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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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기관 추천도서 > 문학나눔 선정도서 > 2022년 선정
몸에 갇혀서 사고하는 내가, 몸을 떠나서 여전히 나일 수 있다면?
갑자기 접속이 끊어진 달 기지의 내막을 조사하러 나선 경물 조사관 ‘진서’. 500년간의 우주 탐사를 마치고 지구로의 귀환을 앞둔 베르티아의 항해사 ‘아지사이’. 인류가 유일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납득하기 위해 육체에서 벗어나는 개척자 ‘플라스틱’. 이 세 명의 페르소나를 통해 과거와 현재, 너와 나의 경계를 초월하는 무지막지할 정도의 스케일을 펼치는 《베르티아》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우주를 공부하고 우주를 업으로 삼은 연구자의 설득력 덕분임은 물론, 그 섬세한 연구 기반이 보호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감수성과 탐구심인 까닭이다.
작가정보
목차
- 첫 번째 이야기. 바람메뚜기는 왕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두 번째 이야기. 달이 외로움을 잊게 해 줄 거야
세 번째 이야기. 눈부신 빛을 손끝으로 느끼며
작가의 말
프로듀서의 말
책 속으로
별과 별 사이를 본다. 텅 빈 공간이다. 사실은 비어 있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빛의 일부밖에 보지 못하는 불완전한 광 수용체가 만들어 주는 어둡고 황홀한 공허를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눈부시게 빛나는 우주를 바라봐야만 하는, 전구 속에 갇힌 신세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내가 있다. 그러기에 내가 있을 수 있다. 다른 게 있다면 내가 여기에 있어 봐야 뭐 하겠는가.
p. 11
“그게 제 일이니까요. 하드필드를 완벽히 스캔해서 나중에 현장이 흐트러져도 조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게.” 간호사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마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하드필드. 물리적 현장이라는 거군요. 그래서 경물 조사관이라는 거고. 그럼 경찰들은 스캔한 걸 가져가서 굳이 현장에 나오지 않고도 안경만 있으면 확장 현실로 언제든지 조사를 할 수 있겠네요. 아니, 거기선 소프트필드라고 부르나요?”
p. 18
사서가 고개를 돌려 목 뒤에 붙어 있는 명함 크기의 연분홍색 스티커를 보여줬다. “휴모로패드라는 거랍니다. 신경계에 직접 접속해서 뇌에 필요한 정보를 보내 줘요. 머리에 구멍을 내서 수술을 할 필요도 없어요. 고작 스티커 한 장으로 가능해요. 지금 저는 이곳 의 감시 카메라 영상을 통해 당신의 모습을 보고 있어요.”
p. 41
“완전 인간형 로봇이 금지된 이유를 기억하나요? 인공 지능이 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게 증명되자마자 사람들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로봇들을 학대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인간을 닮은 로봇을 향한 폭력은 다른 인간에게도 퍼져 나가기 쉬웠어요. 그렇다고 그들이 진짜 인간이나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완전 인간형 로봇 학대 금지법 따위를 만들 수는 없으니 그냥 생산을 금지해 버린 거죠.”
p. 83
“내 예상대로라면 멀지 않은 시기에 지구 전체의 연결망을 하나의 뇌로 이용하는 상위 의식체가 발생할 거야. 그걸로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변칙을 정확히 소모할 수 있고. 필연적인 발생인 거지.” “인간이 만들어 낸 물건엔 의식이 깃들 수 없다고 한 게 당신이었잖아.” “이건 내가 만드는 게 아니야. 번개를 유도하는 것과 번개를 만드는 게 전혀 다른 일인 것처럼. 난 그저 상위 의식체의 발생을 촉진하려는 것뿐이고.”
p. 116
“베르티아가 착륙할 수 있는 후보지를 골라 둬. 중력이 약한 곳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가급적 가까운 곳으로. 생존자들이 초광속 비행을 견디기는 어려울 거야. 태양계 어딘가가 가장 좋아.”
p. 166-167
“고성능 뉴런 250억 개와 무한에 가까운 시냅스로 구성된 뇌를 가진 우리의 핀은 동심 어린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우울증에 빠졌고 걷잡을 수 없는 자살 충동에 빠져 결국 스스로를 파괴했다.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이 사태의 이유를 찾은 거 같군요.”
p. 187-188
우리는 우주에 홀로 존재한다. 이것은 안도일까, 슬픔일까, 위기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오랜 과거에 존재했던 가짜 신에게는 이것이 공포였고 그는 이 사실을 견디지 못했다. 가짜 신은 무책임한 자멸을 선택했고 우리는 땅속으로 도망쳤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의심했다.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신에 대한 말이 아니다. 나는 신에게는 관심이 없다. 가짜 신은 나약했을 뿐 이다. 내가 믿지 못했던 건 우리가 우주에 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니.
