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게 읽는 러시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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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러시아를 만든 사건과 사람들
작가정보
저자(글) 마크 갈레오티
Mark Galeotti
마크 갈레오티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러시아 연구가 중 한 명이다. 정기적으로 러시아를 방문하며,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 현재 런던에 있는 UCL 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슬라브문화와 동유럽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왕립합동군사연구소와 프라하 국제관계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뉴욕대학교의 국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러시아와 안보 문제에 관한 다양한 책을 집필하였으며 최근 저서로는 《The Vory》(예일대학교 출판부, 2018)와 《We Need To Talk About Putin》(이베리, 2019)가 있다.
번역 이상원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 교수로 글쓰기를 비롯한 교양 강좌를 운영한다. 《첫사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안톤 체호프 단편선》,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홍위병》, 《콘택트》 등 90여 권의 번역서를 냈고, 저서로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매우 사적인 글쓰기 수업》,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등이 있다.
목차
- 머리말 7
1. 우리를 통치해줄 사람을 찾아봅시다
류리크를 불러들인 슬라브 민족들 19
2. 우리 죄가 많아 알 수 없는 이들이 몰려왔다
《노브고로드 연대기》 45
3. 신의 뜻에 따라 전제군주국이 되었다
이반 4세 69
4. 돈은 전쟁의 혈관이다
표트르 대제 95
5. 나는 절대군주가 될 것이다.
이것이 내 일이다 예카테리나 여제 121
6. 정교회, 전제군주제, 민족주의
관제 민족주의 원칙 145
7. 동지들, 삶이 더 나아지고
더 밝아질 것입니다 스탈린 173
8. 무릎 꿇고 있던 러시아가 다시 일어섰다
푸틴 205
감사의 글 229
책 속으로
류리크공이 라도가 호숫가에 도착하는 모습을 그린 빅토르 바스네초프의 그림은 고전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12세기 당시를 기록한 유일한 문헌인 《원초연대기》는 스칸디나비아 바이킹(원문에서는 이들을 ‘바랑기아인들’이라고 표기하고 러시아어로는 ‘바랴그’라는 명칭이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바이킹으로 통일한다 ? 옮긴이)을 몰아내기 위해 슬라브 민족들이 수차례 전투를 벌였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추드, 메리아, 라디미크, 크리비크등 무수히 많은 토착 부족들의 자치 시도는 또 다른 전쟁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법과 서열, 영토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이들은 바이킹에게 가서 통치자를 청했다. “저희 땅은 드넓고 비옥합니다만 질서가 없습니다. 와서 우리를 통치해주십시오.” 그리하여 류리크(862?-879)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20-21쪽
류리크가 노브고로드에 정착할 즈음 아스콜드와 디르라는 바이킹 모험가 두 사람이 부하들을 이끌고 남서쪽 슬라브 도시인 키예프를 점령했다.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한다는 야심찬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보다 반세기쯤 앞서 남쪽의 흑해변을 약탈한 스칸디나비아 출신 모험가들도 이미 시도했던 일이었다. 슬라브인들은 이들 바이킹 정복자들을 ‘루시’라 불렀고(스웨덴 인을 뜻하는 핀란드어 단어 ‘루오치’에서 나온 것 같다), 그렇게 루시의 땅이 탄생했다. 24쪽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블라디미르는 당대의 주요 종교들을 평가하기 위해 사방에 사절단을 보냈다고 한다. 유대교는 유대인들이 고향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볼 때 신이 그 편이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로마 가톨릭은 키예프 대공이 교황의 권위에 복종할 수 없으므로 거부됐다. 알코올을 금지하는 이슬람교는 “술은 전 루시의 즐거움이며 음주의 기쁨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다는 블라디미르에게 맞지 않았다.(술을 좋아하는 러시아인이라는 고정관념에는 오랜 역사가 존재하는 셈이다.) 결국 블라디미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비잔틴 정교였다. 29-30쪽
