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직은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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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봄.밤.’
등단 이후 14년 만에 펴내는 첫 소설집!
“상처 난 자리에서 가장 활발한 생명운동이 일어나듯,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그만이,
이후로도 이러한 진경을 펼쳐 보여줄 것이다.” _이만교(소설가)
“삶의 잔혹함을 자분자분 딛고 일어서보려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황시운이,
아니 황시운의 소설이 돌아왔다.” _한지혜(소설가)
작가정보
목차
- 매듭
HOME
어떤 이별
그들만의 식탁
통증
금
소녀들
우화(羽化), 혹은 우화(寓話)
리르와디, 당신의 우물
작가의 말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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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운 작가의 모든 소설 속에는 삶과 죽음이 뫼비우스 띠처럼 교차하는 순간들이 들어 있다. 죽지 못해 사는, 차라리 죽고 싶은, 그럼에도 죽을힘을 다해 사는 징하고 질기고 뭉클한 ‘안간힘’이 숨어 있다. 상처를 이야기하되, 다만 상처 부위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상처 속에 손을 집어넣어 그 육질까지 쥐어보게 만드는 뭉클한 순간들이 들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그러한 순간을 건너며 사력을 다해 글을 써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눈을 감아버리려는 내 손을 잡고, 눈은 그대로 감고 있어도 좋으니, 직접 손을 넣어 고동치고 꿈틀거리며 북받쳐오르는 생명을 느낄 것을 요구한다. 마치 상처 난 자리에서 가장 활발한 생명운동이 일어나듯,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그만이, 이후로도 이러한 진경을 펼쳐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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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에서 세상을 들여다본다는 말은 문학을 두고 작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은유이지만 지난 십 년간 황시운에게 그 말은 은유도 상징도 아닌 실존이고 삶이었다. 문학상을 수상하며 신인작가로 가장 빛나게 출발하는 날 사고로 추락한 이후 혼자만의 방에서 작가가 써온 소설은, 그저 몇 개의 문장이 아니라 마비된 몸을 움직여 손수 끌어올린 돌로 세상을 향해 놓은 다리였을 것이다. 여기에 실린 소설 편편에 담긴 삶이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고 아프지만 견고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제 아픔을 내주어 물길을 만드는 리르와디의 노인처럼, 삶의 잔혹함을 자분자분 딛고 일어서보려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황시운이, 아니 황시운의 소설이 돌아왔다.
책 속으로
통증과 함께 지속되는 삶과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죽음 중 낙지는 어느 쪽을 원했을까. 어느 쪽을 원했든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만. 삶도 죽음도 당사자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흘러가게 마련이었다. _「매듭」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미래를 생각해. 우리가 지워버린 과거를 생각하고 대책 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당신은 왜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나는 왜 그때 도망치지 않았나 생각하고 당신은 왜 더 적극적으로 나를 밀어내지 않았는지 생각하기도 해.” _「매듭」에서
“짐승은 야생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워. 일단 길들여지기 시작하면 나약해지는데, 나약한 것들은 도무지 아름답지가 않아. 물론 그럼에도 사람을 홀리는 부분이 있긴 하지.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늑대의 후손은 아름답진 않지만 사랑스러우니까. 그것도 다 한때뿐이겠지만 말이야. 모든 문제는 인간들이 사육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됐어. 사육 당하게 된 짐승들뿐만이 아니라 사육하게 된 인간 자신도 야생의 습성을 잃어버렸거든.” _「HOME」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엄마가 끝내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_「그들만의 식탁」에서
사고가 일어났던 시점으로 돌아갈 수도, 사고에 관한 기억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었다. 죽어라고 견뎌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형은 그저 우연한 사고였을 뿐이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 끔찍한 통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_「통증」에서
금이 자라고 있다니, 애들 엄마는 그날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알려고 해본 적도 없었다. 그녀의 가슴속에 난 금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나는 그녀를 묵살했고 방치했다. 모든 게 다 가짜 같다고 했다던가. 갑자기 그녀에 대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가짜처럼 여겨졌다. _「금」에서
“깝치지 말고 돌아가. 계속 이렇게 질척거리면 영영 못 벗어나는 거야. 게임을 하란 말이야, 게임을. 주어진 캐릭터대로 열심히. 늘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해서. 너 잘하잖아, 그런 거.” _「금」에서
질긴 껍질 속에 갇혀 있던 나의 새로운 삶이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바야흐로 우화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마지막 한 고비만 잘 넘기면 너절한 허물을 깨끗이 벗어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_「우화, 혹은 우화」에서
우물로 뛰어들려는 사람들을 막아선 것은 늙은이에게 새 괭이자루를 깎아 갈아끼워준 아들이었다. 무리는 우물을 에워싼 채로 태양이 생생해진 종려나무 끝에 매달리길 기다렸다. 막막한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채 석회암 판에 곡괭이를 내리꽂던 늙은이의 바람대로 젊은 놈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_「리르와디, 당신의 우물」에서
그 시절, 끝도 없이 이어지던 추락에서 나를 건져올린 건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살고 싶다’는 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매일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소설만은 쓰고 싶었다. 나는 끝내 살아남았고, 영영 묻혀버릴 줄 알았던 소설들은 책으로 묶였다.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 어느 한 시절의 내가 그랬듯 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좌절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쓰고 또 쓸 준비가 되어 있다. 다른 이들보다 느릴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는 일어설 수조차 없고 매 순간 끔찍한 통증에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 있어서, 소설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이 낡아버렸다 해도, 아직은 봄밤이다. _「작가의 말」에서
출판사 서평
‘전통적 서술과 새로운 메시지가 어울린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 황시운의 첫 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 교유서가를 통해 출간되었다.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컴백홈』 에서 ‘슈퍼개량돼지’라 놀림받으며 따돌림당하는 소녀가 삶의 유일한 희망으로 삼은 가수 서태지와 함께 달로 날아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보호망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한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에서도 “죽어라고 견뎌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개인의 아픔에서 출발해 고독사, 학교폭력, 감정노동, 심신장애 범죄 등 여러 사회문제들도 예리하게 담아낸다.
