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 업 쇼트: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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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런 상황에서 보수화된 청년들을 단순히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신자유주의 담론을 스스로 재생산하게 되는 주체적 과정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배신과 좌절만을 경험한 청년들은 경쟁, 개인주의, 자립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문화적 각본을 받아들이고는 자립하지 못한 사람들을 배척한다. 또한 ‘무드 경제’의 명령에 붙들려 자아의 성장에 집중하는 탓에 시장과 국가 같은 강력한 제도들이 행사하는 힘을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
이 책은 우리 자신과 타인, 공동체에 대한 이해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불평등에 저항하는 연대를 수립하고 유지하기란 요원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야만 청년들이 성인이 된 이야기를 감정 관리로 환원하지 않고, ‘우리’라는 감각을 유지한 상태로 불안전 및 상실과 맞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정보
인디애나 대학교의 ‘폴 오닐 공공 및 환경 업무 대학’ 조교수(2019~)로 정치 문화, 사회 계급, 불평등, 성인기로의 이행 등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04년 웰즐리 칼리지를 졸업하고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사회학으로 석사 학위를, 2010년에는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버크넬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로 있으면서 문화와 불평등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로 이름을 알렸다. 또한 하버드 대학교 박사 후 과정 중 경제 불안이 사회적 유대감과 시민적 참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2013년에는 첫 저작인 『커밍 업 쇼트』를 출간했으며, 대중적 글쓰기도 활발히 병행해 연구 내용을 『뉴욕 타임스』, 『뉴요커』, 『보스턴 글로브』, 『디 애틀랜틱』, 『보스턴 리뷰』, 『살롱 닷컴』 등에 실었다. 2019년에는 쇠퇴 중인 한 탄광 도시 거주민들을 인터뷰해 이들이 미국 정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우린 여전히 여기에: 미국 심장에 놓인 고통과 정치』를 출간했다.
번역 문현아
서울 대학교 ‘국제 이주와 포용 사회 센터’ 책임 연구원(2020~). 연구자와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병행하며 연구 공동체 ‘건강과 대안’ 연구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젠더, 돌봄, 건강, 사회 불평등에 폭넓게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엄마도 때론 사표 내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2012)이 있고, 『돌봄 노동자는 누가 돌봐 주나?: 건강한 돌봄 노동을 위하여』(2012), 『페미니즘의 개념들』(2015) 등을 공저로 펴냈다. 또한 『경계 없는 페미니즘』(2005), 『세계화의 하인들』(2009)을 번역했고, 동료들과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낸시 프레이저의 비판적 정의론과 논쟁들』(2016), 『자본주의의 병적 징후들』(2018) 등을 함께 옮겼다.
번역 박준규
한양 대학교 ERICA 문화인류학과 교수(2012~). 한양 대학교 ‘글로벌 다문화 연구원’ 원장도 겸하고 있다. 세계화, 관광, 디지털 기술을 주제로 인류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현대 사회 문제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참여인류학을 실천하고자 한다. 또한 이주, 다문화, 세계화 관련 지역 사회 기반 연구를 진행 중이다. 공저서로 Cultural Landscapes of Korea(2010), 『현대의 서양 문화』(2011), De-bordering Korea(2013), 『현대 문화인류학』(2018), Diasporic Returns to the Ethnic Homeland(2019)가 있고, 『자본주의의 병적 징후들』(2018), 『글로벌 시대의 문화인류학 4판』(2019) 등을 함께 옮겼다.
