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 미디어들이 보여 주는 미적 체험의 변화를 추적하는 유일한 책 21세기의 점차 가속화되고 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세계를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지각하고 체험한다. 천천히 피어나는 꽃이나 날아가는 화살을 볼 수 있는 그 모두는 기술적 미디어들이 가져다 준 새로운 지각 형식이다. 새로운 시청각 미디어를 통해 일어나는 지각 방식은 예술을 변화시키고 그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기존의 미학과 문예학은 이러한 미디어의 기능과 역할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미디어는 단순히 예술의 형식을 담아 내고 내용을 중립적으로 전달하는 텅 빈 전도체에 불과했다. 독일의 문예 학자였고 현재는 미디어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는 랄프 슈넬의 《미디어 미학》은 새로운 미디어들에 의해 전개되어 온 예술의 변화 양상에 주목하고 있는 유일한 책이다. 이 책은 그러한 기술이 가져다 주는 구조적, 구성적인 예술적 지각이나 형식 언어의 변화들을 문제 삼고 이에 대한 심미적 변화를 구분, 판단하고 한다. 미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본래 바움가르텐이 미학이라는 용어를 감성의 영역에서 학문적으로 정의하려 했었으나, 정작 미의 고유한 영역인 감성적 판단은 추상적인 사유와 이성적 판단 그리고 합리적 추론 아래에 두며 저급한 인식 정도로 간주되고 만다. 여기에서는 미에 대한 질료를 이루는 사물 세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디어 미학》은 미가 대상 세계에서 매개체를 통해 전달되는 형식에 주목하고 있음으로써 유물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성격을 띤다. 미디어의 발전이 어떻게 당대의 지각현실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흥미로운 예는 원근법이다. 주체는 원근법에 의해 세계 인식의 주인이 되며, 과학적이고 주체 중심적인 시각을 통해 객관세계에 대한 약탈과 남획을 시작했고 그것은 서구 물질문명 발전에 대한 토대가 된다. 인지능력의 확장으로서 새로운 기술미디어의 발명은 수많은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이와는 달리 《미디어 미학》은 최근의 신경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결과를 통해 우리의 지각 방식이 원근법처럼 계산되고 논리적인 방식이 더 이상 아니라 몽타주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주목케 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지각 방식에 대한 이전까지 인식론이 가지고 있던 설명들, 즉 감관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정신으로 퍼 올리는 인식론적 현상으로서의 지각 작용이 아니라, 오히려 시지각적, 촉각적 접촉에 의해 이루어지는 몽타주의 운동 과정이라 설명한다. 저자는 우선 오늘날의 시청각 미디어가 지닌 미적 특성들을 연구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촬영기적 지각이 발전되어 온 전사들을 추적한다. 여기에 그림, 원근법, 암실, 파노라마, 사진 등은 촬영기적 전사로서 파악하고 영화에서 그러한 촬영기적 지각 변화가 완성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영화는 몽타주의 방식을 훈련시키는 가장 중요한 연습 수단이며 영화의 역사에서 이렇게 미디어에 의해 훈련받고 학습된 지각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점이 설명된다. 이렇게 《미디어 미학》은 우선 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텔레비전이나 전자 미디어 그리고 디지털화는 물론 최근 현상인 비디오 클립이나 가상 현실의 미학에 이르기까지 시청각 지각 형식들의 역사를 폭넓게 추적하여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 설명과 분석을 제공한다. 또 이를 통해 미디어들이 가진 성격과 미적인 영향력을 분석해 내며 그 정체들을 확립하려 한다. 각각의 미디어들이 가진 개별적 성격과 한계들에 대한 연구는 그들이 벌이는 오늘날의 미디어들의 각축 상황에 대한 판단을 분명히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당연히 전체 《미디어 미학》을 총괄하는 설명을 《미디어 미학》은 목표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속 발전해 가는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해 선택된 관점들도 종결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미디어 미학》은 일종의 시청각 미디어의 중간 결산물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며, 계속된 연구가 예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디어 미학》은 새로운 기술 미디어들이 놀라운 속도를 통해 보여 주는 미적 체험의 변화를 추적하는 거의 유일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동안 개별 미디어들에 대한 미학적 논의와 연구들―예를 들어 영화 미학―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시청각 미디어들을 본격적인 대상으로 삼고 이들의 연관 관계를 추적하는 미학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미디어 미학》이 아직은 과정 중이고 진행 중인 논의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가진 시도와 성과는 작지 않다. 이 책은 앞으로 새로운 미디어들에 대한 연구는 물론 기존의 문학과 미학의 연구에도 새로운 시각과 지평을 열어 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