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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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서울신문 > 2019년 6월 2주 선정
작가정보
작가의 말
나를 이루는 것 중 어느 조각은 분명 오빠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나는 감정의 격랑을 온몸으로 안으며 나와 타인과 삶을 배웠다. 오빠들이 키운 나는, 크고 작은 부침들은 있었지만 어쨌든 잘 자라서 썩 나쁘지 않게 지내고 있다.
(……) 이 작품을 통해 쓰는 즐거움을 되찾았다. 나는 여전히 소설이 좋다.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들지라도 소설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2n년 차 문학 덕질 중인 내가 소설가가 되어 책을 낸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덕업일치의 현장이고 성덕(성공한 덕후)의 길이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소설에 기대고 빚지며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목차
- 현오빠는 나를 달리게 한다
구오빠는 나를 멈추게 한다
오빠들은 나를 키운다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술 또 샀어? 집에 많은데.”
“많기는. 많은 술이 어딨어. 곧 없어질 술이지.”
?은 조신한 입을 오물대며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을 내던지고는 캔을 하나 땄다. 벌써 마시려고? 하고 묻는 내게 뭘 묻느냐는 듯한 눈빛이어서 나도 입을 다물고 옆에 앉아 캔 뚜껑을 열었다. 제나가 오려면 멀었는데 ?과 나는 있는 술을 다 비워버릴 기세로 안주도 없이 마셔댔다.
_30쪽
보고 싶다, 제나의 말에 보고 싶다, ?의 말이 겹쳐지고 보고 싶다, 나의 말도 섞여 들었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와 ‘좋아한다’보다 늘 우위에 있는 감정은 ‘보고 싶다’였다. 항상 보고싶었다. 보러 가는 길에도, 보고 있을 때에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_44~45쪽
친구들하고 너무 붙어 다니는 거 아니냐고 남자친구가 충고 섞인 말을 늘어놓으면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싸우는 건 싫으니까 네가 뭘 알아? 하고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가끔 아이돌이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웃어주고 말았다. 왜 사냐건, 웃지요. 그런 마음이랄까.
_51쪽
그 뒤 찾아온 1초의 정적. 정적 뒤에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루이가 없어도, 실제의 루이가 아니라도 우리는 이렇게 즐거워.
_57쪽
“스물하나의 내가 열아홉의 소년을 만났다. 소년을 보고 떠올린 것은 바닐라 아이스크림. 하얗고 달콤하고 폭신하기까지 한 궁극의 맛. 소년에게 내가 붙여준 이름은 서주아이스주, 줄여서 주주. 주주는 예쁘고 예쁘고 예뻤다. 나는 주주를 표현해야 할 때면 언어의 한계를 느꼈다. 더 좋은 말, 더 근사한 말, 더 멋진 말로 주주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내가 가진 언어의 서랍은 너무 좁고 얕은데 주주의 아름다움은 지나치게 넓고 깊어서. 그래도 내가 주주를 정말 좋아하게 된 계기는 빛나는 외모가 아닌, 그 너머의 어둠이었다.”
_103~104쪽
“맞아, 그 부분. 아는구나.”
우리는 신나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숨죽여 그 부분을 들었다. 츄파의 나른한 목소리가 속삭이듯 노래했다.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는 사이에 키스하지 않을래? 키스하자.’
_176~177쪽
소리 내어 물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알았지만 쓸쓸했고 답답했다. 한 번쯤은 내 말이 소리로 되돌아오고 내 눈빛이 온기로 되돌아오는 사랑을 하고 싶었다. 마음 말고 생각 말고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나를 채웠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혼자 남겨졌을 때 번호 몇 개로 이어질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면 견디는 것이 쉬울 텐데. 그 생각의 끝은 늘 그렇듯 허탈한 웃음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음악을 켜고 멈췄던 청소를 이어갔다. 나의 오빠는 청소하는 나를 위해 열심히 노래를 불러주었다.