옛날 옛적에 세 도시가 있었다. 이 세 도시는 러시아가 택할 수 있었던 각기 다른 세 가지 길을 대표했다. 키예프는 가장 위대한 도시인 동시에 가장 전통적인 봉건적 중심지였다. 그 권력은 가문의 혈통을 통해, 그리고 키예프가 루시의 심장이자 영혼이라는 믿음을 통해 표현되었다. 공후 한 명 혹은 가문 한 곳이 키예프를 차지하려는 싸움이 계속 일어났지만 모든 경쟁자들이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했다. 더 많은 영토를 얻기 위해 공후들 간에 끝없는 전쟁이 벌어졌다. 49쪽
노브고로드는 북쪽에 위치한 교역 도시로 발트해의 부유한 국제항구들에까지 영향력을 떨쳤다. 돈 많은 시민 대표들, 그리고 과두제 민주주의가 큰 힘을 발휘했다. 도시 자유민들이 모이는 베체는 매년 시장 격인 포사드닉을 선출했는데, 포사드닉은 대공보다 큰 권력을 갖곤 했다. 49쪽
키예프와 노브고로드의 전성기 시절 셋째이자 막내인 모스크바는 도시라 부르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모스크바에 대한 첫 기록은 유리 돌고루키(‘긴 팔의 유리’라는 뜻)가 키예프 대공이 되기 전인 1147년, 거기서 한차례 모임을 주재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몽골인들이 몰려오자 키예프는 파괴되고 노브고로드는 몰락하면서 모스크바가 번성기를 맞이했다. 루시 전체의 주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러시아 전통, 몽골 관행, 모스크바 특유의 실용주의가 결합된 정치 문화의 본산지가 된 것이다. 51쪽
드미트리는 전쟁을 원치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긁어모아 돈을 마련하겠다는 작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마이 칸의 공격 소식이 들려오자 궁여지책으로 대의를 만들어냈다. 싸워야 한다면 킵차크한국에 대항하는 전쟁이라는 명분을 세운 것이다. 이를 통해 부역에 앞장서던 도시 모스크바를 독립 운동의 선봉장으로 변화시키고 루시 전체를 지배하는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61쪽
이반 3세는 당시 이미 프라하나 피렌체의 두 배 규모였던 모스크바를 제대로 된 콘스탄티노플 후계 도시로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초청해 크렘린성을 확장했고, 새로운 신민들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공물로 탑과 대성당을 지었다. 이는 실제 권력에서의 변화도 상징했다. 전통적으로 대공은 대귀족과 공후들에게 형식적으로나마 조언을 구해야 했으나 이반 3세는 이들을 그저 신민으로 대했다. 차르, 즉 황제 칭호를 처음으로 공식 사용한 것은 그의 손자인 이반 4세였지만 실상 차르라는 용어는 이반 3세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73쪽
앞선 이반 3세의 노력을 바탕으로 이반 4세는 세습과 신성한 권리로 정통성을 얻으면서도 권력은 대귀족, 지주, 교회, 도시민, 농민 등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을 중재하고 대변하는 능력에서 나오는 새로운 왕정을 만들어냈다. 이들 구성원은 젬스키 소보르(전국 회의)에 대표자를 보냈지만 강력한 왕권 아래 허수아비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야망과 열정에 불탔던 이반 4세는 개혁의 성과를 활용해 국경을 안전하게 하고 영토를 확장하고자 했다. 거기서 거둔 큰 성공은 역설적이게도 러시아의 문 앞에 완전히 새로운 위협을 가져오게 된다. 79-80쪽
표트르가 근대화 개혁가였는지의 여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지만 러시아를 하루빨리 강력한 국가, 존경 받는 국가로 만들고 전쟁에 승리하려는 열정에 넘쳤다는 점은 분명하다. 109-110쪽
외국을 향한 열정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 대순방이었다. 1697년, 표트르는 스웨덴령 리보니아, 네덜란드, 잉글랜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돌아보는 18개월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113쪽
예카테리나 여제(재위 1762-1796)는 러시아의 18세기를 만들었을뿐 아니라 세계 속 러시아의 이미지와 지위까지 그려냈다. 여러 면에서 여제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과 위용을 견줄만한 수준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을 확장하고 화려하게 꾸몄다. 123쪽
러시아는 마침내 개혁이라는 과제와 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위로부터의 강제적 근대화를 시도한 표트르 대제는 일부를 성취했지만 충분치 않았다. 예카테리나 대제 역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독려했고 일부를 성취했지만 충분치 않았다. 진짜 변화는 아래로부터 와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지만 이는 일부에게는 끔찍한 전망이었고 나머지에게는 짜릿한 기회였다. 141쪽
