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2010년 5월 17일 권정생 선생님 3주기에 맞춰 이시백 작가한테 창작지원금을 주었다. 그 자리에 함께했는데 동화작가가 아닌 소설가에게 창작지원금을 준다는 것이 낯설었다. 권정생 선생님을 동화작가에 한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화작가로서 일가를 이루었으니 창작지원금을 준다면 동화작가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다 여겼던 것이다. 이시백 작가의 작품을 한 권도 읽어 보지 않은 탓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니 권정생 선생님의 창작지원금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실린 11편의 단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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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2010년 5월 17일 권정생 선생님 3주기에 맞춰 이시백 작가한테 창작지원금을 주었다. 그 자리에 함께했는데 동화작가가 아닌 소설가에게 창작지원금을 준다는 것이 낯설었다. 권정생 선생님을 동화작가에 한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화작가로서 일가를 이루었으니 창작지원금을 준다면 동화작가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다 여겼던 것이다. 이시백 작가의 작품을 한 권도 읽어 보지 않은 탓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니 권정생 선생님의 창작지원금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실린 11편의 단편소설은 한결같이 농촌 현실을 그리고 있거니와 거기에는 풍자와 해학이 흐르고 있어 권정생 선생님의 문학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권정생 선생님은 동화작가이기도 했지만 평생을 약한 자와 함께하며 약자를 억압하는 것에 저항했거니와 현대 문명을 예리하게 비판했다. 특히 급격히 파괴되어 가는 농촌의 공동체 삶을 근거로 하여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 있으니 그런 차원에서는 이시백 작가가 권정생 선생님의 충실한 계승자라 할 만하다. 그러고 보면 이시백 작가가 권정생 창작지원금을 받은 것은 필연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권정생 선생님의 뛰어난 작품 『한티재 하늘』(지식산업사, 1998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결같이 질펀한 사투리를 쓰는 것도 그렇고,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쓰라린 현실을 드러내는 것도 그러하며, 쓰라린 현실 속에서도 풍자와 해학을 잃지 않는 것도 그렇다. 그리하여 우리는 작품을 통해 스물스물 살아나는 새로운 힘을 느낀다.
“그려. 오늘 여관방서 만난 고향 사램들끼리 심허게 놀아봐덜.”
보아하니 어디 변두리 장터에서 엿 모판이나 가위로 두들기며 돌아다닌 풍신으로 뵈는 경수는 모처럼 왕년의 흥을 살려내는 기쁨에 겨워, 뒷주머니에서 납작하니 달라붙은 인조비닐 지갑을 척하니 꺼내 천 원짜리 지폐 대여섯 장을 꺼내 몇 번이고 헤아리더니 할멈에게 내밀었다.
“오늘 기마이여. 맥주, 소주 섞어서 다 사오구, 집어 먹을 과자 부스래기래두 사오우.”
요즘은 어디 가야 쳐주지도 않는 나잇값을 하느라고 송 양에게 눈을 흘기던 할멈은 어떤 일인지 이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밖으로 나갔다. 경수가 막 문을 나서는 할멈 등 뒤에다 대고 심부름을 덧붙였다.
“남는 돈으루 담배 몇 갑 사오우. 에세 라이트루.”
그렇게 시작된 눈 오는 밤의 파티는 밤 깊도록 이어졌다. (「충청도 아줌마」, 145쪽)
설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하고 만난 이들은 착잡한 인생들이다. 기병은 수몰된 고향을 떠나 홀로 고시원에서 지내는 중늙은이고, 송 양은 함경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몸을 파는 신세가 된 아줌마이며. 경수는 장갑공장을 하다 어려워져서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신세다. 오죽하면 설 명절에 여인숙에 모이게 되었을까. 그렇지만 이들 착잡한 인생은 가장 착잡한 날에 가장 신명난 판을 벌려 놀고 있으니 여기에 이시백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이시백 소설의 장점은 11편의 단편에 고루 퍼져 있으니 나머지 10편의 내용을 간단히 적어 본다.
-「워낭소리」: 만철은 젖소를 기르는 데 드는 사료 값과 품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우시장에 내놓으나 송아지 한 마리에 삼 만원이라는 말에 정나미가 떨어져 술을 걸치고 집으로 오다 논두렁에 차를 빠트린다. 다행히 지나가는 차 도움을 받는데 알고 보니 딸애가 사귀는 정육점 박이다. 한우를 팔다 미국 쇠고기 대리점으로 간판을 바꿔달아 못마땅하게 여기던 정육점 박이지만 함께 차를 빼내고 보니 정육점 박이 다르게 보이고, 정육점 박도 이제 미국산 쇠고기 대신 한우를 팔겠다고 한다.
