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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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감싸안듯이 품어주는 시편들, 자신을 포함한 보통 사람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담고 있다. 사랑, 가족, 사람, 우주를 주요 테마로 삼아 들려주는 시인의 목소리는 항상 따스하고 경쾌하게 다가온다.
특히 다채로운 시어의 묘미는 또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통한 특유의 리듬감은 시집에 풍성한 질감을 불어넣어준다. 또한 시인의 발화 역시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전언을 부사, 부사어들에 기대어 전하고 있다.
이 시집에서는 부사의 존재론적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 명사, 동사, 형용사에 종속된 존재로서의 부사가 아닌 그들을 수식하면서도 의미를 지배하는 존재론적 가능성이 표출된다. 대표적으로 '와락'은 껴안음에 수반되는 부사이기도 하고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을 때의 모양새를 뜻하는 부사이기도 하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편
반 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 자락
- 「와락」 전문
작가정보
목차
- 제1부
불멸의 표절 / 꽃이 피는 시간 / 황금빛 키스 / 와락 / 추파, 춥스 /
웅크레주름구릉 / 크나큰 잠 / 캐스터네츠 썬데이 / 세상의 등뼈 /
앗 시리아 저 별 / 한칸 거미
제2부
내 처음 아이 / 처서 / 노는 공 / 나와 병과 성과 악과 / 춘장대 동백숲 /
십이월의 사과꽃 / 여여 / 백년 묵은 꽃숭어리 / 첫눈 / 통속 / 도랑도랑 /
설렁탕과 로맨스
제3부
당신의 파업 / 일톤 트럭 / 막고 품다 / 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 / 걷는다 /
훅, 사랑이라니-딸에게 / 구름포에 걸린 구름 / 죽음의 완성 / 또다시 네거리에서 /
깊숙한 이빨 / 블루 써핑 / 끝에 선 나무들
제4부
늙은 오동 마당 / 죽음의 방식 / 감염의 경로 / 안녕, 여보! / 토끼 소년-인디언 풍으로 /
토끼 소녀 /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와 빨간 구두 아가씨 / 으씀보씨 / 저린 사랑 /
장미차를 마시며 / 오랜 추파-미당의 눈맞춤으로
제5부
삼매(三昧) / 바로 몸 / 순식간 / Happy Pie Day / 시시각각 / 삼초 먼저 보는 여자 /
희미해지는 병에 걸린 남자 / 나의 팡또마 / 63빌딩 수족관 /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
아슬아슬 / 까마득한 날에
해설│권혁웅
시인의 말
책 속으로
〈추천사〉
시는 꿈과 해방의 언어요 그 자유분방한 작동이다. 그것은 때 묻은 일상의 관습, 정연하나 핏기 없고 생기 없는 논리, 그리고 진부한 도덕률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 그것은 통념과 시대의 한계로부터의 일탈을 추구한다. 정끝별의 자유분방한 시적 상상력이 추구하는 것도 이러한 일탈과 해방의 순간이다. 때로 경쾌하고 때로 당돌하고 때로 우울한 정끝별의 시적 촉수는 관능에서 정치로 혹은 가족사에서 희망적 관측으로 혹은 계절에 대한 반응에서 우주에 대한 명상으로 자유롭게 왕복하며 특유의 묘기를 발휘한다. 다채로운 레퍼토리의 가능성이 과연 어떠한 선택지로 귀결될 것인가? 이 시집의 독자들은 낱낱의 시편을 음미하면서 그 궁극적 선택지를 탐색하고 공상하고 예단하는 즐거움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다고 믿고 싶으니까. - 유종호 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나는 이미 오늘이 아니다. 그러나 오간 데만 오간 것들과 한 것만 또 한 것들, 여기의 시간이다. 삶보다 빨리 달려가는 말(언어)들의 시간이다.
여기 너머의 사랑이다. 돈돈돈스스스돈돈돈 타전을 기다리는 중이다. 나뭇가지 끝에 걸린 미래의 별이나 이름을 빼앗긴 과거의 명왕성에게도 나의 사랑을 전해다오.
내 것이 아니었던 내 것들과 결코 내 것이 아닐 내 것들을 향해 다시 꿈꿀 것이다. 한 글자의 이름을 가진 막막한 사물들에게도 안부 전해다오.
여기에서 모든 여기 너머로 다리를 놓는다. 허밍의 너일까. 너를 따라 이 삶을 통과하고 있다. 나는 너를 그렇게 시라고 부른다.
2008년 가을
정끝별
출판사 서평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후 시쓰기와 평론활동을 병행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끝별의 네번째 시집 『와락』이 출간되었다. 분방한 시적 상상력으로 사랑과 가족과 사람과 우주를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발랄하며, 늘 연민과 온기를 품고 있다. 영롱한 시적 발견들이 가득한 다채로운 편편이 읽는이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시의 성찬이다.
지난 시집에서 길고 아픈 시간을 꽃과 나무의 순연한 몸짓으로 견뎌내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작정한 듯 한결 생기발랄하고 다채로운 노래를 들려준다. 시집 앞머리에 출사표처럼 던져진, 불굴의 표절작가가 되겠다는 당돌한 선언부터 흥미롭다.
