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런던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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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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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디킨스의 업적이나 그를 둘러싼 사실관계보다는 디킨스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루는 핵심을 드러내는 데 주력함으로써 디킨스라는 한 인간을 보다 선명하고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디킨스 스스로도 밝혔듯, 그는 자기 마음을 사로잡은 생각을 끝까지 탐구하는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열정이 디킨스의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소설처럼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을 사로잡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손녀의 손녀에게로까지 이어지는 디킨스의 매력은 과연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헤스케드 피어슨
저자 헤스케드 피어슨 Hesketh Pearson은 영국의 배우이자 전기 작가. 전기 작가의 대명사로 통하는 제임스 보즈웰에 비견되며 ‘20세기 보즈웰’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우스터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피어슨은 베드퍼드 스쿨을 졸업하고 수년 동안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지를 여행했으며, 영국에 돌아와서는 허버트 비어봄 트리가 운영하던 국왕 폐하 극장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셰익스피어 극에서 악당 역을 주로 맡았던 그는 1930년 무대에서 은퇴한 후 본격적으로 전기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자신의 선조이자 찰스 다윈의 조부이기도 한 이래즈머스 다윈의 전기를 시작으로 총 20여 편 전기를 썼으며, 공평무사한 시각으로 기록하고 분석하고 비평하려는 기존의 전기 문법을 탈피해 친근하고 개성적인 문체로 인물의 삶을 통찰력 있게 그려냄으로써 영리하고 솜씨 좋은 전기 작가로 평가받는 동시에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찰스 디킨스 전기에서는 디킨스를 ‘타고난 배우’로 재조명하는 참신한 접근법을 선보인다. 그는 디킨스의 성격과 희극성을 주재료로 문학과 삶을 교차편집하여, 디킨스가 늘 강조했던 대로 ‘단번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흥미롭고 매력적인 텍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기질적으로 게으른 사람이지만, 나의 게으른 천성도 비범한 인물들을 향해 지치지 않고 솟아나는 나의 호기심만큼은 막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전기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번역 김일기
역자 김일기는 서울대학교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건축전문지 『공간』의 영문에디터로 활동했으며, 서울대와 성신여대, 덕성여대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했다. 옮긴 책으로 『공중그네를 탄 중년 남자』, 『할머니 어디 계세요?』가 있고, 함께 옮긴 책으로『쇼에게 세상을 묻다』,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라운드 테이블:1989년 이후 동시대 미술현장을 이야기하다』(번역감수)가 있다.
목차
- 제1부 런던의 빈민가 (1812-1839)
유년의 거리 - 모든 이를 관찰하고 온갖 것에 주목하다
첫사랑 -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끔찍한 여인의 초상
보즈의 스케치 - 독보적인 보즈의 탄생
피크위크 페이퍼 - 출판사와 힘겨루기
아무튼 중요한 친구 - 문화예술계의 ‘거물’ 존 포스터
올리버 트위스트와 니콜라스 니클비 - 흥분해서 멈출 수 없는 지경이 돼야 비로소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제2부 데본셔 테라스 (1839-1851)
오래된 골동품 상점과 바나비 러지 - 캐릭터 창조의 정석
미국 인상기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마틴 처즐위트의 생애와 모험 - 펜에 매인 사람의 고통과 괴로움이란!
