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학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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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자 시인은 201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바람의 사슬」이 당선되어 문단에 오른 이후 『술뿔』(2014), 『구름의 서체』(2017), 『가시나무 뗏목』(2019) 등의 시집을 연이어 발간하는 등 매우 활발한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에 심수자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종이학 날다』에 수록될 70여 편의 시작품들을 순수하고 적극적인 기록하고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심수자
충남 부여 출생
201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형상시학 회원
대구시인협회 회원
모던포엠 작가회 회원
대구경북예술가곡회 회원
시집 『술뿔』 『구름의 서체』 『가시나무 뗏목』
목차
- 시인의 말 ● 3
Ⅰ
경사傾斜면에서 ● 10
명중 ● 11
종이학 날다 ● 12
벼랑꽃 ● 13
오래된 석불 ● 14
층층나무 기억 ● 15
솟대의 방향 ● 16
환풍기 ● 17
횡단의 꿈 ● 18
열정의 온도 ● 19
영산도 ● 20
원앙 별곡 - 아들 친구 혼례식장에서 ● 21
원초적 가벼움에 대하여 ● 22
유도등誘導燈 ● 23
일몰 속으로 ● 24
좁은 문 ● 25
직선과 곡선 사이 ● 26
침묵의 모서리 ● 27
폐가를 해부하다 ● 28
Ⅱ
낙타 ● 30
대동여지도 ● 31
날틀의 무덤 ● 32
따뜻한 운구 ● 34
무심천에서 ● 35
물의 감옥 ● 36
수렁 ● 38
정박 ● 39
부화 ● 40
서리꽃 ● 41
바다 처방전 ● 42
성에꽃 ● 43
소금꽃 ● 44
수중왕릉에서 ● 45
신갈나무 아래서 ● 46
얼레지꽃 식탁 ● 47
여정의 끝 ● 48
Ⅲ
꽃이 머무는 시간 ● 50
대숲에서 ● 51
괘종시계 ● 52
한계령에서 ● 53
구절초 연가 ● 54
길을 쓸다 ● 55
기생거미 ● 56
꼭짓점에서 ● 58
꽃의 말 ● 59
단풍나무 변주곡 ● 60
독용산성 ● 61
동박의 동산 ● 62
들국화 피는 날 ● 63
마지막 잎새 ● 64
Ⅳ
개나리꽃 치료제 ● 66
광대놀이 ● 67
굴레 ● 68
낡음에 대하여 ● 69
마침표 ● 70
박하처럼 ● 72
바다에서 외치다 ● 73
바람의 방정식 ● 74
산과 함께 ● 75
산의 설법 ● 76
퇴행 ● 77
소년병 ● 78
진화의 뿔 ● 80
섬꽃 ● 82
하얀 꽃 민박집 ● 83
한자놀이 ● 84
해빙기 ● 85
2020, 겨울의 무늬 ● 86
갈무리 ● 87
l 작품해설
심수자 시인의 제 4시집 『종이학 날다』 작품해설
개성적 이미지로 접은 종이학들의 비상(飛翔) ● 89
백운복 (문학평론가, 서원대 명예교수)
출판사 서평
심수자 시인의 제 4시집
『종이학 날다』 작품해설
개성적 이미지로 접은 종이학들의 비상(飛翔)
백운복 (문학평론가, 서원대 명예교수)
1
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시작품은 왜 거기 그렇게 언어의 옷을 입고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고 있는가, 독자는 왜 시를 읽는가. 이 질문에 대한 풀이와 접근은 여전히 진행 중일 것이다. 만약 그에 대한 시원한 해답이 나왔다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시의 마력을 상실하는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과거의 전통적인 문학연구가 작가나 시대환경에 무게중심이 놓여 있었다면, 오늘날은 독자의 비중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에 주목되었던 ‘표현’과 ‘반영’이라는 문학의 키워드가 ‘소통’과 ‘치유’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시인의 입장에서 볼 때 창작은 억압된 정서의 질서화이거나 재구조화이며, 카타르시스를 통한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동일성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갈등과정에서 결국 자기 자신과의 화해와 소통을 위한 자기치유의 한 방법이 창작과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시, 감동적인 시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또한 시대에 따라 문학관의 차이에 따라 매우 다양한 기준을 논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공통되는 감동적인 좋은 시의 기준은 개성적이고 참신한 이미지의 조형과 섬세한 유기적 의미형성일 것이다.
