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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오늘은 그 자신이 스스로 집필한 대중적, 실천적 버전을 들고 나왔다. 그 이름은 '명시단평'. 부제를 보니, '대중서사학입문'이다. 제목의 상징성을 고려해 볼 때, 그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즉 단평이 하나의 대중적 형식이 되었다는 거다. 그는 이날 기념 강연에서 그동안 시, 소설이 누려왔던 시대가 지나고-물론 그 위세는 지금도 여전하다-이제 상호성을 그 모럴로 하는 전자사회에 대중적 형식으로서의 댓글, 단평 등 에세이가 주류형식을 밀어내고 이 시대의 주류형식이 되고 있음을 말했다. 노벨상이 벌써 선도하고 있다는 거다. 과거 영웅귀족들이 판치던 시대, 그들을 찬양하기에 바빴던 시 형식에 '찌질한' 이야기는 낄 수도 없었다. 소설이 주류가 된 시대에도, 그러나 이야기는 고독과 일탈이 필요했던 한가한 부르주아 차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인터넷에 기반한 표현민주주의 시대, "전자미디어는 모든 인간이 상호 관련의 전체적인 장소를 즉시, 그리고 항시 만들어 낸다."는 맥루한의 말대로, '상호성'을 그 모럴로 하는 전자문화에서 전체적이고 일방적인 시, 소설의 위상은 시대적 한계가 분명하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매번 에세이가 꼽히고 노벨문학상에서 고중세, 근대의 경전인 시와 장편소설이 밀려나고 단편소설과 대중가요가사, 대중적 에세이가 영예의 월계관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때, 한국에서 문예비평가가 대중서사학을 이론화하고 주류형식에 도전한 무게 있는 문예비평서를 출간하였다. 바야흐로 근대 이성, 지식인이 죽고 대중평자들이 나타났다는 거다. 마침 이 자리에 참석했던 박용규 고려대 역사학자는 이 날의 역사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글쓰기 문화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게 얼마전이다. 기존의 통념과 형식에 일대 도전장을 내민 한국의 야심찬 신예비평가 늘샘, 그가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차
- 머리말
일러두기
서문_글쓰기 생산의 기호 인식론적 기초
제1부
기형도의 '엄마 걱정'
윤희상의 '소를 웃긴 꽃'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
김종길의 '바다로 간 나비'
이백의 '장진주'
유덕선의 '모과나무 아래에서'
류근의 '반가사유'
김영호의 '누이가 오래된 집으로 걸어온다'
김은령의 '침향'
정몽주의 '봄비'
함민복의 '공터의 마음'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제2부
보들레르의 '우울'
백석의 '정문촌'
이성복의 '그날'
하재일의 '와송'
황동규의 '기항지1'
이백의 '자야오가'
안도현의 '북항'
임성용의 '우크라이나에서 온 여자'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심재언의 '월광곡'
고은의 '순간의 꽃'
백석의 '팔원-서행시초3'
제3부
황동규의 '조그만 사랑노래'
네루다의 '한 여자의 육체'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강기원의 '죽'
문혜진의 '홍어'
김남주의 '이 가을에 나는'
문인수의 '장미란과 무쇠 씨'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정진규의 '사물들의 큰 언니'
조조의 '단가행'
셸리의 '서풍의 노래'
기형도의 '바람의 집-겨울판화1'
제4부
브레히트의 '칠장이 히틀러의 노래'
김영한의 '시'
김수영의 '공자의 생활난'
한용운의 '님의 침묵'
문태준의 '가재미'
최재목의 '늪'
조식의 '천왕봉'
하명희의 '거미의 상징'
최정례의 '빵집이 다섯 개 있는 동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김광규의 '나'
송찬호의 '칸나'
부록: 임화, 그는 조선학을 일군 발군의 문화인이었다
해설: 조재훈
책 속으로
언어는 텍스트이지 실체도 형태도 아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근대 이성철학의 비조이자 소설의 우두머리인 소크라테스가 왜 문제가 되고 있는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최재목의 시 ‘늪’을 보것습니다.
