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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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서 사랑을 꿈꾸는 일곱 편의 이야기
절정에 이른 날렵한 필치가 돋보여 ‘이정은 소설의 결정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신작소설은 불멸을 꿈꾸는 인간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 펼쳐 놓은 표제작 「불멸」을 비롯하여, 청춘의 사랑과 이별의 행로를 밀도 높게 그린 「미경이」,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애서가(BIBLIOPHILE)를 사실감 있게 묘사한 「책도둑」, 196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갖가지 삶의 에피소드가 드라마처럼 혹은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펼쳐지는 「시간여행자」, 사랑했던 두 남녀의 시선이 각각 교차하면서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몸의 지도’ 제작 과정에 빗대어 탐구해 들어가는 「미로」, 춤을 소재로 하여 자유를 꿈꾸는 세계를 그린 「자존감 수업」등을 만나 볼 수 있다.
독자는 이렇게 읽었다. “언제 펼쳐보아도 ‘오늘’이 될 수 있는 작품. 이정은의 작품은 이렇게 불리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심리소설과 추리소설 그라고 연애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글이 우리의 영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충실하며 꾸준한 집필로 독자의 기대에 부응한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반향을 일으키며 독자적인 세계를 추구해 온 이정은 소설가의 신작, 『불멸』은 책 읽는 재미를 선물하고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작가정보
소설가· 본명 이수희.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용인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고려대학교를 중퇴하고 결혼 후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을 졸업. 1989년 『월간에세이』에 수필로 추천받고 1991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소설 ‘부화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첫 소설집 『시선』을 출간한 이래 가정주부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작업 중에는 새벽 3, 4시에 일어나 오전까지 글을 쓰고 오후에는 도서관에 가 독서를 하거나 동네를 산책하며 작품 구상을 하는 습관을 수십 년째 계속하고 있다. 이정은 작가는 소재나 분량에 구애되지 않고 꾸준한 작품 활동과 치열한 작가정신은 많은 젊은이들의 롤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정은은 최근 10년 간 엄청난 양의 작품을 소화해냈다. 해마다 2000매 이상을 쓰는 것으로 추측된다. 2009년 소설집 『세 번째 기회』로 제11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을, 2011년 장편소설 『웰컴 아벨』로 제7회 만우박영준문학상을, 2012년 중편소설 「무인도」로 제1회 아시아 황금사자문학상 우수상을, 2012년 장편소설 『매혹』으로 제12회 들소리문학상 대상을, 2017년 단편소설 「왕이 귀환하다」로 제42회 한국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을 거쳐 한국소설가협회 최고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장편소설 『너의 이름을 쓴다』, 『신화는 계속된다』, 『태양처럼 뜨겁게』, 『블루 인 러브』. 『웰컴 아벨』, 『매혹』, 『그해 여름, 패러독스의 시간』, 『플러스섬 게임』 등이 있고, 소설집으로 『시선』, 『불멸의 노래』, 『하얀 여름』, 『세 번째 기회』, 『세상에 말을 걸다』, 『피에타』, 『불멸』 이 있다. 공저로 『한·중 정예작가초대소설집』 등이 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만우박영준문학상, 아시아 황금사자문학상 우수상, 들소리문학상 대상, 한국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 불멸 ·007
미경이 ·019
아모르, 아모르 미오 ·151
책도둑 ·183
시간여행자 ·235
미로 ·271
자존감 수업 ·301
해설 | 김성달(소설가)
시간을 초월하는 예술가의 초상 ·337
작가의 말 ·355
추천사
-
이정은 작가의 소설은 가슴으로 읽어야 그 의미가 진정으로 다가온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삶을 모티프로 한 철저한 문학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
우리는 도저히 이 소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선을 잡아끄는 스토리가 우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몰락하는 인간 앞에서 최소한의 가치를 찾아가는 작가의 시선이 빛을 발한다.
-
치열한 작가의식과 그것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서술 방식이 돋보이는 놀라운 소설이다. 불멸을 꿈꾸는 열망이 오늘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면서 우리에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해준다.