러시아는 자국이 나폴레옹의 진군을 막고 역공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가 모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었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절실히 필요했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근대화를 미루는 완벽한 핑계로 작용했다. 결국 어떤 개혁이든 불확실성과 불안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147-148쪽
니콜라이는 신의 뜻에 거스르는 불법적 자유주의로부터 유럽을 구해내는 동시에 유럽 사상으로부터 러시아를 보호하고자 했다. 서구 과학 기술의 발전상을 알고 있었으므로 유용한 것들은 도입하고자 했지만 그 유용한 것을 낳은 사회적ㆍ정치적ㆍ법적 맥락은 외면했다. 158쪽
1917년에 권력을 잡은 인물은 ‘실용주의자 레닌’이었다. 그는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성숙한 거대한 노동계급을 갖추지 못했고, 아직 사회주의를 건설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182쪽
스탈린은 곧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다. 레닌의 유언장을 감추면서 다양한 추모 사업을 벌였고(페트로그라드는 고인을 기려 레닌그라드로 개칭되었다) 경쟁자들을 가볍게 제압했다. 185쪽
스탈린은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해냈을까? 권력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했고, 정치 경찰의 강력한 통제를 유지하며 이를 국가의 핵심 요소로 만든 덕분이었다. 그의 야심과 이를 뒷받침한 공포정치는 대부분 사람들의 이해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고 이를 이해한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스탈린은 가혹한 처단을 통해 나름의 사회적 이동성을 만들었다. 게임의 규칙을 파악한 사람은 아주 신속히 아주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188쪽
발트 3국은 독립을 선언했고 우크라이나도 독립을 요구했다. 현실을 인식한 고르바초프는 소비에트 연방 대통령의 마지막 직무로서 1991년 12월 31일 자정을 기점으로 연방 해체를 선언했다. 200-201쪽
푸틴은 운이 좋았다. 러시아인들은 1990년대의 고통이 끝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새로운 지도자는 똑똑하고 열정적이었을 뿐 아니라 나라를 다시 세울 자금도 갖고 있었다. 213쪽
출판사 서평
동유럽 일부에 불과했던 고대 러시아 ‘루시’가 세계 영토 면적 1위 러시아가 되기까지
러시아를 성장시킨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러시아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국가는 키예프 루시다. 슬라브 민족들의 초대로 류리크가 통치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루시는 점차 성장해 대노브고르드 공국, 제정 러시아로 성장했다. 특히 표트르 대제의 통치기에는 군사력을 증진시켰고, 대순방을 떠나면서 러시아를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을 배워오기도 했다. 더불어 “나는 절대군주가 될 것이다. 이것이 내 일이다”라는 말을 남인 예카테리나는 계몽 전제군주의 모습을 보이며 러시아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로마노프 왕조는 결국 니콜라이 2세 때 멸망하며,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러시아로 돌아온 혁명가 레닌에게 그 자리를 넘겨준다. 권력을 본능적으로 이해하며 공포정치로 러시아인들을 몰아넣은 스탈린은 소련연방이라는 체제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 지속된 경제 위기 속에서 등장한 고르바초프는 개혁을 시도하지만 결국 그 개혁의 끝에는 소련의 해체가 기다리고 있었다. 1990년 고통의 시대에서 푸틴은 지도자로 부상했고, 그는 크렘린(대통령 집무실)과 화이트하우스(총리 집무실) 두 곳을 번갈아 이용하며 러시아를 통치하는 새로운 ‘차르’로 등극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다층적인 면모를 뽐내는 러시아
러시아가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점에 위치한다는 건 모두에게 늘 ‘남’으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유럽은 러시아를 아시아로, 반면 아시아는 러시아를 유럽으로 보았다. 러시아 역사는 ‘없음’으로 특징지어진다. 바이킹과 몽골, 십자군 독일 기사단과 폴란드인들, 나폴레옹의 프랑스, 히틀러의 독일 등 외침이 끊이지 않았다. 물리적인 공격이 없을 때에도 외부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문화 자본에서 기술 혁신까지 모든 것을 국경 밖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영토 경계가 없는 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은 끊임없는 확장이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민족, 문화, 종교의 정체성이 덧붙여졌다.
