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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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건과 자리가 다른 만큼, 저자들이 경험하고 펼쳐 내는 페미니즘도 제각각이다. 다만 모두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실은, 페미니즘이 ‘남성’인 그들의 삶을 단단히 지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옆의 누군가와 새로이 관계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발견하게 한다. 나아가 남성 페미니스트는 한국 사회의 ‘기대’보다 더 복잡하고 더 자유로운 존재이며,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작가정보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며, 질병과 장애를 중심으로 사회를 고민하려 노력한다. 《비마이너》, 《시사IN》, 《홈리스뉴스》 등에 글을 쓴다. 『난치의 상상력』, 『식물의 시간』, 『아픈 몸, 무대에 서다』(공저) 등을 썼다.
연구자이자 활동가. 글과 연구로 간신히 벌어먹고 산다. 감각을 열고 질문을 던지며 언어를 찾는 일을 좋아한다. 늘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열망으로 살고 있다.
목차
- 엮은이의 말 5
질병과 가족에 관한 전략들 _안희제
세 명의 타인 13 | 환자 아들 15 | 아픔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22 | 아버지만의 방 29 | 할아버지 고쳐 쓰기 33 | 다이소 인조식물과 꼬막비빔밥 40 | 서로 다른 삶의 경로가 부딪힐 때 45 | 개인적인 전략이 가져오는 균열 49
폭력으로부터 배운 정직한 마음의 태도 _이솔
세상에 불행이 존재하는 이유 57 | 가정, 폭력을 배운 첫 번째 세계 60 | 학교에서 배운 것 62 | 폭력은 평범한 일 68 | 폭력으로 가득 찬 세계 72 | 저항하는 용기 78 | 고통에서 찾아낸 언어 84 | 타인이 나의 일부가 되는 감각 87 | 알기에, 외면할 수 없는 마음 91 | 우리는 이어져 있다 94
세상 어딘가에, 내 자리가 있었다 _신필규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101 | 멸시의 그 단어, ‘젠더’ 103 | 우연과도 같은 만남, 페미니즘 106 | ‘여성’단체의 ‘남성’ 회원으로 112 |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다 115 | 남성 동성애자로서 자리 찾기 118 |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127 | 달라지는 지형을 끊임없이 달려 나가며 129
우리가 함께하는 방법들 _이한
땅콩과 아몬드 137 | 어쩌다 마주친 페미니즘 142 | 폭주하는 남성성 열차에서 탈출하기 146 | 관계들의 변화 152 | 이성, 연애, 사랑 157 | 조금씩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161
이런 (남성) 페미니스트도 괜찮을까? _박정훈
나의 페미니즘을 찾아서 167 | 나무위키에 있는 내 이름 171 | 어쩌다 ‘남페미’는 조신해졌을까? 176 | ‘스윗’하지도, 무해하지도 않은 181 | 더 나은 우정은 가능하다 185
책 속으로
나는 운이 좋게도 아프면 쉴 수 있는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과연 그건 좋은 일이었을까? 자주 아프고 낫지 않는 질병을 겪는 나에게 환자 역할을 적용하면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쉬기’뿐이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나는 나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들이 집안일을 전담하게 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내가 점점 스스로 집안일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_21쪽
‘집안일을 모두가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말 자체는 단순하고, 또 당연하다. 하지만 실제로 집안일을 나누고 그것을 이어 나가는 일, 그걸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화하고 설득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이었다. 그건 무엇보다도 각자의 삶의 경로 안에서 집안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즉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관한 문제였다. _50쪽
나에게 가정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끔찍했던 것은 학교였다. 남성중심적 문화나 가부장적 폭력이 또래 문화를 통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 남중·남고를 나온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매일 아침 등교 시간이 지나면, 지각하거나 머리카락이 길다는 이유로 잡힌 학생들이 교사에게 맞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여러 종류의 몽둥이가 공기를 가르고 사람의 피부에 닿을 때의 소리. _62쪽
연대는 단 한 번도 피해를 겪지 않은 것처럼 구는 속죄의 심정이 아니라, 폭력이 편재한 세계에서 경험한 자신의 피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고통을 모르지 않기에, 알 수 있기에 외면할 수 없게 된다. 가해에 가담하거나 동조하거나 침묵하는 것 역시, 그러한 폭력이 만들어 낼 고통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통해 단호히 거절할 수 있다. _95쪽
페미니즘은 문자 그대로 ‘계집애’ 같은 남자,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인 나를 구했다. 만약 페미니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고, 부당한 대우를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며, 혐오를 내면화한 나머지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나로 하여금 방황과 자학을 일찌감치 그만두게 만들었다. 물론 나 또한 다른 남성들처럼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내가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를 성찰하기도 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만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_128쪽
