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사지 마라!!!!
이 책을 사 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광화문 네거리에 서서 기필코 말리고 싶다.
그래도 보고 싶다 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책을 미련없이 그 사람의 손에 쥐어보내리라.
돈 주고 버려야 할 쓰레기 공짜로 버린 홀가분한 심정으로.
책을 읽는 것도, 사는 것도, 모으는 것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을 사고 나서 후회한다거나, 산 책을 남에게 준다거나 혹은 버린다거나 하는 일은
생각조차도, 그야말로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라곤 딱 한 가지.
' 돈 아깝다' 였다. 심지어 헌책방에서 구입을 했기에 제 값을 다 준 책이 아닌데도 그러했다.
서점에 가서 직접 들춰보고 산 게 아니라
' 제 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 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에 낚인 죄랄까.
어찌되었던 나는 고발한다. 이 소설의 허접함을.
이 소설의 심사평을 보면
' 작품 구성이 탄탄하고 소설적 재미와 역사적 무게가 있으며 마지막 반전도 좋다. 한중일을 누비며 펼쳐지는 방대한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의 재능이 정말 대단하다'
라고 되어있다.
심사위원단셨던 아홉분의 쟁쟁한 소설가 선생님들께 도대체 이 소설이, 구성의 어디가 탄탄하며
어느 부분이 재미있는지, 그리고 이 소설의 반전이 정말 혀를 내두를 만한 내용의 반전이었는지를 묻고 싶다.
일단 이 소설은 팩션추리소설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내용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역사와 상상력이 논리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며 구성이 치밀하여 독자가 읽는 내내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러한 점에서 만족스러운 면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에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상상의 힘이 가져다 주는 리얼함'에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허구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허구성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럴듯 하다'라고 믿게 만드는 설득력으로 인해 생명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사용한 역사상의 내용들은 그 설정의 무리함으로 인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고종이 음모를 폭로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협박용으로 사용한 춘화를 역이용하다는 설정은 너무나도 억지스럽다.
아무리 망해가는 나라의 군주라 하더라도 한 나라의 군주의 신분으로서, 게다가 유학을 국교로 하는 나라의 군주가 나라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춘화를 이용한다는 건
한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설정이다.
소설이니까 그런 상상도 가능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소설이라는 이름하에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논리적일 수 있는 이야기라 우긴다면 그것은 진정한 소설이 아니라고 본다.
진정한 소설이란 상상의 힘을 통해 허구와 실제를 교묘히 섞어 납득 가능한 논리의 틀을 쌓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허구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허구가 생명력을 얻어 공감대,
즉 리얼리티를 형성하려면 그 허구속에서 움직이는 인물의 성격이나 신념은 진정이어야 한다.
따라서 소설은 허구라는 장치를 사용한다는 걸 감안하고 본다 하더라도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고종은 군주라는 캐릭터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성격과는 크게 동떨어지기에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렇다보니 그 고종이 중심으로 서 있는 화첩이라는 소설속의 장치가 그저 허무맹랑하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이 소설의 타이틀이자 메인 떡밥으로 사용된 거대 음모론인 진시황 프로젝트라는 것도
내용을 알고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고대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아 일본으로 떠난 서불이 진시황에게 바칠 불로초를 먹어 진시황에게서 영생의 기회를 빼앗았는데
그 서불의 후손을 찾아 뇌와 심장을 꺼내 진시황의 후손에게 먹이면 진시황이 되살아나 중국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세계를
하나로 정복할 것을 중국인들이 믿고 있단다.
그리고 이 믿음을 실제로 만들기 위해 삼합회를 비롯한 각국의 어둠의 집단들이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단다.
나중에 소설을 읽다보면 이 허황하다 못해 어이없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나지만
소설속의 인물들은 제법 심각하게 이 이야기를 믿고 움직이다가 여럿 죽어나간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진시황 프로젝트라는 거대 음모론은 실은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비밀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라는 거다.
말 그대로 '떡밥'에 불과하다. 그냥 나쁜놈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끌어다붙인 거짓말일 뿐이다.
그런데 이 말도 안되는 거짓말에 주인공들이 질질 끌려다니는 것을 한참 읽다보면 과연 이게 추리소설인지
아니면 추리소설의 탈을 쓴 사기물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추리소설이란 언뜻 보기에 일어난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건을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던가?
