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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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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중앙일보 > 2015년 9월 3주 선정
작가정보
저자(글) 서성환
저자 장원 서성환(粧源 徐成煥 1924-2003)은 평생을 우리나라 화장품산업과 녹차산업에 바친 사업가로, 1924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개성에서 성장하며 화장품을 가내수공업으로 제조하던 가업을 이어받았다. 1945년 해방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사업에 헌신하여 마침내 태평양화학을 설립하고 물밀 듯이 들어오는 외제 화장품에 맞서 아모레라는 당당한 국산 화장품 브랜드를 창출하였고 나아가 우리 화장품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차 문화가 쇠퇴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일찍이 제주와 호남에 차 재배단지를 성심으로 일구어 설록차를 생산해냄으로써 전통 녹차의 대중화에 크게 공헌했다.
저자(글) 한미자
저자 한미자 작가는 1962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다. 아모레퍼시픽과 인연을 맺어 기업의 역사와 정신을 기록한 『아름다운 집념-오설록이야기』 『미의 여정 샘내강바다(아모레퍼시픽 사사)』 등의 책을 냈다.
그는 이 책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를 혼신을 다해 탈고 중이던 2015년에 생명(生命)의 사명을 다 하고 작고했다. 그의 삶을 되짚어 보면 ‘생(生)은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명령(命), 그래서 생명(生命)’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목차
- 프롤로그 오래된 여권
제 1 장 꿈엔들 잊힐리야
1. 산천을 닮다
2. 동백기름
3. 유년의 뜰 소년의 시간
4. 어머니의 길
제 2 장 경계에 놓인 사람들
1. 갑자생은 씨가 마르네
2. 노예의 시간
3. 베이웨이후퉁北魏胡同, 베이징의 골목에서
4. 귀국
제 3 장 어두운 바람과 성난 파도의 시대
1. 다시 어머니 가게로
2. 동반자
3. 조용한 출범
4. 재능을 사다 상표에 담긴 열정
5. 남대문시장
6. 부산 40계단
제 4 장 1954년 서울
1. 아! 용산
2. 함께 걷는 길
제 5 장 하늘 아래 새로운 곳
1. 40일간의 유럽 여행
2. 꿈꾸는 자만이 꿈을 이룬다
제 6 장 희망은 길과 같다
1. 여심을 잡다
2. 벌판에 세운 꿈
3. 함께 쓴 신화
4. 광고는 이연자산이다
5. 옛 여인네의 향기를 찾아
제 7 장 발 앞 한 자 안은 어디든 평지
1. 마중물
2. 상어낚시
3. 멀고 험한 길일지라도
4. 미지의 나라
제 8 장 시대가 안긴 뜨거운 선물
1. 나무를 심는 사람
2. 가장 멋진 웃음
3. 야누스의 시대
제 9 장 아버지와 아들
1. 경영수업
2. 함께 걸어서 더 행복했던 동행
3. 뒷면을 보여주고 앞면을 보여주면서 단풍 낙엽은 지는구나
에필로그 여성, 그 아름다움과 힘
추천사
-
의(義)는 더불어 일하는 사람과 친화하고 동업자와 의리를 지키며 협동하는 일이요, 신(信)은 고객에게 믿음을 주는 일이며, 실(實)은 현실속에서 부딪히는 장사, 그리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근검하는 일이다. 이 삼도훈(三道訓)을 끝까지 지켜 현대경영으로 승화시킨 마지막 송상이 서성환 태평양 회장이었다.