2
한 편의 시는 어떠한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지는가. 이것은 시를 어떻게 바라다보느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 있으나, 대체로 시의 언어, 리듬(운율), 이미지, 시적 화자와 어조, 구조, 주제 등을 들고 있다. 한 편의 시작품을 구축하면서 각 요소들은 나름대로의 역할과 기능을 지니고 있을 것이며, 그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해내고 있는 작품일수록 훌륭한 시가 될 것이다.
심수자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종이학 날다』에 수록될 작품들을 정독하면서 평자의 마음과 눈을 오래도록 머무르게 한 작품들을 주목하게 되었는데, 공통점은 역시 감동적인 좋은 시가 지니고 있는 개성적이고 참신한 이미지와 섬세하게 연결된 유기적 의미망을 잘 갖추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십리대숲은 물고기 비늘
댓잎 하나하나가 색다른 몸짓을 보인다
짤랑짤랑 방울 없이도
헤엄쳐 온 사연들
하늘이 내리는 말씀 쭉쭉 당겨와
쫑긋쫑긋 귀 세우는 대순들
주머니의 사연을 다 비우고 나면
손끝으로 더듬더듬 만져지는 상처에서 피는
마지막 꽃은 비린내다
십리대숲 몇 바퀴 돌고나온 바람이
소곤소곤 태화강 물결에 옮겨주는 귓속말
가장 먼저 알아들은 청둥오리는
눈빛은 묵직해도,
물밑 발은 유유자적이다
세상사는 게 별거냐는 듯
물속으로 쳐 박는 머리가
파르르 비늘 떨리는 붕어 한 마리
잽싸게 건져 올린다
- 「대숲에서」 전문
태화강변 십리대숲 길에서 착상한 듯이 보이는 「대숲에서」는 심수자 시인의 시적 특질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좋은 시가 지녀야 할 요소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수작(秀作)이다.
우선 첫 행의 ‘십리대숲은 물고기 비늘’이라는 은유가 이 작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댓잎’ 하나하나가 지니고 있는 ‘색다른 몸짓’은 2연의 물고기들이 ‘헤엄쳐 온 사연들’과 자연스럽게 접속되면서 은유의 모습을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다.
2연의 “하늘이 내리는 말씀 쭉쭉 당겨와/ 쫑긋쫑긋 귀 세우는 대순들”과 4연의 “십리대숲 몇 바퀴 돌고나온 바람이/ 소곤소곤 태화강 물결에 옮겨주는 귓속말”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대구(對句)인가.
‘색다른 몸짓’이나 ‘헤엄쳐 온 사연들’은 물론, ‘쫑긋쫑긋 귀 세우는 대순들’의 모습은 곧 우리 인간(또는 시적 화자)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따라서 3연의 ‘상처에서 피는 마지막 꽃’은 삶의 절정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은 그것마저 ‘비린내’로 동화시켜 인생을 관조(觀照)하고 있다. 어쩌면 처연하고 애달픈 정서일 수 있는 허무의 서정이지만, ‘청둥오리’의 먹이사냥을 통해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시는 그 장르적 본질상 1인칭 문학이다. 그만큼 ‘서정’의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양식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독자가 시를 통해 시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는 시의 말(시적 화자의 목소리)을 엿들으면서 독자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내 호주머니 안쪽에 숨겨둔 허기에서
일몰 냄새가 난다
?
끊긴 듯 끝나지 않은 허기는 무엇으로 채워야하나
?
생겨났던 길이 물가에 이르면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는데
채울 수 없는 빈칸의 가슴을 가진 나
어디에서의 정박으로
오늘의 허기를 밀어 낼 수 있을까
?
멀리서 간간 들리는 뱃고동소리에
징검돌 건너온 시간들이 모여
비릿한 슬픔으로 함께 말라가고 있었다
?
밧줄에 묶인 몇 척 고기잡이배??
