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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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소설! 이다루 소설집 「기울어진 의자」
《기울어진 의자》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서부터 관계가 뒤틀리거나 끊어지는 반복 된 일상의 이야기를 다룬다. 왜 그런 일들이 반복될까? 우리가 관계를 선택할 때 처음부터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정보
목차
- 6 알바, 돌아가지 않을...
11 껌딱지
16 김 대리의 연애
21 노인과 지하철
26 열무와 염치
33 기울어진 의자
46 Alone
52 ‘바바리’ 이야기
61 엄마와 딸기
66 김칫국
72 두 여인
77 불청객의 음모
82 한글 떼기
86 입학식 선물
91 졸린 등굣길
94 닮는다는 것
102 그깟, 시험
107 아프면 고생이다
114 어떤 세계 1
119 어떤 세계 2
130 축구와 아이
133 축구와 엄마
139 함부로, 사진을
145 채팅과 새 떼
154 물에는 경계선이 없다
163 쇼핑의 심리학
169 기다린다는 것
172 떨어진다는 것
175 밤바다
179 나는 소다
183 바람 불어도, 잎이 떨어져도
187 볶음김치와 언니
193 마스크 벗기
198 여수에 가면
204 〈작가의 말〉
책 속으로
나는 이 시간의 바깥바람이 좋았다. 열심히 달리지 않아도 되고, 누구와 어울리지 않아도 되고, 그저 혼자서 게으른 시간을 즐기기에 딱 좋았다. 어둡고 휑한 공간이 나의 내면과 비슷해서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언제부터 이 어둠은 나를 쫓아왔을까? 언제부터 나는 어둠과 같아졌을까? 아무것도 되지 못한 어른으로 자란 게 내 잘못일까? 엄마 탓일까? 아님 세상 탓일까? 달리라고 해서 달렸고 멈추라고 해서 멈췄는데, 나는 왜 뭣도 아닌 어른이 된 거지?
그때였다. 걸인이 몇 걸음 되지 않은 곳에서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거적때기를 몇 개나 겹쳐 입은 모습이었다.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나는 손으로 코를 막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를 지나던 걸인이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침이 혀 안쪽에 고여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등을 돌리면서 걸인을 무시하고 애써 먼 곳을 바라보았다.
순간, 쩌렁한 목소리가 어둠을 깼다.
“어이, 김 씨! 오늘 봐둔 데 있어. 딴 데 가지 말고 나 따라와.”
놀란 나는 뒷걸음질 치다가 앞을 보고 내달렸다. 푸른 달빛이 길을 안내하는 듯했고, 두 발은 저절로 움직이는 듯했다.
어떻게 얼마나 달렸는지 몰랐다. 발바닥이 쓰라렸다.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달렸다. 푸른 달빛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었다. 발등 위로 흙 자국과 핏자국만 선연했다.
〈알바, 돌아가지 않을...〉 중에서
지하철을 타기 전, 친구와 나는 만 오천 원짜리 파스타를 먹고 커피숍에서 오천팔백 원짜리 커피와 디저트로 칠천오백 원짜리 케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 갑자기 할아버지 앞에서 무안해졌다.
“힘들지 않으세요?”
“괜찮아. 아가씨에겐 짐짝으로 보이겠지만 내겐 보물이야.”
보물이라니. 내 눈에는 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석은 아무리 많아도 무겁지 않지.”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멀어지고 난 후에야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할아버지에겐 모든 짐이 보석이었을 것이다. 노동의 삯을 받을 수 있는 가치 있는 보석 말이다.
그럴 것이 어깨의 짐을 붙든 할아버지의 손에는 힘줄이 단단히 올라와 있었다. 손등은 쪼글쪼글 주름져 있었고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할아버지는 점점 더 거친 숨을 내며 두 계단 위의 평지를 바라봤다.
‘다 왔다. 좀 만 더 오르면...’
할아버지는 평지에 짐을 내려놓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나는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계단은 옆으로 넓었고 높지도 않았다. 오래도록 빠져나오지 못할 곳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보물을 이고 보물을 찾으러 떠났다. 가장 무거운 발걸음으로 가장 느리게 사라졌다. 보물을 움켜쥐었던 내 손바닥은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노인과 지하철〉 중에서
수정이가 딸과의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전화했다. 예정된 일정이었던 학부모 모임 참석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수정이는 남편에게 집안 상황을 물은 다음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일까지 점검했다. 이어서 사야 할 식자재를 하나씩 읊었다. 그 모습은 직장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일일업무를 지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수정이는 남편의 게으름을 나무랐고 어설픔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전화기 저 편에서 한숨이 들리는 듯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수정이의 휴대폰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상사의 전화였다. 수정이는 몸을 돌려 전화를 받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업무 지시를 받았다. 앞으로 더욱 신경 쓰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전화를 끝냈다.
수정이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내게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나는 회사로 급하게 뛰어가는 수정이를 바라봤다.
마음이 급했던 수정이는 출입구 앞에서 한쪽 구두가 벗겨졌다. 깡충 걸음을 하고 신발을 찾아 신은 수정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수정이가 앉았던 의자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의자를 지탱하는 네 개의 다리 중에서 두 군데나 빠져 있었다. 나는 기울어진 쪽을 손으로 들어 올려서 수평을 맞췄다. 내가 손을 떼자마자 의자는 다시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기울어진 의자〉 중에서
출판사 서평
내 삶은 잘 흘러가고 있는걸까?
삶이 흘러가는 방향대로 가고 있다는 표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얽히고설킨 관계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일상이다.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니 모든 관계도 똑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경험이 많을수록 관계 형성을 둘러싼 대처능력은 나아진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관계를 맺을수록 더욱 유연해지고 양보할 줄 알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관계의 양상을 담음 이다루 소설집 「기울어진 의자」는 일상의 관계를 녹여낸 소설집이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더 힘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의 일상이 더욱 고귀하게 빛날 것을 믿으며 「기울어진 의자」를 읽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SN Collection(STOREHOUSE Novel Collection)은 Storehouse(스토어하우스)의 국내외 문학소설 시리즈입니다.
기본정보
ISBN | 9791190912112 |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10월 28일 | ||
쪽수 | 208쪽 | ||
크기 |
129 * 200
* 17
mm
/ 265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SN컬렉션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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