〈i〉난 이제 바람을 표절할래/잘못 이름 붙여진 뿔새를 표절할래/심심해 건들대는 저 장다리꽃을/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이 싱싱한 아침냄새를 표절할래/앙다문 씨앗의 침묵을/낙엽의 기미를 알아차린 푸른 잎맥의 숨소리를/구르다 멈춘 자리부터 썩어드는 자두의 무른 살을/그래, 본 적 없는/달리는 화살의 그림자를/용수철처럼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할래(「불멸의 표절」 부분)〈/i〉
듣고 보면 시란 원래 사물을 읽어내어 그것을 다시 쓰는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시인은 천 가지 목소리로 천 가지 노래를 부른다. 꽃과 나무를 노래하는가 하면 지구와 별을 노래하고, 시대를 노래하는가 하면 억겁의 시간을 노래하고, 딸과 아버지와 가족을 노래하는가 하면 이름없는 필부필부의 모습을 노래한다. 어떤 시는 애잔한가 하면 어떤 시는 경쾌하고, 어떤 시는 허허로운가 하면 어떤 시는 또 훈훈하다. 차분히 관조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시인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서는 시가 있고, 사태를 소묘하는 데 집중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말의 힘만으로 한달음에 달려나가는 시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정끝별의 시는 정끝별의 시다. 이 다채로운 목소리들이 백화제방하듯 한데 모여 조화로운 것은 그 모든 목소리들에 고루 배어 있는 사랑과 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랑에 대해서라면 할말이 많은 시인이 그 아니던가. 4억 4천만년 전의 별빛과 단 하루 저녁 매미의 울음이, 잎눈을 매단 목련가지와 딸의 머리를 받친 오른팔의 저림이 굳이 말하자면 사랑의 여러 다른 이름들일 것이다. 그것을 굳이 사랑이라 말하지 않는 것이 시 아닌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읊조리는 이런 말이.
〈i〉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누군가는 내게 어께를 대주고//대준다는 것, 그것은/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논에 물을 대주듯/상처에 눈물을 대주듯/끝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한생을 뿌리고 거두어/벌린 입에/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사랑한다는 말 대신(「세상의 등뼈」 전문)〈/i〉
그렇게 사랑은 여기 주변을 사는 보통의 존재들까지 환하게 감싸안는다. “십만 백만의 작은 불씨들이 모여들던/거기 또다시 네거리에서” “광복의 색소물대포를 온몸으로 맞받고 있”던 당신에게도(「또다시 네거리에서」), “이백원이 웬말이냐 생계대책 보장하라며 해양수산부 앞 도로에 폭락하는 은빛 전어들”(「일톤 트럭」)에게도, “한번도 본 적 없어/살 나누며 살지 못한 남자와/한번도 본 적 없어 살 나누어주지 못한 아들이” “나란히 뒤돌아 오줌을 누”는 무덤가에도(「도랑도랑」) 사랑은 구석구석 가닿는다. 시인은 그것들을 멀리 두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찬찬히 지켜본다. 애써 밀어내지 않고 손쉽게 집어삼키지도 않는 그 시선이 곧 시인의 사랑법이다.
그 시선으로 시인은 쉽게 부스러지는 순간과 존재에 의식적으로 탄력있는 리듬을 부여한다. “묏도랑”이 “도랑도랑”으로 읽히고, 뱃속에서 나는 “꾸꾸루꾸꾸” 소리가 캐스터네츠가 내는 소리가 되고, “저린” 팔이 “절여지는” 몸으로 이어진다. 이 반복과 변주와 미끄러짐으로 이루어지는 특유의 리듬감이 시집에 풍성한 질감을 불어넣는다. 그 리듬을 타고 한때의 순간이 영원과 교통하고, 작디작은 존재가 무궁과 연결된다. 그 리듬이 또한 시인의 사랑법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그 사랑을 ‘와락’이라 이름 붙였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권혁웅에 따르면 ‘와락’은 껴안음에 수반되는 부사이기도 하고 눈물을 쏟을 때의 부사이기도 하며, “운동의 강도와 정도로 측정되는 존재형식”이자 “더이상 나누거나 덜어낼 수 없는 시간들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모든 시간을 감당하는 시간들”이다. 그 ‘와락’으로 ‘나락’과 ‘벼락’이 감싸안아지고, 또는 쏟아져나오고, 텅 빔과 가득 참이 바람 한자락으로 그려지는 절경이 여기 있다. 이쯤되면 ‘와락’이라는 부사가 정끝별의 시에 이르러 비로소 부사로서 온전하게 시가 되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i〉반 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막막한 나락//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불후의 입술/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허공을 키질하는/바야흐로 바람 한자락(「와락」 전문)〈/i〉
기본정보
ISBN | 9788936422950 | ||
---|---|---|---|
발행(출시)일자 | 2008년 11월 10일 | ||
쪽수 | 143쪽 | ||
크기 |
125 * 200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창비시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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