목차
- 한국어판 서문
서문
1장 리스크 사회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
2장 현재라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 성인기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
3장 불안한 친밀함들: 리스크 사회의 사랑, 결혼, 가족
4장 경직된 자아들: 미국 노동 계급의 재형성
5장 무드 경제에서 살아가기
결론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
부록 연구 방법
후주
옮긴이 후기
참고 문헌
찾아보기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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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그것의 파괴적인 결과들을 검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 질서의 최하층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최하층부의 남녀는 실업, 친밀함, 자기 존중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 씨름하고 있다. 『커밍 업 쇼트』는 새로운 관점으로, 즉 리스크 관리라는 관점으로 노동 계급의 삶을 연구한다. 이 책은 우리 삶을 구성하는 갖가지 불안을 자본주의가 어떻게 창출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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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제니퍼 M. 실바가 이 인상 깊은 책에서 소묘한 개인사들을 숙고해야 한다. 우아함과 감수성을 두루 갖춘 실바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을 흔든 경제·사회 변화들이 어떻게 노동 계급 청년의 삶을 굴절시켰는지를 묘사한다. 이 변화 때문에 청년들은 근본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며, 안전, 연대, 신뢰 없는 세계에서 자아감을 빚으려 애쓰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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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즈 터클의 『노동』과 릴리언 루빈의 『고통의 세계들』 전통을 따르는 이 가슴 저미고 강렬한 책은 우리를 오늘날 노동 계급의 삶 내부로 데려간다. 놀라운 공감 능력과 고통스러울 정도의 세밀함으로 실바는 노동조합도 연금도 자산도 없고,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 외에는 바랄 수 있는 것이 없는 청년 노동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여 준다. 불안정한 미래를 초래한 주범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임에도 청년들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비난한다. 기민하며 설득력 있는 논변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커밍 업 쇼트』는 진정으로 능수능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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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바는 신자유주의적 환경이 친밀함에 미친 침식 효과를 가슴 아프게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이 갖는 수많은 중요성 중 하나는 부정적 연대의 감정적이고 문화적인 근원을 철저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책 속으로
p.88
노동 계급 청년들은 막중한 리스크 부담으로 인해 무력한 상태다. 질병, 가족 해체, 장애, 부상 등 예기치 못한 경제적ㆍ사회적 충격을 겪으면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살아남으려면 이런 충격을 개별적으로, 주로 신용카드를 이용해 해결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대다수 청년이 ‘정당한’ 리스크-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대출을 받거나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는 등의-만 감수하면 안정된 삶을 누리면서 계층 상승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의 부재에 서브 프라임 대출처럼 유해한 금융 관행까지 겹쳐져 이들의 노력은 제약받고 종종 저지된다. 그리하여 청년들은 성인기의 전통적인 기준에서 오히려 멀어진다. 사유화가 강화된 환경에서 포스트산업 노동 계급이 성인이 되는 경험을 정의하는 것은 명확하고 인식 가능한 목적지를 향한 진보가 아니라 현재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관리다.
p.138
결혼은 안정된 결말보다는 끝없는 협상에 더 가까워졌다. 커플들은 자신이 경쟁하는 두 사랑 논리 사이에 갇혀 있음을 깨닫지만 둘 중 어느 하나만을 따를 수는 없다. 한편으로 이들은 양쪽 부모로 구성되고 엄격하게 젠더 역할을 나누는 전통적인 가정을 꾸리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수단이 없음을 알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자아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적 관계를 구축하려 하지만 자아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없음을 금세 깨닫는다. 결혼이 자발적이며 궁극에는 파경에 이를 수도 있는 현재의 문화적 배경하에서 커플들은 (자기 자신과 자녀에 대한) 헌신과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적 욕망과 필요를 희생할지를 매일매일 판단해야 한다.
p.204~205
청년들이 자립의 이상 및 실천과 제약받지 않는 개인주의를 그토록 강하게 고수하는 것-이들은 단순히 현실이 그렇다고 인정할 뿐 아니라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이 처음에는 직관에 어긋나는 듯이 보인다. 내 생각에 이들의 마음 깊이 자리 잡은 확신들은 단순히 위에서 부과된 것이 아니다. 이 확신들은 일상에서 경험한 모욕과 배신에, 자신이 의지하는 사회 계약이 깨져 버렸다는-혹은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다는-깨달음에 근거하고 있다. 노동 계급 청년들은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만 타인들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배운다. 그런 다음에는 자립, 개인주의, 개인의 책임이라는 문화적 각본을 받아들임으로써 배신의 아픔과 연결의 갈망을 완화한다. 제도와의 상호작용에서 더 ‘유연’해질수록, 즉 단기적인 헌신과 환멸을 관리하는 법을 배울수록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는 한층 더 ‘경직’된 태도를 보이게 된다.