러시아인들은 그 일상에서도 온갖 외부적 영향을 잘 드러내는 다층적 존재, 조각보 국민이다. 언어만 해도 그렇다. 기차역을 뜻하는 ‘보크잘’이라는 단어는 영국 런던 복스홀역에서 왔다. 19세기 런던을 방문한 러시아 사절단이 감탄하며 구경한 후 ‘복스홀’이 ‘기차역’을 의미한다고 오해한 결과였다. 당시 러시아 귀족들은 프랑스어로 대화를 했으므로 기차의 침대칸과 짐 가방을 뜻하는 단어는 프랑스어를 그대로 옮긴 ‘쿠세트’와 ‘바가슈’로 정착되었다.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 가보면 거리들 이름이 이탈리아어로 되어있다. 흑해의 교역 언어가 이탈리아어였던 시절이 남긴 자취다. 반면 중국 국경 지대 도시 비로비의 공용어는 유대인의 이디시어다. 1930년대에 스탈린이 소련 유대인들을 그곳에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카잔의 크렘린 성벽 안에는 정교회 성당과 이슬람 모스크가 함께 서 있고 무속 신앙이 건재한 먼 북쪽 지역에서는 아직도 샤먼이 송유관에 축복을 내리는 그야말로 다층적인 문화가 겹겹이 쌓인 곳이 바로 러시아다.
러시아, 과거를 다시 써내려가다
러시아는 자신의 역사를 현재의 필요에 따라 재해석하는 일이 가능한 나라다. 이를 표현한 러시아 속담이 있을 정도다. “러시아는 미래가 분명한 나라다. 다만 과거는 예측불가능하다.”가 바로 그것이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 정체성이 혼합되는 과정에서 러시아는 놀라운 세 가지의 모습을 보인다. 첫째, 외부 영향을 역동적이고 유연하게 적용시키는 현상이 대단히 깊고 다양하게 일어난다는 것이고 둘째, 그 겹겹이 쌓인 층들이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점은 이 과정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이다. 뒤섞인 정체성을 인식한 러시아인들은 이를 부정하거나 과시하는 국가적 신화를 만들어내곤 했다.
오늘날 우리가 러시아라고 부르는 나라의 토대를 닦은 것도 그렇게 꾸며낸 이야기이다. 바이킹 침략자들에게 정복당하고 나서는 스스로 침략자를 불러들여 정복하게끔 했다고 바꿔버리는 식이다. 13세기에 러시아를 점령했던 몽골의 세력이 쇠퇴한 후 가장 충실한 부역자였던 모스크바 대공들은 자신들을 국가의 위대한 승리자로 재포장했다.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정치적ㆍ문화적 신화와 상징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편집한 것이다. 바이킹 침략자들에게 정복당하고 나서는 스스로 침략자를 불러들여 정복하게끔 했다고 바꿔버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구미에 맞는 서구의 측면(아이폰, 누진세가 적용되지 않아 부담이 적은 런던의 펜트하우스, 법치주의)만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오늘날의 새로운 엘리트들은 국가와 민족 이미지를 역시 자신들의 구미에 맞춰 만들어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늘 성공적이지도, 모두가 만족하지도 않는 방향이긴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보다는 세계가 자신들을 대우하는 방식에 더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부상, 그리고 열린 마음의 실용주의자였던 그가 2014년 크림 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남동쪽에서 예고 없는 무력갈등을 일으키는 민족주의 전쟁광으로 변모한 과정의 핵심도 바로 이것이다. 러시아는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 심심풀이 오락이 아닌 산업으로까지 자리 잡은 나라가 되었다.
짧고 굵게 읽는 러시아 역사는 매력적이고 괴이한, 영광스러우면서 결사적인, 극단적으로 잔혹하면서도 영웅적인 러시아의 역사를 풀어낸 책이다. 특히 지속적인 외부의 영향이 러시아라는 다층적인 국가를 만들어낸 과정과 러시아인들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 방향을 잡기 위해 문화적 재건을 거듭하고 과거를 다시 써내려간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천 년의 방대한 역사의 세부적인 모든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개성 넘치는 러시아의 주기적인 부상과 몰락, 그리고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신화화하는 방식을 파악하는 데에는 충분할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1464191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6월 10일 (1쇄 2021년 06월 02일) | ||
쪽수 | 231쪽 | ||
크기 |
141 * 211
* 21
mm
/ 368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A short history of Russia/Galeotti, M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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