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헬린 옥슨버리가 그림을 그린 <곰 사냥을 떠나자>는 1994년에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 후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크게 사랑 받고 있는 작품이다.

헬린 옥슨버리는 따뜻하고 섬세한 그림으로 명성이 높은데 [곰 사냥을 떠나자]가 사랑 받고 있는 이유도 우리 나라 독자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부드러운 수채화로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웅진에서 출간하게 된 [아기늑대 삼 형제와 못된 돼지]도 수채화로 된 헬린 옥슨버리의 작품으로 그녀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희소식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수채 물감의 투명한 질감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그림의 내용에 있어서는 섬세하고 유머러스하며 때로는 과격하기도 한 다양한 장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등 대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다. 그녀의 재능이 이렇게 한껏 발현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글이 보여주는 작품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아기돼지 삼 형제]의 적극적 패러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책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아기돼지 삼 형제와 늑대의 이야기를 패러디한 그림책이다. 일반적으로 문학 장르에서 패러디는 기존 작품의 형식이나 내용을 모방하여 또 다른 주제나 내용을 담은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결국 원전의 창조적 모방이라 할 수 있다. [아기늑대 삼 형제와 못된 돼지]는 원전 아주 충실하게 따라가면서 재해석한 "적극적인 패러디"의 전형이다. 엄마의 품을 떠난 작고 귀여운 아기동물 삼 형제와 음흉하고 덩치 큰 동물이 중심 캐릭터라는 것, 그들의 갈등과 권력 관계를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킨 장소가 아기동물 삼 형제가 나름대로 성심껏 지은 집이라는 것,

그리고 집이 지어지고 망가뜨려지는 세 번의 과정이 반복적으로 진행된다는 것 등이 원전과 똑같다. 또한 그러한 진행 과정 동안 대응과 공격의 전략이 갈수록 강도가 더해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원작과 거의 같은 구조로 진행되므로 어떤 부분이 패러디로서 신선함을 제공하는지 궁금하다.

고정관념을 뒤집는 기발하고 유쾌한 발상의 전환
하지만 이 책이 패러디 동화로서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는 기발한 발상의 전환에 있다. 글 작가 에예니오스 트리비자스는 원전의 아기돼지와 늑대의 성격 및 역할을 완전히 뒤집고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아기돼지 대신 작고 귀여운 아기늑대가, 무서운 늑대 대신 덩치 크고 못된 돼지가 주인공이다.

원전에서 이미지가 전형화된 각 동물의 역할 바꾸기, 그 묘미가 이 이야기를 너무나 기발하고 신선하게 만든 중심 축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책이 정말 유쾌하고 즐거운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많은 이야기들에서 늑대는 보통 험상궂고 비열한 악당의 역할만 맡아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려지는 늑대 삼 형제는 작고 귀엽고 성실하며 겁이 많은 아기들이다.

엄마 늑대가 조심하라고 당부한 덩치 크고 못된 돼지가 나타나면 겁에 질려 덜덜 떤다. 그럼 돼지는 어떠한가. 이 책에서 돼지는 늑대들보다 훨씬 덩치가 크고 어찌나 심술이 고약한지 아기늑대들의 집을 부술 때는 인정 사정을 봐 주지 않는다. 완전한 역전이다. 마치 원전에서 돼지가 늑대에게 당한 것을 이제와서 복수라도 하는 듯 싶다.

그래서 아기늑대들이 못된 돼지를 피하기 위해 차례로 벽돌, 콘크리트, 철근과 철판을 재료 삼아 성실한 얼굴로 최선을 다해 집을 짓는 것, 또 집 짓는 재료가 갈수록 튼튼하고 강해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못된 돼지의 심술 역시 강도를 더해 가 쇠망치, 드릴, 심지어 다이너마이트까지 동원해 아기늑대들의 집을 부수는 소동들을 지켜보노라면 너무나 재미있어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현대적인 재료들이 등장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인데, 이제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작가의 놀라운 재치와 유머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원전을 한 차원 뛰어 넘은 감동적이고 행복한 결말
원전의 모티크를 충실하게 따라가던 [아기늑대 삼 형제와 못된 돼지]가 원전을 뒤집으며 가장 큰 파격을 준 지점은 바로 결말 부분이다. 기발한 발상의 전환으로 시작부터 유쾌함을 선사한 트리비자스는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결말 부분에서는 원전을 전혀 다르게 해석해 버림으로써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따뜻한 감동까지 선사한다.

