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릉의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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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왕릉을 지킨 것은 사찰이었다!
조선초기에 재궁으로 불리던 이들 사찰은 조선중기에는 능침사로 조선후기에 들어서면 조포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조금씩 역할이 변모해갔다. 조선 왕릉수호사찰은 왕실 불심의 기반과 승군 노동력의 우수성을 활용하려는 국가정책, 그리고 억불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승려들의 노력을 기반으로 조선시대 내내 유지되었다.
이 책은 이들 사찰을 통해 조선 왕릉이 단순히 유교적 시설물이 아니라 한국인의 내세신앙이 내재된 유불융합의 문화적 산물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작가정보
안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법보신문 기자, 미디어붓다 기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순천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가 있고, 공저로 『회암사와 왕실 문화』, 『대법사지』, 『한국의 대종사들』 등이 있다. 연구논문으로 「조선시대 정업원의 위치에 관한 재검토」, 「조선시대 봉은사 수륙재의 역사적 전개」, 「조선초기 능침사의 역사적 유래와 특징」, 「19세기 불교계 동향과 송광사의 위상」 외 다수를 발표했다.
목차
- 책을 내며
서 론 1 5
왜 왕릉에 사찰을 설치했을까 | 조선 왕릉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 수호사찰의 존재 | 왕릉수호사찰의 또 다른 이름 ‘능침사’ | 왕릉수호사찰의 시기 구분 | 조선 왕릉수호사찰 관련 자료 | 조선 왕릉에 딸린 62개 수호사찰의 의미
1부 왕릉수호사찰의 기원과 변천
1장 중국 역대 왕조의 능침사 29
능+침의 기원 | 문헌상 최초의 능침사, 후한 백마사 | 고고학상 최초의 능침사, 북위 사원불사 | 남조 양무제가 세운 황기사 | 수당대 확대된 능침사 | 북송대 완성된 능침사 제도 | 남송대 이후 사라진 능침사의 전통
2장 삼국시대의 왕릉수호사찰 42
1. 고구려 왕릉과 능침사 43
고구려 왕릉의 불교 요소 | 전동명왕릉의 능침사: 평양 정릉사지
2. 백제 왕릉과 능침사 49
백제 왕릉의 불교 요소 | 성왕의 능침사: 부여 능산리사지
3. 신라 왕릉과 능침사 56
신라 왕릉의 불교 요소 | 문무왕의 능침사: 경주 감은사지 | 신라 성전사원의 운영 | 성전사원의 성격
3장 고려시대 왕릉수호사찰 71
1. 고려 왕릉과 조성숭배시설 71
고려 왕릉 현황 | 고려 왕릉의 원형, 태조 왕건의 현릉 | 조선 왕릉의 원형이 된 공민왕 부부의 현·정릉 | 고려 왕실의 조상숭배시설
2. 진전사원의 설치 현황과 특징 81
「고려사」에 실린 진전사원 | 역대 왕의 진전사원 현황 | 별묘의 기능 | 왕릉의 수호와 관리 | 국왕의 정치적 기반
2부 조선시대 왕릉수호사찰 현황
4장 조선초기의 왕릉수호사찰 103
1. 이성계 4대조 묘의 봉릉과 재궁 103
4대조 묘를 왕릉으로 추봉 | 불교식 재궁의 설치
2. 태조 건원릉의 수호사찰 110
건원릉 조성과정 | 건원릉 능침사: 개경사 | 왕실 축원도량으로 활용된 개경사 | 개경사의 이전과 폐사 | 동구릉과 태·강릉의 조포사: 불암사, 석천사 | 불암사 의 지속적인 재정난
3. 태조 원비 신의왕후 제릉의 수호사찰 120
제릉 조성과정 | 제릉 능침사: 연경사 | 왕실의 지속적인 보호와 지원
4. 태조 계비 신덕왕후 정릉의 수호사찰 125
정릉 조성과정 | 정릉 능침사: 흥천사 | 복릉 후의 조포사: 신흥사
5. 정종과 정안왕후 후릉의 수호사찰 129
후릉 조성과정 | 후릉 능침사: 흥교사
6. 태종과 원경왕후 헌릉의 수호사찰 133