p.206~207
이런 과정을 통해 청년들은 유순한 신자유주의 주체가 되어 온갖 종류의 정부 개입, 특히 차별 시정 조치에 반대한다. 그런 개입이 자기 삶의 경험에 대립하고 그 경험을 침해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잠재적인 연대 공동체들은 불안정과 리스크의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갈라져 버린다. 남성은 여성 및 게이와의 경계선을 조심스레 관리함으로써 얼마 남지 않은 공공 부문 일자리를 계속 차지한다. 백인은 흑인이 정부의 돈을 가로채며 자신의 세금을 낭비한다며 도덕적 경계선을 친다. 흑인 응답자는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다른 흑인들과 자신 사이에 한층 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궁극적으로 노동 계급 청년 남녀는 자신이 혼자 힘으로 삶과 전투를 치러야 한다면 다른 모든 사람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p. 255
치료 서사가 성인기로의 통로로 활용될 때 생기는 주된 문제는 이 서사가 자아를 성공, 행복, 웰빙의 가장 큰 장애물로 변형한다는 것이다. 치료 서사는 청년들이 스스로를 자기 삶의 영웅, 피해자, 악당으로 여기게 만든다. 청년들에게 자기 자신만이 감정을 관리할 수 있고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치료 에토스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꼭 어울린다. 힘 없는 노동 계급 청년들이 스스로의 행복에 책임이 있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시장, 취약한 가족, 공허한 제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사회 안전망으로 구성된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자아-혼자고 확신 없는-는 “스스로를 만들거나 망칠 힘”을 타고난다.
p.259
내 연구 속 노동 계급 청년 대다수에게 신자유주의 논리와 무드 경제 논리는 깊이 얽혀 있으며, 이는 자립만이 성공과 행복, 성장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되는 하나의 상호 구성적이고 자기 폐쇄적인 현실을 창출한다. 한편으로 (4장에서 설명했듯) 이들은 배신당한 경험 때문에 경제적 의존이나 외부의 도움은 생각조차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치료 서사-그리고 이 서사의 신조인 개인주의, 자아 변형, 개인적 성장-는 이들이 성인이 되는 공간들 내부에 깊이 제도화되어 있으며, 자신의 감정적 운명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담론을 제시한다.
출판사 서평
밀레니엘 노동 계급 청년들은 왜 성인이 되지 못한 채
구조적인 고통을 개인적으로 해결하고자 애쓰고 있는가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청년들의 성인기를 근원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은 연대를 거부하고 경쟁과 개인주의, 자립을 신봉한다
성장을 가로막는 신자유주의 권력에 대한 분석과
살아남고자 악전고투하는 청년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통해
새롭게 상상되고 있는 성인기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오늘날 청년들은 보수화되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현실을 앞에 두고 물어야 할 질문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다. 지난 몇십 년간 청년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끊임없이 생겨났고, 미디어에서는 이들을 표상하는 각종 묘사를 만들어 냈다. 새 시대의 청년들은 창의적이고 진취적이라며 칭송받는가 하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고 비난받기도 한다. 또 만성적인 경제 위기 시기에 성장해 안정된 성인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세대, 위 세대에 억눌린 채로 자원을 둘러싼 투쟁에서 패배한 세대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런 묘사들이 진실을 담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과 세계관에 기반해 이들의 성인기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시도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제니퍼 M. 실바의 『커밍 업 쇼트: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는 현재의 미국 노동 계급 청년들이 성인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위를 밝히는 사회학 저작이다. 2013년에 출간된 책은 ‘성인기로의 이행’을 다룬 이전 연구들과는 몇 가지 차별점을 갖는다. 우선 ‘노동 계급 청년’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다수 청년이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중간 계급 성원이 얼마간의 자원과 자유를 토대로 선택의 기회를 누리는 데 비해 노동 계급 청년은 ‘선택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다. 또 이 책은 매사추세츠주의 로웰과 버지니아주의 리치먼드를 중심으로 노동 계급 청년 100명을 인터뷰해 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아울러 백인, 남성, 산업 노동자를 전면에 배치했던 과거의 연구와 달리 불안정한 서비스 경제에서 살아남고자 고투하는 여성과 비백인 청년의 현실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신자유주의가 젠더와 인종의 선을 따라 어떻게 상이한 영향을 미치는지도 분석한다.