-「뭘 봐」: 재구는 나라에서 하는 일이 마땅찮다. 산촌마을인지 생태마을인지 돈을 주고 간섭하는 것도 그렇다. 생매마을이라는 명목 아래 길을 아스팔트로 말끔히 포장하고 이장과 새마을지도자는 앙숙이 된다. 재구는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신고까지 당한다.
-「두물머리」: 두물머리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던 철용은 대운하사업으로 땅 값이 오를 예정이라 대운하 지지 모임의 면 대표 연사로까지 나서며 일확천금을 꿈꾼다. 그런데 대운하사업이 4대강사업으로 바뀌며 일확천금의 꿈은 날아간다.
-「몰입」: 논밭을 골프장에 팔아넘긴 돈으로 전원주택을 짓고 진구는 골프장에 품을 팔러 다닌다. 아내는 골프장 손님 대상으로 밥집을 차리고, 딸아이는 골프장 캐디로 다닌다. 온 가족이 골프장 덕을 본 셈이다. 진구는 보름달 환한 날 골프장 공을 주우러 갔다가 딸이 외국인과 잔디밭에서 그짓에 몰입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송충이는 무얼 먹고 사는가」: 기봉은 논밭 정리해서 읍내 초등학교 앞에 만화가게라도 차리고 싶으나 밭은 팔리지 않고 잔금을 마련할 길도 없다. 잔금을 대지 못하면 급전으로 빌린 계약금마저 고스란히 날아갈 처지다.
-「울고 넘는 박달재」: 중순은 논밭 팔고 모자란 돈은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박달재 가든을 인수했는데 장사가 되지 않는다. 빚 독촉에 마누라는 집을 나가고, 찾아오는 이는 빚보증을 선 사람뿐이다. 할 수 없이 중순은 늙은 아비와 어린 아들만 남기도 야반도주한다.
-「물레방아 인생」: 읍내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이들은 다 모인 물레방아회. 순병은 총무가 되려고 사전 선거 운동을 하며 술을 사다가 호프집 종업원과 싸워 지구대에 끌려간다. 지구대에서 만난 종업원 아버지와 물레방아회의 현 총무인 류상필과 함께 룸살롱에 간 순병은 종업원 아버지와 류상필의 싸움을 유도하고 흐뭇해한다.
-「부조」: 명근과 을성은 담을 끼고 사는 사이. 이웃사촌은커녕 이미 사이가 버드러졌다. 명근이 이웃 배추밭을 사려고 했는데 을성이 외지인에게 구전을 받고 넘기도록 했다. 그러더니 이제 명절 때마다 동네 사람들에게 한우를 판매하던 것까지 막아버린다. 한바탕 싸우고 집에 돌아오니 을성이 에‘에레이 갈비’를 보내왔다.
-「갈보 콩」: 재복은 김가네 맷돌 두부집에 콩을 납품하다 직접 두부집을 낸다. 그런데 유기농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데도 사람들은 김가네 두부집에만 간다. 알고 보니 재복의 콩밭 바로 옆 콩밭이 지엠오 콩밭이었던 것. 재복의 밭 콩들이 지엠오 콩과 붙어먹어 어디 씨도 모를 화냥질 콩이 된 것이다. 맛이 달라질 수밖에.
-「웹 2.0」: 컴퓨터를 배우는 기삼 씨는 컴퓨터 공부에서 첫째가는 서산 아주매가 고맙고 미덥다. 컴퓨터 공부의 짝이 되어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컴퓨터 공부하는 이들끼리 봉하마을을 다녀오자는 아이디어는 또 어떤가. 마침내 기삼은 서산 아주매와 관광버스에 나란히 앉아 봉하마을로 떠나고, 기삼 아내는 이들이 바짝 붙어 앉아 속삭거리는 것을 보고 천불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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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듣기를 좋아해 일부러 길갓집을 얻어 장꾼, 포수 들을 즐겨 들였다던 증조부가 거처한 경기도 여주의, 민비네 묘지기가 쓰던 초가에서 태어났다. 이야기에 홀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엉겁결에 『동양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스물네 해 남짓 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몇 해 전에 그만두고 지금은 경기도 수동면 광대울에서 주경은 조금 시늉을 내나 야독은 충실히 하지 못하고 쓰러져 잠들기 잦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산문집 『시골은 즐겁다』, 자유단편소설집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 연작소설집 『누가 말을 죽였을까』, 장편소설 『메두사의 사슬』과 『종을 훔치다』 등이 있다. 권정생 선생님의 눈물겨운 제1회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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