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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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전문기관 추천도서 > 문학나눔 선정도서 > 2022년 선정
끌리는 것들을 향한 지적 탐색과 감성적 몰입의 기록
번역가의 책상에서 두 발짝 너머로 떠난 미행
갖지 않고도 즐기는 조금 특별한 수집품 이야기
목수연필, 뱅커스 램프, 쥘부채, 꿀뜨개, 플뢰르 드 리스……
번역가의 물체주머니에 담긴 30개의 오브제
수집이라고 하면 보통은 소유를 전제로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수집품들은 다르다. 저자는 사물의 물성 대신 감성을 수집한다. 그 감성을 이루는 이야기는 두 가지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 사물이 존재한 시간 동안 인간 세상과 맺은 관계, 그리고 그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맺은 저자와의 관계. 그래서 《설레는 오브제》는 사물 뒤편에 쌓인 맥락을 탐구하는 인문 에세이이자, 저자만의 내밀한 취향과 감성을 고백하는 일상 에세이이면서, 숙련된 번역가의 언어에 대한 고민과 관점을 엿볼 수 있는 번역 에세이이기도 하다.
작가정보
매일 언어의 국경에서 텍스트가 건널 다리를 짓고 그림자처럼 참호 속에 숨습니다.”
서강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했다. 경영컨설턴트와 출판 편집자를 거친 월급쟁이 생활을 뒤로하고, 2010년 전업 번역가가 됐다.
번역가는 생각한 만큼, 겪은 만큼, 느낀 만큼 번역한다. 자기객관화와 감정이입에 동시에 능해야 한다. 그간의 내 이력이 밑천이요, 비전공자로 산 세월이 저력이었다. 어느덧 번역이 가장 오래 몸담은 직업이 됐다.
밑천이 바닥날까봐 번역가의 참호 안팎에서 틈틈이 소소한 모험을 추구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거기서 얻은 발상과 연상을 기록한다.
산문집 《젤다》, 시집 《고양이》, 고전명언집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해》를 엮고 옮겼고, 《편견의 이유》 《쓴다면 재미있게》 《깨어난 장미 인형들》 《민주주의는 없다》 《바이 디자인》 《소고기를 위한 변론》 《가치관의 탄생》 《셜로키언》 《뮬, 마약 운반 이야기》 등 50권 넘는 책을 번역했다.
작가의 말
어릴 때 물체주머니를 채울 때처럼, 언제부터인가 작업과 생활에서 심상찮게 마주친 사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번역 텍스트에서 처음 통성명한 사물을 기념품처럼 하나둘 챙기기 시작했고, 그게 소소한 설렘이 됐다. 예전에는 사물의 물성을 모았다면 이번에는 사물의 감성을 모았다. 어릴 때처럼 여기에도 내 취향과 관심사가 깊이 관여해 몹시 개인적인 컬렉션이 됐다. 거기에 기대서 우리가 사는 시간과 세상을 말하고 싶었다.
이 책은 설레는 사물들의 뒤를 밟은 작은 결과물이다. 사물의 뒤를 캐다 보면 고전부터 대중문화까지 인문의 다양한 분야가 두루 소환된다. 사물을 매개로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지식과 감상이 얽힌다. 범주화가 없는 대신 교차점들로 가득하다. 결국은 지은이가 번역 책상을 잠깐씩 떠나 일상에서 두 발짝 너머로 끌리는 것들을 따라 미행한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들을 지면에 놓다 보니 순서가 생기고 묶음이 생겼다. 하지만 읽을 때는 거기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이 책은 사실 시작도 끝도 없다. 아무데나 펼쳐놓고 읽기 시작해도 무방하다. 더 궁금하고 끌리는 것부터 읽어도 좋다. 독자의 생각이 만든 갈래와 가닥들이 부족한 글을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목차
- 머리말 - 번역가의 물체주머니
소소한 모두스 오페란디
팔러 체어 _ 환대의 공간에서 혐오의 상징까지
뱅커스 램프 _ 지난 시대의 실용, 장식이 되다
목수연필 _ 흑연과 다이아몬드의 이름 공유
페이퍼백 _ 참을 수 없는 수집의 가벼움
종이인형 _ 패션 아바타의 진화
갈색 봉지 _ 소박한 걸작, 삶의 조각들을 담다
일상의 궤도 밖에서
에스프레소 _ 지구 서식자의 행복
꿀뜨개 _ 인류의 정주생활을 추억하며
트래블러 태그 _ 도시 산책자의 자의식
소품함 _ 감성 유희를 위한 도구상자
텀블러 _ 박카스 온더록스부터 친환경 커피까지
무지개 파라솔 _ 캐주얼과 시대 유감
연상의 고리들
깅엄체크 _ 사강의 수영복과 바르도의 웨딩드레스
메리제인 슈즈 _ 여학생과 가사노동자
허니콤 볼 _ 랑그와 빠롤의 문제
페이퍼 나이프 _ 의도한 미완성이 주선한 뜻밖의 만남
나팔축음기 _ 오펜바흐를 좋아하세요?