책 속으로
그즈음 어떨 때는 꿈에서도 글자들이 나타났다. 눈앞에 문장들이 책처럼 쫙 펼쳐지는 것이다. 모두 멋진 문장이었다. 여태껏 그토록 완벽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눈을 뜨면 문장이 한 줄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로 옮겨보려 몇 번 시도한 적이 있는데 정리하려고 보면 수첩에는 모호한 단어들 몇 개만 적혀 있었을 뿐이다. 거기에 왜 그런 단어들이 적혀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꿈속에 본 문장은 적어 낼 수는 없더라도, 벌건 대낮에 생각나는 것을 적어나가는 것은 가능하다. 생각을 요약해서 적기. 나는 짧은 문장으로 적어 나갔고, 관련되는 내용을 기호나 그림으로 나타냈다. 중요한 단어는 별표나 동그라미를 쳤다. 하지만 나중에 수첩을 읽어보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화가 난 나는 수첩을 어딘가에 처박아버렸다. 지금쯤 책상 서랍 속, 어딘가에 뒹굴고 있을 것이다.
--- 「불멸」 중에서
그는 나를 사랑했고 소설을 사랑했고 불멸을 꿈꾸었다. 참 잘 쓰셨네요! 그녀 한 마디를 듣고 싶어 한 그였다. 등단작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려고 바라보던 시선, 혹 칭찬의 말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말없이 읽고 책장을 덮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묵살한 것이다. 예상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섭섭했을 것이다. 왜 한 부분이라도 괜찮다고 말해 주지 못 했을까. ‘아, 너는 모질고 인색했다.’ 그것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중략)…그 남자를 상상해 본다. 그는 이마를 양 무릎 사이에 처박고 십자가 앞에 몸을 움츠린 채 엎드려 있다. 그는 무슨 기도를 드리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가 무슨 기도를 했는가를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것은 알 수 있다. 불멸. 그는 이 말을 원했다.
--- 「불멸」 중에서
“우리, 어디로 갈까?”
미경이 속삭였다. 막연히 걷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어디 여관이라도 들려서 쉬었다 가자고 말하기엔 쑥스러웠다.
“네가 가고 싶은 데로.”
미경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육교 계단을 오르던 미경이가 멈추어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정말…… 나랑 같이 있고 싶어?”
미경은 낮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녀는 웃음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았고 나는 육교 건너편에 깜박이는 불빛을 향해 눈짓을 했다.
--- 「미경이」 중에서
강만길은 며느리 주위에 나쁜 놈들이 넘볼까 봐 눈알을 부라리고 살폈다. “어느 놈이고 잡히면 망신을 주거나 죽여버린다”고 벼르고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순덕에게 호감을 가진 동리 젊은이들은 강만길 눈이 무서워 순덕에게 접근을 못 했다.
“그놈의 영감탱이가 며느리를 누가 잡아먹나?”
“지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던데.”
“젊은 며느리를 생과부로 만들려고 한심한 늙은이 같으니라구.”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다. 소문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도 순덕언니 근처에 가기를 꺼릴 뿐 아니라 집적거리는 일은 엄두도 못 냈다. 다음 해 겨울 순덕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갔다.
봉구씨는 순덕언니 가족과 서로 돕고 살던 처지라 섭섭해서 눈물을 삼켰다. 강만길은 봉구씨와 며느리와의 관계가 다소 수상했지만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아니다. 봉구씨는 순덕이 떠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들의 이사를 도와주기로 한다. 그들 가족이 안착한 곳은 서울 변두리에 있는 하꼬방 단칸방이었다.
--- 「아모르, 아모르 미오」 중에서
그가 갖고 있는 책은 특이했다. 모두 같은 위치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더러는 황금색의 직인도 눈에 띄었다. 내가 의아해하는 것을 보고는 그가 옆에서 설명을 곁들였다.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책(冊) 도장’을 찍는다는 그는 자신의 책이자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증표로 책에 도장을 찍는다고 했다.
“‘책 도장’이 뭔가요?”
“장서인(藏書印), 장서표(藏書表), 서화인(書畵印) 같은 걸 말합니다. 일종의 스탬프 같은 걸로 장식 등을 목적으로 책에 찍거나 책에 붙이는 겁니다. 장서인에는 자신의 이름이나 글귀 등을 새기고 서화인에는 그림을 곁들입니다. 손으로 책에 눌러 찍어요.”
