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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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전문기관 추천도서 > 문학나눔 선정도서 > 2022년 선정
한주은행 연정시장지점 한수정 대리
소설의 주인공은 이제 스물아홉 살, 한주은행 연정시장지점의 한수정 대리다. 약사인 아버지와 공인중개사였으나 지금은 아버지의 약국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엄마, 그리고 두 여동생이 있다. 수정은 딸 셋 중 장녀. 그러니까 한수정 대리는 너무나 평범한 내 친구의 모습이자 어쩌면 나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한대리님을 사랑한 거 말고, 제가 잘못한 일이 뭐가 있어요?”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혼자 하는 것도 사랑일까?
연정시장 명물로 소문난 날개떡볶이집 사장 철규는 지치지도 않고 한수정 대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매일매일 현금이 꽉 찬 짝퉁 루이뷔통 가죽가방을 들고 입금을 하러 와선 금팔찌와 금목걸이를 노랗게 번쩍이며 수작을 건다. 속이 느물거릴 지경이지만 은행 고객이니 그저 웃어주었을 뿐인데 은행 사람들도, 시장 사람들도 농지거리 섞듯 한 마디씩 한다. “은행 아가씨가 너무 튕기네! 철규 사장한테 시집 가면 평생 공주 대접 받을 텐데!”
딱 한 번 야멸차게 거절한 뒤 2주가 지난 날, 날개떡볶이집 사장 철규는 수정을 따라왔다. 11월의 스산한 밤인데 맨발에다 슬리퍼만 신은 채로. 그리고 원룸 건물로 달아나는 수정을 붙잡고 물었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한대리님을 사랑한 거 말고, 제가 잘못한 일이 뭐가 있어요?”
나는 내가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할 것이고
내가 거절하고 싶을 때 거절할 것이다
수정은 몰랐다.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고 거절하고 싶을 때 거절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철규는 짝퉁 루이뷔통 가방에서 망치를 꺼냈고 수정을 내리쳤다. 왜 이러냐고 따지고도 싶었고 하고 많은 은행 중 연정을 택한 것도 후회하고 싶었지만 수정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수정은 그날 죽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냥 김사장이랑 살지, 뭘 그리 쟀나 몰라. 돈 많지, 성실하지, 심성 곱지. 김사장이랑 연정에서 자리잡고 살면 좋았겠고만, 거참.” “남자들이 원래 다 그렇잖아. 마음 줄 거 다 줬는데 그리 안 받아주니 회까닥 돈 거야. 딱해라, 딱해. 젊은 놈이. 그 병든 엄마는 어쩌누? 이제 누가 돌봐?” 가해자에게만 부여되는 기나긴 서사. 그 속에서 철규는 노모를 돌보며 열정적으로 떡볶이집을 꾸려가는 성실한 사람이었고, 은행원 수정에게 반해 밑도 끝도 없이 들이대다 상처를 받은 순정한 청년이었다. 사람들은 혀를 쯔쯔 차며 중얼거린다. “죽은 애가 불쌍해도 산 사람은 또 살아야지.” 죽은 자의 억울함과 유가족의 슬픔은 그렇게 내내 모욕당하고 있었다.
출판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나무 크라우드펀딩 매칭지원사업 선정작
작가 김서령은 특유의 담담하고 고요한 문장으로 죽은 자의 목소리를 받아썼다. 소설은 한수정 대리의 목소리 그대로다. 수정은 경찰 조사를 지켜보고 재판정에 함께 서고 신문 기사를 우리와 함께 읽는다. 그래서 수정의 후회는 뼈아프다. 그 사람 앞에서 웃지 말걸. 처음부터 매몰차게 거절할걸. 그걸 못 해 혼자 먼 길을 가야 하는 수정의 마음이 경장편소설에 가득 담겼다. 《수정의 인사》는 2021년 출판진흥원이 주관하는 우수출판콘텐츠에 선정되었고 같은 시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예술나무 펀딩 지원작으로도 선정되었다.
작가정보
목차
- 1장
2장
3장
4장
5장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아마도 날개떡볶이에서 일을 하다 나왔을 철규씨는 맨발에 슬리퍼 바람이었어요. 11월은 맨발로 다닐 계절이 아닌데. 그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루이뷔통 가방을 안고 있었어요. 그 가방을 안은 채로 저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왔어요.
“저기요, 철규씨. 다음에 얘기하자니까요.”
