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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처럼 스며드는 딸의 일기, 엄마의 마지막 그림들
언젠가 ‘엄마를 잃을’ 우리 모두의 이야기
작가정보
그림/만화 이길송
목차
- 간병일기
2014/10/28~2017/6/2
또다른 이야기
2018/10/11~2008/10/25
에필로그
2019/8/12
추천사
-
처음 이 책을 펼쳐 몇 페이지를 넘겼을 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거기엔 줄곧 내가 외면하려 애쓰며 살고 있는 어떤 경험과 닮은 고통을 응시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그 처참함을 한올 한올 어루만지는 방식으로, 다른 한 사람은 그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방식으로 가혹한 운명을 통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충돌에 가까운 그 둘의 조화로부터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처연한 아름다움 같은 걸 느꼈다.
세상은 언제나 바람을 저버리고 우리로부터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가 버린다. 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과정을 낱낱이 응시하고 오랫동안 기억하며, 자꾸만 이야기함으로써 우리 삶 안에 머물게 하는 일 뿐인 것 같다. 권남희, 이길송 두 사람의 예술가는 이 책을 통해 내게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언젠가, 아니 ‘언제든’ 우리도 스러져 버리겠지만 말이다
책 속으로
아마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뒷밭 계단에 앉아 울고 있는 엄마 품에 파고 들어가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엄마 도망가고 싶어… 엄마 없어도 돼?”
“그럼 대문 앞에서 매일 엄마, 엄마하고 울 건데…”
후에 엄마는 그날 당신을 쳐다보던 새까만 눈이 밟혀서
차마 집을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의 나보다 열 살은 어린 엄마의 시집살이는 녹록치 않았고
매일 마당 넓은 기와집에서 도망가고 싶어 했다.
엄마가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 탓인지 그날의 기억이 또렷한데
우리는 두고두고 여러 해가 지나도록 그날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오늘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한 엄마와 병실에 나란히 누워
또 그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엄마는 ‘엄마, 엄마’ 하며 울먹이던 나를 흉내 냈다.
조금 전 나는 엄마의 대장암 판정을 통보받았다.
- 2014/10/28, 9쪽
어제
“몸은 늙었지만, 저 낙엽을 ?고 싶어라~”
산책을 다녀와서는 파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낙엽을 꺼내어 깔며
육자배기를 흥얼거린다.
바람이 많이 불어 단풍이 너무 예쁘게 떨어지더란다.
엄마, 우리는 계절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걸까?
- 엄마의 가을, 18쪽
밤낮을 잊고 열심을 다해
그림을 그리는 만학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허공에 손가락을
‘이리~ 이리~’ 그어대며
나무와 꽃을 묘사하다 잠이 든다.
- 암 환자, 24쪽
‘몇 시부터 저러고 있었던 걸까?’
방문을 열고 나가면 엄마는 새로운 그림에 ‘색칠’을 하느라
딸 얼굴도 보는 둥 마는 둥
일어나면 양말을 신어라, 어깨 좀 펴라, 눈뜨자마자 물을 마셔라
등의 아침 잔소리가 줄었다.
그리는 게 너무 재미있어 좋아하던 성경책도 읽지 않은 지 오래.
- 언제부터인가 익숙한 아침 풍경, 29쪽
‘얼굴도 못났는데 사는 것도 기구하다’는 게
고흐에 대한 엄마의 첫인상.
-엄마, 고흐를 만나다, 34쪽
머리가 수영장 바닥에 닿을 만큼 세차게 발길질을 하다가도
금방 둥실 떠올랐다.
160센티짜리 풍선처럼 구겨 넣으려 하면 할수록
물 밖으로 튕겨 나왔다.
아줌마 회원들은 내 꼴을 보고 웃겨 죽겠다고 배꼽을 잡았다.
등이 굽은 마른 새우 같다는 것이었다.
물을 이겨 보겠다고 용을 쓰면 쓸수록 숨만 차고 꼴만 우스워진다.
‘뭐… 사는 거랑 똑같네’
- 잠영, 44쪽
“수영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유산소 운동은 환자분한테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아요.”