책 속으로
프롤로그 오래된 여권
장원粧源 서성환徐成煥은 2003년 1월 9일 세상을 떠났다. 무심한 세월 앞에 여권의 검은색 표지는 희끗한 청회색으로 변색되었다. 그러나 여권에는 세계를 향해 나아갔던 야심찬 젊은 사업가의 꿈과 열정이 오롯이 남아 있다. 그에게 유럽에서 만난 기계화 된 시설과 기술력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아울러 더 견고하고 큰 뜻을 키우는 발화점이기도 했다. 그 다짐이 유럽 진출의 꿈이라 해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화장품을 만드는 일이라 해도, 그 길은 분명 멀고도 험할 것이었다. 서경배 사장에게 레지옹 도뇌르 수훈의 감동은 그 길을 걸었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이었다.(16쪽)
제1장 꿈엔들 잊힐리야
자신에게 믿음과 기쁨을 주는 상대에게 관심과 애정이 더 가는 것은 부모 자식 사이라 해도 다를 바 없었다. 어머니는 장원에게 본격적으로 일을 가르치기로 했다. 또래에 비해 일찍 철든 아들에게 미안했지만 고맙고 기특한 마음 또한 컸다. 장원은 여러 형제 가운데 어머니의 기질과 성격을 빼다 박은 것처럼 닮은 아들이었다. 장남인 열두 살 위의 형은 천성이 느긋하고 온후한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다. 형은 장사 수완이나 손끝이 조금 무뎠다. 사업을 이끄는 어머니의 기준으로 볼 때는 더 그랬다. 장원을 향한 그녀의 마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애틋하고 자상한 성품은 아니었던 그녀는 짤막한 말 한마디로 16살 장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전했다. “내 일을 거드는 게 아니라 네게 일을 주겠다.”(57쪽)
제2장 경계에 놓인 사람들
어느 날 장원은 ‘장사를 해볼까?’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장사를 알고 있다고 믿었다. 장사라면 이곳에서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개성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여자의 몸으로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어머니가 선택한 일이 장사였다. 자신은 군대에 오기 전까지 장사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 장사를 해보자. 장사를 하며 귀국할 때까지의 시간을 버텨보자.’ 궁하면 몸에 익은 일이 생각보다 먼저 나오게 마련인지도 모른다. 장원은 우선 제대할 때 배급받은 쌀을 팔아 일부를 싸라기로 바꾸고 나머지 돈으로는 염색약을 샀다. 그런 다음 군복을 염색하여 비싼 값에 팔고 현지의 싸구려 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얼마간의 돈이 손에 쥐여졌다. 동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유했다. 오직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86쪽)
제3장 어두운 바람과 성난 파도의 시대
서울로 올라온 장원 일가는 남대문시장 부근 남창동에 자리를 잡았다. 남창동 일대는 크고 작은 도·소매상들이 올망졸망 자리 잡고 있어 초라하긴 했지만 시장의 활기만은 그런대로 살아 있었다. 이곳에는 개성 사람을 비롯한 월남한 실향민들이 적잖이 모여 터를 잡고 있었다. 장원에게는 낯선 곳이 아니기도 했다. 예전에 원료 구입을 위해 왕래하던 남대문시장이 맞닿아 있었다. 남창동은 서울에 아무 연고가 없는 그의 가족이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1947년, 일가는 그 남창동 한쪽에 ‘태평양화학공업사太平洋化學工業社’ 간판을 내걸었다.(113쪽)
제4장 1954년 서울
1954년 구용섭 씨가 입사했다. 그의 입사를 계기로 우리나라 장업계 최초로 연구실이 만들어졌다. 고작 용산 후암동 공장 화장실을 개조해서 만든 초라한 연구실이었지만 당시로선 선구적인 사건이었다. 그 무렵 국내 화장품 회사들은 연구에 대한 개념이 철저하지 않았다. 사실 초창기 연구라는 것도 별것은 아니었다. 견본이 될 만한 외국 제품을 수집해서 똑같이 만들기를 거듭해보고 비슷한 제품이 만들어지면 신제품으로 출시해 판매하는 게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가령 장원이 성공시켰던 식물성 포마드도 포마드 원재료에 일제 수입 완제품을 섞어 만들어보는 ‘연구’에서 출발해 탄생한 제품이었다. 이론적 토대가 없는 조건에서의 연구라는 것은 끊임없이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며 가장 비슷한 구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던 셈이다.(164쪽)
제5장 하늘 아래 새로운 곳