--- 「책도둑」 중에서
어느 날, 남편과 경수가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오전에 시작한 바둑은 점심때가 지나도 끝날 줄 몰랐다. 둘은 바둑돌을 만지작거리며 바둑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배가 고파서 허둥지둥 부엌에서 한술 뜬 밥이 식중독인지 체했는지 위경련이 일어났다. 허리를 펼 수도 없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복통이었다. 장롱 서랍에 있는 진통제를 찾아 먹었다. 오래 묵은 약인지 모르고, 약국에서 진통제라고 해서 사다 둔 약이었다. 나는 일 년에 한번쯤 위경련이 앓았다. 그때 먹다 둔 약이었으니 일 년은 지났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난 이후로 배가 빵빵하게 부풀더니 구토가 나오고,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빙빙 돌았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한 시간을 굴러도 그놈의 바둑은 끝나지 않는다. 보다 못한 경수가 한마디 한다.
“아저씨, 아줌마가 아프다잖아요. 그만두시지요.”
경수의 말을 남편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아마도 “저러다 낳겠지” 생각했는지 “생명이 위험한 정도는 아디다,”고 여겼는지 태평한 얼굴이다.
--- 「시간 여행자」 중에서
나는 단 한 사람, 당신의 몸 지도를 갖고 싶어요. 해부도가 아닌 감정지도. 나만의 사랑의 칩, 아무도 모르게 나 아니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불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칩을. 그 칩을 숨기려고 내가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중략)…미로 씨 나는 아무리 얽힌 미로라도 찾아내고 말거예요. 난 내가 생각한 것을 한 번도 물러선 적이 없거든요. 당신이 아무리 도망을 쳐도 결국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주문을 외우고 기다리노라면 나타날 것이거든요.
--- 「미로」 중에서
처음으로 필드에 나갈 때 당신은 속으로 말했다. 세상을 향하는 첫 걸음이라고. 필드를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움이 없애야 한다고. 춤을 추기 위한 플로어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중략)… 필드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이며 터닝 포인트.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놀라운 에너지를 가진 당신은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제 당신이 필드에서, 세상의 중심으로 날아오를 차례다. 노트북이 든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당신은 지하철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 「자존감 수업」 중에서
출판사 서평
시간을 초월하는 예술가의 초상
한국소설문학상 수상작가 이정은의 『불멸』.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쳐온 이정은의 일곱 번째 소설집으로 예술가의 초상 같은 작품이다.
절정에 이른 날렵한 필치가 돋보여 ‘이정은 소설의 결정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신작소설은 불멸을 꿈꾸는 인간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 펼쳐 놓은 표제작 「불멸」을 비롯하여, 청춘의 사랑과 이별의 행로를 밀도 높게 그린 「미경이」,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애서가(BIBLIOPHILE)를 사실감 있게 묘사한 「책도둑」, 196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갖가지 삶의 에피소드가 드라마처럼 혹은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펼쳐지는 「시간여행자」, 사랑했던 두 남녀의 시선이 각각 교차하면서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몸의 지도 제작 과정에 빗대어 탐구해 들어가는 「미로」, 춤을 소재로 하여 자유를 꿈꾸는 세계를 그린 「자존감 수업」등을 만나 볼 수 있다.
표제작 중편소설 「불멸」의 주인공은 매력적인 소설가 설정주이다. 소설을 쓰기 위한 절대적인 자유를 위해 혼자서 살며 모든 노력을 글쓰기에만 기울이는 설정주가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설정주 못지않게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기문이라는 인물의 소설 쓰기에 대한 집념과 그 변화 과정이다. 남기문은 설정주에게 맹목적이리만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애를 한다.
남기문은 그녀가 소설가로서 훌륭한 작품을 쓰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자신도 소설을 공부해서 책을 펴내고 그 속에서 영속적인 삶을 구하려는 집념을 보인다. 그러나 끝내 책r을 펴내지 못한 채 암으로 죽게 된다. 그렇게 되자 여자 주인공은 과거에 자기가 그에게 보였던 오만함을 반성하고 죽은 그에게 사랑과 연민의 정을 보내며, 자기 역시 문학에서 영속적인 삶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심리소설과 추리소설 그리고 연애소설!
