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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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가 사랑하고 신뢰할 때, 삶은 빛이 된다.”
작가정보
저자(글) 라이너 융트
Rainer Jund
독일 뮌헨 대학병원에서 인턴부터 전문의 과정을 공부했다. 삶과 죽음의 순간을 매일 경험하며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계속해왔다. 일하며 느낀 병원과 의료 시스템의 한계, 환자에 대한 공감 등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이 책 『죽음 이 삶에 스며들 때』는 독일 현지 언론들의 찬사와 독자들의 입소문으로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다가 만난 의사인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뮌헨에 살고 있다.
《프레시안》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했고, 독일 풀다대학교에서 〈다문화 의사소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베네트랜스 소속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두 개의 독일》, 《세금전쟁》, 《지적인 낙관주의자》, 《만만한 철학》, 《탈리의 편지》 등이 있다.
목차
- 프롤로그
인생은 쉼 없이 계속된다
신혼여행에서 생긴 일
내 도움은 적시에 도달하지 못했다
혼자만의 책임
성찰은 생산력을 떨어뜨린다
닿을 수 없는 평온과 여유
저 안에 아직 암이 있다
지금 당장
어떤 악몽
용감한 어린이 상장
여덟 시간을 기다린 끝에
문제와 답
마지막 크리스마스
머리카락 한 올 차이
응급실의 하루
우리는 원래부터 이랬던 걸까
환자들
그게 다였다
따뜻한 바다와 모래 해변으로부터
이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약을 복용하고 싶진 않아요
유감입니다
사직서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우리 병동의 영혼
나도 한낱 인간이었다
잘 못 지냈어요
우리 자신이 빛이 될 때
다시 볼 때까지 안녕히
무언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
부디 긴 인생 내내 그렇게
에필로그
책 속으로
의사는 끊임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결정은 의사의 몫이다. 가끔은 오직 혼자서 결정해야 할 때도 있다. 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그 누구도 어떤 결정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한 인간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신혼여행에서 생긴 일’ 중에서-
그곳은 들여다볼 수가 없는 곳. 이른바 미지의 영역이다. 게다가 그 주변으론 대동맥이 흐른다. 우리는 촉진을 통해 조직이 거기에 눌어붙었음을 확인했다. 조직은 뇌로 혈류를 보내는 대동맥 위에 자리잡고 이미 혈관을 누르고 있었다. 종양은 늘 이런 식이다. 종양들은 손을 보랏빛 혈관벽으로 집어넣고, 영양공급원과 가장 가까운 곳을 차지하고, 영양과 당분과 산소를 영구적으로 공급받는다.
-‘저 안에 아직 암이 있다’ 중에서-
내가 지금 실패하면 한 아이가 죽는다. 의사로서 이론적으로 가정해볼 수는 있는 상황이었지만 실전에서 다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구제하고자 하는 필사적인 의지가 무력감과 충돌했다. 지키고 싶고, 지켜야만 하는 한 생명이 예기치 않게 사그라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영원토록 사라질 것이다. 이런 생각이 작은 괴물처럼 태어나고 있다면 괴물이 행동에 나서기 전에 재빨리 찍어 눌러야 한다.
-‘용감한 어린이 상장’ 중에서-
나는 조심스레 미소를 지었다. 눈을 맞추고 그의 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어두운 창을 들여다보자 그에게서 유연한 저항이 느껴졌다.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온화함, 평온함, 더는 치료받고 싶지 않다는 소망과 번번이 거부되었을 기대가 나를 바라보며 용서와 이해를 구했다. 나는 그의 소망을 받아들였다. 그가 내게 웃어 보였다.
-‘마지막 크리스마스’ 중에서-
그 환자도 집에서 평면 TV를 볼 것이다. 컴퓨터로 제어되는 최신식 오븐과 스마트폰을 사용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걸 믿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걸까? 그것도 자진해서 기꺼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현대의학이, 확신과 기대를 걸 만한 여지를 충분히 주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이, 설명이 불가한 기적, 치료, 신화에 대한 인간의 본래적 필요가, 그런 방식을 여전히 작동하게 하는 주체는 아닐까?
