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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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조선일보 > 2020년 8월 5주 선정
공쿠르 상 수상 작가이자 프랑스의 대표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여름비』(미디어창비)가 소설가 백수린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여름비』에는 뒤라스의 작품에 등장했던 주제들이 집약되어 있다. 망각과 광기, 침묵과 소리, 가난과 열정, 외면과 죽음이 마치 그물처럼 엮인다.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찾아 떠나려는 여정, 그 여로에서 뒤라스는 바보스러울 만큼 순수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몰두로 독자를 매혹한다. 1994년 뒤라스 연구자 김경숙의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이 소설은 절판 이후 오히려 애서가들 사이에서 필독해야 할 작품으로 회자되어왔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을 번역해 호평을 받으며 이제는 번역가로서도 이름을 알린, 주목받는 소설가이자 프랑스문학 연구자인 백수린의 감각적인 번역이 더해져 뒤라스 소설의 신세계를 펼쳐보인다.
작가정보
Marguerite Duras
1914년 베트남 지아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3년 프랑스로 귀국해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1943년 ‘뒤라스’라는 필명으로 첫 소설 『철면피들 Les Impudents』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누보로망’ 작가로 불리며, 영화 시나리오 작업 및 연출로도 주목받았다. 1984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대표작 『연인 L’amant』을 비롯해, 1995년 발표한 『이게 다예요 C’estTout』에 이르기까지 마흔여 권의 작품을 남기고 1996년 세상을 떠났다.
목차
- - 여름비
- 작가의 말
-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어머니는 교사의 의견에 동의했고 마침 잘되었다고, 동생들이 에르네스토의 부재에 익숙해져야 하며, 언젠가는 그들이 에르네스토 없이 지내야 할 것이고 게다가 언젠가는 모두 서로와, 그리고 영원히 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그들 사이에 머지않아 이별이 하나씩 생겨날 거라고. 그다음엔, 남아 있는 이들이 자기 차례가 되면 사라져갈 것이라고. 그것이 바로 인생이란다. _18면
에르네스토와 잔은 어머니 안에 그런 욕망, 버리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버리고 싶은. 사랑했던 남자들을 떠나고 싶은. 살고 있던 나라를 떠나고 싶은. 버리고 싶은. 도망가고 싶은. 사라져버리고 싶은. 그리고 그들은 어머니가 그걸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아이들은 그렇게 믿었다. 특히 에르네스토와 잔은 그들이 어머니 자신보다, 어머니의 기질에 대해서 더 잘 안다고 믿었다. _54면
어머니의 인생에는 잊지 못할 두 가지가 있었는데,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을 실어 나르던 야간열차, 그리고 이 아이, 에르네스토였다. _57면
신은, 에르네스토에게 있어, 그가 동생들이며 어머니와 아버지, 봄〔春〕 혹은 잔을 바라볼 때, 또는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을 때 언제나 그의 곁에 있는 절망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느 날 저녁 우연히 에르네스토를 바라보다가 자기를 쳐다보는 에르네스토의 예의 비통한 눈빛, 때로는 텅 빈 듯한 그의 눈빛에서 에르네스토 안의 절망을 발견했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에르네스토의 침묵이 신이며 동시에 신이 아닌 것, 삶에 대한 열정이자 동시에 죽음에 대한 갈망임을 알았다. _58면
어머니가 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비트리의 술집에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몇 달 동안 어쩌면 그보다 더, 몇 해 동안, 어머니는 기차의 그 남자를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기다림을, 그 남자와의 만남에서 얻은 행복의 일부처럼 생각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그것은 다른 어느 날과도 비교할 수 없는, 눈부신 밤이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어머니는 그날 밤 비트리에서도 그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몸을 떨었다. _61면
아이들에게는, 죽음이란 부모님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죽음에 대한 아이들의 두려움은 부모님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한다는 두려움과 마찬가지였다. _63면
에르네스토는 바람이라는 건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했다. 지식은 바람이라고, 고속도로를 휩쓸고 지나가는 무엇이면서 정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무엇이라고.
큰 남동생 하나가 그 지식이라는 것을 그림으로 어떻게 그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에르네스토가 대답한다. 그림으로 그릴 수는 없어. 왜냐하면 그것은 바람처럼 멈추지 않기 때문이지. 우리가 붙잡을 수 없는 바람, 멈추지 않는 바람, 말로 이루어진, 먼지로 이루어진 바람. 어떤 그림이나, 글로도 그걸 표현할 수는 없단다. _70면
잔은 어머니의 이름을 처음으로 발음해보았고, 인생을 경애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울었다. _115면
밤은 그곳에 다가와 있다, 아주 청명한 밤. 여름이다. 여름밤들이 시작되는 중이다. _171면
너와 내가 헤어진다는 건, 죽음을 의미하는 거야. 그건 똑같은 거야. _171면
자신의 숨결에 섞인 잔의 숨결 속에서, 그들의 눈물 속에서 에르네스토는 말한다. 오래전부터 나는 너를 사랑했네, 에르네스토가 말한다. _173면
사랑을, 에르네스토는 말한다, 그는 애석해했노라.
사랑을, 에르네스토는 되풀이한다, 그는 삶 이상으로, 자신의 활력 그 이상으로 애석해했노라.