돔비와 아들 - 거리에서 영감을 얻고 시체공시소에서 마음을 달래며
데이비드 코퍼필드 - 삶과 예술의 데칼코마니
제3부 타비스톡 하우스 (1851-1857)
황폐한 집 -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풍자하고 비판하다
어려운 시절 - 천생 개인주의자, 본능적인 반역자
리틀 도릿 - 한계를 넘어서다
희대의 쾌남아 - 존재 자체가 우울함에 대한 도전
사랑과 전쟁 - 얼어붙은 바다
제4부 개즈힐 플레이스 (1857-1870)
두 도시 이야기 - 절망의 겨울이자 희망의 봄
위대한 유산 - 무대 위의 카리스마
우리 둘 다 아는 친구 - 내면의 버릇없는 아이
두 번째 미국 여행 - 침대에서 일어날 수만 있다면 대중과 한 약속을 어겨선 안 된다
에드윈 드루드 미스터리 - 햇살이 비치는 곳에서 어둠의 나라로
책 속으로
p. 22
찰스가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찰스에게 구두약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 우리가 찰스에게 동정을 보내는 이유는 찰스가 옳고 어머니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찰스는 열두 살 어린아이였고 그의 어머니는 부모 노릇을 해야 할성숙한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p.118
어느 여인이 작가 일에 대한 조언을 구했을 때 디킨스는 이렇게 경고했다. “저술업에 발을 들인다는 게 얼마나 골치 아프고 성가신 일들을 떠안게 되는 것인지 아마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그러나 디킨스는 글쓰기를 자신의 업으로 삼았고,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예술을 위해 자신의 모두를 기꺼이 내어 주고 예술 안에서 보상을 찾아야 합니다.”
p.123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디킨스는 런던의 분위기를 포착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새뮤얼 존슨 박사나 찰스 램과 같은 이들도 런던이 낳은 위대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디킨스는 런던 그 자체였다. 디킨스는 자신과 런던을 동일시하면서, 런던을 쌓아 올린 벽돌과 회반죽처럼 런던의 일부가 됐다. 사람들은 마치 디킨스가 런던을 만들었고 이 도시의 진짜 이름이 ‘디킨스타운’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고 말한다. 다른 어떤 인물이나 다른 어떤 도시에서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이는, 유머 다음으로, 디킨스가 문학에 기여한 가장 값지고 독특한 성과다. 디킨스는 장소를 주제로 다룬 가장 위대한 소설가다.
p.140
끔찍한 것들은 워낙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선하고 유쾌한 것들은 우리가 존재하는 매 순간에 혼재돼 있기 때문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p.155
감상성은 냉혹하고 무감각한 것과 상호보완적이다. 아동과 흑인을 노예로 부리고 인도를 수탈하고 그 비슷한 범죄를 수없이 저지른 한 시대가 순수하고 어여쁜 소녀의 슬픔으로 눈 녹듯이 무너져 내렸다. 어린 넬을 위해 눈물을 흘림으로써 자기들이 저지른 악행을 속 시원히 참회한 것일까. 비정한 악당이 가장 펑펑 울었다. 시카고에서 감상적인 연극을 상연했을 때, 손수건을 꼭 쥐고 두 눈이 퉁퉁 붓도록 눈물을 흘린 관객은 다름 아닌 갱들이었다. 그러니 디킨스가 살았던 시대의 유명인사 중에서도 가장 심사가 사나운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열광했던 것이다. 칼라일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대니얼 오코넬은 정신없이 흐느껴 울다가 창밖으로 책을 내던지고 말았다.
p.198
이천여 명의 인파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목을 빼고 쳐다보며 디킨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모여든 군중은 장례행렬만큼이나 더디게 움직였다. 어느 구경꾼의 말에 따르면, 디킨스가 나타나면 마치 굶주린 닭들에게 옥수수를 던져준 것처럼 우우 인파가 몰려든다고 했다. 디킨스가 자리를 뜨면, 사람들은 탈의실로, 마차로, 호텔로, 심지어 개인 침실까지 디킨스를 찾아다녔다. 디킨스는 자기 침실에서도 침대 밑이나 옷장 안에 혹시 누가 숨어 있진 않은지 확인을 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p.260
내가 런던 거리와 사람들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말로 다 못해. 런던의 거리와 사람들이 내 머릿속에 뭔가를 공급해주는 것 같아. 그 뭔가가 없이는 일을 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어.
p.279
오만한 사람은 굳이 자기 자신을 뽐내지 않는다. 오만한 태도는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는 데서 비롯하는 반면, 자기를 뽐낸다는 것은 다른 이들을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다. 정말로 오만한 작가라면 자기 작품에 대한 적대적인 비평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친구들 혹은 남들이 무시한다고 해서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기를 뽐내는 사람은 평론가의 펜에 찔려 괴로워하면서, 그 평론가가 개인적인 악감정으로 그런 것은 아닐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며칠 밤을 지새운다. 디킨스는 자기 자신을 뽐내면서 세간의 호평을 탐했다.