-‘여덟 시간을 기다린 끝에’ 중에서-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관은 제거되었고 아이는 규칙적으로 호흡했다. 아이가 깨어나서 보호 연고로 들러붙은 눈꺼풀을 떼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모든 것이 잘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건 정말 그랬다. 수술이 절대적으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도 말했다. 그것도 정말 그랬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되었다.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머리카락 한 올 차이’ 중에서-
출판사 서평
★★★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환자, 의사, 병원의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한 최고의 메디컬 에세이
이 책은 의대생인 저자가 처음 병원 실습을 하러 가는 날 아침부터 시작한다. 직업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봄직한 ‘이 길이 정말 나의 길이 맞을까’라는 내적 의구심을 품은 채로 첫 수업인 해부학 실습에 가는 길이 담담하게 서술된다. 분주한 아침,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보험사로, 은행으로, 학교로, 분명한 목적지를 가지고 일을 하러 가고 저자는 “지하철을 타고 죽음을 보러 간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난, 한때는 사람이었던 존재 앞에 서서 건조하고 차분하게 집중하는 것이 그가 병원으로 출근한 첫날 처음 배운 일이었다. 이 도입 부분에서 어쩌면 의료는 이성과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죽음은 생각보다 우리 삶과 가깝다는 현실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대형 병원의 분위기나 의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의사의 역량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목숨을 맡겨야 하는 환자의 처지를 생각하게 하는 서늘한 이야기들이 31개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단편소설 한 편처럼 완결성 있게 다뤄진다.
책을 읽는 내내 따라가게 되는 저자의 시선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누구보다 인간적이다. 무엇보다 우리 주변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독일 언론과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에 못지않게 한국 독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낼 것이다.
오직 인간다움만이 남는 순간에 깨달은 진실
“우리가 해야 할 단 한 가지는 기적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때로는 절망하고, 시스템에 실망하고, 한계를 느끼지만 당연하게도 삶은 계속된다. 젊은 의사의 일상도 별로 다르지 않다. 혼자 야간 당직을 서며 모든 결정에 책임져야 하는 날, 내 의도와 상관없이 서열과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 날, 문서 작업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날, 연말연시의 휴가를 두고 눈치 게임을 벌이는 날이 이어진다.
그리고 다른 날도 있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아이가 응급실로 들어온 날, 처치대 위에 누운 아이 하나를 살리기 위해 열 명도 넘는 의사와 간호사가 아이를 둘러싼다. ‘사과나무에서 놀다가 죽게 둘 수는 없다’는 공통된 의무감으로 한 명이 삽관하고 한 명은 아이의 흉곽을 압박하고 다른 한 명이 수액 줄을 조정하고 또 다른 한 명은 수액을 관에 주입한다. 그렇게 응급 수술에 들어가 출혈 부위를 찾아내고 지혈한 다음에는, 그러니까 모두가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함께 숨을 죽이고 오직 인간다움만이 남은 한마음으로 운명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지켜본다. 수술팀 전체가 같은 속도로 호흡하는 것을 느끼며 그저 기다리는 동안, 한 인간의 위력과 대체 불가능함과 유일함을 온몸으로 고통처럼 느낀다. 한 아이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갔던 상황을 다 함께 해결하는 데 5분이 걸렸다. 아이는 기적적으로 안정을 되찾는다.
이런 순간을 읽어 내려가며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죽음과 맞닿아있는지, 생은 얼마나 연약한지 깨닫는다. 우리는 때로는 기적을 목격하기도 하고,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임을 알게 된다.
날마다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삶에 대하여
“그럼에도 삶의 기적은 계속된다.”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은, 모든 의학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바로 그 사랑 이야기다. 저자는 첫 해부학 실습수업에서 만난 ‘노르웨이 마법사’에게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때때로 병원에서 같이 일하고, 학회에서 마주치고, 고단한 하루의 끝에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에 힘을 내기도 하며 몇 년을 보낸다.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시간과 사람들에게 들킬까 초조해하며 감추는 시간을 건너 마침내, 둘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이 온다.
천 번쯤 살균이 된 수술복을 입어봤지만, 배우자와 자신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저자에게도 새삼스럽다. 날마다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새로 태어난 기적적인 생명인 내 아기 앞에서 유약하고 어쩔 줄 모르는 바보가 된다. 모든 것이 가능한 경이로운 존재를 바라보며 행복감과 머리를 꽉 깨무는 듯한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
인생의 어떤 역경이 눈사태처럼 한순간에 어느 생명을 덮칠 수 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중에 이전에 없던 새롭고 유일한 무언가가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것은 기적이 계속된다는 의미임을 다시 한번 생생하게 깨닫는다.
수년 동안 신중하게 써 내려간 이 책은 논픽션이지만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서 쓴 기록인 만큼 시종일관 솔직하고 노골적이다. 의사의 일상, 병원의 사정, 환자의 애환을 실감 나고 박진감 넘치게 기록했다는 평과 더불어 수만 독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저자가 희망과 기적 쪽에 더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수많은 죽음을 보고, 죽음이 삶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음을 매 순간 실감하면서도 끝내 마주하게 되는 기적의 순간에, 아름다운 경외를 같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1766165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7월 15일 | ||
쪽수 | 276쪽 | ||
크기 |
119 * 188
* 21
mm
/ 334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Tage in Weiss/Jund, Rainer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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