헌릉 조성과정 | 능침사가 없는 첫 왕릉 | 태종의 능침사로 잘못 기재된 회암사 | 헌릉 조포사: 봉헌사, 봉서사, 자운암 | 헌릉에 유독 조포사가 많았던 이유
7. 세종과 소헌왕후 영릉의 수호사찰 140
영릉 조성과정 | 보은사 창건의 무산 | 영릉 능침사: 신륵사
8. 문종과 현덕왕후 현릉의 수호사찰 144
현릉 조성과정 | 현릉 능침사: 개경사
9. 단종 장릉의 수호사찰 146
장릉 조성과정 | 노산군묘를 수호한 노릉암 | 장릉 조포사: 보덕사 | 조포속사: 남장사
10. 단종 원비 정순왕후 사릉의 수호사찰 152
사릉 조성과정 | 수호사찰 대신 해주정씨 집안이 관리
5장 조선중기의 왕릉수호사찰 155
11. 세조와 정희왕후 광릉의 수호사찰 155
광릉 조성과정 | 광릉 능침사: 봉선사 | 봉선전의 과도기적 특징 | 어실의 철 폐와 복구 | 내수사에서 관리한 봉선사 위전
12. 덕종과 소혜왕후 경릉의 수호사찰 164
경릉 조성과정 | 의경세자 재사로 창건한 정인사 | 수국사는 정인사터에 세 워졌을까 | 서오릉 조포사: 수국사 | 대한제국 황실 원찰로 재탄생하다
13. 예종과 안순왕후 창릉의 수호사찰 174
창릉 조성과정 | 창릉 능침사: 정인사
14. 예종 원비 장순왕후 공릉의 수호사찰 176
공릉 조성과정 | 공릉 조포사: 운신암 | 파주삼릉 조포사: 보광사
15. 성종과 정현왕후 선릉의 수호사찰 180
선릉 조성과정 | 선릉 능침사: 견성사 | 사찰 이전 후 봉은사로 사액 | 열성조 의 위패 봉안
16. 성종 원비 공혜왕후 순릉의 수호사찰 184
순릉 조성과정 | 순릉 조포사: 화성암
17. 중종 정릉의 수호사찰 186
정릉 조성과정 | 정릉 능침사: 봉은사 | 순회세자 부부의 원당 설치
18. 중종 원비 단경왕후 온릉의 수호사찰 190
온릉 조성과정 | 온릉 조포사: 봉온암, 흥국사
19. 중종 계비 장경왕후 희릉의 수호사찰 194
희릉 조성과정 | 희릉 조포사: 고향사, 대자사 | 서삼릉 조포사: 보광사
20. 중종 계비 문정왕후 태릉의 수호사찰 197
태릉 조성과정 | 태릉 조포사: 불암사
21. 인종과 인성왕후 효릉의 수호사찰 199
효릉 조성과정 | 효릉 조포사: 고향사. 대자사, 보광사
22. 명종과 인순왕후 강릉의 수호사찰 201
강릉 조성과정 | 강릉 조포사: 불암사
6장 조선후기의 왕릉수호사찰 ·············································· 2 0 4
23. 선조와 의인왕후·인목왕후 목릉의 수호사찰 204
목릉 조성과정 | 목릉 조포사: 불암사
24. 원종과 인헌왕후 장릉의 수호사찰 207
장릉 조성과정 | 장릉 조포사: 봉릉사
25. 인조와 인열왕후 장릉의 수호사찰 210
장릉 조성과정 | 장릉 조포사: 검단사
26. 인조 계비 장렬왕후 휘릉의 수호사찰 213
휘릉 조성과정 | 휘릉 조포사: 불암사
27. 효종과 인선왕후 영릉의 수호사찰 215
영릉 조성과정 | 영릉 조포사: 신륵사
28. 현종과 명성왕후 숭릉의 수호사찰 217
숭릉 조성과정 | 숭릉 조포사: 불암사
29. 숙종과 인현왕후·인원왕후 명릉의 수호사찰 218
명릉 조성과정 | 명릉 조포사: 수국사 | 조포속사: 용문사, 성흥사, 반룡사
30. 숙종 원비 인경왕후 익릉의 수호사찰 221
익릉 조성과정 | 익릉 조포사: 수국사
31. 경종과 선의왕후 의릉의 수호사찰 222
의릉 조성과정 | 의릉 조포사: 청량사, 연화사, 만수사
32. 경종 원비 단의왕후 혜릉의 수호사찰 226
혜릉 조성과정 | 혜릉 조포사: 불암사
33. 영조와 정순왕후 원릉의 수호사찰 227
원릉 조성과정 | 원릉 조포사: 불암사
34. 영조 원비 정성왕후 홍릉의 수호사찰 229
홍릉 조성과정 | 홍릉 조포사: 진관사, 수국사
35. 진종과 효순왕후 영릉의 수호사찰 231
영릉 조성과정 | 영릉 조포사: 칠장암, 보광사 | 조포속사: 미황사
36. 장조와 헌경왕후 융릉의 수호사찰 234
융릉 조성과정 | 현륭원 조포사: 용주사 | 사도세자 위패를 봉안한 제각 건립 | 불교계 중심 사찰로 부상하다
37. 정조와 효의왕후 건릉의 수호사찰 241
건릉 조성과정 | 건릉 조포사: 용주사
38. 순조와 순원왕후 인릉의 수호사찰 243
인릉 조성과정 | 인릉 조포사: 검단사, 불국사 | 조포속사 만덕사, 금탑사
39. 문조와 신정왕후 수릉의 수호사찰 247
