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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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허수경은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을 두 권 내고 고향과 서울을 떠나 남의 나라에서 엎드려 책 읽고 남의 시간을 발굴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십수 년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껏 펴낸 시집으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이 있고,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모래도시를 찾아서』, 장편소설 『모래도시』 『아틀란티스야, 잘 가』가 있다.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젊은 시인들과 젊은 노점상들과 젊은 노동자들에게 아부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목차
- 1 박하 향기의 기원 007
2 하남이라는 도시 036
3 아주, 아주 먼 여행 02
4 간절함, 그리고 첫사랑의 눈빛 102
5 제국의 노을 120
6 도착 140
7 당신과 나의 고독 146
8 해독되지 않는 그대 160
9 내 사랑, 하남 183
10 배신의 내면 195
11 존재하지 않는 도서관 225
12 내가 다녀갔거니 해줘 234
작가의 말 273
책 속으로
우린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모르지
아침에 일어나면 내 목을 누르는 슬픔
그저 지나갔으면 했지만
매일의 손님이야, 이 슬픔은
왜 그런지 나도 몰라
아마도 내 아침의 버릇이겠지
네가 쓰러졌는데도 난 몰랐고
내가 우는데도 넌 몰랐지
꼭 우린 모르는 사람들 같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건
단 하나, 빛나는 우리 인생의 별
살아가는 거야, 서로 사랑하는 우리,
상처에 짓이겨진 박하 향기가 날 때까지
박하 향기가 네 상처와 슬픔을 지그시 누르고
너의 가슴에 스칠 때
얼마나 환하겠어, 우리의 아침은
어디에선가 박하 향기가 나면
내가 다녀갔거니 해줘
출판사 서평
내가 아무리 너를 부인해도 너는 있다.
얼마나 생은 아프도록 눈부시고 좋은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 화제의 연재작
“어디에선가 박하 향기가 나면
내가 다녀갔거니 해줘”
계속 살아야 하는,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하는
가엾은 우리, 우리를 살게 하는 이야기!
2011년 1월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으로 10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던 허수경, 그녀가 2011년 12월 장편소설 『박하』를 들고 다시금 한국을 찾았다.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근 4개월에 거쳐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일일연재로 소개된 『박하』는 그 시작부터 여러모로 화제가 된 소설이었다. 시인 허수경이 쓴다는 거, 시인 허수경이 독일로 가 공부로 삼은 고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거, 한 세기를 놓고 교차하는 과거와 현재로 말미암아 인간이라는 존재의 안팎을 시공간을 거슬러 끊임없이 묻고 있다는 거, 그렇게 집요하게 근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거, 특유의 애잔한 정서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던져져 있으나 그걸 집는 마음의 구부러짐으로 결국 인간의 심장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거.
사고로 아내와 아이 둘을 잃고 선배가 있는 독일로 떠난 한 사내가 있다. 그의 이름 이연, 『박하』는 바로 그 사내, 이연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무(李無) 혹은 칸 홀슈타인의 기록-1902년 봄에서 1903년 겨울까지’라고 쓰인 노트 속 칸의 이야기가 교차하여 전개된다.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이연은 출판 편집자다. 한 사람의 인생 항로를 바꾸는 정말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으나 참고서 팀으로 발령이 나더니 결국 실업자가 되고 만다. 거기다 저릿한 연애 시절을 거친 후 결혼한 아내마저 두 아이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다. 두 번이나 불륜을 저지른, 사십대 중반의 허허로움을 이기지 못해 부유하던 그였으나 그로써 완전히 절망에 빠지고 만다. 그런 이연에게 대학 내내 동지였던 마준이 노트 한 권을 건넨다. 20세기 초 중국을 떠돌다 독일인에게 입양되어 고고학자가 된 이무의 기록이었다. 이연은 그 기록을 읽으며 이무과 자신을, 또 이무와 마준을 동일시하게 된다. 이연은 마준을 따라 독일로 가고, 거기서 또 이무의 기록을 따라 터키로 향한다. 이무의 기록에는 하남이라는 고대의 도시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겨 있다. 이무는 도시와 같은 이름을 가진 노마드 여인 하남을 만나게 되고, 하남에게는 동시에 여러 시간을 살아가는 병이 있다. 하남과 사랑에 빠진 이무는 그녀와 삶을 꾸리고 싶어하지만, 탐욕스러운 식민지 시대의 기운이 터키를 침범하기 시작한다. 이무의 기록을 모두 읽고 난 이연은, ‘존재하지 않는 도서관’이라고 이름 붙여둔 책에 대한 아이디어 폴더를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아내가 썼던 시 한 편으로 시작을 꿈꾼다.
그녀가 서 있는 곳, 그곳은 고대였고
내가 서 있는 곳, 이곳은 20세기.
나는 하남을 불러보았다. 그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 그녀도 이 시간, 내가 서 있는 시간 속에 있구나.
다행이었다. 참으로 거짓말 같은 참말.