쥘부채 _ 추파의 도구: 정념을 접었다가 폈다가
욕망의 부득이함
블루 윌로 _ 제조된 전설
비연호 _ 기쁨의 조건
차통 _ 시간을 밀봉하다
스콘 _ 데번이냐 콘월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꽃시계 _ 자연을 인간계에 편입하려던 오만한 발상
플뢰르 드 리스 _ 결사와 음모의 미학
마음의 여러 이름들
책갈피 _ 책장과 책장 사이에 시간의 태그를 달다
컴퍼스 로즈 _하늘과 바람과 별과 장미
드림캐처 _현실 공간에 꿈의 통로를 내다
사주침대 _공주님의 자기증명, 또는 엠패스의 고통
아티초크 _바람둥이의 심장
화장거울 _거울아 거울아 이제 깨져줄래
맺음말
참고문헌
사진 출처
추천사
-
번역가는 저자의 목소리 뒤로 숨는 존재이지만, 역자 주석에서만큼은 자신을 드러낸다. 본문에 미처 담지 못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단어에 얽힌 문화적 배경, 단어가 작품 안에서 위치한 맥락, 그것을 읽어내는 방법에 대한 개인적 견해에 이르기까지. 《설레는 오브제》는 여러 편의 긴 역자 주석을 수집한 컬렉션과도 같다. 숙련된 번역가가 작업 과정에서 벌여온 고민들과, 먼 나라들에서 도착한 낯선 사물들의 풍취가 매혹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이 책은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둘러보며 한 템포 쉬어가는 심미적 여유를 주면서도, 인문과 역사와 예술을 아우르는 지적 긴장감도 던져준다. 독서가들을 ‘설레게’ 할 만한 경험이다.
책 속으로
머리말 - 번역가의 물체주머니
어릴 때 물체주머니를 채울 때처럼, 언제부터인가 작업과 생활에서 심상찮게 마주친 사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번역 텍스트에서 처음 통성명한 사물을 기념품처럼 하나둘 챙기기 시작했고, 그게 소소한 설렘이 됐다. 예전에는 사물의 물성을 모았다면 이번에는 사물의 감성을 모았다. 어릴 때처럼 여기에도 내 취향과 관심사가 깊이 관여해 몹시 개인적인 컬렉션이 됐다. 거기에 기대서 우리가 사는 시간과 세상을 말하고 싶었다. (7쪽)
갈색 봉지 - 소박한 걸작, 삶의 조각들을 담다
사람마다 선뜻 버리지 못하는 게 있다. 병뚜껑, 빵끈, 사탕싸개, 비누껍데기…… 버리려고 할 때 손목을 잡듯 의식을 잡는 것. 그래서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잠깐 망설이고, 순간 맘먹어야 하는 것. 내가 희구했던 것을 내게 올 때까지 싸고 묶고 표시해주던 것에 대한 모종의 의리인가. 아니면 누구나 조금씩은 있다는 저장 강박인가.