수릉 조성과정 | 수릉 조포사: 화양사, 불암사 | 조포속사: 동화사
40. 헌종과 효현왕후·효정왕후 경릉의 수호사찰 251
경릉 조성과정 | 경릉 조포사: 불암사
41. 철종과 철인왕후 예릉의 수호사찰 253
예릉 조성과정 | 예릉 조포사: 대자사
42. 고종과 명성황후 홍릉의 수호사찰 255
홍릉 조성과정| 명성황후릉 조포사: 연화사
43. 순명효황후 유릉의 수호사찰 259
유릉 조성과정 | 유강원 조포사: 영화사
3부 조선 왕릉수호사찰의 변화와 특징
7장 조선초기: 불교식 재궁의 설치 265
12기 능에 설치한 불교식 재궁 | 국왕의 주도로 설치 | 능역 내에 위치한 수호사찰 | 재궁(齋宮)으로 불리다 | 진전의 부재
8장 조선중기: 왕릉 제도에서 소외되다 276
11기 왕릉 중 6곳만 조성된 능침사 | 대비의 주도로 조성 | 왕릉 제도에서 배제되 다 | 새롭게 등장한 어실 | 능역 밖으로 밀려나다
9장 조선후기: 조포사의 등장 286
두 차례 전쟁 이후 부각된 승군의 우수성 | ‘조포’의 의미 변화 | 수륙재의 필수 음식 ‘두부’ | ‘조포사’의 등장 | 동북면 8릉을 관리한 지사승 | 18세기 후반 조포 사의 정비 | 「묘전궁릉원묘조포사조」에 기재된 52개 조포사 | 어실이 사라지다 | 왕릉 제도에 편입되다 | 조포사가 담당한 막대한 잡역 | 조포사를 보조하는 속 사의 등장
결론: 조선 왕릉수호사찰의 역사적 의미 321
1. 건축적 의미: 사찰 안에 들어선 유교식 사당 321
왕의 위패를 봉안한 어실 | 폐쇄적 가람 배치
2. 경제적 의미: 능의 효율적 관리와 비용 절감 334
능역의 보호 | 산릉 관리의 비용 절감
3. 종교적 의미: 효(孝)와 정토(淨土)의 결합 340
정토왕생을 발원한 기도처 | 유불융합의 조상숭배시설
책 속으로
[책을 내며]
조선 불교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 생명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것은 조선불교사를 전공하는 동안 늘 품어온 화두이다.
조선불교사 연구는 사료와 현실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관찬사료에는 사찰의 경제적 기반을 없애고 승려가 되는 길을 원천 봉쇄하는 등 억불정책 일변도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수승한 명산에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불전(佛殿)들이 당당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으며, 수려한 골짜기에는 법 높은 수행자들의 선기(禪氣)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는 관찬사료 속에 나오지 않는 무언가가 그 시대에 존재하였음을 의미한다. 불교가 수천여 년간 지속돼온 가장 큰 요인은 중생들이 여전히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작은 등에 담은 마음들이 지금까지도 한국의 사찰을 밝히고 있듯이, 왕실에서 부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사찰들이 왕실원당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시대 내내 유지되었다.
조선의 왕릉수호사찰은 왕릉과 불교가 만나 만들어진 유불융합의 문화적 산물이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부터 설치되기 시작한 왕릉수호사찰은 조선의 국가제사권이 박탈되는 1908년까지 지속되었다. 여기에는 조선 왕실의 불심, 능침사의 경제적 효율성, 억불시대를 극복하고자 했던 승려들의 노력 등이 내재돼 있다.
능침사는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된 왕실원당이다. 조선중기 사림의 정계 진출 이후 수륙사나 소격서 등의 불교·도교 시설물이 철폐된 후에도 왕릉을 수호한 사찰들은 재궁, 조포사, 원당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존속되었다.