불안한 노동 시장, 믿을 수 없는 제도, 추가적인 짐이 되어 버린 친밀 관계 등 신자유주의의 파장들은 노동 계급 청년들의 성인기를 지연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근원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을 이 청년들은 오히려 자립, 개인주의, 공정 등의 담론을 신봉하면서 연대의 가능성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밀레니얼 노동 계급 청년들이 성인이 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경제적·사회적 변동을 살필 뿐 아니라, 이들이 이 변동에 적응하고 굴복하면서 유순한 신자유주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주체적’ 과정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특히 ‘감정 자본주의론’의 통찰을 빌려 자아의 성장과 감정적 성숙이 이들이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자원이 되었음을, 그리고 그 탓에 의존을 거부하고 타인과 자신 사이에 가혹한 경계선을 긋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커밍 업 쇼트’(coming up short)는 ‘특정 기준이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숙어다. 이 책에서는 특히 ‘성인이 되다’라는 뜻을 가진 coming of age와 대비를 이루며 청년들이 ‘성인’이라는 기준이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오늘날 노동 계급 청년들은 영원히 ‘수준 미달’인 채로 남을 운명에 처해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각 개인의 자아나 감정이 아니라 이들이 안정적으로 성인기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제와 사회, 제도의 수준 미달이다.
성인기에 이르는 길에서 무력감을 배우기
: 밀레니얼 노동 계급 청년들은 왜 성인이 되지 못하는가
몇십 년 전만 해도 성인이 되는 것은 혼란이나 불안, 불확실함에 휩싸이는 경험이 아니었다. 대부분 나라에서 성인 지위는 나이에 근간을 두며 일정 나이가 되면 그에 따르는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된다. 나아가 온전한 성인이 되려면 성인기의 사회적 기준들을 달성해야 한다. 부모 품을 떠나고,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하고,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의 노동 계급 청년들은 ‘성장’을 멈춘 듯이 보인다. 이 책 1장과 2장에서는 이들이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성인의 삶을 창출하기가 불가능함을 밝힌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안정적이던 블루 칼라 일자리를 대폭 감소시켰다. 그 결과 생활 임금을 지급하고 정년을 보장하며 노동조합이 결성된 일자리가 사라지고 불안정한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트산업 세대는 혼자 힘으로 유동성과 우발성을 부단히 해결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나아가 청년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해야 마땅한 교육, 법, 의료 같은 국가 제도들은 오히려 성인기로 가는 길을 가로막곤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들은 가망 없는 존재로 낙인찍히며, 복잡한 관료제는 그 논리를 해석할 지식이나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좌절감만을 안긴다.
신자유주의를 보조하는 사회 제도들의 변화가 초래한 가장 큰 폐해 중 하나는 리스크의 사유화(privatization of risk)다. 실업이나 질병, 가족의 불행, 장애, 부상 등 예기치 못한 충격을 겪으면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회 안전망이 파괴된 탓에 노동 계급 청년들은 살아남으려면 이런 충격을 개별적으로, 주로 신용카드를 이용해 해결해야 한다. 사유화가 강화된 환경에서 노동 계급의 성장 경험을 정의하는 것은 명확하고 인식 가능한 목적지를 향한 진보가 아니라 현재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관리가 된다.