“…”
“스쿼트를 하세요.”
그러고는 우울증약을 처방받았다.
- 나의 처방전, 48쪽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엄마가 내 등에 코를 파묻고
이렇게 말했다.
“아- 남희 냄새.”
과거 어느 연인들의 사랑 고백보다 마음이 떨려 눈물이 차올랐다.
“냄새가 나?”
“응. 너한테는 남희 냄새가 나고 오빠한테는 경은이 냄새가 나.”
“……”
“오래 기억해 둘래.”
그러고는 한참을 겨드랑이에 얼굴을 묻고 있다.
- 9차, 66쪽
뒷모습을 눌러 찍은 사진에 엄마는
곱슬거리는 파마머리에
숱이 풍성하다.
날짜를 보니 고작 작년 오월
‘뭘 이렇게나 풍성해!’
눈물이 찍
- 옛날 사진, 77쪽
병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아빠가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너 들어오는 거 보니까 참 엄마 닮았네.”
엄마는 턱이 작은 계란형 얼굴에 전형적인 미인상이지만
나는 턱이 크고 말상으로 엄마를 조금 못생기게 닮아
항상 불만스럽다
- 103쪽
우리 남희 보고잡다
우리 남희 보고자와
의식이 반쯤 없는 엄마는
나를 옆에 두고도
계속 나를 찾는다.
- 108쪽
잠자리에 누워 틀니를 빼고는 빠진 앞니로 우습게 웃어 보이는
길송 씨는 영락없이 할머니이다가
다 쪼그라들어 있으나 마나인 젖가슴에
하나 마나인 브라를 고집스럽게 채우는
길송 씨는 여전히 여자다.
‘팔이 쪼물쪼물해 반팔은 입기 싫다’는 길송 씨에게
꽃분홍 긴팔 셔츠를 택배로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여자 이길송 씨를 생각했다.
- 이길송 씨, 118쪽
출판사 서평
엄마, 우리는 계절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걸까?
3년 간 엄마를 떠나보내며 써내려간 아름답고 처연한 일기
우리는 언젠가 모두 ‘고아’가 될 운명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일본의 대표 ‘엄마 배우’ 키키 키린의 말처럼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는다. 이르거나 빠르거나 우린 모두 부모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한번쯤은 고통과 상실을 겪어내야 할 숙명 앞에서 우린 어떤 자세여야 할까.
여기 ‘슬픔의 계절’을 관통해 살아남은 행복들이 적힌 일기가 있다. 책 〈엄마의 계절〉은 작가 권남희가 어머니 이길송과 함께 한 마지막 3년여 간의 기록이다. 작가가 어머니의 대장암을 선고 받은 2014년 10월28일부터 세상을 떠난 2017년 6월2일까지 간병일기를 쓰는 동안, 어머니는 “메모지에, 버려진 편지봉투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흔 평생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는 어머니의 그림은 서툴고 투박했지만 순수하고 따뜻했다.
암 선고를 받고 나서 그리기 시작한 어머니의 그림은 싱그럽고 생명력이 넘쳤다. 대장암 판정을 받고 “엄마 품에 파고들어 가 울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던 작가는, 간병 4개월만에 ‘지금’의 행복을 놓치지 말자는 작은 깨달음에 다다른다.
“언제부터인가 익숙한 아침 풍경. ‘몇 시부터 저러고 있었던 걸까?’ 방문을 열고 나가면 엄마는 새로운 그림에 색칠을 하느라 얼굴도 보는 둥 마는 둥 (중략) 선착장 바닥 색깔을 어떻게 칠해야 할지 고민이라면서 서너 가지 색연필을 양손에 나누어 쥐고 진지하다.
폭풍같던 감정의 기-승-전을 지나 이제는 ‘지금’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29쪽)
시처럼 짧게 적힌 67편의 일기 행간에는 미처 문자로 설명해 낼 수 없는 진한 감정들이 배어난다. 어떤 날의 일기엔 사소한 농담이, 간단한 간병 메모가, 같이 해먹던 요리의 조리법이, 혹은 단 한 문장이 적혔지만 마지막 나날들의 묵직한 슬픔과 행복에 어느새 코끝이 찡해진다.
