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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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소설을 배우고 쓴다는 것은 나에게 단순한 글쓰기의 영역이 아니었다. 소설이란 놈은 고집이 세서, 내게 끊임없이 세상을 똑바로 보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래야만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그래서일까?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소설가라고 소개하지 못한다. 소설가라는 이름이 가진 책임감과 무게가 버겁고, 과연 내가 그렇게 불릴 수 있을 만큼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설을 놓으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만큼 소설이 내 인생에서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나는 애초에 천부적인 재능 같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다. 스스로 아둔하지 않다고 여길 만큼의 머리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끊임없이 쓰는 것뿐이었다. 끊임없는 글쓰기의 결과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읽는 이의 마음 한 자락이라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소설로 탄생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바랄 것은 없을 것이다.
목차
- 작가의 말
껍데기
다리, 위의 사람들
딸꾹질
미로
스마일맨
실종
에어백
피규어
햄스터
◆작품해설_
비인간적인 사회를 향해 던지는 인간적인 사람들의 이야기 / 정수남 265
추천사
-
김나영 소설 역시 대부분의 제재는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일터, 기업과 같은 신변잡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제재 속에서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냉철함, 그리고 이 세상과 대결하는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통해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자신의 목소리를 끝까지 견지하고 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 될 것이다. 정형화된 소설의 기법을 이따금 벗어나는 그의 과단성 있는 작의(그래서 때로는 조금 도식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구태의연함에 매여 있지 않다는 부르짖음으로 핍절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자유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작가의 정신세계라고 볼 수 있다.
책 속으로
나는 마지막으로 감정서에 내 이름과 사인을 넣는다. 다이아몬드를 감정서와 함께 케이스에 넣기 전 살며시 들어 입을 맞춘다. 다이아몬드를 마주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차갑다. 플라스틱 조각처럼 미적지근한 큐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도도한 차가움이 있다. 그저 자신만의 색을 발할 뿐, 주위의 어떤 색도 통과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이미테이션이 존재하지만, 세상의 어느 것도 다이아몬드를 흉내 낼 수 없는 이유이다. (「껍데기」 중에서)
밤이 깊어지면, 한강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릴 뿐이다. 한강 다리는 화려하지만, 빛을 등진 다리 아래는 더 어둡고 깊다. 그리고 다리 아래를 흐르는 강물은 무서운 비밀을 감추고도 아무것도 모른 척 음험하게 흐르고 있다. 마침 고요함을 깨뜨리며 다리 위를 가르는 사이렌 소리가 또 들리지만, 이내 정적 속에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강물은 찰나의 소리만을 남길 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뗀다. 누군가의 절망을, 고통을, 꿀꺽 삼키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다리 위의 사람들」 중에서)
나는 무럭무럭 살이 차오르고 또 근육이 알맞게 자리했다. 그렇게 가장 성실하게 살을 키운 나는 게으른 놈과 함께 큰 트럭에 실려 갔다. 게으른 놈은 목청껏 발악했다. 원래도 툴툴대기 일쑤던 놈은 짧은 다리를 버둥거리고 비대한 몸을 벽에 부딪혔다. 나는 발버둥 치지 않았다. 그렇게 쏘다니던 내가 캑캑대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가만히 구석에 숨죽이고 앉아 있었다. 게으른 놈이 거칠게 나를 몰아세웠다. 병신같이, 병신같이 이러려고 열심히 먹어댔냐, 열심히 살아댔냐,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만약에 내가 나의 운명을 알았더라도 열심히 먹어댔을까? 운명을 알았더라도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희망을 노래하지 않으면 열심히 산 게 허무하지 않겠냐며, 나는 게으른 놈을 향해 슬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순간 강한 전류가 내 몸을 관통했다. (「스마일맨」 중에서)
놀란 남자가 허둥지둥 그녀를 안내한다. 남자의 손에는 라면 봉지가 들려 있다. 그녀는 신고 온 검은색 가죽 단화를 벗어 앞코가 문 쪽을 향하게 가지런히 놓는다. 거실은 남자와 어울리지 않는 꽃무늬가 수 놓인 면 카펫이 깔려 있다. 갈색 가죽 소파 위에는 남자가 좀 전까지 입고 있었던 단추 떨어진 재킷이 놓여 있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나비 주름의 하얀 시폰 커튼이 수줍게 하늘거린다. 그리고 거실 벽면에는 환하게 웃는 신혼부부의 사진 액자가 걸려 있다. 그녀의 시선이 액자에 멈추자, 남자가 어쩔 줄 몰라 한다. (「실종」 중에서)
나는 보름 만에 깨어났다고 했다. 의사는 처음 내가 병원에 실려 왔을 때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외상은 심각하지 않았으나 심장이 멈춰 몇 번의 심폐소생술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고 했다. 그때의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듯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부러진 갈비뼈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의사는 심장이 멈췄던 까닭이 에어백에 의한 가슴 압박이라고 했다. 나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장착된 에어백이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갈 뻔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니……. 할 수만 있다면 에어백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올 대답은 뻔했다. 사고의 순간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서 부풀었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최선이라는 그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 단어인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희미한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뗐다. 하지만 그 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한 채 산소호흡기 안에서 뿌연 김만 서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에어백」 중에서)