나는 종이봉지를 얼른 못 버린다. 종이봉지를 만질 때 나는 특유의 감각적인 소리가 내 귀에는 “나를 버리지 말아요”로 들린다. (53쪽)
에스프레스 - 지구 서식자의 행복
에스프레소는 지구 서식자의 행복이다. 삶에 애착을 일으킨다. 무위無爲에 짜릿함을 주고 집중의 고통을 덜어준다. 에스프레소는 각성의 영약이다. 심상의 볼륨을 키우고 영감의 해상도를 높인다. 에스프레소는 앞에 놓이는 순간 어지러이 펼쳐진 공간 속에 블랙홀처럼 밀도 높은 한 점을 만든다. (67쪽)
트래블러 태그 - 도시 산책자의 자의식
내게 여행자 딱지를 붙이는 행위는 일상의 관성을 깬다. 관료주의와 자본주의 질서 속에 무력해진 개인의 경험과 상상에 숨을 넣는다. 내 나름의 현실 재구성과 공간 재해석에 들어가는 입장권이 된다. 우리는 그 입장권을 들고 미정未定의 세계로 들어간다. (78쪽)
메리제인 슈즈 - 여학생과 가사노동자
메리제인 슈즈는 이중적이다. 아동의 외출복과 노동계급의 유니폼이 맞물려 있다. 정신해방을 말하면서 계급의식은 버리지 못했던 19세기 ‘순수의 시대’가 느껴진다. 아이의 귀여움이 여성성으로 확대됐다. 훈련된 순수함도 여성에게 귀속됐다. 그래서인지 메리제인 슈즈에는 자유분방과 내숭이 공존한다. 천방지축과 다소곳함이 함께한다. 어쩌면 그런 이중성이 메리제인 슈즈가 인기 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121쪽)
나팔축음기 - 오펜바흐를 좋아하세요?
디지털화는 물건의 물성을 없앴다. 아니, ‘물건’ 자체를 없앴다. 기계식 가동이 전자화하면서, 전화와 시계와 카메라와 음악재생기는 청색광을 내뿜는 화면 뒤로 사라졌다. 나팔꽃처럼 피어 있던 음량 증폭 장치도, 카메라의 빛 구멍을 찰칵찰칵 여닫던 셔터도, 손가락 구멍이 뚫려 있던 전화 다이얼도, 인생처럼 이합을 반복하며 시간을 알려주던 시곗바늘들도 자취를 감췄다.
부품의 배열이 작동 원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거기 묻은 손때가 곧 조작법이었던 시대는 갔다. 전자회로가 부품을 대체했으니 기기들이 아날로그 시대의 외관을 유지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때의 감성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 껍데기로만 남은 그때의 디자인을 소비할 뿐이다. (138쪽)
쥘부채 - 추파의 도구: 정념을 접었다가 폈다가
구애에는 퇴짜 맞는 망신이나 기존 관계(우정이나 동지애)의 훼손 같은 잠재 위험이 따른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구애 자체가 금기였다. 구애의 성패를 떠나 평판에 미치는 타격이 컸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도 상대의 관심을 노골적으로 바라거나 즐기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너무 철벽을 쳐도 상대의 의욕을 꺾어 기회가 날아간다. 이런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으려면, 상대에게 밑밥을 던지면서도 유사시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는 간접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그 언어는 수신자가 헷갈리도록 야릇하고 중의적일수록 좋다. 그래야 만일의 경우 시치미를 떼기 좋다. 그래서 추파가 생겼고 내숭이 진화했다. “라면 먹고 갈래?”의 탄생이다.
구애는 본능이고 필요지만, 추파는 문화고 예술이다. (150쪽)
차통 - 시간을 밀봉하다
차통에는 차나무를 키우고 찻잎을 말린 하늘과 바람과 흙과 땀이 담겨 있다. 특히 시간이 향미로 변해 담겨 있다. 차가 다 떨어진 후에도 통에 차향이 남는다. 시간이 사람을 조금 더 기다려준다. 거기 담았던 것이 시간이라서 그럴까. 차통은 원래의 용도를 다한 후에도 녹을 훈장처럼 달고 추억과 앞날을 모아두는 용도로 쓰인다. 담아둘 수 없는 것들을 담아두려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차통은 꽤 성공한 케이스다. (177쪽)
드림캐처 - 현실 공간에 꿈의 통로를 내다
드림캐처는 꿈을 거른다. 드림캐처를 만들어 창에 거는 것은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기억의 선별 작업이 성공적이기를 바라는 일종의 의식이다. 오늘 밤 내 속에서 마법의 호르몬이 슬픔을 많이 녹여주기를. 두고두고 위로가 될 순간들은 무사히 붙잡아주기를. 어쩌면 우리는 꿈에서 깨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른 사람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그래서 매일 조금씩 다른 세상을 보고, 매일 조금씩 다른 꿈을 만든다. (225쪽)
출판사 서평
지면의 언어를 옮기던 번역가,
사물에 깃든 이야기를 옮기다
여기 ‘fleur de lis(플뢰르 드 리스)’라는 단어가 있다. 저자는 소설 《셜로키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호텔 방 벽을 묘사하는 용도로 서술된 이 단어와 마주쳤다. 소설의 줄거리는 물론이고 어떤 복선과도 무관한 단어였기에, 저자는 ‘옮긴이 주’로 별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고 ‘백합 문양 벽지’로 번역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저자에게 후회로 남는다. 플뢰르 드 리스가 현지의 언중에게 주는 느낌과 인상을 한국어판으로 ‘옮기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세계관을 지키려는 셜로키언들의 집회에서 끝내 살인이 일어나던 밤, 첫 번째 단서를 찾는 주인공의 돋보기가 무심코 스쳐 간 곳. 그곳의 낡은 벽지 속에 흐릿하게 떠 있던 문양. 그걸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소설 속 주인공도, 번역한 나도.