“얼굴도 못났는데 사는 것도 기구하다”
고흐를 사랑한 엄마, 가난한 집 큰 딸이었던 엄마
그 시절 엄마들의 삶은 어땠을까. 왜 엄마는 암을 선고 받고 나서야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최근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의 엄마 ‘미숙’은 남자 형제들의 학업을 뒷바라지 하느라 본인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접어야 했던 사람으로 나온다. 미숙에게 딸 지영이 ‘엄마 꿈은 뭐였어?’라고 묻는 장면은 생경하다. 우리는 ‘엄마의 꿈’을 알고 있을까?
작가는 어쩌면 뒤늦게 엄마의 꿈을 발견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인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했던 그는 본능적으로 엄마가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을’ 수많은 차별과 억압, 희생을 감지하고 있었다.
“‘엄마 도망가고 싶어… 엄마 없어도 돼?’ ‘그럼 대문 앞에서 매일 엄마, 엄마 하고 울 건데…’ 후에 엄마는 그날 당신을 쳐다보던 새까만 눈이 밟혀서 차마 집을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의 나보다 열 살은 어린 엄마의 시집살이는 녹록치 않았고 매일 마당 넓은 기와집에서 도망가고 싶어 했다.”(9쪽)
가난한 집 큰 딸로 여자는 공부를 시키지 않는 것이 당연한 세월을 살아온 어머니 이길송 씨는 삶의 언저리에 고흐를 사랑했다. 딸이 쥐어준 색연필로 그려낸 그의 ‘해바라기’는 고흐의 것 마냥 강렬하고 역동적이다.
오랜 기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던 작가는 이때를 떠올리며 “엄마에게 물려받은 재능으로 미대에 들어갔나 보다”라고 말할 수 있어서, 이 말에 자글자글 웃던 엄마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한다.
‘중학교도 못간 것이 언제나 한’이었던 길송씨의 딸 권남희 작가는 엄마가 바랐던 교수는 못 되었지만, “엄마의 그림을 책으로 엮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모녀가 함께 했던 세 번의 사계절을 추억한다.
“그래도 행복했다”
죽음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유영하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매일 실감하는 절망 앞에서 작가는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얻는다.
한 움큼씩 빠지는 엄마의 머리칼을 숨기고, 엄마 꿈과 불면 사이에서 서성이던 그의 모습은 결코 남일 같지 않다. “상실을 겪을 누군가에게 쓰는 위로의 편지이기를 바란다.”
때문일까 책의 시선은 마냥 슬프고 우울할 것만 같은 간병 일상에도 ‘피식’ 웃을 수 있는 위트가 담겨있다. 〈엄마의 계절〉은 모녀가 함께 하는 병원, 집 거실, 그리고 수영장이 등장한다. 책에는 작가는 우울증과 불면을 극복할 생각으로 시작한 운동, 수영에 관한 몇 편의 일상이 그려진다.
“수영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유산소 운동은 환자분한테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아요.”
“……” “스쿼트를 하세요.” 그리고는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48쪽)
단 넉 줄에 적힌 이날의 고백은 허무개그처럼 허탈하면서도 안도감을 준다. “160센티짜리 풍선처럼 구겨 넣으려 하면 할수록 물 밖으로 튕겨” 나가는 몸을 관찰하며 작가는 물을 이겨보겠다고 하는 것이나 죽음을 외면하려 하는 것의 무모함을 하나씩 저장해 나간다.
‘눈물구멍에 주먹을 욱여넣어 참아내는’ 것이 일상인 나날들에 ‘자유형 리커버리 사이에’ 그가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현재를 살기로 결정하고 심플한 사람이 되어갔다. 아직도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 또한 받아들이고 있다.”(127쪽)
여전히 여러 이유로 일상의 우울증과 상실이라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가의 일기는 개인적 경험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서 소소한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기본정보
ISBN | 9791196466817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11월 11일 |
쪽수 | 128쪽 |
크기 |
139 * 201
* 16
mm
/ 247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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