언제부턴가 고독사 현장에 가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신산한 삶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살 현장에선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향해 치열하게 손을 뻗쳤을, 애처로운 생욕(生慾)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_「금」에서
2011년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컴백홈』 출간 이후 첫 소설집을 묶기까지는 꼬박 십 년이 걸렸다. 그 십 년의 세월 동안, 작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삶에 적응하느라 힘겹게 싸워야 했다. 첫 책 출간 직후 벌어진 추락사고와 여러 번의 대수술, 그리고 ‘하반신 완전 마비’라는 판정 속에서 “끝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내 품고 지”내온 시간들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끝까지 놓지 않고 써내려간, 하지만 “영영 묻혀버릴” 것이라 여겼던 소설들이 마침내 책으로 묶여 독자들을 찾아왔다.
십 년이나 지나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멀리 돌아오는 길이 너무 험난해 힘이 들었지만 결국 돌아왔으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시는 일어설 수조차 없고 매순간 끔찍한 통증에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 있어서, 소설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이 낡아버렸다 해도, 아직은 봄밤이다. _「작가의 말」에서
“나는 절대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훼손하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다.”
작가의 등단작을 비롯해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발표한 단편 아홉 편을 모아 실은 이 책 속 인물들은 대부분 지독하게 밀려오는 삶의 파도에 휩쓸려 휘청인다. 결혼 석 달 만에 닥쳐온 불행한 사고로 남편 윤은 전신마비 장애를 입고, 나는 하루 열두 시간을 식당에서 낙지 대가리를 자르며 ‘개미지옥’같이 변해버린 세상을 견디고(「매듭」), 이웃에 사는 정신지체 청년에게 아이를 잃지만 재판에서 청년은 무죄를 선고받고 아이의 죽음에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현실 앞에 개인적인 복수를 결심하기도 하며(「어떤 이별」), 어린 시절 가족여행으로 갔던 계곡에서 위험에 대한 자각이라고는 없이 형에게 장난을 쳤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일으켜, 결과적으로 가족을 흩어지게 만들기도 하는(「통증」) 등, “낭떠러지에서 허방이라도 짚은 것처럼 아득해”져버린 삶들이 나지막이 신음을 뱉어낸다.
문득 참을 수 없이 궁금해졌다. 나는 왜 가망 없는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건지, 그는 왜 끝도 없이 수치심을 견뎌야 하는 건지, 나는 왜 진작 그에게서 도망치지 못했는지, 그는 왜 더 질기게 나를 밀어내지 않았는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그는 또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는 왜, 그는 왜, 우리는 왜…… _「매듭」에서
“그러는 너는 요즘 어때?”
아무것도 없던 형의 눈동자에 간신히 내가 맺혔다. 그런데 글쎄.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즈음의 나는 어떤가. 잘 모르겠다. 요즈음의 나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 역시. 나는 내가 어떤지 도무지 모르겠다. _「통증」에서
하지만 이들은 자신에게 가혹하게 구는 삶을 원망하며 놓아버리는 대신 혼신의 힘을 내어 일어서고, 다시 걸음을 내딛는다. 자긍심처럼 여기던 혼다를, 내가 ‘home’처럼 여기던 정호가 훔쳐 달아난 뒤에도(「HOME」), 학교 일진들에게서 “못생긴 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도대체 저게 사람이야 괴물이야” 같은 소리를 듣게 만드는 외모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수를 써서 모으던 돈을 “지긋지긋한 화상들의 지지리도 궁상스러운 조합”인 가족들에게 빼앗겨버리고도(「우화羽化, 혹은 우화寓話」), “모자라면 고분고분하기라도 하든가 고분고분하지 않을 거면 욕심이라도 없어야 할 텐데” “모자라고 포악한데다가 욕심까지 많”고 걸핏하면 내 등에 업히려 드는 오빠의 손아귀에서 악착같이 지켜낸 돈을, 오빠의 수작임이 분명한 아빠의 교통사고 처리비용으로 다 털어버리고도(「리르와디, 당신의 우물」), ‘나’는 무릎을 꺾지 않고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앞날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마다 허방을 딛는 기분일지라도...
벚꽃이 만개하자 거리의 모든 것들이 화사해졌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이었는데도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 틈에 끼어서 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밤거리를 떠밀리듯 걸었다. 포근해진 밤공기에 공연히 설레기도 했고 모두가 반짝이는데 나만 빛바랜 것 같아 서글퍼지기도 했다. (…) 집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삼십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거의 한 시간에 걸쳐 돌아왔다. 돌이킬 수 없이 낡아버렸다 해도, 아직은 봄밤이었다. _「매듭」에서
‘돌이킬 수 없이 낡아버’린 현실을 인지하며 한없이 서글퍼지는 순간에 뒤이어,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라고 살그머니 주문처럼 외우며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힘이 있기에, 작가는 ‘끝내 살아남’아 글을 썼고, 우리도 끝내 살아남아 이 글들을 읽게 된 것이지 않을까. “어느 한 시절의 내가 그랬듯 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좌절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쓰고 또 쓸 준비가 되어 있다. 다른 이들보다 느릴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놓지 않고 써내려갈 작가의 소설들을 기대해보며,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라고 나지막이 소리를 내어본다.
기본정보
ISBN | 9791191278446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5월 25일 |
쪽수 | 308쪽 |
크기 |
131 * 200
* 22
mm
/ 365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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