-p178
바야흐로 21세기, 시인 허수경은 왜 20세기의 이야기를, 그보다 더 앞선 고대의 이야기를 한데 묶을 수밖에 없었던 걸까.
“이 이야기를 떠올린 것은 벌써 6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처음,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였던 하투샤라는 폐허 도시를 방문할 때였어요. 거대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고대 도시였지요. 처음 그 고대 도시를 방문한 날 저는 그곳에서 바위 계곡에 피어 있던 야생 박하를 보았습니다. 박하향은 희미했으나 그 향기에 몰두하면 할수록 향은 더욱더 진하게 제 코를 스쳤습니다. 그 냄새 속에 몇 사람의 얼굴과 삶이 떠올랐습니다.”
박하로 대변되는 자연, 그 자연을 우리가 왜 찾는가…… 결국 그 무한성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1세기 만에 우리는 얼마나 빨라지고 거대해졌는가. 우리가 이룩했다고 믿는 그것, 그 발전의 그늘 뒤에 남은 우리의 모습은 과연 그에 비할 만큼 성장하고 성숙한 그것인가. 시인 허수경의 소설적 촉은 바로 그로부터 발한다.
“우리들이 가진 비극 가운데 하나는 고대인이나 중세인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신의 의지’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다. 신화가 사라지고 난 뒤 ‘신의 의지’라 체념하면서 간단없이 삶을 싹, 정리할 수 있는 배짱도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신화의 자리에 질문하고 반성하고 사유하는 인간을 놓아두었습니다. 삶은 정리되지 않고 영혼이 받은 죽음에 이르는 충격도 간단하게 처리되지 않습니다. 위로를 받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영혼의 파탄 지경을 겪으면서도 계속 살아야 하는,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하는 우리.”
이 소설이 너무 슬플 수밖에 없는 이유, 그래도 어떡할 수 없는 이유, 우리가 처한 현실이 바로 그러한 까닭일 것이다. 존재 자체가 가지는 원초적인 비릿함을 누가 희석시켜줄 수 있겠는가. 소설 속 인물들은 대화보다 혼자 읊조리기를 즐겨하는 편이고, 이를테면 포기와 체념도 빠른 편이다. 도저히 정형의 문장으로는 나올 수 없는 감정적 토로도 많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헐거움과 뻑뻑함은 일정한 코바늘뜨기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어떤 물결의 일렁임을 따르는 듯 쉴 새 없이 출렁거린다. 그로 인한 멀미, 멀미라는 고독……
이때 허수경이 풍기는 고독은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비롯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물 속에 비친 나를 보는 심정, 그러나 그 ‘나’는 비단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나’임이 분명할 것이다. 허수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삶 앞에서 노마드가 아닌 자, 누구란 말인가. 방황하고 떠도는 것이 운명인 우리들이 이를 자주 잊는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지진, 쓰나미, 원전 폭발, 전쟁…… 이 수많은 재앙에 있어 가장 아픈 부분은 자연과 인간의 어떤 ‘영원의 표정’이 그 와중에 파괴되었고, 다시는 그 ‘영원의 표정’이 복구되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부상일 것이라는 시인의 추측이 그리 빗겨나지 않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아팠다면, 통증을 느꼈다면, 그것이 또한 치유이리라. 인간의 몸이 원래 그러하므로. 본디 자연을 따르는 것, 그렇게 자연을 영혼 속에 새기는 것, 이 소설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바가 아닐까.
작가의 말
그랬다. 나는 항상 멀리 있었고 너 역시 그래서 우리는 이 생애에서 몇 번이나 만났던가. 그런데도 너는 잊혀질 만하다 싶으면 짧은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그게 우리의 인연이거니 생각했는데 참,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내가 그리워하는 너는 언제나 너의 소재지를 밝히지 않으니 그게 힘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인연을 붙들고 괴로운 것도 괴롭지 않은 것도 아니었던 시간에, 글을 쓰기 위해 오렌지빛 램프를 켜며 책상 앞으로 돌아온 나날들.
책을 한 권 다 쓰고 난 뒤 생각을 해보면 모든 글쓰기의 내면에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19세기 말과 20세기,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금 21세기, 모두를 통틀어서 상처 없는 바람을 안고 간 사람은 없었겠지. 그리고 그 상처의 바람은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가슴에 품고 헤매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중략)
아, 내가 아무리 너를 부인해도 너는 있다.
얼마나 생은 아프도록 눈부시고 좋은가. 네가 어느 거리에서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나를 생각하니. 그리고 이 글이 쓰이는 동안, 고백한다, 너를 생각해보지 않은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네가 누구인지 나는 몰라서 글 속의 길은 좁고 가팔랐다.
2011년 11월, 허수경
기본정보
ISBN | 9788954616683 |
---|---|
발행(출시)일자 | 2011년 12월 15일 |
쪽수 | 277쪽 |
크기 |
145 * 210
* 20
mm
/ 400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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