p. 350
디킨스는 사람들에게 자애로웠다. 사람들의 행복을 빌었고, 사람들의 밑바닥을 들추려 하지 않았다. 『바나비 러지』에 “무슨 일이든 어떤 사람이든 속속들이 파헤쳐 그 밑바닥을 들춰내고야 말겠다는 미스 미그스의 심보는 사리풀독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것이었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디킨스는 그런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모든 이에게서 최선을 보려 했고, 행여 불쾌한 면모를 맞닥뜨리고 실망감을 느끼게 되면 얼른 유머로 승화시켰다. 디킨스 소설에서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몇몇 캐릭터가 보여주는 희극성은 디킨스가 평소 그들에게 느꼈던 환멸의 강도에 비례한다.
출판사 서평
“책, 책, 책. 나는 책을 읽었지. 읽고 싶은 책은 다 읽었어. 그것도 두 번씩. 디킨스는 세 번 읽었지.”
영화 『어바웃 타임』중에서
웰컴 투 디킨스 월드!
우리가 잘 몰랐던 천재 작가의 세계
영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는 셰익스피어다. 그렇다면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누굴까.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 『두 도시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 영국인은 물론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이 책들의 저자, 바로 찰스 디킨스다. 영국의 전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꼬마 데이비’ 시절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훌쩍이며 읽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아내에게 읽어주며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스프라우트 교수, 배우 미리엄 마골리스는 한술 더 뜬다. 열한 살에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은 이래 “단 하루도” 디킨스를 읽지 않은 날이 없다나! 세상을 떠난 지 150년이 다 되어가건만, 디킨스는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고조할머니와 내가 같은 작가를 좋아할 수 있을까?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녀의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은 둘 다 디킨스를 최애 작가로 꼽는다. 이렇듯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을 사로잡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손녀의 손녀에게로까지 이어지는 디킨스의 매력은 과연 무엇인가. 『찰스 디킨스, 런던의 열정』은 그 의문을 풀어줄 매혹적인 디킨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디킨스의 삶과 작품세계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지를 조명하고, 디킨스가 건설한 상상의 세계가 영미 문화의 대들보가 되어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무엇보다도, 디킨스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소설을 방불케 한다. 그러니까 『찰스 디킨스, 런던의 열정』은 일종의 ‘디킨스 완결편’으로,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정을 고양시킨다. 문학계 최초의 슈퍼스타이자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천재 작가 디킨스, 이 책은 그런 디킨스를 즐겁게 알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는 영국인이다. 연재물이란 걸 창안한 작가이가도 하지. 그의 첫 소설의 3장 마지막 부분에는 한 남자가 손톱에 의지해 가까스로 절벽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을 뜻하는) 클리프행어라는 단어는 그래서 생긴 거다. 자, 이 작가가 누군지 아는 사람?”
영화『월 플라워』중에서
오로지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한 드라마의 제왕
“오늘날 살아있다면 할리우드를 발아래 두었을 것”
디킨스 소설이 원래 연재물(시리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두 도시 이야기』등 우리가 아는 디킨스 소설의 대부분은 주간 혹은 월간 연재작이었다. 텔레비전으로 수목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를 챙겨보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도 매주 혹은 매월 잡지에 연재되는 디킨스 소설을 읽었다.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고 손에 땀을 쥐게 했으며 후속편을 눈빠지게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디킨스는 지금의 소설가보다는 TV드라마 작가나 시나리오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 피어슨도 “디킨스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할리우드를 발아래 두고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군림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배우와 극작가들은 다른 누구의 소설보다 디킨스의 소설에 더 매료된다”면서 말이다. 실제로 디킨스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자들이 여전히 탐내는 작가다. 이미 많은 작품이 TV드라마나 영화, 뮤지컬로 제작되었고, 현재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진 작품만 해도 여러 편이다.