그는 듣지 않았고 눈동자를 어디에다 두고 온 사람처럼 텅 빈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어요. 내 방은 1층, 여섯 걸음만 가도 되는 곳이었지만 발을 뗄 수가 없었어요.
“한대리님을 사랑한 거 말고, 제가 잘못한 일이 뭐가 있어요?”
달아나도 안 되고, 웃어 보여도 안 되는 그 순간이 오자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지더라고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어요.
“야, 이 미친 새끼야! 그게 잘못한 거야! 왜 니 마음대로 나를 사랑하고 말고 해? 너 돌았니? 나한테 왜 이래, 이 미친 새끼야!”
그가 언뜻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몸을 홱 돌려 뛰기 시작했는데…… 더는 안 붙잡을 줄 알았는데. --- p.58
엄마와 아버지가 영안실에 들어섰을 때 그곳엔 과장님이 있었어요. 과장님은 푸들푸들 떨고 있었어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머리통이 3분의 1이나 으깨진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수정아, 한수정 대리야. 이러지 마. 일어나. 아마 그런 말을 하고 싶었겠죠. 하지만 과장님의 입술은 열리지 않았어요.
엄마의 입은 그보다 더 굳게 닫혀 있었어요. 울지 않으려고, 아니 눈물이 눈에 가득 차 내가 안 보일까 봐 눈을 더 크게, 더 크게 뜨며 엄마는 나에게 걸어왔어요. 눈을 너무 크게 홉떠 엄마는 엄마 같지 않았어요. 천천히 한 걸음씩, 이 상황이 너무 두렵고 무서워 후다닥 다가갈 수도 없다는 듯이 엄마는 느리게 걸어와 내 목을 한 팔로 감싸 안았어요. 그리고 나머지 손을 내 등에 넣은 다음 나를 일으키려 했어요.
“가자. 집에 가자, 내 새끼…… 내 강아지. 집에 가야지. 여기 너무 춥다.”
누가 엄마를 잡아 흔들기라도 하듯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아마 엄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다 알아들었지만요. 나를 일으키려는 엄마를 말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엄마는 끝내 나를 일으키지 못했어요. 엄마의 팔은…… 지푸라기 같았거든요.
--- p.64
1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되었을 때 나는 과장님을 쳐다보았어요. 황달이 든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과장님의 눈알이 노래졌어요. 나를 죽였는데 고작 징역 6년이라는 사실에 내가 놀랐듯 아마 과장님도 놀라서 그랬을 거예요. 흡,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지만 곧 조용해졌고, 지점장님이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육…… 녀, 언?” 했지만 누군가 지점장님의 어깨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속삭였어요.
“아무 말도 마세요. 누가 들어요. 저 새끼 출소해도 서른둘이에요. 조심하셔야 해요.”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지점장님을 붙안은 걸 보면 강계장이었을까요. 욕설을 씹어뱉을 것 같았던 지점장님의 입술이 닫혔어요. 모두가 지점장님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재판정을 빠져나갔어요. 과장님은 노래진 눈으로 오래오래 앉아있었고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수민이와 윤지는…… 말하기 싫어요. --- p.72
“아, 여자 쪽에서도 싫다 하진 않았지. 싫었으면 맨날 떡볶이 먹으러 왔겠어? 줄도 안 섰어. 여기가 얼마나 손님이 많은데. 그 박작박작한 속에서도 줄 안 서고 그냥 들어와서 아무 데나 앉았지. 돈도 안 냈어. 김사장이 공짜로 내줬지.”
그 인터뷰는 아마도 날개떡볶이 연변 아줌마였겠죠.
“바닷가에서도 데이트 종종 하던데요? 언제지? 여튼 밤에 본 적 있어요. 백사장에서.”
그날 밤 우리를 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어요. 또 누군가는 이런 말도 했더라고요.
“그냥 김사장이랑 살지, 뭘 그리 쟀나 몰라. 엄마도 재가해서 몸 기댈 데도 없다며? 돈 많지, 성실하지, 심성 곱지. 김사장이랑 연정에서 자리 잡고 살면 좋았겠고만, 거참.”
“남자들이 원래 다 그렇잖아. 마음 줄 거 다 줬는데 그리 안 받아주니 회까닥 돈 거야. 딱해라, 딱해. 젊은 놈이. 그 늙은 엄마는 어쩌누? 이제 누가 돌봐?”