내게 필요한 건 마냥 웃기고 화려하기만 한 모습을 전시하는 무대와 관객이 아닌 고단함을 나누고 어려운 순간에 도우며 인생의 달고 쓴 맛을 함께하는 친구라는 걸,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됐다. 이런 관계가 절로 될 리 만무하고 내 안에 켜켜이 남아 있는 어색함, 낯간지러움과 마주해야 한다. 말투는 여전히 투박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친구의 안부를 묻는다. 누군가를 놀리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분위기가 될 때는 요새 열심히 갈고닦은 성대모사를 시도한다. 가르치려 들지 않고, 친구의 감정과 선택을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당연히 낯설고 어렵지만 이런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서로돌봄이 나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_156쪽
나는 반성을 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그러한 과정을 글로 표현해 왔다. 하지만 모든 남성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정체성과 성장 배경, ‘할 수 있는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 과거에 나는 남성의 페미니즘 수용에는 반성과 자기 성찰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남성 페미니스트’를 ‘깨어 있는 헤테로섹슈얼 남성’ 정도로 인식되게 만드는 데 기여한 게 아닐까?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게 된 동기와 서사는 각자 다를 텐데 말이다. 남성 페미니스트를 일정한 틀에 가두는 시도를 무력화하고 성별이분법에 더 많은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선 다양한 모습의 남성이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_184~185쪽
출판사 서평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말, 그 너머의 이야기들
우리에겐 더 나은 말과 질문이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어 온 남성 페미니스트 서사에서 비켜나기 위한 시도다. 흔히 남성 페미니스트는 반성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속죄하는 인물로 그려져 왔다. 특권을 가진 존재로서, 혹은 ‘가해자’나 ‘방관자’로서 자신을 자각하고 성역할을 새롭게 수행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와 맞물려 “(가해자인)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냐”라는 질문이 논쟁적으로 등장한다. 이 질문에는 수치심이나 죄책감 같은 것이 따라붙기 십상이다. 그러한 감정에 빠져 있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일상의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상태를 어떠한 변화나 실천으로 착각하거나, 되도록 입을 다물고 조신하게 행동하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때로는 거기서 안정과 만족을 구하기도 한다.
우리를 움직이고, 끝내 나아가게 하는 말과 질문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남성 페미니스트’라는(그리고 ‘한국남자’라는) 자의식 너머의 이야기를 고민한다. 죄책감보다는 작은 용기로, 단정하고 선명한 결론보다는 일상의 누추한 분투들로 눈을 돌린다. 이로써 자신이 마주한 페미니즘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서서히 자신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는지 이야기한다.
페미니즘은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발견하게 한다
안희제는 아픈 몸을 가진 남성으로서, 질병과 돌봄이라는 두 개의 축이 자신의 가족 관계를 재조정하는 과정을 살핀다. 그와 그의 가족은 구체적인 ‘전략’을 통해 살림노동을 새롭게 실천해 나간다.
이솔은 페미니즘을 통해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겪은 가부장적 폭력들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점차 벗어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이는 타인의 말을 어떻게 들을 수 있는지, 타인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신필규는 남성 동성애자로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페미니즘은 그에게 아무런 오명을 쓰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최초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을 계속 재해석해 나간다.
이한은 지금껏 추구하던 남성성이 자신의 감각과 감정, 자신을 둘러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돌아본다. 페미니즘을 접한 이후 새롭게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의 곤란,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한다.
박정훈은 남성 페미니스트로 불리고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며 경험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때때로 자신이 이상한 경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그것을 돌파해 나갈 여러 태도들을 고민한다.
삶의 조건과 자리가 다른 만큼, 저자들이 경험하고 펼쳐 내는 페미니즘도 제각각이다. 다만 모두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실은, 페미니즘이 ‘남성’인 그들의 삶을 단단히 지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옆의 누군가와 새로이 관계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발견하게 한다. 나아가 남성 페미니스트는 한국 사회의 ‘기대’보다 더 복잡하고 더 자유로운 존재이며,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본정보
ISBN | 9791196767488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4월 04일 |
쪽수 | 192쪽 |
크기 |
129 * 189
* 19
mm
/ 334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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