그녀에 대한 사랑을. _193면
출판사 서평
천재 소년 에르네스토가 엿본 신과 인생의 비밀
필연적으로 망가질 수밖에 없는 한순간에 대한 찬가
“어머니는 교사의 의견에 동의했고 마침 잘 되었다고, 동생들이 에르네스토의 부재에 익숙해져야 하며, 언젠가는 그들이 에르네스토 없이 지내야 할 것이고 게다가 언젠가는 모두 서로와, 영원히 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그들 사이에 머지않아 이별이 하나씩 생겨날 거라고. 그다음엔, 남아 있는 이들이 자기 차례가 되면 사라져갈 것이라고. 그것이 바로 인생이란다.” _18면
‘누보로망’의 대표 작가로 일찍이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창작열을 꽃피웠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예술적 감수성이 폭발하는 소설 『여름비』는 소설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마저 매혹적인 작품이다. 1988년 혼수상태에 빠진 뒤라스가 4개월 만에 극적으로 깨어난 이후 완성해 출간한 『여름비』는 뒤라스가 1971년에 출간했던 동화 『아! 에르네스토』(Ah Ernesto!)와 이 동화를 바탕으로 그 자신이 제작한 영화 「아이들」(Les enfants, 1984)을 다시 확장해 쓴 소설이다.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그는 소설의 무대인 현실의 비트리를 열다섯 번 가까이 찾아 완벽한 소설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파리의 소도시 비트리에 살고 있는 열두 살 에르네스토는 어느 날 불탄 책 한 권을 발견한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에르네스토지만, 불현듯 불탄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시작한다. 피상적인 지식만 습득하는 학교 교육에 회의를 느끼며 등교를 거부하는 에르네스토. 불탄 책에 담긴 이스라엘 왕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신의 존재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삶의 허무를 깨닫는다. 에르네스토가 자신의 부모 형제들과 주고받는 대화에서 엿보이는 통찰과 함께, 여동생 잔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뒤라스의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들로 그려진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에 높은 관심을 보였던 뒤라스는 이 작품에서 소도시에 살며 정부 보조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가족을 앞세움으로써 다시 한번 가난하고 순수한 이들의 발화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에게서 파괴와 결별이 일어나기 전, 아직 모든 것이 완벽했던 유년 시절의 한때를 낚아채 필연적으로 망가질 수밖에 없는 한순간을 찬란하게 노래한다.
대중과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뒤라스의
다채로운 삶과 문학이 녹아 있는 아름다운 우화
어머니의 인생에는 잊지 못할 두 가지가 있었는데,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을 실어 나르던 야간열차, 그리고 이 아이, 에르네스토였다. _57면
“비는 시내 전역에, 강과 파괴된 고속도로에, 나무, 오솔길, 아이들이 지나던 비탈길에, 세상의 끝까지 떠돌아다닐 창고 옆의 서글픈 의자들 위에도 오열하는 파도처럼 세차게, 격정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_195면
『르 몽드』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목소리는, 들을 때마다 항상 우리의 심장으로 직행한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에 걸맞게,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작가들 중 뒤라스만큼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모두 받는 작가는 흔치 않다.
소설과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감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문체, 이를 구현하기 위한 실험적인 시도는 독자들 각자가 나름의 이유로 그의 작품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여름비』에서도 뒤라스의 실험은 이어진다. 이 작품의 한 줄기가 되어준 영화 「아이들」의 시나리오 상에 존재했던 실제 대사들 일부를 거의 수정하지 않은 채 소설 안에 삽입해놓았다. 이를 통해 뚜렷한 심리 묘사를 배제한 채로도 유년 시절의 찬란함, 비릿함, 쓸쓸함의 정서를 놀랍도록 감각적으로 구현해낸다.
유년 시절의 순수를 한 시절처럼 통과하며, 뒤라스는 다수의 작품을 통해 비로소 ‘본질적인 사랑’에 천착한다. 뒤라스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는 이러한 주제들은 소설과 희곡이 교차하는 그만의 소설적 특징으로 재현되며, 『여름비』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에 고스란히 담긴다.
마침내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이 소설이 한 편의 우화라는 것을, 삶과 죽음, 사랑과 절망, 그리고 무엇보다 유년 시절에 대한 쓸쓸하고도 찬란한 우화라는 것을 알았다. 『여름비』가 아름다운 건 그것이 필연적으로 망가질 수밖에 없는 한순간에 대한 찬가이기 때문은 아닐까.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작품과 삶 모두에서 동시대인을 매료시킨 작가, 뒤라스
주목받는 소설가 백수린의 번역으로 새롭게 태어나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버지니아 울프, 아니 에르노, 실비아 플라스와 함께 전위적이고 여성적인 글쓰기의 대표 작가로 손꼽힌다. 뒤라스가 문학을 통해 다루고자 했던 순수와 욕망, 고통과 결여는 성의 이분법적 구별을 넘어 인간 총체의 근본적인 고민을 다루며 여성주의 소설의 외연을 확장한다.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데 성공한 뒤라스의 삶은 소설과 희곡, 영화 등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을 거울처럼 비춘다. 『여름비』 속 이탈리아 출신 노동자였던 아버지와 코카서스 인근 출신으로 추정되는 어머니의 등장이 베트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뒤라스가 느꼈던 이방인이라는 정체성과 겹쳐지듯이.
대학에선 프랑스문학을 전공하고, 시몬 드 보부아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소설가 백수린의 감각적인 번역은 『여름비』의 재탄생에 미더움을 더한다. 아주 오랫동안 뒤라스와 그의 작품을 사랑해온 백수린의 번역을 통해, 소설과 함께 음악과 장면이 연이어 떠오르는 희곡적인 특징, 소설이라기보다 시에 가까운 감각적인 문체 등 원문의 매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의 주목받는 소설가 백수린, 그리고 20세기를 넘어 당대에까지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프랑스의 대표작가 뒤라스의 만남.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여름비』는 뒤라스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심장을 직격하는 작품이자, 우리 시대의 문학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0758154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8월 25일 |
쪽수 | 216쪽 |
크기 |
128 * 188
* 22
mm
/ 292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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