있겠다. 왜 1990년대 한국시문학사를 정리하는 데 있어 ‘공습’이란 용어를 써야만 했을까.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 문학은 매우 거대하고 강고하였으며, 1990년대는 이 강고한 리얼리즘과 싸움을 벌인 끝에 형성된 세계다. 이후 리얼리즘 문학이 주류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 싸움의 효과와 영향은 지금까지 감지되고 있다. 다시 말해 시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전 시대에 대한 공습을 감행한 것이다. 결국 1990년대를 열어젖힌 시의 힘은 홀로 있는 시들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홀로 싸우며 멀리 나아간 시들, 고립적이고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것이 독자적 탐험이 되었던 1990년대의 시들. 2000년대를 사는 오늘의 시인들이 보다 자유롭고 보다 개성적이며 보다 풍요로운 상상력으로 그 시의 확산을 온몸으로 살아낼 수 있는 데는 앞선 시대의 ‘홀로 있는 시들’의 그 ‘있음’으로 말미암은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보자는 얘기다. 그러니 다시 읽자는 얘기다. 역사는 그렇게 쓰이는 것이고 그래야 다음 역사가 먼 미래에 또 쓰일 수 있으니 아직도 고요한 싸움을 치르는 중인 1990년대 시들과 뒤늦은 만남이라도 이렇게 가져보자는 얘기다.
1980년대의 거인들과 대결하는 작고, 보잘것없고, 더이상 세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어떤 역할을, 거대한 감정을 담당해야 할 의무도, 필요도, 가능성도 사라진 시대의 무용한 자아들이 출현하는 시들이어야 한다. 이것이 1990년대 시의 실질적인 출발이라 할 수 있다. -34쪽
기본정보
ISBN | 9788954643702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12월 25일 |
쪽수 | 236쪽 |
크기 |
135 * 206
* 21
mm
/ 345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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