장원 일행은 영접 나온 코티사 중역의 안내를 받아 호텔로 향했다. 몸은 긴 시간의 비행으로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했지만, 동승한 코티사 사람들의 구김살 없이 얼굴에 밴 따뜻한 미소와 정중하면서도 명랑한 말씨가 그 고단함을 잊게 했다.(중략) 코티사 직원의 안내로 장원은 센 강변에 위치한 코티사에 도착했다. 회사는 3층 건물로 1만여 평이 훨씬 넘는 넓은 땅 위에 우뚝 서 있었다. 백년 가까운 세월이 깃든 역사의 공간이면서 오늘도 세계적인 품질과 우수성을 자랑하는 갖가지 화장품을 무한정 쏟아내고 있는 생산의 현장. 장원의 눈에 그곳은 공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전통 있는 대학 캠퍼스에 가까워 보였다. 인사를 나눈 뒤 장원은 공장장의 안내를 받아 공장 견학을 시작했다. 공장에서는 온갖 화장품이 거의 다 생산되고 있었다. 모든 생산 공정을 자동화한 현대식 시설, 즐비하게 늘어선 수십 개의 원료 저장 탱크 따위는 보기만 해도 부러웠다. 입안에서는 연신 ‘환상적’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공장 방문은 3일간 이어졌다. 장원은 하루하루 생산 공정과 공장 내부를 샅샅이 돌아보며 자주 발걸음을 멈췄다.(200~203쪽)
제6장 희망은 길과 같다
장원은 사례 연구와 내부 검토를 거쳐 방문 판매를 도입하여 새로운 유통 경로 개척에 나섰다. 방식은 에이본이 아니라 회사와 판매원 사이에 특약점이 있는 폴라 쪽을 참고했다. 정서와 관습이 비슷한 우리에게는 폴라 방식이 더 적합하리라는 판단이 들었고, 도매상을 특약점으로 흡수하여 예상되는 반발을 줄이는 동시에 신속히 조직을 꾸릴 수 있는 이점을 고려한 때문이었다. 방문 판매가 성공적으로 정착, 운영되려면 실로 많은 요소들이 결합되어야 했다. 그러나 장원 생각에 그 가운데 특히 핵심을 이루는 것은 제품, 조직, 인력이었다. 방문 판매 전용 브랜드의 개발, 시장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그물 같은 체인점 망의 구축과 확장, 잘 훈련된 우수한 판매원의 확보가 관건이었다. 이 전제 위에 무수한 보조 장치들이 가세해야만 방문 판매는 비로소 온전히 작동될 것이었다. 장원과 태평양은 이런 것들을 차근차근 끈기 있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천해갔다.”(264쪽)
제7장 발 앞 한 자 안은 어디든 평지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국내 매출의 고속성장에 힘입어 시작된 아시아 공략은 1970~80년대 장원에게 최대의 화두이자 열망이었다. 태평양은 1977년 6월 타이완에 삼미화장품 수출을 시작으로 아시아 인근 국가로 진출하는 날개를 폈다. 1978년 도쿄지사 현지 법인 설립과 함께 장원은 무역부장이던 박병철 씨를 일본 법인장으로 발령했다. 일본에 귀화한 형님 덕분에 그 역시 일본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수출에 시동이 걸리면서 아시아 모든 지역이 장원의 목표 안에 들어왔다. 꿈은 이루기 위해 있다는 말처럼 1988년 3월에는 태국 사하그룹과 합작으로 타이아모레를 설립했고, 이어 6월에는 홍콩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1989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삼미진]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으며, 같은 해 3월과 6월과 7월에는 퍼시픽 아모레 말레이시아 합작회사 설립, 타이완 현지 법인 설립, 말레이시아 메이크업 쇼 개최가 차례로 이루어졌다. 이어 1990년에는 말레이시아에 합작회사 설립 계약, 1991년 12월 말레이시아 포토클랑에 공장 준공이 이어졌다. 같은 해 3월 삼미진 화장품 사우디 독점 판매 계약 체결까지 인삼을 원료로 한 화장품 삼미는 아시아 공략을 위한 최대의 아름다운 병기가 돼 주었다. 그 기세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거침이 없었다. 장원이 처음 일본 진출을 꾀했을 때 일본은 넘어야 할 산이자 극복해야 할 커다란 과제였다. 그러나 일본은 그에게 아시아를 거쳐 세계로 나가는 교두보가 돼주었다. 일본 진출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놓은 디딤돌, 더 깊은 물을 퍼올리기 위해 부은 마중물이었다.(341~342쪽)
제8장 시대가 안긴 뜨거운 선물
“1991년의 파업이 태평양 역사상 최대의 위기이자 전환점이었습니다. 그게 모든 걸 바꿨으니까요. 그 상태로는 공멸 이외에 다른 길이 없었지요. 그래서 회장님과 저는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고민했습니다. 그때 회장님은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장품 외길이야말로 당신의 꿈이고 삶 자체여서, 화장품 없는 자신의 인생은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길이 보였고, 할 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은 고요해졌고 결심은 단단해졌습니다.”
