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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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어렵게 자라난 궁예는 나라를 바로세울 꿈을 품고 군인이 된다. 양민과 천민이 주축이 된 군대를 일으켜 지금의 강원도 일대를 장악하여 송악(개성)에 고려를 세우고(901년), 그 뒤에 철원으로 천도하여 마진과 태봉으로 나라 이름을 잇달아 바꾸며 만민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삼분의 이까지 손에 넣은 신라 땅뿐 아니라 중국 대륙으로 영토를 넓혀서 한층 넓고 큰 나라를 세우고자 한다.
신흥 귀족으로 성장하려던 호족 세력들은 궁예와 계속 대립하게 된다. 궁예의 나라 안에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궁예를 제거하고 호족 연합 정권을 세워, 왕건을 왕으로 앉힌다(918년). 왕건은 궁예가 처음 세웠던 나라인 고려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태봉 정권의 관제를 거의 그대로 계승한다.
궁예는 고려 시대에 씌어진 [삼국사기](1145년) 속에서 폭군이자 미치광이로 다루어졌으며, 이런 평가는 [고려사](조선 초기)를 거쳐 지금껏 천 년 가까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십여 년 안쪽에 몇몇 학자들에 의해서 궁예에 대한 역사 기록이 날조되거나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간간이 언급될 뿐이다.
오늘날 철원과 포천 등지에 궁예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하나같이 그가 억울하게 희생되었음을 암시하는 유적들이다. 명성산(울음산), 국망봉, 원통산 같은 지명이 그러하며, 철원에서 전해져 오는 전설이나 민담 속에도 궁예는 역사 기록에 나오는 인물과 전혀 다른 사람임을 말해주는 내용이 가득하다. 철원에선 해마다 ‘태봉제’를 열어 궁예를 기리고 있다.
작가정보
목차
- 1부 어린 왕자
단오제/ 춘섬/ 기쁜 소식/ 궁중 사자/ 추격전/ 구레 주막/ 곰분이/ 불난리/ 가마솥/ 당나귀 귀/ 까막산/ 난짱/ 운악 산장/ 이별
2부 청년 시절
세달사/ 자웅/ 고백/ 칠봉이/ 복수/ 원숭아비/ 춤추는 왕/ 큰스님/ 은부/ 종간/ 격변/ 유언/ 진훤/ 외톨이
3부 전쟁
출정/ 기훤/ 원회/ 말똥구리/ 맞대결/ 웃는 장군/ 석남사/ 다시 만난 곰분이/ 찢어진 화상/ 여우 울음소리/ 갈림길/ 당나라 이야기/ 설마 그럴 리가!/ 용녀/ 정선 아라리/ 천제단
책 속으로
단옷날 아침에 송현네 집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산모가 몸을 풀려고 서라벌 왕궁을 떠나 친정에 온 지 꼭 두 달이 지났을 때였다. 이 아기는 송현의 외손자이자 왕의 아들이었다. 딸만 둘을 둔 왕에겐 첫 번째 아들이니 온 나라에서 만사 젖혀 두고 어깨춤을 추며 축하할 일이었다. 그날 송현은 서원경에 사람을 보냈다. “어서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알려라.” (p.29)
궁중 사자가 피를 토하듯이 감정을 듬뿍 넣어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이 모두가 아주 좋지 않은 징조로다. 이 아기는 앞으로 나라에 이롭지 못하리라. 따라서 당장 아기를 죽일 것을 명하노라.” 그 소리에 송현은 심장이 거의 멎었고 낯빛이 하얗게 바뀌었다. 궁중 사자가 두루마리를 돌돌 말며 송현에게 물었다. “지금 아기가 어디 있느냐?” 송현은 이마를 땅바닥에 대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서 대꾸하지 못할까!” (pp.36~37)
얼떨결에 궁예를 놓친 구레는 땅바닥에 떨어져 엎드린 궁예 어깨를 잡았다. 억지로 궁예를 일으켜 손목을 잡아서 질질 끌고 가마솥으로 다가갔다. 뜨거운 김이 두 사람 얼굴로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번개처럼 날아와 궁예의 다른 쪽 손목을 잡았다. 구레의 아내이자 궁예를 스스로 배를 앓으며 낳은 아이로 여기는 곰분이였다. 구레가 곰분이를 돌아보고 눈을 부라렸다. “당신,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곰분이가 받아쳤다. “당신이야말로 왜 이래요? 우리 아기를 어쩌려고?” (pp.66~67)
선종은 뺨을 맞는 내내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으며 외눈으로 뚫어지게 무사 눈을 쳐다보았다. 눈 두 개가 눈 하나를 당해 내지 못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무사는 선종의 눈길을 피했다. 입 속이 바싹 타들어갔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기껏해야 스무 두어 살 밖에 안 돼 보이잖아. 이런 애송이 앞에서 내가 왜 이러지?’ (p.165)
