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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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나익주
전남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대학원과 전남대 대학원에서 영어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UC버클리대 언어학과에서 객원학자로서 은유와 인지언어학을 공부했다. 전남대와 충남대, 광주교대에서 강의했고 광주여고, 서강고, 광주상고 등에서 영어를 가르쳤으며 광주 지산중학교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담화인지언어학회의 학술지 『담화와 인지』 편집위원과 한겨레말글연구소의 연구위원을 맡고 있으며, 전남대 인문사회 학술연구교수이다.
소수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소망하면서 언어와 은유가 어떻게 우리 삶을 지배하는가를 밝히는 연구를 수행해왔다. 은유 이론과 정치적 프레임 이론을 소개한 『조지 레이코프』(2017)를 쓰고 『비유의 인지언어학적 탐색』(2014)과 『어휘 의미의 인지언어학적 탐색』(2015)을 공저했으며, 『삶으로서의 은유』(1995/2006 공역), 『몸의 철학』(2003 공역), 『개념 영상 상징』(2005), 『프레임 전쟁』(2007), 『자유 전쟁』(2009), 『이기는 프레임』(2016), 『지구적 불평등』(2019), 『과학의 은유: 진리 만들기』(2020 공역) 등의 역서를 펴냈다.
목차
- 서장. 은유가 삶을 지배한다
1장. 교육을 지배하는 은유
시장주의에 내몰리는 교육 / 전장이 되어버린 학교 / 교육의 본질을 묻는다
2장. 경제적 사고와 은유
품절되고 반품되는 사람들 / ‘적폐 청산’, 무엇을 어떻게? / 세금이 정말로 폭탄일까? /
퉁퉁 불어터진 국수를 먹는다는 경제
3장. 국제 관계를 지배하는 은유
전쟁의 언어, 평화의 언어 / 전쟁이 의료 행위인가? / 일본의 보복은 조폭의 행위 아닌가?
4장. 성과 사랑의 은유
여성이 횟감인가, 자연산이게? / 왜 사랑에 굶주린다고 할까? / 사랑을 측정할 수 있을까?
5장. 사회적 재난과 은유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 책임 회피의 파노라마, 세월호 참사 /
끝없는 탐욕과 죽음의 외주화
6장. 개신교 세계관과 은유
군사 쿠데타 주모자를 ‘여호수아’라던 조찬 기도회 / 4대강 개발과 동성애, 그리고 은유 /
개신교 세계관은 어디에서 오는가?
책 속으로
흔히들 오늘의 한국 사회는 내부적으로 치열한 프레임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전쟁의 목표는 땅과 같은 물리적인 대상이 아니라, ‘정의’, ‘자유’, ‘평등’, ‘공정성’, ‘안전’, ‘책임’, ‘차별’ 등 가치를 담은 개념의 해석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좌파 대 우파’의 대결이나 ‘독재 대 민주’의 대결은 개념의 해석을 둘러싼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개념 전쟁은 곧 프레임 전쟁이다. 개념의 해석은 프레임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레임과 은유는 둘 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구조물로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프레임 전쟁이 곧 은유 전쟁이다. (8쪽)
레이코프와 존슨은 『삶으로서의 은유』에서 우리의 사고 과정 대부분이 은유적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도 당연히 은유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언어적 사례뿐 아니라 예술, 영화, 의례 등의 비언어적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은유는 사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지 기제이며 개념적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새로운 학설은 ‘개념적 은유 이론(conceptual metaphor theory)’이라 불린다. (16쪽)
은유는 단순히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넘어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를 결정할 수도 있다. 이 책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는 교육, 경제, 국제 관계, 성과 사랑, 사회적 재난, 개신교 세계관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언어 표현들을 분석함으로써, 추상적 개념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어떤 은유로 살아가고 있는지, 은유가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더 분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22쪽)
소수의 승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시장 만능주의 무한 경쟁의 극단적 형태인 전쟁의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교육(입시)은 전쟁] 은유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나아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이 은유는 하루속히 폐기하고 다른 관점의 은유가 우리의 사고 속에, 우리의 삶 속에 뿌리내리도록 우리 모두가 전력을 다해야 한다. (40~41쪽)
‘세금 폭탄’은 그 어구를 도입한 보수뿐 아니라 진보도 별다른 성찰 없이 그대로 사용한다. 중산층 봉급자의 세율 부담과 간접세 확대를 통해 세수 부족을 메우려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꼼수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우리는 ‘세금 폭탄’이라는 어구를 공적 담화의 장에서 추방해야 한다. 초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려는 보수적인 정부를 비판할 목적이라 할지라도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세금 폭탄’과 같은 어구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표현의 반복적인 사용이 세금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공포 이미지를 조장하는 보수의 ‘폭격’ 프레임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84~85쪽)