p. 225
그곳에 두 번째 베르티아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두 번째 베르티아는 지상과 우주에서 거의 모든 핵심 장 치들이 완성되고 조립만 남은 단계였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출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류세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만큼, 지상에서 부분적으로 조립되어 세계 곳곳에서 거대한 연구 시설로 활용되었다. 나는 떠오를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처참하게 분해된 이 우주선을 되살리기로 했다. 지금까지 베르티아는 나를 앞서 나간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곧, 두 번째 베르티아를 다시 탄생시킨다면 우리는 같은 선상에 서게 될 거야. 그렇다면 두 번째 베르티아라는 이름부터 바꿔야겠지. 어떤 이름이 좋을까.
p. 261
48억 년이 지났다. 빛의 속도로 다가오는 눈부신 소멸에 손을 뻗는다. 수소 원자의 전자마저 멈춰 버린 짧은 시간 속에서 소멸의 빛을 손끝으로 느끼며 나는 이 기록을 남긴다.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고 결코 존재하지 않을 기록을. 이 우주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무의미한 정보를.
p. 308-309
출판사 서평
| 시공을 달리하는 세 개의 장대한 모험을 촘촘히 엮은 정통 SF 서사
지구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볼 수 있다면?
몸에 갇혀서 사고하는 내가, 몸을 떠나서 여전히 나일 수 있다면?
‘너’를 통해 ‘나’의 성질을 추출하고, 사회와 대립함으로써 개인성을 수호하며, 나의 몸과 나의 정신을 견주며 행위의 시작점과 교훈을 정리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관습이다. 수천 년간 신에 대한 정의로 싸우고, 수많은 법을 개정하며 사회 시스템을 정교화하고, 인간의 본성을 논의해 온 것이 인간 스스로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베르티아》는 본질적이므로 유구한, 인간 존재에 관한 질문을 지구와 우주를 넘어선 관점으로 탐구하는 존재론적 소설이다. 이 소설집에 속한 세 가지 이야기, 즉 〈바람메뚜기는 왕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와 〈달이 외로움을 잊게 해 줄 거야〉, 〈눈부신 빛을 손끝으로 느끼며〉는 시공을 달리하지만, 이 본질적인 문제의식만은 철저하게 공유한다.
갑자기 접속이 끊어진 달 기지의 내막을 조사하러 나선 경물 조사관 ‘진서’에게는 달 기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쌍둥이이자 연인이 있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진서의 꿈은 마치 ‘또 다른 나’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또 다른 나’의 시점에서 ‘나라고 믿어 온 나’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진서의 고유한 관점을 보여 준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500년간의 우주 탐사를 마치고 지구로의 귀환을 앞둔 베르티아의 항해사 ‘아지사이’다. 저들 기억의 빈틈을 수상하게 여기던 아지사이와 그의 동료들은, 초토화된 지구와 퇴화한 인류를 맞닥뜨린다. 인류가 유일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납득하기 위해 육체에서 벗어나는 개척자 ‘플라스틱’은 마지막 이야기 〈눈부신 빛을 손끝으로 느끼며〉의 주인공이다. 플라스틱은 베르티아에서 전수한 배움을 통해 각성하고, 여러 문명을 탐사하며 지구가 진정 단독자인지 알아내고자 한다. 그는 지하 무인기지에서 발견한 두 번째 베르티아에 이름을 붙이고, 태양계를 벗어난다. 초거대 블랙홀 보이드에서 미래가 아닌 과거로 흘러 들어온 플라스틱은 이미 경험한 유구한 미래를 과거처럼 더듬는다.
| 인간의 시선을 넘어서서 살핀 존재의 근원
이 세 명의 페르소나를 통해 과거와 현재, 너와 나의 경계를 초월하는 무지막지할 정도의 스케일을 펼치는 《베르티아》의 현실성 내지 진실성은 우선은 우주를 공부하고 우주를 업으로 삼은 연구자의 설득력 덕분일 터다. 확장 현실의 발달이 새로운 형태의 생물학적 진화를 불러온 근미래의 상황과 이때 벌어지는 소란들, 대부분 소프트웨어로 구축된 확장 현실을 살아가는 인류 속에서 드물게 물성 강한 현장에서 일하는 조사관을 지칭하는 개념인 하드필드 워커, 태양계 바깥을 연구하기 위한 달 기지 시너스 이리둠, 근지구 통신 위성 시스템을 이용한 스마트 기기 너스폰, 인간의 의식을 기계에 옮겨 심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 등은 그 정의와 적용 양상이 무척 구체적이고 가깝게 느껴져 SF라는 장르를 잊게 한다.
또한 한층 더 독자의 공감과 애착을 이끄는 것은 이러한 섬세한 연구 기반이 보호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감수성과 탐구심인 까닭이다. 나 자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감각, 타 존재와 비교하여 귀납적으로 특질을 포착하려는 노동 집약적인 연구 이전에 느끼는 찰나의 감정을 하나의 우주 속에 갇히지 않는 순수한 결정(結晶)으로 묘파해 낸 소설이 바로 《베르티아》다.
기본정보
ISBN | 9791191193275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1월 19일 | ||
쪽수 | 320쪽 | ||
크기 |
128 * 196
* 25
mm
/ 359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안전가옥 오리지널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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