─ 201p. 〈플뢰르 드 리스 - 결사와 음모의 미학〉
그렇게 다시 들여다본 ‘플뢰르 드 리스’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비밀과 음모 그리고 피의 역사가 숨어 있었다. 중세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온 플뢰르 드 리스는 프랑스 왕조와 수도회 기사단의 심벌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백합 문양을 가진 두 세력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가톨릭교회를 등에 업은 프랑스가 이단의 죄를 씌워 기사단을 토벌한 것이다. 그 이후로도 플뢰르 드 리스는 종교와 왕조, 프리메이슨과 보이스카우트, 군대 등의 상징으로 사용되며 널리 퍼져나갔다.
흔히 번역가를 ‘옮긴이’라고 부른다. 번역은 저곳의 언어(출발어)를 이곳의 언어(도착어)로 ‘옮기는’ 작업이다. 이때, 단순히 언어만을 일차원적으로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번역가는 언어를 옮기면서 “언어 너머의 문화”와 “행간에 누운 정서와 태도”를 함께 나른다. 그래야만 더욱 정확하면서도 풍성한 번역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설레는 오브제》는 저자가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마주친 낯선 사물들에 다는 뒤늦은 ‘옮긴이 주’다. 또한 보다 나은 번역을 위해 사물 뒤편에 쌓인 사연과 궁리들을 탐색하다 저도 모르게 설레어버린 것들에게 바치는 연서(戀書)이기도 하다.
오브제 센티멘털리즘, 조금 특별한 사물 감상법
─ 궁리하고 음미하며 접붙이기
그렇다고 이 책이 번역에 관한 이야기만 담고 있거나, 생소하고 이국적인 사물들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저자는 우리네 일상과 맞닿아 있는 흔한 사물들에게도 눈길을 준다. 책갈피, 갈색 종이봉지, 텀블러, 화장거울 같은 것들 말이다. 《설레는 오브제》의 글들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번역의 과정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우연히 마주쳐 마음이 머문 하나의 사물을 지적 탐색과 감성적 몰입의 대상으로 삼아 깊이 궁리하고 음미해보는 저자의 태도와 관점 때문이다.
한편, 입구를 구겨서 닫아놓은 종이봉지는 묘한 긴장감을 낸다. 가볍지만 묵직한 미스터리를 자아낸다. 그래서 조심스레 풀어보게 한다. 갈색 봉지에 든 물건은 선물과 장물의 분위기를 동시에 풍긴다. 음모와 폭로를 동시에 상상하게 한다. (…)
종이봉지 센티멘털리즘이란 게 있다, 세상에는.
─ 55~56p. 〈갈색 봉지 - 소박한 걸작, 삶의 조각들을 담다〉
그렇게 하나의 사물에서 길어낸 이야기를 저자는 때론 자신의 일상과 적극적으로 접붙인다. 《설레는 오브제》의 독특한 점은 다루는 사물들을 저자가 직접 사용해보거나 소장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조금 특별한 수집기(蒐集記)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물의 물성을 소유하는 대신 사물에 담긴 이야기를 자신의 일상과 접붙여냄으로서 사물의 감성을 수집한다.
오래전 크리스마스 무렵 선배언니와의 만남에 대한 기억은 ‘컴퍼스 로즈’에, X세대로 불리며 캐주얼 패션을 소비했던 대학생 시절은 ‘무지개 파라솔’에, 수성동계곡을 넘어 윤동주 문학관까지 갔던 한여름날의 산책은 ‘트래블러 태그’에 접붙였다.