이렇게 무작정 거짓말을, 그것도 참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믿어보라고 우겨대다가
나중에 알고보면 그게 아니었어~라는 투로 나오는 게 추리소설인가.
게다가 작가가 수수께끼를 풀기위해 던져놓은 복선용으로 사용한 사건들이나
에피소드들은 유기적인 연결을 이루지 못하고 따로 논다.
그렇다 보니 결국엔 처음에 거창하게 시작한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질 못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다더라. 알아보니 이렇다더라. 라는 식으로 설명조로 휙 풀어내고 끝난다.
심지어 벌여놓은 이야기를 다 수습못해서 그냥 흐지부지 끝나는 내용도 부지기수다.
도대체 말도 안되는 거짓말에 속아 죽기 일보 전까지 당하던 주인공들이
어느결에 그런 조사들을 다 해내서 비밀을 밝혀냈다는지 참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
주인공들이 독심술이라도 쓰는 겐가. 그들은 모두 초능력을 쓰는 히어로들인가.
그리고 설정중에 가장 어이없었던 설정.
이 소설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죽어가는데 그 중에 주인공을 돕다가 죽은 조연 커플이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조연 커플에겐 쓰디쓴 아픔이 있었으니 그것이 무엇이냐.
이 둘이 ' 동성동본' 이라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
결국 반대하는 부모님이 돌아가실때까지 서로를 기다리겠노라 다짐하던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남자가 주인공을 도우려다 살해당하고 여자가 주인공에게 살해당한 자신의 연인의 복수를 당부하며 자살하는 걸로 끝이 난다.
참 어이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동성동본 금혼제가 폐지된게 언제인데.
친가 외가 팔촌 이내의 혈족이 아니면 성씨 상관없이 결혼 가능하다.
지금이 무슨 6,70년대인 줄 아나.
설마 작가는 동성동본 금혼제가 폐지된 걸 몰랐던 걸까.
아니면 그래도 소설이니까 없어진 법을 가상으로 되살려 사용한걸까.
알 수가 없다.
전자라면 한심한 거고 후자라고 해도 한심한 거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조건 우긴다고 허구가 리얼리티를 가지는 건 아니다.
차라리 둘이 알고보니 어릴 때 헤어졌던 친 남매이거나
친척남매간의 있을 수 없는 사랑이라고 하는 게 더 애절하지 않겠나.
그리고 문제의 그 주인공들, 소설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어디서 본 듯한 진부한 인물들이다.
반항적인 강력계 형사와 그를 연모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형사.
반항적인 강형사는 여주인공과는 달리 불우한 자신의 배경과
그로인해 꺾여버린 자신의 신념 때문에 방황하다 얼떨결에 경찰이 된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반항적인 성향을 띄게 되고 그 반항적인 성향을 보이기 위해
폭력적으로 행동하고 여 주인공에게는 차갑게 군다.
너무나 아름다운 여 주인공은 방형사는 고등학교 시절 과외선생님으로 만났던 강형사를 사모해서
그의 곁에 서기 위해 경찰이 된다.
방형사는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외교관인 아버지와 정부 고위직인 어머니 슬하에서 부유하게 자란데다가
알고 보면 일본 막후의 최대 실력자의 제자로서 엄청난 뒷배경까지 소유하고 있다.
그렇게 대단한 여인네가 그런 자신을 거부하는 강형사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고 하다 못해
그 마음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남자처럼 거칠게 행동하고 튀는 복장을 하는 등 센 척을 한다.
하여간 이 진부하기 짝이 없다 못해 작위적이기까지 한 성격을 가진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또다른 축인데
문제는 그들의 사랑이 그다지 애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니, 도대체 이들의 사랑이 왜 애절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중간에 한 두 문단 스쳐지나가는 그들의 과거사만으로는 이 둘 사이에서 오가는 애절한 감정이 쉬 납득이 되질 않는다.
게다가 작가가 인간의 감정, 특히 사랑이라는 소통의 감정을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인지
심지어는 목석같이 방형사를 밀어내기만 하던(그것도 참 공감 안가는 이유로) 강형사가 엉뚱하게 딴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 사랑에 빠지는 과정 또한 느닷없다. 너무 느닷없는데다가 심지어는 유치하기까지 하다.