_208쪽
제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함께 심장이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제나도 나도 별일 아닌 것을 아는데, 아는데도 목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다.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그게 그들과 우리 사이의 관계일지도 몰랐다. 제나는 눈썹의 움직임만으로 희성의 기분까지 알아차렸는데 결국 모르는 사이였다. 말을 하면 들릴 정도의 거리였는데 불러보지도 못했다. 공연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울부짖듯 그렇게 많이 외친 이름이었는데 가까이에 있으니 부를 수가 없었다. 멀리 있을 때 가까움을 느꼈듯이 가까이 있을 때 오히려 멂을 느꼈다.
_224쪽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셋이 있으면 괜찮았다. 넘어지고 엎어져도 덜 부끄러웠고 다시 일어날 힘이 돋아났다. 남들은 하나도 웃지 않을 개그에 말을 보태면서, 깔깔 넘어가면서, 헛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애인과 헤어지고도 할머니를 떠나보내고도 아이돌과 멀어지고도 우리는 함께였다. 이별이 쉼 없이 이어지는 동안 떨어져 나가는 내 살점을 보는 것처럼 애타고 아프고 힘겨웠지만 흔히 하는 말 그대로 내일은 왔다.
_235쪽
한 살 더 먹었지만 나는 연애 대신 달달한 팬질을 다시 시작했다. 거리감에 무력감에 울게 될 걸 알면서도 또다시 사랑에 빠졌다. 사실 그들은 천사보다는 악마에 가까웠다. 내 일상을 흔들고 현실을 뒤엎으며 생활을 조이는. 나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들을 보고 싶었고 더 가까이로 가고 싶었다. 그들은 별이고 꿈이었다. 꿈 없이 일상에만 갇혀 살아가는 내게 그들은 우주를 건네주었다. 나는 늘 꿈의 언저리를 맴돌고 맴도는 행성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내 우주에 불을 켜주었다. 나는 그 흔들리는, 흐릿한 불빛에 의지한 채 걷는다. 사랑하는, 그들에게로.
_267~278쪽
출판사 서평
현오빠는 나를 달리게 하고
구오빠는 나를 멈추게 한다
경쾌하지만 불안하고 설레지만 가슴 먹먹한
삼십대 여자 셋의 ‘덕질 라이프’
박사랑 첫 장편소설
“이 소설이야말로 덕업일치의 현장이고 성덕(성공한 덕후)의 길이 아닐까.”
경쾌하지만 불안하고 설레지만 가슴 먹먹한
삼십대 여자 셋의 ‘덕질 라이프’
2012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뒤 첫 소설집 『스크류바』를 내며 “삶과 이야기에 대해 고민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 소설가 박사랑의 첫 장편소설 『우주를 담아줘』가 자음과모음의 ‘새소설’ 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대산창작기금을 수혜받은 작품으로, 선정 당시 “팬덤 문화를 이해하는 데 이만한 텍스트가 있을까”라는 심사평과 함께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본격 아이돌 소설인 『우주를 담아줘』는 아이돌 덕후인 삼십대 여자 셋, 디디와 ?과 제나의 사랑과 우정을 담은 작품이다. 고3 겨울, 처음 만난 셋은 좋아하던 그룹의 팬사이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실제로 만나자 자연스레 서로를 팬사이트 아이디를 딴 닉네임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디디는 좋아하던 멤버의 이니셜에서, ‘크리스티나’였던 ?은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오는 닥터 크리스티나 ?에서, 제나는 ‘언제나mvp’에서 각각 따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이는 서른을 넘어섰고 그럼에도 덕질은 지속되었다! 덕질은 인생의 낙이자 해방구이자 품앗이이므로. 그런데 삼십대 덕질은 어렸을 때와 조금은 다르다.
“우리는 티켓팅에 실패하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티켓을 살 수 있는 자금력을 갖췄고 국내 공연에 실패하면 해외 공연에 갈 수 있는 행동력까지 갖춘 삼십대 빠순이니까. 누가 인생은 삼십대부터라고 말하던데, 나는 빠순질 역시 삼십대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야 좀 할 만해졌다고나 할까.”(14~15쪽)
『우주를 담아줘』에서는 유쾌하고 발랄한, 현실 웃프고 센 언니들의 재기 넘치는 일상과 수다 잔치가 펼쳐진다. 포도알, 하느님석, 이선좌, 피케팅, 막콘, 덕통사고, 일코, 폼림, 멜림, 사녹…… 등 온갖 덕질 전문용어가 각주로 화려하고 명랑하게 등장하며 흥미를 자극한다. 그래서 독자는 읽는 내내 기분 좋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작가가 정말로 좋아서 쓰고, 쓰면서 좋아했던 소설이기 때문이리라. 소설가 박사랑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힌다.
