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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세계에서 눈 밖에 나 있는 야생마 얼굴을 보여주던 김성근 감독은 2007년 대역전극으로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면서 50여 년간 맺힌 한을 풀었다. 그런 그가 밟아온 삶은 비단 야구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어느 한 나라에도 속하지 못하는 재일교포들의 삶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김성근 감독을 겪은 이들은 그를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는다. 과연 그의 어떤 면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오직 선수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었던 김성근 감독. 무수한 야구팀을 전전하며 4강 감독이라는 폄하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며 패배에 무릎 꿇지 않고 앞을 향해 전진했던 그의 고단하지만 빛나는 삶이 펼쳐진다.
작가정보
1942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남 진양이다. 일본 가쓰라 고등학교에서 투수로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고 재일 교포 학생야구단, 동아대, 교통부 선수를 거쳐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었으며 이후 기업은행에 입단하여 발군의 활약을 펼치지만 부상으로 인해 1968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1969년 마산상고 감독을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고 1972년에 기업은행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973년 국가대표 코치직을 일임하고 충암고와 신일고의 감독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후 1782년 OB 베어스 코치로 들어가면서 프로야구계에 발을 담그게 되면서 1984년부터 OB 베어스,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감독직을 수행하였다. 2005년도에 일본 지바의 롯데 마린스 순회 코치로 잠시 생활하다가 2006년부터 현재까지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기록으로는 2002 한국시리즈 준우승(LG 트윈스), 2007, 2008 한국시리즈 2연패(SK 와이번스), 2008년 9월 프로야구 통산 두 번째 1천승 달성, 2009년 5월 프로야구 통산 두 번째 2천 경기 출장 등이 있으며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1975년 체육훈장 기린장, 2007 한국시리즈 최우수 감독상, 2007 스포츠토토 올해의 감독상, 2008 한국시리즈 최우수 감독상이 있다.
목차
- 1. 일구이무(一球二無)
2. 야생야사(野生野死)
3. 긍정의 힘
4, 악마
5. Turning point
6. 주홍글씨
7. 조국
8. 국가대표
9. 햇빛 찬란한 날들
10. 영주 귀국
11.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12. Fall in love
13. 소년, 로망을 이루다
14. 스타 감독
15. 길, 가야 할!
16. 아픔
17. 충돌
18. 산에 가는 이유
19. 적재적소
20. 지지 않는 야구
21. 청바지를 입은 우물 안 개구리
22. 팬들과 함께
23. Oh, my son
24. 우승
25. 야구 밖으로
26. 완전한 야구를 위하여
발문 : 김성근의 재발견, 패배와 승리의 문화인류학
책 속으로
‘졌다!’ 싶은 생각이 스친다. 차마 못 보겠다. 눈을 돌린다. 조명탑의 불빛이 눈앞에서 번쩍인다. 째깍째깍, 순간 환호성이 내 옆에서 들린다. 더그아웃의 우리 팀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뛰쳐나간다. 이긴 거다. 병살플레이가 성공한 거다. 아! 세번째도 살아났다. 선수들이 기적을 일궜다. 내 얼굴에 비로소 활짝 웃음꽃이 피어난다. 환한 조명만큼이나 환한 웃음이. 한국 시리즈 2연패다. 작년에 우승할 때보다 기분이 더 좋다. 마음껏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 우리 팀이 추구하는 앞선 야구, 창의적인 야구가 일회성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작년 우승을 ‘어쩌다’라거나 ‘우연히’라고 믿고 싶어 하던 사람들에게 멋지게 한 방 먹였다.
일구이무(一球二無), 삼세번도 없고 두 번도 없다. 한 번 던진 공을 다시 불러들일 수는 없다.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작은 세상 하나가 창조된다. 타자가 치는 공 하나에도, 수비수가 잡는 공 하나에도 ‘다시’란 없다. 그래서 공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고, 진정으로 최선의 플레이를 해야 한다.
기대가 컸던 만큼 타도 일본에 성공하진 못한 아쉬움도 컸지만, 우리나라의 잠재력을 확인한 건 큰 성과였다. 일본과의 실력 차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나는 국내외 야구인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찬사가 이어졌다. 뿌듯했다. 또 어머니한테 장문의 편지를 쓸 일이 생겼다. 한국에 오길 잘했다. 모든 게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마음이 놓였다. 더 이상 가위눌리지도 않았다. 1962년 내 전성기가 화려하게 시작됐다. 이제 만 스무 살. 세상에 겁날 게 없는 나이였다.
“고려완!”
“컷! 또 고려완이라고 하시네. 고려왕이라니까요, 왕! 완이 아니라 왕이요! 자, 따라 해보세요. 왕 왕 왕 왕 왕…… 좋아요. 다시 가겠습니다. 큐!”