저자 특유의 사물 감상법으로 마련한 컬렉션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욕심이 날지도 모른다. 나도 나만의 ‘설레는 오브제’를 갖고 싶다는. ‘설레는 오브제’를 수집하는 데에는 돈이나 공간이 들지 않는다. 약간의 지적 호기심과 사물을 감상하고 생각할 여유가 필요할 뿐. 책장을 덮은 뒤에 시도해보자. 내가 무심코 지나친 사물들 가운데 내밀한 매력을 간직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리저리 궁리해보며 나의 일상과 접붙여보는 것이다. 그럼 느끼게 될 것이다. 소유하지 않고도 누리는 만족이란 귀하고 설레는 일임을.
언어와 심리, 문학과 역사, 음악과 디자인……
풍성한 인문적 사유와 지식이 교차하는 매개물
《설레는 오브제》는 나아가 언어와 역사, 예술과 문화 등 인문의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며, 그로부터 가볍지만은 않은 사유를 이끌어낸다.
책을 여는 첫 글인 〈팔러 체어 - 환대의 공간에서 혐오의 상징까지〉는 묵언수행을 원칙으로 하는 수도원에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지정된 방의 이름이었던 ‘parloir’가 응접실이나 담소용 공간을 뜻하는 말로 확산되고, 물 건너간 미국에서는 계급의식과 인종혐오가 담긴 말로 변질되는 양상을 톺아간다.
우리가 아는 ‘팔러 체어’는 응접실에 놓인 의자를 뜻한다. 팔러 체어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의자의 뼈대를 가리고 쿠션감을 주기 위해 충전재를 넣은 다음 화려한 직물로 마감한 것이 특징이다. 팔러 체어는 단순히 응접실에 놓이는 부속품이 아니라 ‘환대의 공간’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됐다. 이러한 ‘팔러’가 미국에서는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취급하는 비즈니스 영역으로 퍼져 아이스크림 가게(icecream parlor)와 피자 가게(pizza parlor)에서 안마시술소(massage parlor)를 이르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팔러’에 얽힌 어두운 과거가 있다. 노예제가 아직 살아 있던 시절의 미국 사회에서는 ‘팔러’가 백인 우월주의와 계급의식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였던 것이다. 이 팔러의 흑역사가 현대 미국 사회에서 다시금 되살아난 사건이 있다. 2021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차단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팔러(Parler)’라는 우파 성향의 SNS로 대거 갈아탄 것이다.
속세와 거리가 먼 수행의 공간에 속한 단어였던 ‘팔러’가 세상 밖으로 나와 상류층의 환대와 과시 풍조를 대변했고, 대서양을 건너서는 인종주의와 특권의식의 꼬리표를 달았으며, 21세기 들어서는 급기야 혐오와 편견의 언어를 내뱉는 온라인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한 ‘팔러’의 여정을 다룬 이 글에서는 언어를 다루고 추적하며 관련한 지식을 엮어내고 사유를 이어가는 저자 특유의 글맛을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는 갈색 봉지 이야기나 메리제인 슈즈의 어원에 담긴 이중성 같은 글은 평범한 사물 너머에 담긴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안긴다. 꽃시계라는 발상에 담긴 자연의 사물화 관점을 지적하는 글이나 비연호와 연관된 두 인물로 상이한 ‘기쁨’의 양상을 다룬 글은 진한 여운과 생각거리를 남기기도 한다.
사물의 뒤를 캐다 보면 고전부터 대중문화까지 인문의 다양한 분야가 두루 소환된다. 사물을 매개로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지식과 감상이 얽힌다. 범주화가 없는 대신 교차점들로 가득하다.
─ 8p. 〈머리말 - 번역가의 물체주머니〉
하나의 사물을 매개로 교차하는 이야기들이 풀려날 때, 그것은 비로소 ‘설레는 오브제’가 된다. 그래서 오브제는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지식과 감상이 얽히는” 교차로다. 그리고 그곳에 문학, 역사, 심리, 언어, 음악,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가 두루 소환된다. 그 풍성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신선한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1842173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4월 25일 |
쪽수 | 256쪽 |
크기 |
133 * 206
* 22
mm
/ 459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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