의료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활동이지만, 전쟁은 선제 타격에 의하든 대응 타격에 의하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살상하고 유구한 문화유산과 삶의 토대인 사회 기반 시설을 파괴한다. 이러한 점에서 [전쟁은 의료] 은유는 실재를 심하게 왜곡한다. 한마디로, 이 은유는 한반도 북쪽에 사는 동포들뿐 아니라 남쪽 우리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외과 수술적 선제공격’이나 ‘예방적 타격’을 언어생활에서 계속 사용해야 할까? (116쪽)
2015년 말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창조적 대안을 이끌어냈다고 발표한 합의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합의문에는 국가가 자행한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범죄에 대해 일본 정부의 법적인 책임을 묻는 내용도, 일본 정부가 그런 사실을 인정한다는 내용도 없었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진정으로 감정이입을 했을까? ‘위안부’ 피해자들을 처치 곤란한 ‘물건’으로 본 것은 아닐까?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내기로 했다는 10억 엔의 기금을 ‘어떤 이름의, 어떤 성격의 돈’이라고 생각하고 덜컥 합의했을까? 한마디로, [위안부는 물건] 은유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적게는 3만 명에서 많게는 22만 명에 이른다는 여인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절망, 죽음을 초래한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밑바탕에 깔린 은유-[성적 상대자는 물건(음식)]-를 한국인들이 별다른 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그것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파악하는 은유적 사고가 개개인은 물론 사회적 의식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149쪽)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이러한 배타성의 강화는 우리를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에 빠뜨리며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더 나아가 차별과 소외에 그치지 않고 ‘밖’의 수많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실제로 우리는 기업이 최대한의 이익 추구를 위해 위험한 일을 ‘밖’의 사람들-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인-에게 맡기는 ‘위험의 외주화(外注化)’에서 이러한 안타까운 죽음을 일상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삶은 전쟁]이 아니라 [삶은 모두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모두가 연대할 때에만 깨뜨릴 수 있는 이 배타성은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다. 안 그러면 누구든 ‘안’에서 ‘밖’으로 밀려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카이대’나 ‘인서울대’라는 신조어가 발붙일 수 없는 세상은 꿈속에나 있을까? (216쪽)
‘전두환’과 ‘4대강 개발’, ‘동성애’라는 쟁점 외에도 한국의 개신교는 사형제, 낙태죄 폐지, 난민, 타 종교, 종교인 과세 제도, 대북 관계, 대일 관계 등 세계 내의 동일한 수많은 현상을 두고서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있다. 더 상세하게 파고들어 보아야 하겠지만, 각각의 쟁점에 대한 보수 기독교인들과 진보 기독교인들의 대립적인 인식 역시 성서를 해석할 때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성 체계와 자애로운 부모 가정의 도덕성 체계 중 어느 체계를 적용할 것인지와 관련이 있을 터이다. (247~247쪽)
출판사 서평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조지 레이코프
_ 은유 사회 한국의 프레임 전쟁
1990년의 마지막 날, 1차 걸프전을 앞두고 이메일로 배포한 글에서 조지 레이코프는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 보수 언론이 임박한 전쟁을 은유를 통해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려고 쓴 글이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글은 전쟁을 막지 못했고, 그 결과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정의의 전장’으로 나가 죽음을 맞이했다. 은유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명확한 사례였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 레이코프는 ‘프레임(frame) 이론’으로 미국 정치 담론을 분석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이론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 이제 ‘프레임’은 한국 사회에서 거의 일상어가 되었다. 이는 프레임이 한국의 현실 분석에도 그만큼 유용하다는 말이고, 한국 사회에 은유가 그만큼 넘쳐난다는 말이다. 흔히 말하듯, 한국 사회에서는 프레임 전쟁이 한창이다. 이 전쟁의 목표는 영토 같은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정의’, ‘자유’, ‘평등’, ‘공정성’ ‘차별’ 등 가치를 담은 개념의 해석을 차지하는 데 있다. 이른바 진보 대 보수의 대결은 개념의 해석을 둘러싼 전쟁이다. 그리고 개념 전쟁은 곧 프레임 전쟁이다. 개념의 해석이 프레임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레임과 은유가 둘 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구조물로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프레임 전쟁은 곧 은유 전쟁이다.
