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의 아쿠타가와상 후보
그토록 바랐던 아쿠타가와상을 품에 안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비운의 천재 작가 사토 야스시가 전하는 청춘, 그 뜨겁고 공허한 열병

오다기리 죠·아오이 유우 주연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오버 더 펜스》 원작 소설 수록

〈오버 더 펜스〉
아내와 태어난 지 15개월이 된 딸과 헤어져 도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시라이와. 생각할 만한 여유도 힘도 없이 일단 실업보험이나 받을까 하는 생각으로 직업훈련학교 건축과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하나같이 특별한 꿈이 없어 보인다. 시라이와는 목공 수업을 받고, 교내 춘계소프트볼대회를 대비해 무미건조한 연습을 하고, 밤이면 350cc 캔맥주 두 개를 마시는 따분하고 반복된 생활을 견디고 있다. 그러던 중 동료 다이시마의 소개로 사토시를 만나면서 다시금 희미한 사랑과 위로를 느끼기 시작한다. 한편 동료들과 사사로운 사건들을 겪으며 소프트볼 시합에 조금씩 의미를 두는데……. 시라이와는 학교 안팎을 가로지르는 외야 저편, 빛 속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펜스 너머에 이를 수 있을까?

〈여름을 쏘다〉
신장병을 앓는 스무 살 준이치는 점적주사를 맞으며 무료한 병원 생활로 여름을 보내는 중이다. 창밖으로 햇빛을 피해 숨은 비둘기를 향해 손가락을 정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빵, 하고 낮은 총성이 울리면 관통당한 비둘기는 새빨간 피를 뿜는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면 바다에서 여자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해수욕을 즐겼을 터다. 같은 병실의 환자들이 모두 퇴원하고 준이치보다 스무 살 많은 오카모토만 남았다. 옆 병실은 여자 환자들이 사용하는데 밤새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할머니도 있다. 그 소리에 잠을 못 이루는 환자들은 할머니가 어서 죽기만 바라며 못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건넨다. 친구 히데오가 주말 마권을 대신 구입해 주러 찾아오지만 본질적 무료함과 젊음의 충동을 달래 줄 수는 없는 듯하다.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병원의 여름은 계속되는데…….

〈황금옷〉
작가를 꿈꾸며 국립대학의 생활협동조합 서점에서 근무하는 요시오. 이혼 후 불안한 생활을 이어 가는 아키. 국립대학에 재학 중인 미치오와 츠츠무. 치과에서 근무하는 후미코. 이들은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수영장에 모여 수영을 하고 재즈 바에 모여 맥주와 럼, 진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요시오는 신경안정제에 의존하여 불안을 집어삼킨 채 하루하루를 버티는 아키를 바라보며, 질투와 애정으로 그녀의 곁을 맴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키는 치바 해변으로 떠나고, 요시오는 미치오와 함께 시즈오카 해변으로 떠난다. 여행에서 돌아온 요시오는 얼굴에 상처가 난 후미코에게 폭력 사건에 휘말린 전모를 듣는데……. 이들 청춘 남녀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우리는 함께 황금옷을 입었다》처럼 어떤 ‘황금옷’을 입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과연 그들은 ‘황금옷’을 함께 입을 수 있을까?

헤엄치고 취하고, 헤엄치고 취하고.

《황금옷》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되는 비운의 천재 작가 사토 야스시. 이 책 《황금옷》에 수록된 〈황금옷〉 〈오버 더 펜스〉를 포함하여 총 다섯 작품이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지목되었는데도 1990년 41세에 스스로 목을 매어 생을 마감, 더 이상 그의 작품을 볼 수 없다가 최근에 비로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이 하코다테시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하코다테시 문학관에서 그의 친필 원고, 애용품을 상설 전시하는 것도 작가로서 그의 입지를 말해 준다.
“딱히 의도를 가지고 청춘소설을 쓰려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완전히 새롭고 매력적인 청춘을 그려 보리라는 것이 당시의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표였고 그런 기분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글쓰기를 통하여 나 자신을 포함한 청춘과 무작정 싸우던 시기의 작품이고, 그만큼 애착이 강하다.”
-<저자 후기> 중에서

그의 작품은 자신의 철학을 내세우기 위해 과장된 상황을 만들어 극적인 전개를 하지 않고, 멋을 부린 문장으로 독자를 현혹하려 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그가 삶을 비관하여 고향의 직업훈련학교에서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작품 〈오버 더 펜스〉의 시라이와를 포함해 대단한 인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누구 하나 멋진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 담담하게 현재 처한 상황을 서술해 나갈 뿐이다. 그에게 ‘청춘’은 그처럼 담담하게 별 볼일 없이 지나가는 바람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소설을 통해 저 빛나는 펜스 너머 어딘가에 있을 미래를 꿈꾼다.
미래를 꿈꾸는 일, 아무리 보잘것없는 ‘청춘’이라도 그 정도는 누구에게나 꿈꿀 권리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전하는 위로,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는 희망의 끈과도 같을 것이다.

〈황금옷〉에서 요시오와 친구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헤엄치고 취하고, 헤엄치고 취하고’ 뿐이다. 이 한 문장은 그들이 보내는 ‘청춘’을, 작가가 생각하는 ‘청춘’을 가장 잘 대변한다. 그 나이에서만 할 수 있는, 낭만적이면서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불안한 마음이 짙게 축약된 문장이다.
몸을 움직여 헤엄을 치고 술을 마시는 일. 온전한 생각이 정지된 행동의 반복이다. 작가는 이러한 설정과 경험을 통하여 의도한 대로 완전히 새롭고 매력적인 청춘을 그렸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무미건조한 공기가 사고를 지배하는 ‘청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옷’을 꿈꾸는 ‘청춘’을.

〈여름을 쏘다〉에서도 작가의 ‘청춘론’은 이어진다. 여름이라는 꿈틀대는 계절, 병실이라는 제한된 공간, 신장병에 걸려 멋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 ‘청춘’을 제한하는 조건들. 그 무료한 시간 속에서 주인공 준이치는 그저 청춘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 채 무료함에 자신을 맡긴다.
작가는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그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며 나름의 희망을 꿈꾸는 청춘을 보여 준다.

지금 내가 이런 작품을 다시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확신이 서진 않는다.
-<저자 후기> 중에서

작가가 <저자 후기>를 통해서 밝힌 것처럼 이 중편소설집은 작가 스스로 ‘청춘’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거침없이 써 내려간 작품들이다. 진정 쓰고 싶은 것, 쓸 수 있는 것만을 작가 자신의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가의 청춘을 소설에 바친 것이다. 독자들에게 바란다.
먼저 ‘청춘’을 겪으며 웃음 짓고 눈물 흘린 이 책을 통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저마다의 청춘이 더욱 빛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