궁예는 짧게 기합을 넣으며 칼을 좀 더 높이 들었다. 칼끝은 호랑이 아래턱 복판을 찔렀고 턱 밑을 길게 쭉 가른 뒤에 정확하게 호랑이 목을 꿰뚫었다. 호랑이 몸무게에 중력이 더해져서 엄청난 힘이 칼날을 지나 칼자루를 쥔 궁예의 두 손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호랑이 목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피가 궁예 얼굴을 덮쳤고 궁예의 두 손은 칼자루를 넘어가서 칼날을 길게 훑었다. 엄지를 뺀 여덟 개 손가락 안쪽이 칼날에 베었다 싶은 순간 궁예는 칼을 놓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pp.227~228)
“아직도 네 가슴속엔 네가 잘났다는 마음이 들어 있어. 밑바닥까지 자신을 낮추지 않고선 백성을 제대로 섬길 수 없어. 적군이건 아군이건 모든 목숨은 네 목숨 못지않게 귀한 거야. 여기까지 오는 중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도 제대로 뉘우친 적이 없지 않아?” (p.301)
출판사 서평
출간 의의
이 소설은 우리 문학 최초로 궁예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 작품이다. 역사를 전공한 작가는 [삼국사기] 열전 궁예 편(1145년, 궁예 사후 227년)과 [고려사] 태조 총서(조선 초)의 앞과 뒤가 상이한 맥락을 통해 사실 왜곡의 흔적을 명료하게 읽어내고, 이러한 기록의 이면을 탐색하는 작업 과정에서 발견한 사실을 토대로 촘촘히 상상을 엮어내었다. 기록 속의 주역과 조연들인 왕과 대신과 장군뿐 아니라, 망국 귀족 출신 노비로서 우연히 궁예를 맡아 기르는 춘섬과 국솥에서 끓을 뻔한 궁예를 살려내는 주모 곰분이와 오갈 데 없는 소년으로 만나 생과 사를 함께하게 되는 형이요 아우요 벗인 자웅과 종간과 은부 등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기층 민중과 그들을 깨우치고 돌보는 장로인 운악 노인과 큰스님 혜현과 주지 법윤을 생생하고도 살뜰히 그려낸다.
차갑게 뒤틀린 기록의 이면을 인간애와 상상의 힘으로 탄탄하게 복원해낸 이 팩션(faction)은 작가 특유의 해학과 서정을 굽이굽이 펼쳐내면서 원재길 문학의 지평을 드넓히고 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금을 품었으되 흙땅에 내던져진 궁예, 그를 비롯한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꿈과 용기와 실패와 성공을 비추어내는 거울 앞에 선다는 것이다. 한 나라와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또렷이 자각한다는 것이다.
백성을 수렁에서 건져 내서 새로운 세상으로 이끈 영웅인가, 증오심에 사로잡혀 온 나라를 불구덩이 지옥으로 만든 미치광이인가. ‘승자의 역사’ 속에서 왜곡된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되살려 낼 때, 마침내 우리 역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대의 참모습이 오랜 어둠을 뚫고 장관을 펼쳐 보인다.
“세상 만물은 겉보기에 크고 작고 둥글고 모나고 예쁘고 못나게 생겼을 뿐, 그 바탕은 같다. 만물을 나누거나 가르지 마라.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며 두루 사랑하도록 하라.” ― 본문 중에서
궁예가 세상을 뜬 지 올해로 꼭 일천 백 년이 되었다. 짧지 않은 세월이어서 많은 게 변했지만 거의 변하지 않은 것들도 적지 않다. 특히 그 시절의 임금과 귀족과 세도가들을 쏙 빼닮은 이들이 곳곳에서 활개 치는 모습을 볼 때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참으로 뿌리 깊은 이 민족의 어떤 심성을 엿본 느낌이 들기도 한다. 허균이 말한 바와 같이 이런 이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한 궁예 같은 인물은 거듭 되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세상을 세상답게 만드는 일에 온몸을 던질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참고서적 인용
1. [삼국사기] ‘열전 궁예 편’
궁예(弓裔)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씨이다. 아버지는 제47대 헌안왕(憲安王) 의정(誼靖)이고 어머니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는데 그녀의 성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혹은 48대 경문왕(景文王) 응렴(膺廉)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5월 5일 외가에서 태어났는데 그때 지붕 위에 흰빛이 긴 무지개처럼 위로 하늘에 닿아 있었다.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이 아이가 오(午)자가 거듭 들어있는 날[重午日]에 태어났고 나면서부터 이가 있으며 또한 광선과 불꽃이 이상하였으니, 장래 나라에 이롭지 못할까 염려되옵니다. 기르지 마옵소서.”
왕이 궁중의 사자(使者)를 시켜 그 집에 가서 그를 죽이도록 하였다. 사자는 아이를 포대기 속에서 꺼내어 누마루 아래로 던졌는데, 젖먹이는 종이 몰래 받다가 잘못해서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한쪽 눈이 멀게 되었다. 그길로 안고 도망하여 숨어서 고생스럽게 길렀다.