_ 우리에게 은유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
이 은유 전쟁에서 보수가 크게 성공한 사례가 바로 [세금은 폭탄] 은유다. 노무현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준비하던 2004년 말에 처음 언론에 등장한 ‘세금 폭탄’이라는 어구는 과세 대상인 부동산 초부유층 2퍼센트뿐 아니라 그와 무관한 일반 서민의 마음까지 폭넓게 사로잡아 반대 여론 확산의 기폭제 노릇을 하였고, 급기야 정권의 위기까지 불러오게 되었다. 지금도 정치권에서 증세 이야기만 나오면 우선 도리질부터 치는 것도 [세금은 폭탄] 은유의 생명력이 여전하기 때문이고, 여든 야든 누구도 ‘폭탄 돌리기’의 희생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은유는 단지 수사적 효과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사고와 삶을 실제로 지배한다. 우리가 은유의 의미와 기능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각종 프레임과 은유가 경합하는 전장에서 살아남게 해줄 은유 리터러시(literacy)가 필요한바, 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가 바로 그 요구에 답하는 데 있다. 저자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 전쟁이 어떤 현상을 해석할 때 우리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은유 체계의 상이함에서 비롯한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중요한 관심사인 ‘교육’, ‘경제’, ‘국제 관계’, ‘성과 사랑’, ‘사회적 재난’, ‘개신교 세계관’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논쟁에 어떤 은유가 깔려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풍부한 사례를 통해 진행되는 그의 분석을 따라가면, 주요한 사회 영역에서 한국인의 사고와 삶을 지배하는 은유들을 알고 그 의미와 기능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_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진보의 언어’
진보와 보수의 개념, 프레임, 은유 전쟁에서 저자는 시종일관 진보의 입장을 견지한다. 그런 저자가 한편으로 아쉬워하고 한편으로 경계하는 것이 프레임 또는 은유의 작동 원리에 대한 진보의 이해 부족이다. [세금은 폭탄]을 다시 한 번 예로 들자면, 진보 쪽에서 “세금은 폭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프레임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는 주장일 따름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자꾸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듯이, 프레임에 대한 부정은 오히려 그 프레임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진보가 할 일은 분명하다. 보수의 프레임을 부정할 게 아니라, 진보의 가치를 담은 대안 프레임, 대안 은유를 제시해야 한다. 즉, [세금은 폭탄] 대신에 [세금은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공동 자산] 은유를 내세워야 한다.
2018년 노회찬 의원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을 때, 그이의 품격 있는 유머와 촌철살인의 비유를 더 들을 수 없게 되었다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진보의 대변인을 잃었다며 많은 이들이 상실감에 젖었다. 맞는 말이지만, 오해는 말아야 한다. 그가 진보의 대변인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머와 비유에 능한 수사법의 달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진보의 가치를 대중이 공감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ㆍ경험과 연결해 표현할 줄 아는 은유의 달인이었고, 그 결과가 바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유머와 비유였다.
진보의 정치적 무능은 진보 언어의 부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수의 프레임에서 잘못된 점을 찾는 데 급급하고, 그 이유를 대중에게 논리적 이성적으로 설명하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 계몽주의에서 한국의 진보는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진보는 진보의 가치를 진보의 언어, 진보의 은유로 소통함으로써 그에 공감하고 가치 실현에 함께할 정치적 주체를 확보해야 한다. 이 책은 그 여정, 더 나은 사회, 더 살 만한 세상을 이루려는 실천 과정에서 좋은 동행자가 될 터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0635073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11월 20일 |
쪽수 | 248쪽 |
크기 |
141 * 206
* 18
mm
/ 347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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