연재물의 시작은 『피크위크 페이퍼』였다. 은퇴한 사업가의 모험을 그린 이 작품으로 디킨스는 연재물의 시대를 열었고, 문학사상 유례 없는 대유행을 이끌어냈다. 캐릭터 상품에 불법 복제까지 난무했으니, 당시 『피크위크』 인기는 지금의『스타워즈』나『해리포터』 못지 않았다. 디킨스는 이렇게 첫 소설부터 대박을 터뜨렸고, 이후 단 한 번의 부침도 없이 내놓는 작품마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타자로 치면 전타석 홈런 내지 안타를 친 셈이랄까. 그것도 15타석 연속으로! 『피크위크』 첫 회는 400부로 시작했지만 중반부터 판매가 급증해 4만부를 찍었고, 뒤에 나온『니콜라스 니클비』는 발간 당일에만 5만부가 팔렸다. 디킨스의 작품 중 가장 인기가 없었다는『마틴 처즐위트』조차 회당 2만부씩은 나갔다니,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펜에 매인 사람의 고통과 괴로움이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열정과 책임감
그러나 연재라는 게 얼마나 피말리는 일인지, 마감에 시달려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디킨스는 일생이 연재의 연속이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쓰면서 『니콜라스 니클비』를 쓰고, 연재 하나가 끝나기도 전에 벌써 다음 연재를 준비하던 작가였다. 천하의 디킨스도 며칠씩 방안에 틀어박혀 단 한 자도 쓰지 못할 때가 허다했다. 마감이 코앞인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머리털이 쭈뼛 선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마냥 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나 다른 많은 작가들처럼, 디킨스 역시 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평생 대가족을 먹여살려야 했고, 천성이 사교적이라 씀씀이도 컸던 탓에 한시도 펜을 놓을 수가 없었다. 불안과 동요의 감정이 수시로 그를 덮쳤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 20킬로미터씩 걷지 않으면, 불면증에 시달리며 한밤중에 런던의 거리와 골목을 배회했다. 이따금 경찰관과 함께 범죄자 소굴이나 빈민가를 돌아보기도 했다. 디킨스 소설 애독자라면, 디킨스가 거리의 인파에서 영감을 얻고 시체공시소에서 마음을 달랬다는 이야기에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의 소설에는 귀족과 관료뿐만 아니라 죄수와 탈옥수, 빚쟁이, 도박꾼도 등장한다.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사건들이 구빈원과 교도소와 빈민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디킨스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세계의 중심이었지만, 디킨스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어두운 그늘을 보았다. 모두가 런던의 번영과 풍요를 말할 때, 디킨스는 그 이면의 빈곤과 결핍을 이야기했다.
디킨스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때 자신이 속했던 세계에 대한 강한 연민에서 비롯됐다. 어릴 적 아버지가 빚을 지고 감옥에 가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약 공장에 다녀야 했던 일이 그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책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소년에게는 가혹한 경험이었다. 디킨스는 학교보다도 런던의 빈민가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고, 변호사 사무실 사환과 속기사, 신문기자를 거치며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기자 시절 그가 썼던 기사에는 이미 특유의 풍자와 위트가 엿보인다. 기자로서 혹독한 훈련을 겪은 것이 그가 작가로 성공하는 데 상당한 밑거름이 됐다. 디킨스가 원래 신문기자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그는 소설가로 유명해진 후에도 『데일리 뉴스』라는 신문과『흔히 쓰는 말』, 『일 년 내내』라는 잡지를 창간할 정도로 언론 활동에 열심이었다. 사실 디킨스는 사회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그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노예제도와 아동노동, 공개처형, 독방감금제도 등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것에 저항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공공주택 단지를 건설했고, 불우한 동료 예술가들을 위해 자선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그의 열정과 책임감은 뭐가 됐든 적당히 하는 것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다.
