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칭 포 캔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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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되어 살아남은
캔디맨이 그리는 자기유지회로
『.zip』에서 시인은 수치화된 세계의 일상성을 통해 자본의 논리를 인식하면서도 허망하게 미래를 응시하는 대신 삶의 근원과 존재의 뿌리를 향해 항로를 돌렸다. 그로부터 8년. 점점 더 생존하기 힘들어지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인식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대기 안에 있는 것들은 결국// ‘아달달 녹아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까 저마다 한 철”이라고 말하던 시 「철 추파춥스」는 지금의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첫 시집이 자본주의라는 세계를 항해하는 배의 이미지였다면 두 번째 시집 『써칭 캔디맨』은 물길 위에서 자기만의 수로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선원의 안간힘을 닮았다. 첫 시집이 옆구리를 교란했다면 이번 시집에는 옆구리가 없다. 찔러 볼 옆구리조차 없는 세상에서의 안간힘이란 결국 소용없는 노력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가하는 노력만이 쓸모에 잠식당하지 않는 가능한 주체성이자 삶의 유일한 회로라는 사실이 한층 높은 밀도로 세계의 쓴맛을 증명한다.
작가의 말
나의 말이 나의 고삐이기도 한데
그 누구도 이 말에 박차를 가할 순 없지
왜냐하면 이 말에는 옆구리가 없으니까
말했다
나는 말한 것
말만 한 놈이라고
목차
- 시인의 말
1부
그리고 침묵
제조업입니다
팔자
인상
영업사원
빤다
고객님과 보낸 한 철
소금 인형
뼈의 맛
돈의 맛
영구기관
시(詩)
써칭 포 캔디맨
出, 사표
정언명령
2부
잘 먹고 잘 자기 위해
천 원인 것
죽자 살자 먹자
사인
멍
그곳에 가고 싶다
물의 모서리
낙망
문턱
형(刑)
몽당
온통 벚꽃
배트맨
1인 3역
저리구나
33번지 명사들
재귀 호출
사물의 통각
3부
밝히는 사람
거울
정치하게
아내가 필요해
검찰을 찾아라
a를 기다리며
한 점 의혹도 없이
층간
딱한 사람
깐다
벽
자기유지회로(自己維持回路)
빤다2
수영 입문기
물의 방
추천의 글 _김언
박혜진
추천사
-
송기영의 이번 시집은 온갖 ‘비자기(非自己)들의 기록으로 빼곡하다. 비자기는 물론 자기가 아닌 자기다. 자기가 아니므로 비자기가 헌신하는 곳은 자기가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한다. 다른 곳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 세계다. (.......) 그렇다면 자기는 어디에 있을까? 과연 자기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끝없는 비자기들의 향연 속에서 실종되고 없는 자기에 대한 질문으로 이 시집은 다시 빼곡하다. 그것은 “물에 지문을 남”기는 것처럼 허망한 질문이지만, 물에 지문이라도 남기려고 애쓰는 자의 고투가 송기영에게는 또한 시일 것이다. 온갖 ‘비자기’에 바치는 헌사이면서 ‘자기’에 대한 질문을 놓치 않는 한 편의 자화상이 또한 이 시집일 것이다.
책 속으로
사람들, 너를 기억한다.
싸서 좋았다고
-「소금 인형」 부분
철없는 남동생 얘기를 들을 때에는 고객을 잃을 수 있다는 속다짐을 하고, 친구를 대할 때는 연락 끊긴 고객 대하듯 하라. 이웃집 아주머니를 대할 때는 불만 많은 고객을 대하듯 하고, 그 아주머니가 키우는 개와 길거리에서 맞닥뜨렸을 때는 주먹다짐을 각오하라. 혹, 미술 전시회에 온 고객을 만나거든 고갱님처럼 대하고, 이도저도 아닌 고객은 호갱님 대하듯 하라. 이는 너와 네 사업이 곤란과 역경에 빠지지 않기 위함이니라.