(....) 하루는 태조가 급한 부름을 받고 궁궐 안에 들어가 보니 궁예가 처형당한 사람에게서 몰수한 금은보화와 가재도구들을 점검하고 있다가 성난 눈으로 태조를 노려보며, “경이 어젯밤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왜 반역을 모의했느냐?”고 힐문했다. 태조가 얼굴빛을 변치 않고서 몸을 돌리고 웃으면서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궁예는, “경은 나를 속이지 말라. 나는 사람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으니 내가 이제 입정(入定)²??하여 경의 마음을 살핀 후 밝혀 주리라.”하고는 곧 눈을 감고 뒷짐을 지더니 한참 동안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 때 궁예의 곁에 있던 장주(掌奏) 최응(崔凝)이 일부러 붓을 떨어뜨리고 뜰에 내려와 줍는 척하면서 태조의 곁을 빠르게 지나며 귓속말로, “복종하지 않으면 위태롭습니다.”라고 일러주었다. 태조가 그제서야 깨닫고, “신이 모반한 것이 사실이오니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고 말했다. 궁예가 크게 웃으며, “경은 정직하다고 할 만하다.”고 하면서 금은으로 장식한 안장과 고삐를 내려주며 “경은 다시는 나를 속이지 말라.”고 했다.
(....) 6월 을묘일. 기병장수(騎兵將帥) 홍유(洪儒) · 배현경(裴玄慶) · 신숭겸(申崇謙) · 복지겸(卜智謙) 등이 몰래 모의한 후 밤중에 함께 태조의 집으로 찾아와 그를 왕으로 추대하겠노라고 말했다. 태조가 단호히 거절하며 허락하지 않았으나 부인 유씨(柳氏)²??가 손수 갑옷을 가지고 와 태조에게 입히고 여러 장수들이 옹위해 집 밖으로 모시고 나왔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말을 달리면서, “왕공(王公)께서 이제 정의의 깃발을 드셨다!”고 외치게 했다. 이렇게 되자 뒤질세라 달려오는 자가 헤아릴 수 없었으며 먼저 궁문에 이르러 북을 치고 환호하면서 기다리는 자도 1만 명을 넘었다.
궁예가 그 소식을 듣자 깜짝 놀라며, “왕공이 나라를 얻었다면 나의 일은 다 허사로다!”라며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다가 미복차림으로 북문을 빠져나와 달아나니 나인들이 궁궐을 청소하고 새 왕을 맞이했다.
궁예는 산골짜기에 숨어 이틀 밤을 머물다가 허기가 심해지자 보리 이삭을 몰래 잘라다 먹었다가, 곧 부양(斧壤:지금의 강원도 평강) 백성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2. [고려사] 태조 총서(조선 초)
태조응운원명광렬대정예덕장효위목신성대왕(太祖應運元明光烈大定睿德章孝滅穆神聖大王)은 성이 왕씨이고 이름이 건(建)이며 자는 약천(若天)이다. 송악군(松嶽郡 : 지금의 개성직할시) 사람으로 세조(世祖)의 장남이며 모친은 위숙왕후(威肅王后) 한씨(韓氏)이다.
당나라 건부(乾符) 4년(신라 헌강왕 3년, 877) 정유년 정월 병술일. 송악군 남쪽의 집에서 태어나자 신령스런 빛과 자색의 기운이 방안에 비치고 뜰에 가득 찼으며 종일토록 서려있는 형상이 흡사 용과 같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용의 얼굴에 이마 뼈는 해처럼 솟아났으며 턱은 모나고 이마는 넓었다. 도량이 큰데다 말소리가 우렁차 세상을 구제할 만한 역량을 갖추었다.
3. 현대 학자들이 바라본 궁예(날개 문안)
고려 때 이루어진 기록에는 그가 포악하고 지혜가 모자라서 신하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전한다. 그가 왕건 세력에 쫓겨 달아날 때 백성들이 잡아 죽였다고도 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궁예가 정치권력 투쟁에서 호족들에게 밀려나 통일의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궁예는 비록 실패한 군주였으나 민중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민중들 입으로 많은 전설이 전해져 왔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 딱 들어맞을 것이다. - 이이화, [이이화의 한국인물사]
‘민중’의 존재에 눈을 뜬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초적(草賊) 등 신라 말기 반란적 민초들에게 기댔던 궁예에 대한 긍정적 관심이 고조됐다. 그러나 안방을 정복하다시피 한 사극 [태조 왕건] 속의 궁예는 멋진 카리스마의 소유자였지만, 여전히 ‘폭군’의 면모를 지녔다. 그만큼 궁예를 ‘인격 말살’시킨 [삼국사기] 이후 기록들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 기록들을 부정할 만한 궁예 쪽 기록은 현존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의 궁예 관련 기술에선 역사적 맥락과의 모순과 노골적 편향 등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 박노자, [거꾸로 보는 고대사]
기본정보
ISBN | 9791196322519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4월 30일 |
쪽수 | 308쪽 |
크기 |
145 * 210
* 22
mm
/ 476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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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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