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의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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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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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리스가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은 작품
2019년을 여는 창비세계문학 첫 작품은 어두운 심연에서의 항해 끝에 희미한 한줄기 희망을 마주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20세기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도미니카 태생 영국 작가 진 리스의 『어둠속의 항해』가 창비세계문학 66번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광막한 싸르가소해』 『한밤이여, 안녕』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진 진 리스 자신이 “가장 자전적”이고 “가장 좋아하는” 작품, 나아가 “최고작”으로 꼽은 장편소설이다. 영국령 도미니카(현 도미니카연방)에서 태어나 열여섯살에 가족을 떠나 영국으로 건너온 진 리스는 독특한 억양과 이국적 외모로 학교와 사회에서 소외당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경제적 지원마저 끊기자 코러스걸, 마네킹, 누드모델 등의 일을 하며 영국 각지를 떠돌았다. 그러다 만난 한 부유하고 나이 많은 영국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 버림받고, 불법 낙태수술을 받다가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 1914년 약 열흘간 검은 표지의 노트 네권에 열정적으로 써내려갔던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까지의 이 자전적 이야기는 20년 뒤에 『어둠속의 항해』로 탄생했다. 가난한, 젊은, 여성, 더구나 식민지 출신의 이방인이라는 사중의 억압이 작용하는 냉혹한 세계에서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단지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도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야 했던 진 리스가 자신의 언어로 신랄하고 고통스럽게 토해낸 이 기록은, 개인사를 넘어 강력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수많은 여자들이 처해온 수난사이자 제국주의에 의해 박탈되어온 식민지 사람들의 목소리로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새롭게 읽히며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작가정보
(Jean Rhys, 1890~1979)
본명은 엘라 덜린 리스 윌리엄스(Ella Gwendolyn Rees Williams). 영국령이었던 도미니카 수도 로조에서 웨일스 의사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계 크리올(서인도제도 흑인과 유럽계 백인의 혼혈)로 농장을 물려받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여섯살에 홀로 영국으로 건너가 퍼스 여학교에 다니지만, 낯선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이방인으로서 따돌림을 당한다. 배우가 되고자 입학한 왕립연극학교 역시 언어 문제로 중도에 그만두고 코러스걸, 마네킹, 누드모델 등의 일을 전전한다. 이 시기에 영국에서 느낀 이질감과 절망, 경제적으로 의존했던 부유한 연상의 연인과 헤어진 뒤 낙태수술을 받은 경험 등을 네권의 노트에 기록해 20년 뒤 『어둠속의 항해』에 고스란히 녹여낸다. 리스는 이 작품을 가리켜 “빠르고 쉽게 그리고 자신 있게 쓴 유일한 책”, “가장 자전적”이며 “가장 좋아하는” 소설, 나아가 자신의 “최고작”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D. H. 로런스를 발굴한 비평가이자 소설가 포드 매덕스 포드의 눈에 띄어 1924년 단편 「빈」을 그가 주관하는 『트랜저틀랜틱 리뷰』에 실으면서 데뷔한다. 이후 1920~30년대 모더니스트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창작에 전념해 단편집 『왼쪽 둑』(1927), 장편 『사중주』(1928), 『매켄지 씨를 떠난 후』(1931), 『어둠속의 항해』(1934), 『한밤이여, 안녕』(1939)을 연달아 펴낸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발발 후 20년 가까이 은둔하면서 사망설이 돌기도 한다. 1957년 BBC에서 라디오극화한 『한밤이여, 안녕』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평단과 대중 양편에서 재조명을 받고, 1966년 『광막한 싸르가소해』를 발표해 W.H.스미스 문학상과 하이네만상을 수상한다. 그밖에 단편집 『호랑이는 멋지기나 하지』(1968)와 『한잠 자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부인』(1976), 자전적 산문집 『나의 날』(1975) 등의 작품이 있다. 1978년 평생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제국훈장(CBE)을 수훈했고, 이듬해에 집필 중이던 자서전 『좀 웃어봐요』를 채 끝내지 못한 채 여든여덟을 일기로 영국 엑서터에서 숨졌다. 카리브해와 영국 문학의 경계에 위치한 그의 작품들은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파격적인 형식실험 등 여러 측면에서 오늘날까지 활발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번역 최선령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20세기 초 교양소설(Bildungsroman)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파라미타칼리지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의 말
[역자의 말]
작품 속 이야기가 끝난 지 얼마 안되는 시점인 1914년 벽두에 리스가 열흘 이내의 짧은 시간 동안 이 작품의 초고가 될 글을 열정적으로 써내려갔다는 일화가 시사하듯이, 이 작품은 요컨대 그가 물 밖으로 나와 자유로운 발설을 시도한 구체적인 성과이다. 수월하고 자신 있게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발설의 힘겨움 자체를 정확히 응시하고 적시함으로써, 나아가 이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리스는 자유로운 발설의 경지를 적극 성취한 것이다. 자기 존재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두 세계와 젊은 시절의 가장 큰 좌절 경험을 제대로 발설하게 한 계기이며 그것을 향한 힘겨운 여정의 기록이자 성과로서 『어둠속의 항해』는 그의 “최고작”이 될 만하다.―최선령