또한 연애와 결혼, 가족 같은 친밀 관계 역시 노동 시장에 대한 보호막으로 기능하지 못한 채 오히려 추가적인 짐이 되었다. 과거에는 남성이 생계를, 여성이 가사를 책임지는 식으로 가족 관계가 깊이 젠더화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남성 부양자 모델을 따르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더불어 20세기 중후반에 2세대 페미니즘과 민권 운동을 거치면서 성적·인종적 평등의 이상이 얼마간 달성되었지만, 노동 계급 가족들은 이런 평등을 현실에서 실현할 자원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 관계로 돌아갈 수도 없고 새로운 문화적 이상에 맞추어 관계를 꾸릴 수도 없는 처지인 오늘날 노동 계급 성원, 특히 여성은 가족과 커리어를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맞닥뜨린 채로 친밀함이라는 덫에 빠져 있다.
유순한 신자유주의 주체 되기
: 어째서 노동 계급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신자유주의에 순응하고 있나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렇게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사회에서 노동 계급 청년이 ‘어떤’ 성인이 되는지를, 즉 이들이 신자유주의 주체가 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4장). 주지하듯 현재 많은 노동 계급 청년이 자진해 규제 완화와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봉하며 이에 반하는 생각과 실천에 적대감을 표출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청년들이 보수화되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극단적인 경제 구조 조정, 심대한 문화 변동, 깊은 사회 불평등 때문에 성인의 삶이 근원적으로 파괴된 현실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청년들이 신자유주의에 순응하게 되는 과정을 조명한다.
노동 계급 청년들은 노동 시장에서 좌절을 맛보며, 성인기로 가는 길을 형성하는 제도들, 특히 교육 영역은 이 좌절을 배가한다. 그 외에도 일상적인 상호작용과 관행에도 배신이 만연해 있다. 경험을 통해 청년들은 국가가 자신을 위해 공정하게 행동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며, 자신이 철저히 혼자고 외부의 도움에 기대려면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함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리하여 타인을 불신하고 의존을 거부하는 태도를 미덕으로 여기고 이를 성인기 삶의 주된 특징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런 자립의 영웅담에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
청년들은 타인과의 유대 관계를 끊고 내면으로 파고들며 감정적으로 무뎌진다. 그리고 자기가 혼자 힘으로 살아남았으니 남들도 그래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고수한다. 이들은 경쟁, 개인주의, 자립이라는 문화적 각본을 받아들인 신자유주의 주체가 되어 자립하지 못한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 가혹한 경계선을 긋는다. 남성은 여성 및 성 소수자를 배척하며 얼마 남지 않은 공공 부문 일자리를 계속 차지한다. 백인은 흑인이 복지 수혜자가 되어 자신의 세금을 낭비한다며 도덕적 비난을 가한다. 흑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다른 흑인과 자신 사이에 한층 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이처럼 노동 계급 청년들은 단순히 신자유주의의 선전에 속아 넘어간 것이 아니다. 이들은 도움을 주리라 믿었던 제도들이 오히려 자신을 배신했음을 절절히 깨닫고 있다. 문제는 이 깨달음이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 논리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보다는 긍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불신의 문화를 초래한 원인이 신자유주의임에도 배신의 경험은 청년들이 사회와 연대를 멀리하고 광범위하게 퍼진 신자유주의적 발상과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부추긴다. 견고한 개인주의와 절대적 자립이 삶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신자유주의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청년들은 신자유주의의 리스크에 대응하면서 오히려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를 능동적으로 따르고 궁극에는 재생산하고 있다.
