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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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에서 기억으로, 5년에 걸친 비판적 고찰에서 성찰로의 여정
필자는 무의지적 기억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시켜 소생과 구원에 가 닿게 되는, 프루스트의 섬세한 심리묘사 등 내밀한 언어세계로 구축된 텍스트에서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된 사랑, 욕망, 질투, 우정, 야망, 기억 등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짚어내며 공감대를 갖는다. 특히 문학과 예술의 본질, 그 기능에 대해서 인문학적 박학의 경험과 비판정신으로 프루스트의 사유의 한계까지 날카롭게 분석하고, 에밀 졸라, 도스토옙스키, 앙드레 말로, 보들레르 등의 많은 작가들을 소환시켜 비교 분석의 장을 넓힘과 동시에 프루스트와 자신의 문학적 지향과 사유방식의 차이점에 대한 소회도 명쾌하게 밝힌다. 또한 이 저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예술론을 다룬 마지막 장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테마로서의 예술론을 강조함과 동시에, 작가의 인생관, 세계관으로 펼쳐지는 요소마다 명주해를 붙여 저자의 과업을 다한 대장정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이번 저서는 노학자의 프루스트를 관통한 자기발견이며, 필생의 소명으로 삼았던 문학과 예술, 철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작은 새’가 되어 프루스트를 넘어서서 더 넓은 세계를 내다볼 수 있게 할 명안내서가 될 것이라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작가정보
목차
- 머리말 06
프루스트를 읽다 15
추천사
-
90대 노교수의 5년여에 걸친 줄기찬 독서 기록인 이 책은 프루스트의 『잃었던 때를 찾아서』라는 심해의 첩첩산맥을 향하여 열어 보이는 180개의 문이다. 이 문은 동시에 책의 저자 자신, 나아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향하여 열리는 180개의 반성적 회전문이다.
이 책은 기이한 맛집 안내서다. 그 안내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맛집의 선택, 그리고 맛집의 구체적 소개, 즉 실내 구조, 식재료, 조리 방식, 음식의 분석, 음미 과정. 권유 혹은 가차 없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보편적 가치들을 향하여 열린다.
이 책은 프루스트의 대하소설에서 마주친 180개의 핵심적 문단, 장면, 단장, 심리묘사에 대한 텍스트 분석인 동시에 그 문단을 출발점 혹은 실마리로 삼아 인문학적 박학과 경험, 비판정신에서 우러난 사색, 자유연상, 사족, 비고 붙이기, 매서운 비판…… 그리고 동시에 자기반성으로 연장된다. 분석은 간결하고 논리는 준엄하고 비판은 냉정하여 독자를 긴장시키지만 또한 예기치 않은 지점에서 팽팽하게 조인 끈을 탁 풀어놓아 넓은 사색과 상상의 공간을 열어준다.
90이 넘도록 두 발로 지표를 딛고 꼿꼿이 서 있다면 축복이다. 90이 넘도록 장기간에 걸친 고산준령이나 심해의 탐험을 마다하지 않으며 거기서 매 순간 명철한 의식과 균형을 잃지 않는 비판정신을 유지하며 삶을 부감한다는 것은 실존적 은총이다.