( 자신이 좋아하게 된 여자의 뒤를 밟다가 그 여자가 딴 남자가 동침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 강형사...솔직히 찌질해 보인다.
도대체 이게 언제적에 써먹던 설정인가. )
게다가 악당들의 성격도 유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왜, 여자 악당은 호색녀로 그려지는 걸까.
여자 악당이 성적으로 분방하게 그려지면 더 악하게 보일거라고 작가는 생각하는 걸까.
악한이 호색한이라는 것은 너무나 평이한 설정이 아닌가. 평이하다 못해 설득력이 너무나 없는 설정이 아닐까.
심지어 착한 척 하고 있던 악한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을 때에는 그 말투까지 바뀐다.
' 으흐흐흐~ 이제야 내 정체를 알았나? 오~ 그렇게 궁금하다면 말해주지'
이래놓고 그 동안 감춰왔던 비밀을 줄줄히 털어놓는다.
이런 종류의 악당은...어린이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악당이 아니던가.
이해력이 미숙한 어린이들에게 누가 확실히 악당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써 먹는 매우 통속적인 설정말이다.
심지어 악당은 남주인공이 죽은 줄 알고 여주인공을 성적으로 유린하려 들기도 한다.
물론 우리의 남주인공은 총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생전 입지도 않던 방탄조끼를 입고 있던 탓에 살아난다.
그리고 악당은 죽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두 사람은 키스를 하고.
스토리텔링을 공부하기 위해 작가가 영화를 많이 봤다 하던데
헐리웃 영화를 특히 많이 보았나보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
알고보니 강형사가 반했던 아름다운 여인은 사실 범인인 킬러였으며
강형사는 자신이 사랑한 여인이 킬러라는 사실을 그녀가 결혼식장에서 부케를 던질때
왼쪽으로 던지는 왼손잡이라는 사실과 그녀의 뒷조사를 해 본 결과(언제 해 봤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왜 해 봤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어릴적 사진에서의 얼굴과 성인이 된 지금의 얼굴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보고 알아낸다.
사건 다 끝날때까지, 사람 다 죽을때까지 , 뭐 비밀을 먼저 알아서 미리 죽어간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고 있다가
킬러인 그녀가 그의 곁에 남기 위해 의무감만을 지닌 남자와 결혼을 한 후에야 알아낸다.
물론 킬러인 그녀는 모든 사실을 알아내고 찾아간 강형사와 적당히 싸워주다가
위기의 순간에 때맞춰 나타난 방형사의 총에 맞고 죽는다.
킬러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는게 그리고 그것도 하필이면 사랑했던 여자라는게 그리도 놀라운 반전인가?
이게 놀라운 반전이라면 심사위원 선생님들은 헐리웃 영화라면 담 쌓고 지내시는 분들인 듯 하다.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 '유주얼 서스펙트'라는 영화를 한 번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소설을 다 읽고나서 가장 심각하게 들었던 의문은
과연 이런 소설이 상을 탈 만큼 요즘의 작가 지망생들이 역량이 떨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소설을 이해하는 능력이 턱없이 떨어지는 것일까였다.
내 의문의 답이 첫 번째에 해당한다면
그건 우리 나라 문학계에 있어 더 없이 암울한 소식이다.
내 의문의 답이 두 번째에 해당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나만 잘 하면 되는 거니까.
어찌되었던 나는 이 책을 읽고 돈이 아까웠으며 이런 책을 타인이 돈 주고 사서보게 내버려 둔다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무엇보다도, 이 책을 돈 주고 사서 시간을 할애해서 읽었다는 게 너무나 억울해서 그 분풀이를 하고 싶었다.
물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으리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이 소설이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게 그 반증이니까.
그러나 나는 이 소설에 대한 내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느니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한 번 더 읽겠다.
그리고 정말로 한국문학이 위기라면
그건 결코 한국문학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힘이 다른 나라보다도 떨어져서가 아니다.
우리 나라의 교육 제도가 아이들에게 독서보다는 그 시간에 영어 단어 한 단어를 더 외우라 강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용서가 가장 많이 팔릴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자본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런 함량미달의 소설이 한국문학의 스토리텔링의 부흥을 예고한다는 둥의
허황된 소리는 제발 사라졌으면 한다.
이 소설은 한국문학의 부흥과는 관계없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탄생한 소설이다.
우리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실용서를 읽어야 하고 악착같이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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