목차
-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작품해설 / 무성한 열대와 잿빛 영국을 항해하는 젊은 여인의 초상
작가연보
발간사
책 속으로
돈 한푼 없는 사람들,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아마도 난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한명이 될 것이다. 고향에서 막대기로 쥐며느리 집을 찌르면 떼로 기어나오는 쥐며느리같이 그런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그들의 얼굴은 쥐며느리 색깔이다._33면
사람들은 ‘젊은’이라는 말을 하며 마치 젊다는 게 무슨 범죄라도 되는 양 굴지만, 정작 늙어가는 것은 항상 그리도 무서워한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늙어서 이 모든 망할 일이 다 끝났으면 좋겠어. 그럼 도무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 침울한 기분에 빠져 있진 않을 텐데.’_111면
그녀는 얼굴과 상체는 길고 다리는 짧았다. 여자는 그렇게 생겨야 한다고 말들 하듯이. (그런데 만약 여자가 정말로 그렇게 생기면 그건 그녀에게 지옥이다. 여자니까. 하지만 만약 그렇게 안 생기면 그것도 그녀에게 지옥이다. 여자가 아닐지도 모르니까.)_131면
지나가는 여자들 대부분이 입은 옷은 하나같이 진열창에 걸린 옷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것 같았지만, 여자들이 멈춰서서 진열창을 바라볼 때 그들의 시선은 미래에 꽂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저걸 살 수 있다면, 그럼 물론 난 아주 달라지겠지.’ 늘 희망하라, 그러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며, 그게 사람들이 이 세상을 계속 굴러가게 하는 방식이다. 개개인마다 품은 그토록 많은 희망. 더럽게 교묘히 허용된. 하지만 만약 네가 더이상 희망하지 않으면, 네 허리가 부러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다음엔 어찌 되는가?_160면
“가엾은 어린 애나.” 아주 친절한 목소리. “당신이 그리 힘든 시간을 보냈다니 내 마음이 미치도록 안 좋아요.” 아주 친절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의 눈에 담긴 표정은 높고 매끄러워 기어오를수 없는 벽 같았다. 의사소통 가능성 제로. 그걸 시도라도 해보려면 4분의 3쯤은 미쳐야 한다._210면
출판사 서평
이방의 젊은 여자에게 적대적인 세계에서
표류하며 분투하는 ‘한 여인의 초상’
주인공 애나 모건은 서인도제도에서 나고 자란 십대 후반 소녀이다(작품 속에서는 ‘도미니카’라는 말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새어머니를 따라 영국에 온 뒤 혼자 힘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애나는 극단의 코러스걸이 되어 눅눅한 하숙방과 추레한 극장을 전전하며 각지를 떠돌다가 월터라는 부유한 남자를 만나 한가닥 희망을 잡는다. 사랑에 빠진 애나는 전적으로 그에게 의지하지만 월터는 이내 싫증을 내며 떠나버리고 이후 애나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다.
애나는 마찬가지로 진 리스의 자전적 경험에 뿌리를 둔 『한밤이여, 안녕』의 주인공 싸샤의 20년 전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애나는 여자들을 끊임없이 자기검열하게 만드는 사회의 억압과 모순, 남자들의 허세와 위선을 이미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말이나 행동으로 거부하지 못한 채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휩쓸리고 마는 인물이다. 그러한 점 때문에 출간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일부에서 ‘반(反)페미니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전 존재를 부정하는 사회에 맞서 치부까지 적나라하게 내보이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용기 있는 발설로서 『어둠속의 항해』는 선구적인 페미니즘 소설로 인정받고 있다.
자줏빛 카리브해와 잿빛 영국
충돌하는 두 세계 사이를 오가는 의식의 흐름
애나 그리고 진 리스의 복잡한 출생 배경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커다란 다른 축이다. 애나/진 리스는 도미니카에서는 백인 지배계층의 일원이었으나 “항상 흑인이 되고 싶”어했고, 영국에서는 식민지 출신의 하층계급 혼혈 여성으로 “높고 매끄러워 도저히 기어오를 수 없는 벽”에 부딪쳤다. 자연, 사람, 관습 등 모든 면에서 서인도제도와 완전히 다른 세계인 영국에서 애나가 느끼는 분열은 독백과 몽상으로 현재의 사건 속에 수시로 끼어든다.
막이 내려와 그때까지 내가 알던 모든 걸 덮어버린 듯했다. 거의 다시 태어나는 일과 같았다. 색깔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며, 사물이 곧장 사람의 내면에 일으키는 감정도 달랐다. 더위와 추위, 빛과 어둠, 자주색과 회색의 차이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내가 공포를 느끼거나 행복을 느끼는 방식의 차이이기도 했다.(9면)
이런 면에서 『어둠속의 항해』는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과 비교되기도 한다. 다만 영국에서 아프리카 정글의 어둠속으로 향했던 콘래드의 주인공과 달리, 진 리스는 서인도제도를 따뜻하고 밝고 생생하며 인간적인 세계로 투영하고 런던을 춥고 단조롭고 숨 막히는 비인간적인 공간으로 대비시키며, 영국사회에 편입되길 열망하는 동시에 완강히 거부하는 애나의 내적 긴장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그 과정에서 색과 형태 혹은 음악 등의 다양한 연상 장치를 통한 장면 전환으로 과거와 현재, 서인도제도와 영국, 사건과 생각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리스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젠더와 탈식민, 모더니즘 기법을 활용한 형식실험, 영미문학 전통의 계승과 변주 등 다양한 문맥으로 접근이 가능한 『어둠속의 항해』는 최근 작가의 대표작으로 집중 조명되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36464639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1월 04일 | ||
쪽수 | 256쪽 | ||
크기 |
145 * 210
* 19
mm
/ 339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창비세계문학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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