무드 경제에서 살아가기
: 어떻게 청년들은 자아의 성장을 유일한 목표로 삼아 스스로 자신의 자아를 착취하게 되었나
오늘날 노동 계급 청년들의 성인기 여정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 하나는 이들이 가치 있는 성인의 삶과 이를 가로막는 장애물 모두를 ‘자아’의 층위에서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것이다(5장). 지은이와 인터뷰한 대다수 남녀는 안전한 성인의 삶을 꾸리지 못하는 원인이 정치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아주 개인적인 층위에서 성인이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과거에 겪은 고통의 치유를 성인 정체성의 기반으로 삼아 해방되고 변형된 성인 자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어떤 변화가 생긴 걸까? 과거에 성인의 삶은 고된 노동, 결혼, 자녀 양육, 공동체 참여, 노후 등을 중심으로 이해되었고, 남녀 모두 깊이 젠더화된 경로를 따라 삶을 이어 갔다. 성인이 되는 정해진 경로가 있었고 성취해야 할 가시적이고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과정들이 파괴되면서 청년들은 각자의 성인기를 부단히 새롭게 창출해야 하는 부담을 짊어지게 되었다. 지은이는 이처럼 변화된 상황을 ‘무드 경제’(mood economy)와 ‘치료적 자아’(therapeutic self)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무드 경제란 오늘날 사람들이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자아의 성장’과 ‘감정 관리’로 축소된 상황을 가리킨다. 노동은 불안정하고 관계는 불확실하며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라 청년들이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선택지는 자아의 성장뿐이다. 자아를 성장시키려면 ‘과거’로 돌아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어린 시절의 고통’, 특히 가족이 안긴 고통을 극복해야 한다. 다른 한편 노동 계급 청년들이 성인기의 기준들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음에 따라 교육, 출판, 사회 복지, 방송, 의료 등 우리 삶을 틀 짓는 제도·미디어에서 심리 치료의 언어와 제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치료 언어는 부정적인 생각, 감정, 행동을 혼자 힘으로 통제할 정도가 되어야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노동 시장과 제도, 미디어가 이렇게 상호작용한 결과 우리는 심리적 발전을 통해 성인 자격을 갖추고자 고군분투하는 치료적 자아가 된다.
이 같은 치료적 자아는 유동성과 불확실성으로 둘러싸인 삶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하는 핵심적인 문화 자원이 되었다. 하지만 자원도 시간도 없는 노동 계급 청년들에게는 자아의 성장이라는 명령이 오히려 추가적인 압력으로 작용한다. 더 큰 문제는 청년들이 감정에 기반한 자아 관리가 행복의 열쇠라고 이해하다 보니 가족의 과거사만을 부각시켜 시장과 국가처럼 강력한 제도들이 행사하는 힘을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무드 경제와 치료 담론의 명령을 부지불식간에 체화한 이들은 성인의 삶과 행복이 온전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이해하고, 부족한 자원을 가지고 끝없이 자아 관리에 힘써야 하는 악순환에 붙들리며, 자아를 성장시키지 못한 타인들을 비난한다. 신자유주의가 청년들에게 혼자 힘으로 경제적 성공을 책임져야 한다고 가르치듯, 무드 경제는 이들이 심리적 성장을 스스로 책임지게 만듦으로써 경제 영역의 신자유주의가 조성한 자립 문화를 강화한다. 이를 통해 성인기에 이르는 노동 계급 청년들의 여정이 다시 한번 개인화되며, 리스크에 대한 집단적 대응과 연대 같은 개념들이 들어설 자리는 더욱 줄어든다.
친밀함이라는 덫
: 왜 우리는 점점 더 친밀한 관계에 집착하는가,
그리고 왜 이 관계는 참을 수 없는 부담이 되는가
이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하듯 연애와 결혼, 가족 같은 친밀 관계(intimate relationship)는 단순한 사적 영역이 아니다. 친밀함은 시장이 초래하는 외적 리스크를 막아 주는 울타리가 아니라 노동 계급 청년을 짓누르는 또 다른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이 친밀 관계에서 어떤 좌절을 경험하고 이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게 되는지가 오늘날 노동 계급 청년의 성장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3장).