장원과 서경배 사장의 공통적인 고민은 ‘태평양은 왜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나? 세상이 태평양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존립 근거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앞으로 태평양이 나아가야 할 길 찾기였다. 그 해답은 바로 소명으로의 복귀, 끝내 버릴 수 없는 존재 이유로의 회귀였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이것이 최대의 위기를 돌파하는 최선의 방책이자 원칙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479~480쪽)
제9장 아버지와 아들
군인의 신분을 채 지워내지도 못한 경배는 태평양종합산업개발에서 일을 시작했다. 새롭게 조직을 배우면서 회사 생활에 적응하느라 여념이 없던 경배에게 장원은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태평양종합산업에서 장항에 공장을 지어야 하는 거 알고 있지? 100억 원을 줄 테니 네가 한번 해 봐라.” 지금도 그렇지만 1989년경의 100억 원은 어마어마한 돈이다. 갓
출판사 서평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혁신 기업’
세계 여성에게 사랑받는 70년 역사의 대한민국 대표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 성장에는 서성환 회장의
경영철학이 숨 쉬고 있다!”
상도 임상옥의 화신化身, 장원粧源 서성환
이 책에 등장하는 아모레퍼시픽은 개성상인의 정신을 근간으로 70년간 성장을 거듭해 온 장수 기업이다. 평균 기업 나이가 22세에 불과한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 사업 활황기에 본업을 멀리하고 다각화에 힘쓰는 여타 기업과 달리 ‘화장품 기업’이라는 간판을 사수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왔으며 이를 실현한 기업이다. 그 배경에는 서성환 회장이 아모레퍼시픽에 뿌리내린 개성상인 정신이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기업사를 살펴보면 ‘기업 정신 성장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경영 철학의 유서가 깊다.
서성환 회장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는 동백기름을 짜서 판매하는 일을 하셨는데 이를 통해 집안을 건사했다. 16세 때부터 어머니의 일을 본격적으로 도운 청년 서성환은 어머니의 경영 철학과 사업수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어머니는 의(義), 신(信), 실(實), 개성상인의 삼도훈(三道訓)을 일을 통해 아들 서성환에게 전수했다.
16살 아들에게 처음 일을 줄 때 “내 일을 거드는 게 아니라 네게 일을 주겠다.”며 심부름꾼이 아니라 사업가로서 사람들을 대하고 일하도록 의(義)의 정신을 가르쳤고, 개성에서 서울 남대문 시장으로 원료를 구하기 위해 180리 길을 자전거로 왕래할 때에는 “급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쓰지는 못한다.”며 재료를 구함에 있어 실수가 없어야 고객의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신(信)의 정신을 강조했다. 사업이 번창할 때에는 “얕은 물도 깊게 건너야 한다.” “기술은 훔쳐도 자세는 훔칠 수 없다.”고 말해 사업가는 항상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허세를 부리면 안 된다는 실(實)의 정신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장품 기업의 근간이 될 개성상인의 정신은 어머니에게 일을 배웠던 청년 서성환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했다.