온갖 잡것들과 함께 지낸다, 슬픔에서도 물러나 기쁨에서도 물러나, 늪은 노래한다, 이 기막히고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물밑에서 아니 물위에서, 자라다 쓰러지고 쓰러지다 일어서서 노래하는 그 곳, 일렁거리다, 인간도, 벌레도, 미래도, 희망도 저 속에 잠들 것이다, 상처투성이 푸른 땅의 자궁, 개구리들의 모성母性이 보이고, 벌레들의 정액, 풀들의 교미가 보이고, 뼈와 흙과, 돌과 풀과, 사람과 함께 늪은 고뇌한다, 도시가 흘러 들어오고, 기술의 나사 튕겨 나오고 과학의 잔재들, 폐차들 쌓여 썩는다, 이성理性의 고름과 눈물, 퇴직한 인간들의 명패, 물은 온갖 쇠붙이에 달라붙어 살을 뜯어먹는다, 지극히 합리적인 그대들의 시간들, 우둔하고 흐리게 잊혀진다, 온갖 잡것들, 진보한다 그리고 퇴보한다, 아니다 그런 것은 없다, 이것도 저것도, 저것도 이것도 아니다, 아닌 것도 아니다, 또 아니다, 아닐까, 그럴까 하면서, 드디어 늪은 맑은 노래 흘러 보낸다, 우 우 우, 갈 숲의 건반을 두드리며 새들이 몰려올 때 낮아지거나 높아지거나 혹은 숨으면서 노래하는 늪, 풀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 악보를, 자생하는 풀숲과 진흙의 발을 서로 딛고 오르내리는 물의 음계, 늪의 지성知性, 온몸을 부비며, 아름다운 화음和音으로 연대한 공생과 자치의 터
탈근대, 포스트모더니즘은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로부터, 그의 데뷔작 [비극의 탄생]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망치를 든 근대철학의 전복자 니체가 망치를 내려 친 대상은 다름 아닌 거물철학자 소크라테스였습니다. 거물은 거물과 싸우는 것인가.
여기, ‘주체의 죽음’이라고 말하는 탈근대 철학의, 특히 프랑스 철학자들의 은사, 니체를 보것습니다. 니체...그의 밑에서 푸코, 데리다, 들뢰즈, 라캉 등 탈근대 철학이라는 수많은 개구리알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리하여 개굴! 개굴! 우리가 만일 합리적 이성이라 자임한다면 우리는 모두 소크라테스의 자손일테고, 우리가 또 만일 감성과 욕망, 그리고 의지를 중시하는 인간이라면 우리는 모두 니체의 에피고네들입니다.
어디 그런가. 뜬 풀을 걷어 내고 작품 속을 들여다 보것습니다.
우선, 제목부터. [비극의 탄생], 이 말은 그동안 비극이 죽어 있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바로 소크라테스주의로 상징되는 과학적 세계에 의해 비극적 세계가 숨도 못 쉬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최재목의 시, ‘늪’에서 인간, 벌레, 미래, 희망, 도시, 기술의 나사, 과학의 잔재들, 폐차들은 바로 소크라테스주의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입니다. 즉 소크라테스주의는 비극의 적대자입니다. 그렇다면 비극은 무엇인가. 여기서, 비극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신으로 상징되는 신화의, 시의, 생명의, 통합의 세계를 암시합니다. 시에서 늪과 함께 고뇌하는 상처투성이 푸른 땅의 자궁, 개구리들의 모성母性, 벌레들의 정액, 풀들의 교미, 뼈와 흙과, 돌과 풀과, 사람이 모두 비극적 세계를 암시하는 기표들입니다. 즉 여기서, 비극은 소크라테스적 이성과 대립되는 그리스적 신화의 세계를 말합니다. 이성의 세계가 개별자를 대표한다면, 신화의 세계는 전체를 상징합니다. 곧 철학이 대상과의 균열을 나타낸다면, 시는 대상과의 합일을 드러내는 코노테이션입니다. 여기, 그리스적 신화가, 시가, 비극이 갖는 통합을 설파하는 그의 주장에는 계보학적으로 볼 때, 후일 푸코가 말하는([광기와 문명]) 디오니소스적 광기가 들어 있고, 들뢰즈가 말하는([천 개의 고원]) 탈영토 개념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근본적으로 주목되고 있는 것은 이성의 세계와 신화의 세계의 대결입니다. 여기, 신화의 세계가 시에 닿아 있다면, 이성의 세계는 소설에 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유일한 문학장르로 어떤 것을 눈여겨 보았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솝의 우화다.”(14장)
즉 소크라테스의 세계는 고대 이야기인 우화, 오늘의 소설의 세계를 지향했다는 것입니다. 시가 동화同化의 언어, 비유를 통해 대상과의 만남을 말하는 고대적 양식이라면, 소설은 이화異化의 언어, 개념을 통해 대상을 찢으면서 하나의 개념적 영토를 배타적으로 설정하는 양식입니다. 즉 소설의 세계는 귀납적 일반화를 통해 현상을 일정한 분류와 차이의 세계로 인식하는 부르주아적 멘탈리티를 보여주는 근대의 양식입니다. 다시 말해 시, 비유가 전체를 구성한다면, 소설, 개념은 개별을 의식합니다.