마지막 배를 놓친 여자가 고양이처럼 서성이는 사량도
털 듬성한 고양이 까만 눈빛으로
부두는?허기로 출렁인다
- 「정박」 전문
이 작품 또한 앞서 검토한 「대숲에서」와 마찬가지로 심수자 시인의 시적 특성과 역량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허기’의 모티브로 구성을 이끌어가고 있는 「정박」은 “내 호주머니 안쪽에 숨겨둔 허기에서/ 일몰 냄새가 난다”라고 매우 당돌한 착상과 낯선 연결로 시작한다. ‘내 호주머니 안쪽에 숨겨둔 허기’는 무엇을 예고하는 상징적 이미지인가. 게다가 그 허기에 서 ‘일몰 냄새’가 난다니? 매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착상은 「대숲에서」라는 작품에서 1연의 구성, 즉 “십리대숲은 물고기 비늘/ 댓잎 하나하나가 색다른 몸짓을 보인다”라는 구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구조적 특징이다. 이러한 시적 구성상 특징은 심수자 시인의 많은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는 특질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인은 시의 첫 행(또는 첫 연)이 지녀야 할 시적 긴장의 필요성을 잘 숙지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허기’의 상징적 의미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들은 도처에 숨겨져 있다. 그것은 ‘끊긴 듯 끝나지 않은’이나 ‘채울 수 없는 빈칸의 가슴’과 같은 구절을 통해 미루어 보건데,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어떤 공허감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호주머니 안쪽에 숨겨둔’ 허기이며, 인생의 일몰 시기가 된 현재까지도 채울 수 없는 빈칸의 가슴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어디에서의 정박으로/ 오늘의 허기를 밀어낼 수 있을까”라고 어딘가에 정박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4연까지 고조된 정서의 격정을 5연에 이르러 항구의 묘사를 통해 새로운 전환점으로 변환시키고 있다. 그것은 내적 지향으로 치닫던 시적 인식이 외적 지향(‘뱃고동소리’와 ‘고기잡이배’)으로 전이되면서 이루어진 안정적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징검돌 건너온 시간들이 모여/ 비릿한 슬픔으로 함께 말라가고 있었다”는 지나온 삶의 여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 편의 시는 그 자체가 이미지의 한 단위이며, 한 편의 시 가운데는 여러 개의 이미지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이미지들을 통해서 시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체험을 감각적인 실체로 제시할 수 있으며, 시의 전체적인 내용과 정서는 각개의 이미지들이 유기적 결합에 의해서 형성되는 전체적 이미지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그만큼 이미지는 시의 의미와 내용을 담아내는 하나의 용기(容器)요, 시인의 감정과 정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심수자 시인이 독창적인 이미지가 그려내는 의미조형과 그 실천에 얼마나 세심한 관심과 노력을 보이고 있는가는 그의 작품 도처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심수자 시인이 구사하고 있는 이미지들에서 당혹스러울 만큼의 개성과 생동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녀의 시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바람 마디
구름 마디를 뜯어먹고
층층 마디 키우는 구절초
이동경로 없이 피어오른 안개에
예고 없는 비바람에
몸 가누기에도 바빴다
툭툭 불거진 내 몸의 마디들
달 꽃은 지고
검버섯 꽃 피었다
비의 마디도
햇살의 마디도
우두둑 우두둑
웅크려 세운 무릎이
무너질 걸 알면서도
내 뿜는
마지막 향기
- 「구절초 연가」 전문
서정시란 본질적으로 어떤 대상의 기술이나 재현이 아니라 주관적 경험의 자기표현이다. 시인이 선택하여 형상해내는 대상과 현실의 새롭고 낯선 모습들은 결국 시인의 내적 세계를 표현하는 제재(題材)인 것이다. 위의 작품 「구절초 연가」는 구절초라는 대상을 이른바 자아화(自我化)하여 시인의 내적 정서와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 또한 심수자 시인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성적인 이미지 조형과 유기적 의미형성을 잘 구사해내고 있다.
1연의 “바람 마디/ 구름 마디를 뜯어먹고/ 층층 마디 키우는 구절초”와 “툭툭 불거진 내 몸의 마디들/ 달 꽃은 지고/ 검버섯 꽃 피었다” 와의 절묘한 대비를 통해 이미지가 생동한다. 따라서 마지막 연은 구절초 향기이면서 동시에 시적 화자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심수자 시인의 생동하는 이미지 구사력은 다음의 작품들에서도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담쟁이가 손톱자국을 벽에 남겼다
(중간 생략)
어느 시인에 의해
살아야 하는 의미가 되어버린 담쟁이
덧칠한 쪽문을 열고 들어와
갈라진 벽 틈새를
꿰매고 있다.