「미경이」에서는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온 화자가 첫사랑 미경을 만나러가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청춘의 사랑과 이별의 행로를 밀도 높게 그려낸 작품이다. 청춘의 단면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우리 시회의 세태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책도둑」은 소설가인 주인공이 만나게 된 한 애서가(bibliophile)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모든 사건은 ‘책’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어느 날 ‘나’는 소설가들의 모임에서 만난 어떤 남자(신준식)가 유명 월북 작가의 친필원고를 훔치는 것을 본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그에 대해 점점 알아가게 된다. 그들은 책을 통해 수렴되는 서로의 관심사와 공통점을 중심으로 엮여지고 서로 친밀감을 느낀다.
그러나 한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찾아가는 엽색가처럼, 책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욕망은 늘 채워지지 못한다. 그는 구하기 힘든 책들을 몰래 훔쳐다가 자신의 장서표(藏書票)를 찍어 서재에 진열해둔다. 그의 욕망은 정확히 책을 읽기 위한 욕망이라기보다는 책을 수집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에 가깝다.
이러한 신준식의 도착된 방식의 책에 대한 소유욕은 소설가인 ‘나’와의 관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소된다. 이 소설은 사람들이 갖는 욕망과 그에 대한 결핍감을 ‘책’이라는 소재를 둘러싼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에서 책에 대한 욕망과 그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자 하는 신준식의 희망, 그것은 불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시간여행자」에서 주인공 ‘나’가 루핑 집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남편이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서 어쩔 수 없이 방값이 싼 변두리를 찾아다니다가 무허가 건물인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1960년대 후반이다. 다채로운 등장인물이 서로 부대끼며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루핑 집에 사는 ‘나’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나’의 시선에 포착된 인물들은 지난 시절의 우리 이웃 같은, 미운정 고운정으로 끈끈히 맺어진 살가운 사람들이다. 갖가지 삶의 에피소드 속에서 드라마처럼 혹은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몰랐던 마음, 잊었던 기억
우리가 살아낸 모든 시간을 긍정하는 다정한 문장들
「미로」는 사랑했던 두 남녀의 시선이 각각 교차하면서 사랑과 이별의 스토리가 진행된다. 이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나는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가면서 T시에 살고 있을 첫사랑 순지를 떠올리면서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미로와 같은 사랑의 과정을 ‘몸의 지도’ 제작 과정에 빗대어 탐구해 들어간다.
중편소설 「자존감 수업」에서 르포기자인 ‘당신’은 이 우주와 세계에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던 생의 중심이 폭삭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다. ‘당신’ 시선으로 볼 때 세상은 상처만 안겨주는 몹쓸 곳이다. 어느 날 갑자기 딴 여자와 잠적해버린 남편 때문에 부족한 것이 없던 가정이 풍비박산되고 내면의 깊은 상처와 소외를 감당해야 했다. 사랑도 희망도 용기도 없어졌을 때 ‘당신’이 맞닥뜨린 것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출발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여인은 춤 세계에서 상처받은 여인이다. 카바레란 무엇인가. ‘남자는 배, 여자도 배’인 곳, 향락의 점을 찍는 곳, 사랑의 선(線)을 만들지 않는 곳이 아닌가. 이 ‘아줌마’는 카바레의 규칙을 위반했다.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삶은 신과 같은 풋사랑도 아니고 지엄 지고한 신과 같은 사랑도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현장'이다.
적어도 삶은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눈물을 흘리며 인정하지 않는 한 삶은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모색의 끝은 관계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개인의 각성된 자유에 대한 확인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에서 선보인 바 있는 ‘아프락사스’ 모티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세상에 저항하는 생명의 힘!
이정은 소설 『불멸』은 과거의 상처를 똑바로 들여다보며, 특유의 다정한 시선으로 우리가 살아온 모든 시간에 담긴 의미를 찾아낸다. 잊고 싶었던 과거와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가 그려온 궤적에는 그렇게 그려져야 할 이유가 있다고, 그래야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정은이 한결같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긍정하는 메시지들이다. 이정은의 애정 어린 문장을 통과하면 우리의 사랑스럽지 않은 모습마저도 그저 좋거나 나쁘다고만 평가될 수 없는, 살아가려는 의지의 표현이 된다.
우리가 듣고 싶었던 진정한 위로를 소설로 전해 공감하게 하는 일을 작가는 꿋꿋이 수행해나간다. 이정은이 동시대 독자들에게 소중한 작가가 된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0526210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9월 14일 |
쪽수 | 360쪽 |
크기 |
141 * 211
* 23
mm
/ 458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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