원당은 필자가 석·박사를 거쳐 지금까지 부여잡고 있는 연구 주제이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석사논문의 주제를 조선후기 왕실원당으로 잡았던 것은 참으로 용감하고도 무식한 일이었다. 논문 심사를 마친 직후 허흥식 교수님께서 이런 주제는 박사논문에서나 하라고 했던 지적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 말씀이 씨앗이 된 것인지, 박사논문에 이어 지금까지도 원당 연구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코끼리 다리만 만지고서 코끼리를 그렸다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이 연구는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덮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 책은 조선의 왕실원당 중에서 큰 축을 이루는 능침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학술서이다. 2014년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창의연구지원사업에 선정되어 3년간 연구를 진행하고 이후 4년간 수정과 보완을 거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완의 연구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 사료는 세상에 드러난 것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더 많고, 조선불교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이니만큼 이 책의 부족함을 거름삼아 더 우수한 연구들이 이어질 것이라 믿으며 아쉬운 마음을 내려놓고자 한다.
[본문 중에서]
p. 15
왜 왕릉에 사찰을 설치했을까
조선시대 대부분의 왕릉에는 능의 제사와 능역 보호를 담당한 사찰이 설치되었다. 조선의 500여 년 역사와 함께 지속된 이들 사찰은 재궁(齋宮), 능침사(陵寢寺), 조포사(造泡寺)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으며 그 명칭에 따라 담당하는 역할도 조금씩 변모했다.
왕릉에 절을 세운 것은 불교가 동아시아에 유입될 당시부터 확인된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처음 유입된 한당(漢唐)대부터,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건립되기 시작했다. 불교 유입 당시부터 능묘에 사찰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능침사에 동아시아의 공통적인 희원(希願)이 깃들어 있음 을 의미한다.
p. 19
왕릉수호사찰의 또다른 이름 ‘능침사’
왕릉을 보호하는 사찰들은 능침사(陵寢寺), 능사(陵寺), 재궁(齋宮), 재사(齋寺), 재사(齋舍), 조포사(造泡寺), 조포속사(造泡屬寺)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능침사와 능사는 광의적으로는 왕릉의 제사와 관련된 사찰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능사라는 용어가 왕릉명과 합쳐져 정릉사(貞陵寺), 광릉사(光陵寺), 선릉사(宣陵寺), 정릉사(靖陵寺)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협의적 의미의 능침사는 사찰 내에 왕이나 왕비의 위패를 봉안하고 정기적으로 능 주인의 제사를 담당한 독립된 사찰을 의미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능침사라는 용어는 총 31건의 기사에 등장하는데, 주로 성종~명종대에 사용되었다.
p. 24
조선 왕릉에 딸린 62개 수호사찰의 의미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왕릉, 즉 왕과 왕비로 세상을 떠났거나 사후에 추존된 인물들이 묻힌 총 50기 능의 수호사찰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고,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묘는 제외하였다. 50기의 왕릉에는 대부분 사찰이 설치돼 있었는데, 그 중 절 이름이 확인되는 사찰은 62개(재궁명 미상 및 중복 제외)이다. 다양한 형태의 왕릉 관련 사찰들을 모두 연구대상에 포함시켜, 조선시대 왕릉수호사찰의 개념과 범주가 어떻게 변모했으며, 왕릉수호사찰의 역할이 시대별로 어떻게 바뀌어갔는지를 살펴보겠다.
p. 62
신라 성전사원(成典寺院)의 운영
신라를 비롯한 삼국에서는 현재까지 각 나라별로 한 곳의 능침사만 확인되고 있다. 발굴조사가 완료된 왕릉에 비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왕릉이 훨씬 많기 때문에 쉽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고려, 백제, 신라대까지는 능침에 사찰을 두는 것이 제도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구려의 정릉사, 백제의 능산리사원, 신라의 감은사는 왕의 개인적인 불교신앙 내지 선왕의 선양작업을 위해 능 바로 곁에 사찰을 설치한 특수한 사례들로 파악된다.
p. 98
국왕의 정치적 기반
고려의 역대 왕들은 선왕이나 자신의 진전사원을 세워 왕권의 기반을 확보하고 불교계를 통제하는 구심점으로 삼고자 하였다. 태조가 개경 10사(寺)를 창건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이후 광종은 봉은사, 불일사(佛日寺), 숭선사(崇善寺) 등을 창건하고 태조와 신명왕후의 원당으로 삼은 후 자주 법회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왕권을 강화하고 호족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내재돼 있었다.
p. 147
노산군묘를 수호한 노릉암
장릉 부근에는 단종과 관련된 두 개의 사찰이 위치해 있다. 한 곳은 금몽암(禁夢庵)으로 단종이 살아생전 즐겨 찾던 암자로 전해지며, 또 한 곳은 보덕사(報德寺)로 노산군묘가 장릉으로 추봉되면서 새롭게 조성된 절이다.