“고려완!”
“컷!”
CF 촬영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완’과 ‘왕’, 발음 하나 때문에 하루 종일 물속을 들락거리고 있다. 코가 맹맹한 게 감기가 온 것 같다. 한겨울 오대산에서도 안 걸린 감기를 난방 잘되는 스튜디오에서 걸리게 생겼다. 1989년 1월 나는 태평양 돌핀스 선수들을 이끌고 강원도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들어갔다.
젊을 때는 역경과 장애에 수시로 부딪힌다. 부딪히고 때로는 휘몰아치는 것을 겪으면서 자기 길을 가는 것이다. 강처럼 사는 게 쉽지만은 않다. 세상에는 강의 줄기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다. 남의 삶조차 자기 의도와 입맛에 맞추려는 사람들이 있다. 알량한 권력으로 권위를 휘두르는 무리들이다. 나는 그런 무리들과 맞서 싸워왔다. 내 삶의 물줄기를 바꾸려 하는데 맞서 싸우는 건 지극히 인간적인 태도다.
출판사 서평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야구 열풍!
친구와 함께 때로는 가족과 함께 야구장에 가본 적이 있는가. 1회 초부터 9회 말까지의 긴 호흡 속에서 매순간마다 많은 경우의 수가 있고,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 수많은 기회와 반전이 도사리고 있기에 우리네 인생사처럼 알 수 없는 재미와 묘미가 숨어 있는 스포츠!
1970년대 고교야구에 이어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야구는 매해 감동과 열정의 드라마를 연출해내며 한국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국민 스포츠로 굳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지금,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야구가 당당히 금메달을 따내고, 2009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세계 2위에 입상하면서 한국 야구가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왜 우리는 김성근에 주목하는가
2008년 9월 프로야구 통산 1,000승 달성, 2007년과 2008년 두 번에 걸쳐 한국시리즈 한국 야구사를 다시 쓴,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 오로지 야구만을 위해 낭인 신세도 마다하지 않고 외길 인생을 살아온 김성근 감독은 야생야사(野生野死)를 몸소 실천하며 평생을 야구에 온전히 바쳤다. 진흙투성이의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지금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왜 우리는 지금 김성근 감독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오로지 야구만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낸 열정 때문이다.
“패전과 실패는 감독의 좋은 친구이다!”
“마음이 변하면 태도가 변하고 태도가 변하면 행동이 변한다.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면 인격이 변한다. 바뀐 인격은 운명을 바꾸고 운명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일구이무(一球二無), 공 하나에 두번째란 없다. 야구와 인생에 있어서 다음 기회는 없기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
김성근 감독이 솔직담백하게 밝히는 ‘인간’ 김성근 이야기!
야구 감독으로 산 39년 동안 누구보다 많이 좌절했고 실패의 쓴 맛을 봐야 했던 그가 지금 역전의 승부사가 무엇인지 한 사람으로서, 인생 선배로서 화끈한 조언을 해줄 것이다.
한 길만을 걸으며 성공한 사람에게는 타인에게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최하위 팀을 맡아 그들의 정신력을 무장시키고 실력을 튼튼하게 만들어준 이 시대 최고의 지도자, 명장 김성근! 그가 자신만의 소신과 철학으로 뿔뿔이 흩어진 팀의 집중력을 한데 모아 최고의 결과물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를 겪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최고의 야구인으로 손꼽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김성근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전사와 더불어 그만의 성공 비결을 알아보고자 한다. 흥미롭고 유쾌하게 풀어낸 그의 인생 이야기! 지금 당신 눈앞에 펼쳐진다.
오랜 인고 끝에 한국 야구사에 방점을 찍다
SK 와이번스가 2007 한국시리즈 우승 샴페인을 터뜨릴 것이라고는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자신의 야구 철학을 밀고 나갔고 선수들에게, 팬들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사람들 모두 우연일 것이라고 수군거릴 때에도 다른 팀 보다 먼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동고동락하며 2008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시리즈 2연패. 오로지 한 길만을 팠고, 그 길 위에서 누구보다 많이 좌절하고 넘어졌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서 결국 한국 야구사에 방점을 찍었다.
쪽발이? 반쪽발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님으로 인해 일본에서 나고 자란 김성근은 한국에서 선수 생활과 감독 생활을 하면서 쪽발이라는 차별을 누구보다 많이 받아야 했다. 잘하면 잘한다고, 못하면 못한다고 쪽발이라며 비아냥대는 소리를 들었다. 데이터 야구를 한다고, 일본인 코치를 기용한다고 쪽발이 야구라는 비난을 받았다.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아서 재일 교포가 된 그는 일본에서는 조센징으로, 한국에서는 쪽발이로 이중 차별을 받으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꿈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상처로 얼룩져야 했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갔다.