원전에서 늑대는 셋째 돼지의 벽돌집으로 가 굴뚝을 타고 침입하지만 물이 펄펄 끊는 솥에 빠지고 셋째 돼지는 그 늑대를 저녁식사로 먹어 버린다. 그렇다면 이 책의 결말을 보자. 집 짓는 재료에 문제가 있음을 느낀 아기늑대들은 마지막으로 꽃으로 집을 짓는다.
다시 나타난 못된 돼지, 일단 입김을 불어 집을 날려버리려는 시도를 하는데 숨을 크게 들이쉬는 순간 꽃향기에 취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지난 행동을 반성하며 착한 돼지가 된다. 그래서 아기늑대와 돼지는 친구가 되어 행복하게 산다. 원전에서는 위험의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고 잘라버렸지만 이 책에서는 악한 것을 선한 것으로 변화시키고 화해해서 갈등을 해결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더욱 강하고 튼튼한 재료들로 집을 짓는 것은 결코 해결 방법이 아니며 방어벽을 쌓고 안으로만 숨는 것도 서로의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향기롭고 고운 것을 함께 나누는 소중함, 그런 아름다움이 변화를 촉진시키고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길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은 기발하고 유쾌하며 행복한 화해의 결말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 적극적이며 마음이 훈훈해지는 행복한 결말은 한 차원 더 깊은 감동을 선사하며 평화로움과 따뜻함을 느끼게 할 것이다.

발하고 재미있는 텍스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옥슨버리의 그림
이 책에서 헬린 옥슨버리는 유쾌하고 기발한 텍스트를 정확하게 해석해 패러디의 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대가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수채 물감이 주는 투명함을 그대로 살려 색이 주는 느낌은 편안하고 가볍지만 돼지가 집을 부수는 장면이나 집이 폭파되는 장면들은 이전의 그녀의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렬한 느낌을 줘 독자들은 그녀 그림의 새로운 경향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아기늑대와 못된 돼지의 표정과 행동 묘사는 고정관념과 뒤바뀐 그들의 성격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잘 드러낸다. 집 짓는 재료들을 얻을 때 아기늑대들의 아주 공손한 표정, 집을 지을 때의 성실한 모습, 그리고 못된 돼지 앞에서 겁에 질린 모습은 늑대에게 악역이 맡겨진 적이 있었을까 의심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못된 돼지 역시 마찬가지다.

늘 심술이 가득한 얼굴 표정, 부들부들 떨며 드릴로 집을 부수는 악당의 모습에서 꽃향기를 맡고 착한 돼지가 되어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여유로운 모습으로의 변화까지 그 캐릭터의 특징이 너무나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머리와 꼬리에 컬을 말고 매니큐어를 정성스럽게 바르는 엄마 늑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엎드려 다이너마이트 폭파 단추를 누르는 못된 돼지의 뒷모습 등 그림의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곳곳에 배치된 잔재미도 풍부하다.

그리고 아기늑대들이 집이 망가질 때마다 겁에 질려 도망을 나오면서도 잊어버리지 않고 꼭 챙겨 나오는 찻주전자는 그렇게 차 한 잔의 평화로움 소중히 여기는 순한 아기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장치이다. 이렇게 구석구석 정성을 들여 잘 그려진 그림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하며 큰 즐거움을 줄 것이다.

귀여운 늑대와 착한 돼지와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아기늑대 삼 형제와 못된 돼지]는 글과 그림 모두에 있어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을 한 번 뒤집어 다르게 생각해 보는 기발한 발상의 전환, 행복하고 감동적인 결말, 잘 짜여진 구성으로 흥미로운 그림까지 두루 갖춰 이 책은 훌륭한 패러디 동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제 다시 만난 아기늑대 삼 형제와 착한 돼지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될 꽃으로 지은 집에 아이들도 초대한다. 아이들은 차 마시기를 좋아하는 귀여운 늑대들과 꽃향기를 맡고 착해진 덩치 큰 돼지와 친구가 되어 함께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셋은 향긋한 꽃향기를 맡으며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오래도록 깔깔대고 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