책 속으로
* 오늘 몇 시간에 걸쳐서 제2권에 포함된 프루스트의 음악론을 읽고 있다. 읽고 있다기보다도 한 줄 한 줄을 음미하고 있다. 그러면서 40여 년 동안 음악을 들어온 나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는 점을 부분적으로나마 발견하고는 나의 음악관이 크게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엷은 자기만족을 느끼기까지 했다. 가령 뱅퇴유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두고 한 다음과 같은 말은 필력이 약한 나의 생각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태초에, 아직은 지상에 그 둘(바이올린과 피아노)만 있었을 때와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그 이외의 모든 것을 향해서는 닫혀 있는 세계, 어떤 창조자의 논리에 따라서 구축된 이 세계에서는 영영 그 둘만 있게 된 것 같았다. 그것이 바로 그 소나타였다.”(2/267)
-25쪽
* 내가 프루스트 읽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이유의 하나는, 나 자신의 과거의 체험을 상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정에 관한 이 구절을 읽으면서도 머리에 떠오른 것은 대조적으로 생텍쥐페리와 앙드레 말로의 글이다. 이들에 비하면 프루스트는 진실한 우정을 모르는 외롭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 두 행동주의자에게 있어서 우정이란 어떤 공통적 목표의 추구라는 매개가 있어야 성립하는 것인데, 프루스트에게는 그런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화자는 생루와 문학이나 예술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동감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도 나와 취미가 같구나’ 하는 정도의 상호 인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대화와 동감은 프루스트의 말마따나 혼자 있을 때 가끔 느끼는 황홀한 순간(가령 어떤 음악이나 상상이나 추억이 가져오는 것)처럼 행복할 수가 없다. 이에 반해서 폭풍우 속에서 취약한 비행기를 몰고 간다거나(생텍쥐페리), 혁명의 대의를 위해서 투쟁하는 경우(앙드레 말로)에는, ‘나’의 존재는 동지의 존재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하고, 진실한 우정은 이렇듯 운명 공동체로서 자신을 넘어서는 중에 맺어진다. 이런 일은 프루스트의 문학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는 그의 글이 무가치하다든가 열등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모든 문학적 표현에는 그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고, 독자는 그런 상이한 견해와 비전을 대하면서 자신의 이해의 지평을 넓혀 나가게 되는 것이다.
-41~42쪽
* 그리운 사람의 음성이 귓전에 들릴수록 그 실체는 더욱 멀리 느껴진다는 이런 장거리전화의 역설을, 나도 어느 정도 체험했다. 1970년대에 파리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프랑스의 통신시설은 한국보다도 더 낙후되어 있어서, 나와 같이 염가의 대학 기숙사에 체재하는 사람으로서는 국제전화가 그렇게 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금도 비싸거니와 접속이 잘 안 되고 통화 중에 툭 끊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만난을 무릅쓰고’ 어머니와 몇 마디 나누고 나면, 위에 인용한 화자의 불안과 흡사한 불안이 엄습했다. “아무 일 없으시죠?” 하는 나의 물음에 어머니는 항용 “아무 일 없다. 너나 잘 있다가 오너라” 하고 대답하셨지만, 멀리 타향으로 공부하러 간 자식에게, 병상에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알리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또 무슨 일이 돌발해서 내가 쉽게 돌아가기가 어렵게 될지도 모르고, 예정대로 몇 달 후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해도, 그 전에 어머니에게 무슨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 전화의 음성 때문에 절실해졌다.
‘그 음성이 심연에서 들려오는 외침’이라는 절망적인 느낌은 아니었을망정, 내가 전화를 건 지 얼마 후,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여 수화기로 달려가는 순간 나는 두려움에 싸이고, 다시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곧 불안을 되새긴 일이 생각난다.
이러한 일은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화상통화가 가능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을 주고받고, 당장이라도 고속 열차나 비행기를 잡아탈 수 있는 세상, 거리가 소거되어버린 세상, 따라서 ‘불안한 그리움’ 역시 소거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더 행복하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80~81쪽
* “그 누구라도 자기의 기억력이 모아놓은 여러 추억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기쁜 일인데, 그런 기쁨이 특히 강렬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 예컨대,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날마다 치유의 희망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들은 그런 추억들과 닮은 화폭을 자연 속에서 찾으러 갈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머지않아 자기들도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상당히 믿고 있어서, 그 추억들에 대해서 욕망, 욕구의 상태를 간직하고, 다만 추억이나 화폭으로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9/35-36)
이 텍스트는 알베르틴이 두 감시자와 함께 외출한 후에 혼자 있게 된 화자가 자신으로 돌아갈 여유를 갖고 과거를 즐겁게 회상하는 대목에서 나온 술회이다. 도스토옙스키처럼 행동하는 인간의 현실을 포착하여 그 실존적 드라마를 제시하지 못하는 프루스트의 장기는 그 대신 바로 이런 보편적 인간상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데 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앙드레 지드가 한 말을 다시 상기했다. 그에 의하면, 인생을 가장 짙게 사는 사람은 회복기의 환자이다. 회복기에 들어서면, 치유되는 과정 하나하나가 마치 한겨울에 시들어 죽은 줄만 알았던 풀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하는 재생의 기쁨을 만끽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프루스트는 회복기가 아니라 한창 앓아누워 있는 중이라도 치유의 희망은 존속하고, 일단 회복되면, 지난날 기쁨을 안겨준 고장들을 지금처럼 다만 추억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다시 찾아가겠다는 욕망이 일어 그 기쁨은 더욱 강력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209~211쪽
출판사 서평
과거의 재생과 반성적 성찰
프루스트의 소설의 중요성은 단순히 과거의 재생에 있지 않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해석하고 평가한다는 점에 있다. 필자 역시 프루스트의 텍스트와 그 텍스트로 인해 재생된 자신의 과거를 교차시키며 자기반성을 이어나간다.