지난 수십 년 사이 전통적인 젠더 역할이 일정 정도 완화되었다. 그러면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새로운 문화적 이상이 발전해 전통적인 결혼관을 대체했는데, 이 이상은 ‘성적이고 감정적인 동등함’으로 이루어진 ‘순수한 관계’를 중시한다. 그 덕분에 여성들은 불평등하고 모욕적이며 감정적으로 불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권한을 확보했다. 하지만 끝없는 협상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순수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특수한 감정적·언어적·물질적 자원을 보유해야 한다. 노동 계급은 이 자원을 획득할 여력이나 시간이 없다.
일상이 예측 불가능하고 리스크로 가득하기 때문에 청년들은 오히려 가장 친밀한 관계에 집착하게 된다. 그런데 순수한 관계를 유지할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은 깨지기 쉬운 것, 또 하나의 리스크가 된다. 그리고 이 부담은 젠더와 인종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분배된다. 평등한 관계라는 이상이 부상했지만 남성들,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소수 인종 남성은 전통적인 부양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굴복해 관계 맺기를 피한다. 여성들은 이런 남성의 태도가 이기적이라 느끼며, 다른 한편으론 자신이 어렵게 획득한 ‘치료적 자아’가 불만족스러운 관계 때문에 훼손당할까 봐 두려워한다.
또한 결혼한 커플들은 치료적 관계를 추구하지만 각자의 자아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는 한편, 양쪽 부모로 구성되고 엄격하게 젠더 역할을 나누는 전통적인 가정을 꾸리려 해도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수단이 없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치료적 논리와 전통적인 논리라는 두 사랑 논리 사이에 갇힌 커플들은 견고한 가족 관계와 헌신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적 자아를 희생해야 할지를 매일매일 판단해야만 하며, 친밀 관계는 끝없는 노력과 갈등을 유발하는 또 다른 전장이 되어 버렸다.
개인의 서사에 머물지 않는 ‘우리’의 감각을 찾아 나서기
: 어떻게 원자화된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복수의 목소리를 허용하는 계급 연대를 이룰 것인가
노동 시장의 유연화, 금융 제도의 규제 완화, 사회 안전망의 파괴와 리스크의 사유화, 강고한 개인주의와 자립의 문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과 담론은 노동 계급 청년의 성인기를 파괴했을 뿐 아니라 연대의 싹도 잘라 냈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자신의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청년들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었고, 세계 각지에서 이에 대한 항의들이 발발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메시지 중 하나는 우리 자신과 타인, 공동체에 대한 이해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불평등에 저항하는 연대를 수립하고 유지하기란 요원한 일이라는 것이다.
자아의 성숙, 자기 서사 구축, 심리적 치료 같은 문화적 수단은 여성이나 비백인 등 사회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타자들이 급진적인 자기 인식에 도달하도록 돕는 유용한 자원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수단들은 신자유주의 문화에 포섭되어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자아의 우위를 긍정하고 단언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문구는 경험이 심원하게 역사적이고 집단적인 본성을 지님을 드러내려는 것이지 끝없는 개인 서사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 아니다”(262쪽). 이 책은 노동 계급 청년 남녀의 존엄과 진보를 새로이 정의하는 것이 긴요한 과제라고 호소한다. 그래야만 청년들이 성인이 된 이야기를 감정 관리로 환원하지 않고, ‘우리’라는 감각을 유지한 상태로 불안전 및 상실과 맞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미래의 청년들은 생활 임금, 기초적인 사회적 보호, 기술과 지식을 보장받은 상태로 성인기를 향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젠더와 인종을 가로질러 유연한 정체성과 복수의 목소리를 허용하는 계급 연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며, 평등주의적인 젠더 이상을 희생하도록 강제하지 않는 친밀함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0292061 |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10월 10일 | ||
쪽수 | 352쪽 | ||
크기 |
128 * 201
* 24
mm
/ 479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Coming Up Short/Silva, Jennifer 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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