-「고객님과 보낸 한 철」 부분
밤 열두 시, 세면대 거울 앞에 비자기가 놓여 있다. 새벽 한 시. 자기가 생각하는 곳에 자기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스르륵 잠이 든다. 아니, 아직은 안 돼. 슬그머니 침실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다. // 듣고 있나, 자기?
-「태양의 기울기에 대한 만국 강아지들의 생각」 부분
사실 우리는 캔디를 뽑으러 왔습니다. 원더우먼보다 슈퍼맨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죠. 외로워도 슬퍼도 끊임없이 단물을 뽑아 내는 게 캔디의 덕목이며 의무입니다. 무슨 향이 나든, 어떤 맛이 나든 상관없습니다. 훌륭한 기업은 당신의 취향이 아니라 당도계에 의지하니까요. 가장 좋은 캔디를 얻기 위해
-「써칭 포 캔디맨」 부분
출판사 서평
■ 캔디맨이 울지 않는 이유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우리의 ‘캔디맨’도 울지 않는다. 캔디맨에게는 울 시간도, 울 기회도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캔디맨은 지금 울 처지가 못된다.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캔디맨을 빨아먹기 위한 눈초리가 사방에서 그를 에워싸고 있다. 그 뜨거운 눈길에 캔디맨의 몸은 지금 이 시간에도 꼬박꼬박 녹고 있는 중이다. 캔디맨으로서 우리는 자본의 쓰임에 따라 가진 것을 모두 내어 주고 가지지 않은 것까지 다 내어 주느라 삶의 당도를 잃고 일상이 싱거워진 지 오래되었다. 표제작이기도 한 「써칭 포 캔디맨」의 모티프가 된 것은 영화 「써칭 포 슈가맨」이다. 슈가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면 캔디는 쓰임이 결정된 상품이다. 이 시집은 슈가로 살아가고 싶었으나 이미 캔디로 결정된 삶이 당도를 잃어 가는 감정을 서글프게 포착한다.
■ 비자기들의 향연
‘자기’라는 말의 쓰임은 광범위하다. 때로 그것은 연인을 부르는 말이고 때로 그것은 직장 동료를 부르는 말이다. 친밀한 사적인 언어일 수도 있지만 거리를 지키는 공적인 언어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自己)’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의 음성 안에 너무 다른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처럼 ‘자기(自己)’는 쉽게 타인으로부터 침범당한다. 자기로 살아가고 싶으나 ‘비자기(非自己)로 살아가는 것이 자기들의 운명. 시집은 비자기들의 기록으로 빼곡하다. 비자기는 자기가 아닌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자기다. 자기가 아닌 자기란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 자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때 자신을 지배하는 것은 물론 자본의 논리다. 끝없이 반복되는 비자기들의 향연은 과연 자기유지회로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시집은 자기유지회로를 찾기 위한 도전 그 자체이기도 하다.
■ 쌓이는 공포, 녹는 슬픔
『써칭 포 캔디맨』에서 송기영은 상품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보는 애처롭고 안쓰러운 시선을 자조와 유머가 뒤섞인 광대의 언어로 표현한다. 쓸모를 잃고 재고가 되어 창고 구석에 쌓여 가는 모멸적 삶이 환기하는 공포가 이 시대를 대변하는 정서라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맨’은 차라리 녹을지언정 쌓여 가고 싶지 않은 이 시대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삶이 계속되듯 영업은 계속된다. 영업이 계속되는 한 삶도 계속된다. 단물을 빨아들이는 입들이 더 이상 우리를 쳐다보지 않을 때 비로소 캔디맨으로서 우리의 임무는 끝날 것이나 그때 우리의 삶도 함께 끝난다는 점이 캔디맨의 종말을 기뻐할 수 없게 한다.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막다른 길 위에 선 우리 슬픈 캔디맨의 초상. 송기영의 유머는 이번에도 비극의 옆구리를 찔러 슬픈 웃음을 유발한다. 쓴웃음이란 말은 송기영의 시 앞에 선 우리의 표정을 이르기 위해 태어난 말이 아닐까.
기본정보
ISBN | 9788937409028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2월 19일 | ||
쪽수 | 92쪽 | ||
크기 |
132 * 219
* 17
mm
/ 248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민음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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