필자가 유독 제일 먼저 손꼽는 것은 『잃었던 때를 찾아서』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마르셀의 잠자리에 들기 전, 어머니의 키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필자는 이 이야기에 덧대 자신의 조부모님 기일을 제사 대신에 저녁 식사 전의 기도 형식으로 바꿀 것을 어머니께 권했던 마흔 살 자신의 과거를 되살려내며 ‘어머니에게 최초의 패배로 각인될 것’이었다는 자각과 반성을 어머니에 대한 통렬한 회한으로 공감한다.
나아가 이 소설을 과거의 추억의 재생만으로 읽는 것은 잘못이다.
소년기의 과거로 설정된 허구로 쓰인 이야기의 디테일에서 현재의 허구로 과거를 투영한 이중의 허구일지언정 그 허구성 때문에 소설의 의의가 삭감되지는 않는다.
필자는 “소설을 읽는 뜻은 프루스트 자신의 말마따나 실인생에서는 장시간 걸려 아주 엷어지는 행복이나 괴로움을, 상상력을 통해서 응집적으로 체험하는 데 있”(1/152 참조)으며, “어찌 행복이나 괴로움뿐이랴! 이 소설이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은 섬세하건 거대하건 간에 삶과 세계의 모든 양상의 인식에 있어서 예술이 수행하는 역할을 극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20쪽)라고 진단한다.
국외자로서 누리는 시적 즐거움, 프루스트의 장점이자 한계
프루스트는 소설 곳곳에서 귀족들의 생활과 하층민들의 생활을 심미적 차원에서 감상함과 동시에 그들의 이중성과 비열함을 적시한다. 필자는 프루스트의 이러한 태도는 그의 국외자적 시각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에게 실존적 연대 의식이 부재했으며, 그것이 그의 한계라고 정의 내린다,
계급적 격차, 사회의 문제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있다. 그 유리벽이 언제까지라도 이 야릇한 짐승들의 향연을 보호해 줄 것인지, 그리고 어둠 속에서 탐욕스럽게 그들을 주시하고 있던 무명의 무리들이 수족관 안으로 몰려와 그들을 잡아서 먹어치우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4/69)라는 프루스트의 서술에 필자는 “이 장면을 통해서 엄청난 계급적 격차를 의식한 화자는, 그 가난한 자들이 부유층의 행태를 부러워할 뿐 아니라, 언젠가는 안으로 쳐들어와서 그들을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느끼고, 그것은 큰 사회적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루스트의 하층계급에 대한 태도는, 그런 막연한 불안으로 그치는 것 같다. 그에게는 동시대의 레옹 블루아L?on Bloy나 에밀 졸라가 보여준 바와 같은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또 가진 자로서의 미안한 감정이나 죄책감에 시달린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바로 이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사회계급의 문제를 넘어서서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분석과 비판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38-39쪽)라고 말하며 프루스트 문학을 살피고 있다.
상대에 대한 이기적인 소유욕에 있어서도 저자는 거부감을 드러낸다. 프루스트가 그리는 사랑은 이성애건 동성애건 간에 타자 소유의 욕심과 그 욕심에서 연유하는 책략과 질투, 괴로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랑을 계략적이고 타산적이라고 전제한 뒤, 사랑하는 이의 안녕과 순수성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괴테, 도스토옙스키, 토마스 만 소설의 인물들을 그 대척점에 있는 사랑으로 예를 들고 있다.