이렇게 시와 소설의 세계 인식의 차이는 극단적으로 소크라테스-플라톤에 의해([국가]) 시인추방론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플라톤 대 호메로스,
출판사 서평
전자문화 도래와 대중평자들의 등장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문화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 문화적 풍요를 가능케 하는 21세기 마술 램프는 바로 전자미디어다. TV를 비롯 라디오, 영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전세계적 확산은 지배적이던 문자문화의 습관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그동안 문자문화의 주인공은 근대지식인이자 천재적인 작가였다. 구술문화의 주인공인 영웅이 아니다. 영웅이 부족의 운명을 대표한다면, 그리하여 고대의 영웅서사시가 부족의 삶과 운명을 기록한 백과사전이라면, 작가가 쓴 시민서사시는 근대 부르주아의 백과사전이었다. 즉 작가는 부르주아 개인주의의 우상으로서 자신의 자서전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전자문화가 이 모든 것을 대체하고 있다. “전마미디어는 모든 인간이 참여하는 상호 관련의 전체적인 장소를 즉시, 그리고 항시 만들어 낸다”([미디어의 이해])는 맥루한의 말대로 다시 말해, 근대의 개인주의 사회가 ‘나는~’하고 [로빈슨 크루소]가 시작하는 것처럼 ‘일방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사회였다면,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전자미디어 사회는 ‘상호성’을 그 모럴로 하는 사회다.
이런 상호성을 가치로 하는 전자문화사회를 잘 보여주는 게 바로 댓글이다. 전자문화는 곧 댓글문화다. 이 댓글문화가 대중비평으로서 비평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이런 댓글문화, 비평문화를 주도하는 이들이 바로 천재적인 작가가 아니라 풀꽃과도 같은 대중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은 대중평자들의 시대다. 일찍이 근대철학의 전복자 니체는 서구 이성철학의 비조 소크라테스주의의 종말을 선언하고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며 근대의 인간중심적 문명의 쇠우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이후, 그의 에피고네들-푸코, 바르트, 라캉, 들뢰즈, 데리다 등 프랑스의 문화철학자들이 인간과 작가의 죽음을 선언하고, 욕망은 곧 타자이며, 리좀은 다양체이고, 텍스트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며 니체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그 차이와 반복을 거듭하였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근대의 그 오만한 주체문화,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의 신화는 드디어 황혼을 맞이하고 있다.
이 우상의 황혼의 숲에서, 그러나 “어둠이 깔려야 부엉이는 비상을 시작한다”는 헤겔의 말처럼, 개인주의 신화가 막을 내리는 황혼에 ‘대중’이라는 새로운 미네르바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목하 격변하고 있는 이 사회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과연 국민 대중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줏대없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다니던 그 옛날의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김수영, ‘풀’ 중에서
영웅도 천재도 아닌, 이 풀꽃과도 같은 대중들이 자신의 운명의 주인공이자 역사의 신부라는 자각을 지니고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쓰고 있다는 거, 바로 여기서 우리는 대중평자들이 새로운 역사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음을 본다. 루카치 식으로 말해서, 지금은 영웅이 문제인 시대도 개인이 문제인 시대도 아닌, 대중일반이 문제가 되고 있는 대중서사시대다.
가령, 광화문 촛불대중의 등장과 권력, 이런 대중적 헤게모니를 가능케 하는 대중들의 목소리a voice가, 이제 정치적으로 의식화된 이들이 스스로 형성해 나가는 새로운 인류사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확인하면서, 왜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에세이가, 즉 긴급한 이슈에 대해 비교,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련의 비평적 활동이 일상화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리하여 여기 제라르 쥬네트의 말대로, 조립자가 도구들을 조립하여 조립품을 만들 듯이, 비평가 또한 다른 사람들의 작품으로 의미를 만들고, 그 의미를 가지고 자기 작품을 만드는 사람임을 확인한다.
대중이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 시대, 이제 맹목적으로 상대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재현의, 모방의 시대는 지나갔다. 일방적으로 주장만 하던 폭력의 시대 또한 지나갔다. 다자간의 합의와 설득에 의해, 상호공감이라는 정서적 교감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 지고 이 시대, 그리하여 여기, 모두가 애널리스트이고, 모든 이가 평자인 시대, 바야흐로 대중평자大衆評者들의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
기본정보
ISBN | 9791196254605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1월 31일 |
쪽수 | 348쪽 |
크기 |
153 * 226
* 22
mm
/ 525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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