경찰들은 모든 CCTV를 살폈어요. 은행에서 나는 철규씨에게 내내 방긋방긋 웃었고 심지어 원룸 건물 앞, 망치가 든 루이뷔통 가방을 감싸 안고 나에게 바짝 붙어섰던 그날 밤에도 CCTV 속 나는 웃던걸요. 나는 온 힘을 다해 그가 원룸 건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는데. 웃다니. --- p.78
떡볶이에서는요, 골목 냄새가 나요.
골목 냄새가 뭐냐면, 담 낮은 집들이 쭉 늘어섰고 고무줄놀이도 겨우 할 만큼 좁은 골목들이 막 엉켜 있는데요, 초입에 붉은 포장을 친 떡볶이집이 있거든요. 합판을 몇 장 겹쳐 만든 긴 의자에 올라앉아 다리를 대롱거리며 백 원짜리 동전 몇 닢을 아줌마에게 건네면 비닐을 씌운 멜라민 접시에 빨간 떡볶이를 가득 담아줘요.
이쑤시개로 밀떡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면 참 달콤도 하지. 종이컵에 부어주는 어묵 국물 후후 불어 마시면 등 뒤로 저녁 바람이 스쳐요. 노을 묻은 저녁 바람 아시죠? 주홍색 바람. 원피스 등 자락으로 파고들기도 한다니까요. 박쥐가 낮게 날기도 했어요. 섀앵, 하고 빠르게 나는데 저러다 공중의 전깃줄에 걸리면 어쩌나 싶기도 했어요. 녀석들, 절대 안 걸려요.
그렇게 떡볶이를 집어 먹다 보면 엄마가 왔어요. 실은 내가 엄마 퇴근 시간을 알아서 거기서 기다린 거거든요. 엄마는 포장마차에 앉은 나를 보면 활짝 웃으면서도 눈을 흘겼어요. 저녁 먹어야 하는데 또 떡볶이를! 하는 거였죠. 겨드랑이에 낀 핸드백을 야무지게 고쳐 쥐고 엄마는 나를 반짝 안아서 의자에서 내려줬어요. 나 혼자 깡총 내려와도 되지만 그냥 엄마만 보면 아기가 되고 싶은 그런 마음, 그런 거 있잖아요. --- p.129
출판사 서평
독특하고 참신한 소설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여덟 번째 책
《수정의 인사》는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이다. 소설 시리즈를 론칭한 지 2년 만에 폴앤니나는 참신하고 발랄한 소설을 원하는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며 꾸준히 성장했다. 《수정의 인사》는 수오서재에서 발간한 테마소설집 《당신의 떡볶이로부터》에 실렸던 단편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에 대하여」에서 출발했다. 단편 분량으로 다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새롭게 경장편에 담았다. 2021년 출판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나무 크라우드펀딩 매칭지원 선정작이다.
당연하게도 안전한 세상을 매일 꿈꾸는 사람들
김서령 작가님이 그랬다. 본인의 떡볶이는 좀 매울 거라고. 그런데 작가님의 말에 토 달아본다. 아니요, 그냥 매운 게 아니라 씁쓸하게 매워요. 쿨피스 말고 아주 차가운 생수로 입을 헹궈야할 것처럼 세상이 맵고 속이 쓰려요. _리뷰 블로거 마곰님
떡볶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정말 인상 깊었다. 작가가 참 많이 힘들었겠다 싶었다. 뉴스 틀면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사건을 다루어서 같은 여성으로서 정말 가슴 아파하면서 읽었다. 떡볶이에 정말 쓰디쓴 쓴맛도 있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렸다. 만약 작가님이 이 글을 본다면, 당신이 보듬어주지 못한 수정이를 내가 깊이 안아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수정이를 잊지 않겠다고도. 그러니 수정이한테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_리뷰 블로거 수리수리님
소설은 맵다. 매운 고춧가루를 마구 풀어놓은 떡볶이처럼 맵다. 세상이 그렇게 매웠다. 나를 죽인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나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상한 세상. 집에 돌아가 포근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눕는 일상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을까. 작가 김서령은 누울 곳을 찾지 못해 허둥지둥 주변을 돌아보는 수정에게 못다 한 인사를 전하라고 독자들을 떠민다. 그리고 미처 전할 틈 없었던 수정의 마지막 인사말을 들어보라고도 권한다. 우리는 누구나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작가는 나직하게 그렇게 소설 속에서 말을 한다.
기본정보
ISBN | 9791191816068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1월 26일 | ||
쪽수 | 144쪽 | ||
크기 |
129 * 195
* 16
mm
/ 254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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