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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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기관 추천도서 > 세종도서 우수교양도서 > 2010년 선정
어머니 알통
나 아홉살 때
뒤주에서 쌀 한 됫박 꺼내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내 알통 봐라" 하고 웃으시며
볼록한 알통 보여주셨는데,
지난여름 집에 갔을 때
냉장고에서 게장 꺼내주신다고
왈칵 게장 그릇 엎으셔서
주방이 온통 간장으로 넘쳐흘렀다.
손목에 힘이 없다고,
이제 병신 다 됐다고,
올해로 벌써 팔십이시라고.
작가정보
목차
- 1부 어머니, 하관하던 날
꽃무늬 손수건
보따리 열 네개
어머니 알통
자꾸 비는 내리고
완산동 옛집
어머니, 하관하던 날
알프스 냉이꽃
시베리아 열차
빈 연
피난처-아버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아버지 새가 되시던 날
2부 허락 없이 숲에 눕다
꿈
허락 없이 숲에 눕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새
무덤
레퀴엠
고리대금업자의 투자-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성당에서
카세드라
공자의 외로움
수락산 옥계폭포
한단의 꿈
삼백만 년 전 그 여인
온달장군의 죽음
화장실 찔레 화분
새가 날아간 새벽
엘니뇨 귀신은 물렀거라
3부 폐경기 여성
해골
김부귀씨
유귀복
영안실
폐경기 여성
유상훈
이상수
롱다리
4부 죽은 금동이 안 오다
최낙운
자전거 천천히 달리기대회
죽은 금동이 안 오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충혼탑
고교 졸업 이십 주년 행사
김진표
편지 한 통
칠성각에서 한철
눈 내리는 소리
묵은 편지
5부 로렌
당숙의 귀향
로렌
케이시 선생님
파리똥 열매
문석남 할아버지
피츠버그 병원
김희권씨
앤느
방울새가 없는 풍경
6부 사랑의 무법자
북한 어린이 비디오
사랑의 무법자
최재형
10월 유신
홍창의
사당동 산 24번지 철거민-김하경님의글에서
지장보살
취학통지서
다음 중 간의 색으로 맞는 것은?
인순이
청계천 비둘기
어린 소나무에게
반야봉
핸드폰 일정표
해설-유성호 청안의 시학
시인의 말
출판사 서평
병원 삼층 화장실
세면대 옆에
누가 놓고 갔나,
조그만 찔레 화분.
너무 이뻐서,
주인 몰래 오늘도
물을 주고 돌아왔다.
_「화장실 찔레 화분」 전문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말랑말랑하고 곧은 힘
의사이자 시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서홍관의 세번째 시집 『어머니 알통』이 출간되었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상재한 이 시집은 그간 시인이 겪은 어머니의 죽음과 고통에 신음하고 그만큼 희망하는 환자들과의 일상을 통해, ‘삶 가운데 죽음 혹은 죽음 가운데 삶’이라는 크고 당연한 주제를 펼쳐 보인다. 의사만큼 무수한 죽음을 보는 자가 또 있을까? 그래서인지 시인은 자못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에게 삶이란 ‘허락 없이 숲에’ 누웠다 가는 일일 뿐이다.
구름 위에도 솔가지에도 아무렇게나 뿌려지는 가을햇살을 보며 나도 가던 길을 멈추고 갈참나무인지 굴참나무인지 알 길이 없는 낙엽들이 뒤엉켜 쌓여 있는 숲그늘에 털썩 눕는다. 쉬잇! 이미 가을 벌레들이 자리잡고 쉬는 중이다. 여보게 설마 나더러 나가라고는 안 하겠지. 당신이나 나나 이 우주에서 허락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나 되겠는가. 이 무진장하게 쏟아지는 가을햇볕이나 쬐다가 가세. 노린재 한 마리 벌써 내 옷소매 위로 올라앉는다.
_「허락 없이 숲에 눕다」 전문
무한한 시간 속에서 백년 인생이란 0에 가깝다. 때문에 숲그늘에 잠시 누워 쉬는 일이나, 우리의 삶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시인은「한단의 꿈」이라는 시에서도 꿈속에서 팔십 평생을 살고 돌아왔는데 깨어보니 조로 짓는 밥이 아직 익지도 않은 순간이었다는 고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인생은 그저 무상한 것일 뿐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모든 것에 마지막이 있다는 것이
더없이 편안해 보였는데
무덤 앞에 비석조차 없어
누구를 사랑했는지
누구를 미워했는지
알 길도 없이
새소리만 들리는 것이
더더욱 맘에 들었네.
_「무덤」 중에서
“모든 것에 마지막이 있”기에 삶은 오히려 가치 있다. 시인은 이것이 “더없이 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조카들과 농담도 하고 웃으면서” 산을 내려올 수 있다.
그래요 어머니, 우리는 슬플 일도 없어요.
어머니와 함께한 지난날들은 따스했어요.
제가 말씀드렸던가요?
어머니를 어머니로 만난 것이
내 인생이 첫번째 행운이었다고
저와 함께해주신 지난날 감사드려요.
_「어머니, 하관하던 날」 중에서
어머니를 향한 고백은 담담해서 더 아름답다. 시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시적인 이런 언술들은 담론이나 사상의 바깥에서 삶을 증명한다. 서홍관의 시에는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증명’이 널리 통용된다. 산다는 게 기실 별것 아니다. 누군가 병원 화장실에 놓아둔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이 삶인 것이다. 살아생전 아들 주시려고 동치미 국물과 김치와 깻잎과 무를 담은 보따리 열네 개를 들고 오시던 어머니(「보따리 열네 개」), 엑스선 사진에 찍힌 자신의 두개골을 보고 놀라는 멋쟁이 아가씨(「해골」), 뇌출혈로 서른일곱에 쓰러진 뒤 의사가 손잡아주고 격려해주면 그날은 운동도 열심히 하다가 이 정도로는 잘해야 식물인간이 될 뿐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울해서 종일 맥이 풀려 있는 환자(「유상훈」),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가장 위대한 생명들이다. 시인의 인식은 이렇게 주변의 평범하고 작은 것들로부터 출발하여 거대한 우주에 이른다. 하지만 그러한 사유에서만 그치지 않고, 분단 현실과 소수자에 대한 관심도 보인다.
캐나다 곡물은행이 찍었다는
뼈만 남은 아이들이 누워 있는
북한 어린이 비디오를 본다.
“왜 아이들이 울지 않지요?”
“울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이지요.”
_「북한 어린이 비디오」 중에서
시인은 의사의 입장으로 북한의 어린이들을 바라본다. 영양결핍과 야맹증, 각기병과 괴혈병과 구루병 등에 시달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안타까워한다. 그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활동에 참여했던 경험을 살린 이 시편은 따뜻한 연민과 함께 우리의 현실과 역사를 접속한다.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약한 사람들이 좀더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평안한 시선과 어법의 일관된 연속성 속에서, 이 실천의지들은 더 큰 빛을 발한다.
시집의 제목 ‘어머니 알통’은 그 의지의 말랑말랑하고 곧은 힘이다. 뒤주에서 쌀 한 됫박을 꺼내시며 “내 알통 봐라” 하며 웃으시던 장난, 그 따뜻한 보살핌이 믿음직하다.
기본정보
ISBN | 9788954610810 |
---|---|
발행(출시)일자 | 2010년 03월 30일 |
쪽수 | 125쪽 |
크기 |
121 * 186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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