금몽암은 단종의 유배 이전부터 영월에 있던 절이다. 원래의 이름은 지덕암(旨德庵)이었으나 단종이 궁궐[宮禁]에 있을 당시 꿈[夢] 속에서 본 사찰[庵]이라 금몽암으로 개칭했다고 전해진다. 양란을 거치면서 전소되었다가 광해군대에 영월군수 김택룡(金澤龍)이 승려들을 모집하여 중창한 뒤부터 노릉암(魯陵庵)으로 불렸다. 이때부터 노릉암의 승려들이 노산군묘를 수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p. 183
열성조의 위패 봉안
봉은사에는 성종과 정현왕후의 위패를 비롯해 총 12명의 열성조(列聖朝) 위패가 봉안돼 있었다. 「선정릉지」「봉은사사적」에는 봉은사의 여러 건물들이 열거돼 있는데, 이 중 금속루(金粟樓)라는 건물에 대해 “옛날에는 누각 위에 12위패를 봉안하여 어선루(御宣樓)라 하였는데, 중간에 수진궁(壽進宮)으로 위패를 이봉(移奉)하여 금속루로 명칭이 바뀌었다.”라고 부기돼 있다. 이들 12위패 중에는 성종과 정현왕후, 중종, 문정왕후 등이 포함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12명의 봉안 대상이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실 내에 12명의 왕과 왕비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는 사실은 봉은사가 선·정릉 능침사의 기능을 넘어 왕실의 위축원당으로 역할하였음을 알려준다.
p. 230
홍릉 조포사: 진관사, 수국사
홍릉의 능침사는 별도로 지정되지 않았으며 수국사와 진관사가 조포사로 지정되었다.
영조대 홍릉을 비롯한 서오릉의 조포사는 수국사였으나 조포역이 막중해 절이 피폐해지자, 1795년(정조 19) 홍릉과 창릉의 조포역은 진관사로 이속되었다. 서오릉에서도 홍릉과 창릉은 북쪽에 위치해 있어 진관사에 이속시키고, 경릉, 익릉, 명릉은 남쪽에 있어 수국사에 배속시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관사가 폐사되면서 다시 수국사가 조포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진관사가 중창되면서 1802년(순조 2) 창릉과 홍릉 의 조포역은 진관사로 옮겨가게 되었다.
p. 265
12기의 능에 설치한 불교식 재궁
조선의 개국초에 해당되는 태조~태종대에는 함경도에 위치한 이성계 4대조의 8릉과 신덕왕후의 정릉과 태조의 건원릉, 신의왕후의 제릉, 정안왕후의 후릉 등 총 12기의 능이 정비되었다. 이 시기에 조성된 모든 왕릉에는 불교식 시설이 설치되었다.
p. 285
능역 밖으로 밀려나다
예종~명종대에 설치된 6곳의 능침사 중 정인사를 제외한 능침사는 모두 능역 밖에 설치되었다.
조선초의 불교식 재궁은 대부분 능침 내에서도 왕릉이 바라보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때문에 왕릉의 부속시설이라는 의미로 재궁이라 칭했다. 하지만 예종대 이후에 설치된 능침사들은 대부분 능역 밖에 위치했고 조선초기보다 좀 더 떨어진 곳에 조성되었다. 조선초에 재궁이라 칭해지던 왕릉수호사찰은 성종대부터 능침사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이곳이 능역 안에 포함된 부속시설이 아니라 독립된 사찰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p. 321
왕의 위패를 봉안한 어실(御室)
조선시대 능침사는 내세추복을 발원하는 불교 시설인 동시에 유교의 효를 실천하는 공간이었다. 불교의 기복설을 부정하던 태종이 부모를 위해 능 옆에 절을 세운 것이나, 정조가 사친의 능원 옆에 조포사를 마련하고 위패를 봉안한 것은 ‘효’를 실천한다는 명분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불교의 축원 장소이자 유교 윤리의 실천 공
기본정보
ISBN | 9791190429177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1월 15일 |
쪽수 | 368쪽 |
크기 |
152 * 225
* 28
mm
/ 531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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