“천재가 하는 일은 뭐든 성공하는 법이지.” 디킨스는 어느 편지에 그렇게 적었다. “끝없이 일만 벌이고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천재가 아닐세. 내 말을 믿게.” (p.274)
“가난한 이들의 친구”이자 “영국인의 사랑” 디킨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피크위크’에서 ‘스크루지’까지,
보통명사가 된 캐릭터만 수십여 개!
디킨스는 어떻게 ‘캐릭터 갑부’가 됐을까?
캐릭터 창조에 관한 한, 디킨스에게 필적할 만한 작가는 없다. 이 분야에서는 셰익스피어도 디킨스에게 게임이 안 된다. ‘스크루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디킨스를 몰라도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유라이어 힙’이나 ‘아트풀 도저’ 같은 이름을 듣게 된다. 그것들이 유명한 디킨스 캐릭터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무슨 밴드 이름이 이렇지?’ 했을지라도 말이다.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어떤가. 마술사 덕분에 더 유명해진 이 이름도 원래는 디킨스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마술사가 디킨스에게서 이름을 빌렸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지만 영미문화권에서는 디킨스 소설의 또 다른 캐릭터들-피크위크, 페이긴, 갬프 부인, 미스 해비셤 등-도 우리로 치면 홍길동이나 춘향이만큼 유명하다. 영화나 드라마 대사에 수시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보통명사화되어 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다. 한번 생명력을 부여하자 알아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이라니, 이쯤되면 디킨스가 아니라 ‘갓-킨스’로 불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대중이 기억하는 캐릭터를 하나만 남겨도 작가로서는 영예로운 일이다. 그런데 디킨스는 그런 캐릭터를 한 다스도 넘게 남겼다. 비결이 뭘까.『찰스 디킨스, 런던의 열정』의 저자 헤스케드 피어슨은 그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을 디킨스의 배우 기질에서 찾는다. 저자 자신이 배우 출신으로서, 디킨스를 ‘타고난 배우’로 재조명하는 참신한 접근법을 선보인다. 실제로 디킨스는 젊은 시절 배우가 되기를 꿈꿨고, 첫 소설부터 그렇게 대박나지만 않았어도 정말로 배우가 됐을 것이다. 디킨스는 “늘 다른 누군가를 상상하면서 각기 다른 배역에 끊임없이 자기 개성을 투사하는 성격파 배우”였다. 그 천부적 재능을 무대 위보다는 종이 위에서 허구의 인물을 창조하는 데 썼을 뿐이다.
타고난 배우들이 대개 그렇듯, 디킨스도 관찰력이 대단했다. 저자 피어슨은 “디킨스가 형사였다면 모든 셜록 홈즈가 파리 날렸을 것”이라고 한다. 디킨스는 무시무시한 관찰력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면밀히 탐구했고, 그 이미지를 종이에 옮기면서 생생하고도 변화무쌍한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캐릭터를 창조할 때는 항상 관객을 염두에 두는 그의 배우 본능이 여지없이 개입했다.
“캐릭터를 구축할 때는 일단 독자들이 싫어하거나 좋아하게 만들어야지, 이도 저도 아니면 절대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없다” (p.155)
그래서인지 디킨스의 캐릭터는 흡입력이 강하다. 때로 너무 연극적이어서 사실성이 떨어지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인 측면도 있지만, 디킨스가 창조한 세계에서만큼은 완벽한 설득력을 갖고 이야기에 재미와 활력을 부여한다. 디킨스의 악당 캐릭터들은 특히나 생동감이 넘치고 재기발랄해서 사람들은 스크루지나 퀼프 같은 악당에게도 매력을 느끼고 더 잘 기억하게 된다. 디킨스는 막상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 마치 배우가 자기 배역에 몰입하듯 무아지경으로 작품에 빠져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캐릭터에 활력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딸이 목격한 디킨스의 집필 장면을 잠시 엿보도록 하자.