사랑의 집착
연애에 있어서 상대방의 존재보다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욕심과 집착과의 갈등 때문에 생기는 자학적 고뇌를 프루스트는 수술이 불가능한 ‘병’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에 대해 “나는 오늘 이 대목을 읽다가, 불교에서 말하는 고체라는 말이 생각났다. 집착에 묶여 있는 인생이 바로 고체이고 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은 오직 자력에 의해서 집착을 멸하는 것, 그럼으로써 도체에 이르는 것인데, 스완은 과연 그런 바람의 길을 택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반대로 상대를 소유하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에 스스로 차여서 파멸하고 말 것인가? 불교적 견지에서 읽어도 재미있다.”며 프루스트 문학의 특징을 그려내고 있다.
공감과 거부 그리고 결별
저자는 프루스트의 사유에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거부감을 드러내며, 최종적으로는 결별을 선언한다. 저자가 프루스트에게 깊이 공감하고 감탄하는 것은 예술의 향유 특히 음악에 대한 이해와 태도, 그것을 서술한 뛰어난 묘사력이었다. 저자가 가장 즐겨하는 취미는 서양 고전음악 듣기이며, 프루스트의 표현처럼 자신도 연주자를 ‘곡을 향해서 열린 창’으로 느끼며 음악을 들을 때 공감각을 경험한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프루스트에게 공감보다는 거부가 더 많으니,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의 편협한 문학관이라고 한다.
거부하는 지성
작가 베르고트가 프루스트에게 ‘보아하니 당신에게는 지적 즐거움이 있는 것 같다고 칭찬한다. 그 즐거움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처럼 당신에게도 중요하겠죠.’라고 하자 프루스트는 반발한다. 자신에 대한 그런 말이 부합되지 못함을 얼마나 느껴왔는지를 생각하며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열망하는 것이 순전히 물질적이었음을, 얼마나 쉽사리 지성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있었는지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여기에서 화자가 거부하는 지성intelligence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상과 사물에서 얻은 체험과 인상을 정리하여, 객관적 입장에서 그 의미와 본질을 밝히려는 정신적 작용이다. 한데, 화자는 그런 작업에는 관심이 없고, ‘순전히 물질적인 것’만을, 즉 일상생활에서 향유할 수 있는 즐거움만을 추구했다고 말하고 있다. (……) 그렇다면 프루스트는 지성이라는 것을 끝끝내 송두리째 무시하고 배척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성은 프루스트에게서 가장 중요한 정신적 기능의 하나이다. (……) 지성은 감성적 체험의 후에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고, 내 생각에도 이 주장은 지당하다. 그렇지 않고 지성을 앞세운다면, 그것은 해골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이것이 인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내뱉는 것과 같을 것이다.”(33-34쪽)라며 공감을 표한다.
그러나 ”오직 개인적, 주관적 체험만이 중요하다.”(380쪽)는 프루스트의 문학관에게 거부감을 드러내며, 자신의 내면보다 바깥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 문학이며, 행동하는 인간의 현실을 포착하여 그 실존적 드라마를 제시한 도스토옙스키, 거칠지만 넓은 시야로 삶과 죽음의 변증법에 주목한 에밀 졸라의 소설들을 대비시키며 프루스트 문학관의 편협함을 지적한다.
필자는 급기야 ‘우정이라는 것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텍스트에서 결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친구란 쓸데없는 잡담으로 예술 창조에 바쳐야 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백해무익한 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프루스트의 서술에, 필자는 앙드레 말로의 소설 『인간 조건』을 비교 분석하며 프루스트의 사전에는 연대 의식, 공감, 너그러움, 역지사지, 공생과 같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한다.