먹고살기도 어려웠던 시절, 일본행 배를 타다
농사만으로는 먹고살기도 어려웠던 시절 김성근 감독의 부모님은 1924년 생계를 위해 일본행 배에 올랐고 교토 가쓰라 강 상류의 한인 밀집촌인 나가야에 터를 잡았다. 김성근 감독은 그곳에서 태어났다. 여섯 평도 안 되는 집에서 부모님과 여섯 남매가 오로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한큐철도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열차에 치여 처참하게 돌아가시고 보상금조차 받지 못하면서 가족의 생활은 끼니조차 걱정해야 할 정도로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소년 김성근, 촉망받는 야수 선수가 되다
일본에서는 누구나 야구에 쉽게 접할 수 있었고 동네 아이들도 자연스레 야구를 하며 놀았다. 김성근 감독 역시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할 수 있었고 동네 아이들과 찜뿌(장비 없이 맨손으로 하는 야구)를 하면서 야구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가쓰라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투수로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59년 재일 교포 학생야구단으로 선발되어 모국 땅을 밟고, 이듬해에 동아대로 스카우트되어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프로야구 진출에 실패한 그는 사회인야구팀에서 선수로 활동했지만 야구에 대한 타는 갈증으로 늘 목말랐고 그러던 차에 한국 교통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본격적으로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촉망받던 투수로서 화려하게 선수 생활을 하던 그는 국가대표까지 오르고 영주 귀국을 하지만 잇따른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결국 은퇴를 결심한다.
무너질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
1969년 마산상고 감독을 시작으로 39년의 감독 생활 동안 총 열 번의 감독직을 맡았지만 그중 일곱 번이 불명예 퇴진이었다. 꼴찌 팀을 맡아서 혹독한 훈련으로 실력을 향상시키고 2군 운영으로 많은 야구 선수들을 양성하면서 최강 팀으로 만들어놓고도 그는 구단과의 마찰로 인해 억울하게 물러나야 했다. 오직 선수들의 미래를 위해 부당한 일에 있어 구단과의 마찰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서 생긴 결과였다.
그는 구단 선수들의 능력을 일일이 체크하고 메모하며 최대의 능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고군분투했다. 상대 팀 전력을 꼼꼼히 분석해서 우리 팀 전력을 치밀하게 짜내는 데이터 야구의 선두주자이기도 했다. 오로지 야구를 위해,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라 부르는 선수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가 무너지지 않고, 변명조차 없이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천사
1960년 내가 초등학생일 무렵에 동아대 선수로 뛰던 김성근 감독을 처음 보았다. 그때부터 2007년과 2008년 한국시리즈를 재패하고 헹가래를 받는 모습까지 마치 흑백 필름처럼 나의 뇌리 속을 스쳐간다. 숱한 고난과 견제를 극복하고 야신으로 우뚝 선 그는 역경을 이겨낸 인물의 표상이다.
-허구연 해설위원
김성근 감독님은 고약한 세상에서 학연이나 지연 없이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정상에 올랐고,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이 책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따라서 단순한 ‘지식’이 아닌, 삶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장미란 선수(역도 선수)
그는 양보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야신이라 하지만 그 스스로 야구의 광신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라운드를 벗어나면 온화하고 배려 깊은 어르신이다.
-조종규 KBO 심판위원장
내게 야구에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이 아버지라면, 김성근 감독님은 야구에 대한 열정을 가르쳐주신 분이다. 감독님과, 그리고 이 팀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김광현 선수(SK 와이번스)
온갖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야구장으로 달려가는 그는 진정한 야구인이다. 김성근 감독의 45년 야구사를 읽고 있자니 프로야구의 발전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 책의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김인식 감독(한화 이글스)
발문 (임순만 『국민일보』 편집국장)
“일본보다 한국에서 사는 게 더 힘들었다.”
당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김 감독이 한 기자에게 한 말이다. 얼마나 처절하고 절실한 발언인가. 그는 사이드가 말한 대로 일본과 한국의 추방자로 살았고, 지연과 학연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한국 야구계에서 주변인으로 살았다. 프로야구라는 것이 철저하게 자본주의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스포츠임에도 그는 자본에 흡수 고용(co-opt)되지 않고, 구단 프런트에 맞서(opt-out) 선수들을 관리해왔고, 지금도 KBO의 눈 밖에 나 있는 야생마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54421348 |
---|---|
발행(출시)일자 | 2009년 07월 15일 |
쪽수 | 304쪽 |
크기 |
148 * 210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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