“언젠가 메이미는 몸이 좋지 않아서 아버지의 서재 소파에 누워 있다가 우연히 아버지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디킨스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달려가더니 이런저런 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고는 황급히 책상으로 돌아와서 일이 분 동안 맹렬하게 글을 썼고, 다시 거울 앞으로 달려가서 또다시 얼굴을 찌푸려보다가 몸을 휙 돌렸다. 그는 방에 메이미가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독백을 하기시작했다. 독백을 마치고는 침착하게 책상으로 걸어와서,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차분하게 작업에 임했다. 디킨스는 ‘뭔가에 사로잡힌 듯이’ 글을 썼다.” (pp.507-508)
“디킨스는 모든 열정을 불사르며 자기 작품에 전력투구한 나머지 허구로 만들어낸 인물들을 실제로 알고 있는 남녀보다 더 진짜같이 느꼈고, 허구의 세계를 대단히 소중하게 여겼다.” 한마디로, 디킨스의 캐릭터들은 그의 배우로서 타고난 관찰력과 집중력,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디킨스는 그러한 재능과 열정으로 혼자서 들락거리던 상상의 세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그만의 라라랜드는 어느덧 우리 모두의 라라랜드가 되었다.
『찰스 디킨스, 런던의 열정』
영원히 기억될 작가와의 만남
디킨스는 낭독회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경험했다. 그 힘에 탐닉하며 말년에 낭독회를 무리하게 밀어붙였고 그러다 건강이 악화됐다. 모르긴 몰라도 낭독회로 디킨스의 수명이 십 년은 단축됐을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디킨스가 하고자 하는 일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디킨스 스스로도 밝혔듯, 그는 자기 마음을 사로잡은 생각을 끝까지 탐구하는 사람이었다. 『찰스 디킨스, 런던의 열정』은 그러한 열정이 디킨스의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킨스 소설을 읽으며 그의 보이지 않는 열정에 푹 빠져 본 적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디킨스의 삶 역시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읽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디킨스의 삶은 그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활기를 전염시키고 감정을 고양시킨다. 『찰스 디킨스, 런던의 열정』의 저자 헤스케드 피어슨은 디킨스의 업적이나 그를 둘러싼 사실관계보다는 디킨스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루는 핵심을 드러내는 데 주력함으로써 디킨스라는 한 인간을 보다 선명하고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저자는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 출신답게 디킨스의 배우 기질을 간파하고, 역시 배우이자 작가였던 셰익스피어와 디킨스를 대비하는 참신한 접근법도 선보인다. 정확한 사실과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하여 전기 문학의 기본에 충실한 한편 군데군데 날카로운 직관과 영국식 위트를 곁들여 재미와 깊이를 더한다.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전기 작가 피어슨이 전기의 대상인 디킨스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단번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글이라면, 그 진술이 얼마나 현명한지, 얼마나 심오한지, 얼마나 진실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말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다. (p.308)
2017년 더욱 뜨거운 작가
디킨스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적이 없는 작가다. 디킨스의 소설은 지난 200년 동안 단 한 편도 절판된 적이 없고, 드라마로 영화로 꾸준히 제작되어 왔다. 2017년 현재에도 사람들은 디킨스를 말한다. 런던과 L.A. 같은 대도시에 노숙자가 늘어나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디킨시언 시대”, “디킨시언 런던”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는 어느 때보다 자주 거론된다. 번영과 풍요의 그늘 아래서 절망과 무기력이 일상이 되어 가고 있는 시대,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웃음과 눈물을 되찾아주고 크리스마스를 선물해준 이 작가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2017년 말에는 『크리스마스를 발명한 남자The Man Who Invented Christmas』라는 제목의 디킨스에 관한 영화도 나올 예정이다). 여전히 뜨거운 작가 디킨스, 동시대인의 마음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의 마음을 움직인 디킨스.『찰스 디킨스, 런던의 열정』은 그런 디킨스와 가까워질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p. 417
자기 연민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일 뿐만 아니라 자기를 극화하는 가장 완벽한 수단인 것이다. 자기 연민은 과시욕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연기의 다른 이름이라 하겠다.
기본정보
ISBN | 9791196112004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07월 07일 |
쪽수 | 616쪽 |
크기 |
146 * 206
* 34
mm
/ 785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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