아름다운 희망, 신뢰의 꽃을 피우다
서성환 회장은 평소 기업의 핵심 가치를 ‘신뢰’라고 강조했다. 세계적 기업을 이끄는 회장으로서 ‘회사는 직원에 대한 신뢰’를, ‘직원들은 고객을 위한 신뢰’를 유지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실천해 왔다.
그는 광복 직후에 창업을 하고, 사업을 확장해 나가던 와중에 6?25 전쟁을 맞았다. 사업이 막 자리를 잡으려던 상황의 전란은 회사를 존폐의 위기로 내몰았다. 그러나 그는 전란의 와중에도 약속한 거래는 반드시 지켰다. ‘신뢰’를 목숨처럼 여긴 개성상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종전 이후에 본격적인 화장품 사업을 실현하기 위해 프랑 스로 날아갔다. 세계의 화장품 산업을 선도하는 프랑스에서 전쟁 직후 폐허가 된 고국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짓던 서성환 회장은 ‘고객이 살아야 기업도 산다’는 생각을 했다.
‘태평양’이라는 화장품 기업이 자리를 잡고, 사세가 성장을 시작할 때 서성환 회장은 ‘고용 창출이 소비자 창출이며 기업의 성장 조건’이라는 신념으로 방문판매원을 모집하여 여성들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방문판매원은 물건 파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를 전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판매사원들에게 미용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상도를 배웠고, 이를 실현한 기업가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어머니, 여성의 삶에 관심이 높았고 이를 위한 복지에 신경 썼다.
영업 인력, 연구 인력도 당시로써는 찾아보기 힘든 규모였다. 영업자들은 서성환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현장을 함께 했고, 연구원들은 일본, 독일, 프랑스에서 들여온 장비를 이용해 최첨단 연구시설에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지금의 기업들이 강조하는 노사의 동반 성장, R&D 사업, 사회 환원 사업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사람이 서성환 회장이다. 그는 행동하는 기업인으로 아모레퍼시픽의 핵심가치인 ‘신뢰의 힘’을 증명해 나갔다.
서성환 회장이 일제에 의해 강제 징병당해 중국으로 끌려갔다가 귀국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일제 군복을 염색해 팔아 여비를 마련한 일, 6?25 전쟁으로 성업 중이던 사업이 존폐 위기를 맞았지만, 피난지 부산에서 사업을 이어 거래 약속을 지킨 일, 대한민국 대표 화장품 기업으로 회사를 키운 이후에도 그를 급히 찾는 직원들이 재래시장 순댓국집을 전전한 일은 모두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개성상인 정신의 흔적이자 유산이다.
기업의 핵심가치가 회사의 수명을 결정한다
동백기름을 짜던 광복둥이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사랑받은 대한민국 대표 화장품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창업자 서성환 회장이 겪어야 했던 도전, 좌절, 극복의 과정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이 책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는 서성환 회장의 경영철학과 기업사를 통해 우리가 등한시했던 기업 정신의 중요성을 짚어보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생존 전략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계기가 될 것이다.
기업의 핵심가치는 구성원 모두를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만들 수도 있고, 살아 움직이는 강이 되어 성장의 바다로 나아가게 할 수도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를 실제로 증명해 낸 대표적인 모범사례이다. 평균 업력이 22년에 불과한 우리 기업들은 70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아모레퍼시픽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정작 아모레퍼시픽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전 정신, 전통을 현대 산업으로 되살리는 가치 창조,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고객과의 동반 성장 등의 가치는 등한시하는 면이 있다. 가업 승계 또한 재산의 상속이지 기업 철학과 정신의 상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근래 자주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기업들에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회장의 일대기는 충분히 반추해 볼 반면교사의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경영자와 비즈니스맨들은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기업의 규모와 성과, 업력이 아니라 대를 이어 계승되어 온 기업 정신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25557175 |
---|---|
발행(출시)일자 | 2015년 09월 05일 |
쪽수 | 560쪽 |
크기 |
152 * 225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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