“오직 즐겁기 위해서 썼다. 소설이라는 자각도 없이. 누구의 눈에 들려 노력하지 않고, 어디에 발표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썼다. (……) 나를 이루는 것 중 어느 조각은 분명 오빠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나는 감정의 격랑을 온몸으로 안으며 나와 타인과 삶을 배웠다. (……) 2n년차 문학 덕질 중인 내가 소설가가 되어 책을 낸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덕업일치의 현장이고 성덕(성공한 덕후)의 길이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소설에 기대고 빚지며 살아가게 될 것 같다.”(‘작가의 말’ 중에서)
현오빠는 나를 달리게 하고
구오빠는 나를 멈추게 한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돌 프로그램을 본 다음 날, ?과 나는 서로 눈을 맞추며 봤어? 하고 물었다. 사랑에 빠지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덕통사고를 당하는 건 몇 분, 아니 몇 초면 충분했다.”(52쪽)
디디와 ?과 제나는 그야말로 열혈 아이돌 덕후다. 디디는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덕질을 하고 ?은 학교 선생님인데 덕질을 하고 제나는 덕질을 하면서 일취월장하게 된 일본어 번역으로 밥을 벌어먹으면서 덕질을 한다. 현오빠, 즉 현재 사랑하는 아이돌의 영상을 매번 돌려 보고 콘서트는 빠짐없이 출첵하고 온갖 굿즈를 사 모으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셋이 만나면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세울 정도.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아이돌에 대한 애칭도 남다르다. 언어의 한계를 느끼며 고심해낸 작명은 사랑하는 아이돌의 특성에 맞춤한다. 이를테면 주주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하얗고 달콤하고 폭신하기까지 한 궁극의 맛. (……) 서주아이스주, 줄여서 주주”(104쪽)이고 츄파춥스가 연상되어서 붙여진 츄파는 “여러 색이 제멋대로 섞여 있는 달콤한 볼(ball). 물러 보이지만 의외로 단단한 심지가 있어 잘 깨지지 않는 사탕”(136쪽) 같다.
그렇게 아이돌에 대한 애정을 일구어나가는 어느 날, 디디는 인터넷 연예 기사를 훑다가 ‘일본 유명 아이돌, 이마무라 유아 중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게 된다. 유야는 디디가 정말 사랑했던 구오빠, 구아이돌이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유야는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유야가 자살을 했다는 의혹을 접하게 된 디디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 즉시 회사에 급히 휴가계를 낸 후 일본으로 떠나는데……
한편 『우주를 담아줘』는 세 여자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로 애정하는 존재를 깊이 품으면서 쌓아온 우정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이며, 대한민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삼십대 여성들의 불안한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박사랑 작가가 사려 깊은 목소리로 잘 버무려놓은 에피소드들은 이 시대의 핍진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디디와 ?과 제나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며 벼려온 우정을 독자들은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면서 한편으로는 먹먹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셋이 있으면 괜찮았다. 넘어지고 엎어져도 덜 부끄러웠고 다시 일어날 힘이 돋아났다. 남들은 하나도 웃지 않을 개그에 말을 보태면서, 깔깔 넘어가면서, 헛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애인과 헤어지고도 할머니를 떠나보내고도 아이돌과 멀어지고도 우리는 함께였다. 이별이 쉼 없이 이어지는 동안 떨어져 나가는 내 살점을 보는 것처럼 애타고 아프고 힘겨웠지만 흔히 하는 말 그대로 내일은 왔다.”(235쪽)
기본정보
ISBN | 9788954439817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5월 30일 | ||
쪽수 | 272쪽 | ||
크기 |
126 * 192
* 20
mm
/ 294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새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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