그녀의 입술에 어울릴만한 빨간 립스틱을 사서,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의 회사 앞에서 기다렸다. 유리 회전문이 빙글빙글 돌아가자 여직원들이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를 내며 발맞추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가고 난 후, 어떤 남자와 나란히 걸어 나오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남자를 향해 손뼉을 치며 자지러지듯 웃었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의 얼굴이 순간 석고상처럼 굳어졌다. 나는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누구냐고 물었다. 그녀는 입사 동기라며 인사를 시켜주었다. 남자는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자면서 능글맞게 웃었다. 마치 침을 흘리며 사자의 먹잇감을 엿보는 하이에나 같았다. (「피규어」 중에서)
출판사 서평
이 소설은
김나영 작가가 등단 5년 만에 묶어내는 첫 작품집으로 9편의 작품을 싣고 있다. 『스마일맨』의 9편 소설 대부분은 서사의 발화점이 허구인 상상에서 출발하여 현실 세계와 접목되는 구조로 짜여있는데 김나영 작가의 탁월한 이야기꾼 재능이 적재적소에서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다양하고 복합적인 보여주기를 통해 독자들과의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짜임새도 뛰어나다.
「껍데기」는 다이아몬드 감정사의 삶과 사랑, 그리고 아버지가 선물한 가짜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어머니와 친구를 통해 ‘가짜’와 ‘진짜’의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독자들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다. 「다리 위의 사람들」은 김나영 작가의 등단작으로 강물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카메라로 찍어내듯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자살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현’, ‘명국’, ‘앨비스’ 등,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삶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딸국질」은 주인공의 전생 기억을 통해 남녀에 대한 차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을 시공간 초월의 구조로 현재와 교차시키는 페미니즘 소설이다. ‘딸국질’이라는 소도구를 반복해 독자의 자의식을 일깨우는 작가의 의도가 돋보인다. 「미로」는 김 과장이라는 평범한 소시민을 3인칭 주인공으로 내세워 출구가 보이지 않은 소시민의 현재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사람 관계 속 힘의 도미노 현상을 우화적으로 드러낸 이 소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현대인들의 속성을 잘 표출하고 있다. 표제작인 「스마일맨」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주인공뿐만 아니라 나와 우리, 그리고 이웃의 폭넓은 공감대를 선명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금력을 앞세운 가맹점 본부장과 안 대리 등의 은근한 횡포와 압력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정서를 풍자하고 있다. 「실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쓰레기 같은 인생이라고 자탄하는 주인공인 두 인물을 1인칭과 3인칭으로 교차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사연을 적절하게 직조하고 있다. 그 결과 소설의 서사가 개인적 사유에 그치지 않고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작고 쓸모없이 보이는 무명씨들의 삶으로까지 그 지평을 확장 시키고 있다. 「에어백」은 주민센터 직원들과 김 할머니 그리고 새 자동차를 구입한 주인공 ‘나’와 또 ‘나’의 친구인 은수의 삶이 ‘에어백’을 매개체로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주변의 소외된 인물을 등장시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피규어」는 어릴 때부터 화가 나면 장난감을 아무 데나 집어던지는 분노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나’와, 애인을 임신시키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친구 ‘성재’, 그리고 강아지를 학대하면서도 그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옆집 여자가 일으키는 갈등구조가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온다. 이 소설은 우리가 다양한 동작을 일으키도록 만들어진 피규어가 아날까하는 자각을 통한 인간성 회복을 역설한다. 「햄스터」는 삶의 현장에 늘 공존하는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소외되거나 배제된 부류의 삶이 어떻게 훼손되어 가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적대관계와 연대관계 그리고 방관자가 함께 공생하는 삶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햄스터와 같은 보잘것없이 조그마한 동물과 주인공의 힘들고 고단한 삶을 동일 선상에 놓고 서로 보완하는 서사가 압권이다.
김나영 작가의 소설 『스마일맨』은 이처럼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편승해 살아가는 형이하학적인 사람들과 거기에서 밀려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예리한 시선은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시민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소외와 공정성의 문제가 발생하는 현장에 늘 머무르고 있다.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의 현장이지만 그곳이 곧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작가는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냉철함, 그리고 그런 세상과 끈질기게 대결하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세계를 통해 훌륭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 결과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자신의 목소리를 끝까지 유지하면서, 소시민들이 비인간적인 사회를 향해 던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의 현재를 폭넓게 수용하는 세계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91190526463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9월 10일 |
쪽수 | 284쪽 |
크기 |
142 * 210
* 21
mm
/ 454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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