- 「좁은 문」에서
사람들이 찍어 놓은 모래 위 발자국들
하나하나 해독하던 파도는
밤새 철석이며 운다
- 「바다 처방전」에서
책장의 낱장처럼 넘어가는 파도의 변주곡에
끼룩거리는 갈매기
- 「수중왕릉에서」에서
「좁은 문」의 첫 행(연)과 마지막 연을 인용했다. 벽에 ‘손톱자국’을 남긴 담쟁이와 ‘덧칠한 쪽문을 열고 들어와/ 갈라진 벽 틈새를 꿰매고 있다’라는 표현은 매우 감각적인 의인화의 수사방법으로 이미지가 살아 있다. 그만큼 세심하게 활성화된 창의적인 이미지의 조형인 것이다.
사람들이 찍어 놓은 모래 위 발자국들을 ‘하나하나 해독하던 파도’라는 감각적 표현(「바다 처방전」)이라든지, ‘책장의 낱장처럼 넘어가는 파도의 변주곡’(「수중왕릉에서」)과 같은 비유적 이미지들은 심수자 시인의 이미지 구사력이 얼마나 신선하고 창의적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해설의 도입부에서 말했듯이 심수자 시인의 시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은 개성적 이미지의 조형력과 유기적 의미 형성이다. 그러나 이미지의 신선함과 개성적 구사력만으로 감동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지의 진정한 가치는 시의 전체적 문맥과 구조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새롭고 참신한 이미지 구사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의 구조 속에서 이미지로서의 기능과 의미융합을 통한 의미론적 변용이나 제3의 의미체계를 이루어내지 못한 다면 결코 시적 이미지라고 할 수 없다. 심수자 시가 실현해내고 있는 유기적 의미 형성은 이미지로서의 기능 수행은 물론, 의미론적 변용의 새로움까지를 잘 이루어내고 있다.
3
심수자 시인은 2014년에 〈불교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니 어쩌면 아직도 신인인 셈이다. 그러나 벌써 네 번째 시집을 발간할 만큼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의 창작에 대한 열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심수자 시인의 시 창작에 대한 그러한 열정은 ‘종이학’을 접는 정성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사슬 풀겠다고
천 마리 학을 접었다
또 다시 접는다, 천 마리의 학
곧게 펴진 줄 알았던 몸뚱아리는
굼벵이처럼 돌돌 말려 움찔거릴 뿐
바람개비는 쉴 새 없이 돌고 있는데
검은 학 그림자 속에서
숨통 조여 오는 흰 그림자
손끝에서 얼마나 더 접혀야
날아오르지 못하는 몸이
먼지처럼 둥둥 떠오를 수 있을까
유리병에 가두어진 나의 종이학들
한꺼번에 떠날 때쯤이면
떨림 끝에 만져지는
뭉툭한 발가락
- 「종이학 날다」 전문
심수자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는 어쩌면 ‘날아오르지 못하는 몸’을 ‘먼지처럼 둥둥’ 떠오르게 하고 싶은 열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종이학 날다」는 그러한 시인의 열망을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는 행위로 비유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사슬 풀겠다고” 천 마리 학을 접는 반복적인 행위는 날아오르고 싶은 욕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곧게 펴진 줄 알았던 몸뚱아리는/ 굼벵이처럼 돌돌 말려 움찔거릴 뿐”이며, “검은 학 그림자 속에서/ 숨통 조여 오는 흰 그림자”를 만날 뿐이다. 따라서 “유리병에 가두어진 나의 종이학들”은 시인의 종이학이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의 종이학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인간의 삶의 여정은 어쩌면 시적 화자의 욕망처럼 부단히 반복되는 좌절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동질감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시인은 종이학 접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언젠가는 ‘둥둥’ 떠올라 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시지푸스 신화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시작품은 왜 거기 그렇게 언어의 옷을 입고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고 있는가, 독자는 왜 시를 읽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감동과 공감, 더 나아가 치유라는 기능을 덧붙인다면 최소한의 접근은 가능할 것이다. ‘서정’이라는 무한한 자유가 어쩌면 우리 인간을 구원해 줄 수도 있을 테니까. **
기본정보
ISBN | 9791191681000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5월 13일 | ||
쪽수 | 104쪽 | ||
크기 |
127 * 205
* 13
mm
/ 204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모던포엠작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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