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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문학과지성 시인선 R 16
최승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07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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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상세정보
ISBN 9788932034492(8932034494)
쪽수 104쪽
크기 130 * 206 * 6 mm /164g 판형알림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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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어

시인 최승호의 복간 시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최승호는 1977년 등단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시들을 쏟아내며, 마치 온몸을 시에 부딪치는 듯한 강렬한 시적 상상력을 보였다. 사물을 느껴지는 그대로 포착해내는 직관력을 바탕으로 시인은 현대 문명의 화려한 껍데기 아래 썩어가는 사회의 단면을 들추어내면서 죽음을 향하는 육체로서의 인간을 노래하는 시들을 써왔다. 시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는 문학과지성 시인선 R시리즈 열여섯번째로 출간되었으며, 2003년 출판사 열림원에서 초판 출간되었던 시집의 개정판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시인 이영광은 “나는 이 책을, 시인의 0번째 시집이라 부르고 싶다”며 욕망과 죽음을 둘러싼 시인의 시선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나에게 오기 전부터
꽃이었던 모든 것들을 위하여

둥근 지붕뿐만 아니라
납골당 내부의 유골 보관함을
철제도 석재도 아닌
투명한 유리로 바꿀 것을 제안합니다

―「태양의 납골묘」 부분

그믐밤 어둠으로 빚은 듯한
검은 영물靈物,
고양이는 목털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내며
쓰레기 자루 옆에서 나는 노려보았다
―「검은 고양이」 부분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의 초판 해설을 쓴 성민엽(문학평론가)은 이 시집에서 ‘보는 것’, 즉 시선이 가지는 시적 역할에 주목한다. 시의 화자는 “납골당 내부의 유골 보관함을/철제도 석재도 아닌/투명한 유리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뚜껑 덮은 유골 단지들도 모두/투명한 유리 항아리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요청은 모든 유골함 속 건조된 재를 어떠한 방해물도 없이 있는 그대로 우리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제는 재가 되어버린, 한때는 인간이었던 유골을 한 줌의 티끌도 없는 상태에서 ‘보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처음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본다는 행위는 시 「재 위에 들장미」에 이르러 중요한 변화를 맞이한다. 시적 화자는 “들장미라는 말이 떠오르기 전에/들장미가 있었”음을, “그것은 피사체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들장미의 이름을 불러 들장미가 나에게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와는 별개로 들장미는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내가 대상을 본다는 시적 화자의 시선을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즉, 내가 바라보는 피사체, 타자에 불과했던 인간 외의 생명체 역시 나를 볼 수 있음을 우리는 그렇게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데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쓰레기 자루 옆에서 나를 노려보는 고양이, 무덤을 밟고 서 있는 수염 긴 염소, 스핑크스처럼 나를 보고 있는 검은 개 등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인간은 스스로가 타자가 될 수도 있음을 느낀다. 나의 피사체였을 때 아무것도 아니었던 대상들 역시 나를 바라볼 수 있고 함께 공존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에 큰 변화를 있을 것임을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저자소개

작가의 말

나는 쓰고 싶다
문을 열 때마다
낯설고 놀라운 풍경이
눈앞에 처음 펼쳐지는 것처럼.

2003년 늦여름

아무것도 아닌 시집처럼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가 절판된 지도 오래되었다. 말의 저편으로 멀어져가던 시집을 다시 출간해준 문학과지성사에 감사드린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계절이 변하고 몸이 변하고 생각의 감옥 속에서 말들이 변해가도 그것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하나의 고요, 아무것도 아니면서 언제나 하나인 나, 그 나를 나는 시인이라고 불러본다.

2018년 여름 서울에서
최승호

목차

시인의 말

뭉게구름 /멍게 /끈 /물방울무늬 넥타이를 맨 익사체 /인어에 대한 상상 /검은 고양이 /시치미 떼기 /자살의 풍경 /기러기 반 마리 /가난한 사람들 /재 위에 들장미 /화분 /그림자 /여울에서 /돌의 맛 /여울이 가왕歌王 /백만 년이 넘도록 맺힌 이슬 /백세주 병이 버려져 있는 해 질 녘 /열목어 /물허벅 /아지랑이 /물뱀 /피서지에서 /비 분류법 /부두의 오후 /무지개 /사구沙丘에서 /죽뻘 /조개껍질 /중생대의 뼈 /태양의 납골묘 /도마뱀 /거울 /거울과 눈 /자연 /고요한 새장 /검은 돌 /돌부리 /멸치와 고행자 /텔레비전 /바보성인에 대한 기억 /공터의 소 /기암괴석 앞에서 /아무 일 없었던 나 /구름들 /가을 잠자리 /붉은 벽돌집의 가을 /달과 도마 /비둘기의 벽화 /붕괴되는 사과 /두엄 /휘발 /범梵눈송이 /수평선 /낙조 /고요 /노

기획의 말

책 속으로

멍!
소리를 내면 벌써 입안이 울림의 공간
메아리치는 텅 빈 골짜기
범종 소리가 난다


―「멍게」 부분

나는 바라본다
비둘기는 조류가 아니라
시궁쥐가 속한 쥐과 동물에 가깝다
비둘기들은 숲속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길바닥 찌꺼기를 주워 먹다가
발가락이 뭉개져도
날개가 쓰레기로 변할지라도
―「비둘기의 벽화」 부분

사과를 한입 물어뜯으며
입술의 물렁함을 나는 느꼈다
그리고 장님 애벌레로 변신할 필요도 없이
나의 세계가 즙을 흘리며
붕괴되는 소리를 들었다
―「붕괴되는 사과」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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