프루스트 읽기의 재미
“내가 프루스트 읽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이유의 하나는, 나 자신의 과거의 체험을 상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정에 관한 이 구절을 읽으면서도 머리에 떠오른 것은 대조적으로 생텍쥐페리와 앙드레 말로의 글이다. 이들에 비하면 프루스트는 진실한 우정을 모르는 외롭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 두 행동주의자에게 있어서 우정이란 어떤 공통적 목표의 추구라는 매개가 있어야 성립하는 것인데, 프루스트에게는 그런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 폭풍우 속에서 취약한 비행기를 몰고 간다거나(생텍쥐페리), 혁명의 대의를 위해서 투쟁하는 경우(앙드레 말로)에는, ‘나’의 존재는 동지의 존재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하고, 진실한 우정은 이렇듯 운명 공동체로서 자신을 넘어서는 중에 맺어진다.”(41-42쪽)
미덕과 단점과 사랑
“이 세상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아마도 양식이 아니라 선의이리라. (…) 그러나 단점들의 다양성 또한 미덕들의 유사성 못지않게 찬탄할 만하다. 가장 완벽한 사람도, 다른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거나 그들을 격노케 하는 특유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프루스트의 견해에 필자는 “양식은 이 세상에서가장 널리 공유되고 있는 것이라는 데카르트의 말을 비틀어서, 선의의 보편성을 지적한 것을 보면, 프루스트는 분명 비관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물론 그런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지가지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 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에 나오는 무쉬킨과는 다르다. 무쉬키의 인간사랑은 결점조차 인용하는 무조건적인 것이지만, 프루스트의 경우에는 그것은 상대방의 결점을 알면서도 애써 눈감아주려고 할 때에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43-44쪽)라고 정의한다.
이 저작의 백미, 프루스트의 예술론
5년여에 걸친 방대한 독서기록의 마지막은 프루스트의 예술론에 할애되고 있다. 대서사시를 읽어 내려가며 프루스트에 투영해 필자 역시 자신의 예술론을 정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예술의 위대성은, (……) 진실된 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포착하고, 그것을 우리들에게 알리는 데 있다. 우리는 보통 이 현실로부터 유리된 채로 살아간다. 그 대신 판에 박힌 지식이 더 두텁고 더 단단해지면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그 현실로부터 멀어져 간다. 그래서 우리는 판에 박힌 지식이 차츰 두께와 둔감을 더해감에 따라서 더욱더 그 현실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름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인생인 그 현실을 모르는 채로 죽어갈 우려가 크다. 진실한 인생,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인생, 따라서 진정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인생, 그것이 문학이다. 이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는, 매 순간 예술가의 속에서와 모든 인간의 속에서도 깃들어 있다. 모든 사람의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깃들어 있다. 한데 사람들에게는 이 인생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밝히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과거에는 무수한 음화가 소용없이 가득 쌓여 있는데, 지성이 그것을 ‘현상(現像)’하지 않았기 때문이다”(384쪽)
프루스트 미학에서 매우 중요한 이 구절을 인용하며 필자는 “프루스트는 그곳에서 자기 인식에 있어서 지성(추상적 지식)이 무력하다는 것과 아울러 습관의 상실이 생활의 기반을 뒤집어엎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으며, “훌륭한 예술가들의 서로 다른 세계를 대할 수 있는 공중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발언은 지당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견해나 주장이라는 얄팍한 껍질을 뚫고 나와 가지가지의 다른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세계와 인생에 관해서 그만큼 더 풍부한 인식과 이해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술 작품의 가장 기본적인 의의”이며, “문체에 관한 그의 견해 역시 전폭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문체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비전(인생관과 세계관)의 표현이라는 명제를 뚜렷하게 피력한 것이다. 이 명제는 레오 슈피처의 그 유명한 『문체의 연구』로 더욱 풍부하고 깊은 성찰로 발전하고 오늘날에는 상식이 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체는 인간이다’라는 흔한 표현도 이와 유사한 뜻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우선 그 말의 원조인 18세기의 뷔퐁Buffon의 ‘문체는 인간 자신이다Le style est l’homme m?me’라는 주장의 본뜻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자. 박물학자인 뷔퐁은 과학은 일진월보하는 것이며 따라서 과학에 관한 글이 당대에는 아무리 타당했다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그 내용은 시효를 상실하고 그 글을 쓴 과학자의 명성도 잊힐 것이라는 온당한 인식을 피력한다.”(387-388쪽)고 정리하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91190885881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7월 02일 |
쪽수 | 390쪽 |
크기 |
126 * 194
* 34
mm
/ 519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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