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지의 중국인: 냉전 시대 서사에서 영토는 어떻게 상상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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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한겨레신문 > 2021년 12월 5주 선정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문학비평가인 저자 류저우하우는 비교문학적 관점을 기반으로 냉전 시기 중국 접경지와 영토 바깥에서 살아가던 중국인의 삶을 다룬 문학작품들을 분석한다. 국가를 국가 간 분쟁을 기억하는 중심점으로 이용하는 기존의 역사나 정치적 비평과는 달리, 상상의 여지가 많은 문학은 영토나 국가 범주로 재단되지 않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갈등을 효과적으로 그려내며 성찰의 여지를 제공한다. 이는 국가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초국가적 이슈와 문화가 공유되는 오늘날, 우리가 과연 냉전의 논리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작가정보
Liew Zhou Hau(廖卓豪)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비교문학과 문학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신진연구자이다. 하버드 대학 마힌드라 인권센터에서 박사후연구를 하며 2019년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방문연구 프로그램(ACC_R Fellow)에 참여했다. 현대 중국문학과 아시아문화를 연구하며 이주와 생태, 냉전의 유산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목차
- part 1 만주와 거제도의 접경지 서사
역사적 접경지 만주
『전쟁 쓰레기』에 나타난 한국전쟁의 접경지
국가 범주 밖에 놓인 사람들
part 2 냉전 시대 말라야의 강제 재정착에 관한 생태적 서사
농촌 중국인 정착지와 영국이 만든 발전 서사
재정착에 부치는 웡윤와의 생태적 기념비
재정착이라는 폭력과 땅으로부터의 소외
주
참고문헌
책 속으로
이 글에서는 만주와 거제도라는 두 접경지를 묘사한다. 이 두 곳은 국가 간의 싸움 성격을 띠는 정치적 분쟁에 휘말린 이주민이 살던 곳이다. 주된 논의 대상은 한국전쟁을 묘사한 하진Ha Jin (哈金)의 2004년 소설 『전쟁 쓰레기War Trash』이며,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쓰인 최서해의 단편소설 「탈출기」와 리훼이잉李輝英의 소설 『완바오산萬寶山』에 나타나는 만주에 대한 서사를 비교한다. 이 작품들은 국가적 서사를 재구성해 분쟁 때문에 인간이 치르는 대가를 강조한다. 경
관과 마주치는 개인의 경험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전쟁과 분쟁의 생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국가의 영토 분할 시도가 일어나는 현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럼으로써 국경은 인위적 구성
물임을 강조할 뿐 아니라, 국가를 정치적 분쟁과 논쟁을 기억하는 중심점으로 이용하는 서사들이 언급하지 않고 남겨둔 부분을 드러내준다. _「만주와 거제도의 접경지 서사」 15~16쪽
만주와 거제도의 접경지에 관한 작품들을 비교해봄으로써 우리는 두 공간이 전쟁과 국가 서사를 넘어 어떻게 재상상되는지를 보게 된다. 이 작품들은 농민, 군인, 전쟁포로를 비롯한 이주자의 생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접경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주고, 영토가 대개는 정적 관점에서 묘사되지만 실제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개되는 유동적 상상에 따라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 쓰레기』와 만주 서사들은 정치적 국가라는 깔끔한 범주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이주민과 이동하는 사람들 등 국경 개념에서 잊힌 존재들을 다시 전면에 부각시킨다. _「만주와 거제도의 접경지 서사」 60쪽
농촌 중국인을 훗날 ‘새마을New Village’이라 이름 붙인 지역에 재정착시킴으로써 식민 정부는 밀림의 공산주의 투사들을 고립시켜 식품, 정보, 의료품 등의 공급을 차단하고자 했다. 비상사태 초기 몇 년 사이에 시작된 몇몇 소규모 재정착 사업이 최고조에 다다르면서 시행된 대규모 재정착 사업 때문에 말라야 농촌의 인구와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비상사태가 공식적으로 끝난 1960년 7월 31일 이후 450개 이상의 새마을이 강제 이주당한 사람들의 영구 정착지로 남았다. 비상사태에 관한 전통적 설명에서 이 강제 재정착은 ‘민심Hearts and Minds을 얻는다’는 말로 요약되는데, 이것은 이 사업이 공산주의자에 대항하여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기울인 더 큰 노력의 일부임을 암시한다.
…최근 ‘민중 중심 역사’에서는 이 재정착 때문에 인간이 치른 대가를 당사자인 마을 주민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강제 재정착된 사람들이 들려주는 구전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이런 분석은 민심 서사의 대척점 역할을 한다. _「냉전 시대 말라야의 강제 재정착에 관한 생태적 서사」 70~71쪽
웡윤와Wong Yoon Wah(王潤華)는 2012년 영어ㆍ중국어 2개 언어로 출간한 시집 『새마을The New Village(新村)』에서 비상사태 기간에 테모 새마을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들려준다. 1996년과 1997년 웡윤와가 미국 캘리포니아와 아이오와에서 살면서 쓴 시 53편을 수록한 이 시집은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각기 농촌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서 가져온 소재를 하나씩 다루고 있
다. 「열대 우림 신화The Myth of the Tropical Rainforest」로 시작하는 이 책은 웡윤와가 자란 ‘캄풍’(마을)과 그가 가족과 함께 새마을로 보내졌던 재정착 시기에 관한 기억을 비롯하여 그의 농촌 회상
을 엮어낸다. 마을 주민, 공산주의자, 영국인 군인의 관점을 모두 담고 있는 이 시집은 자연적 심상과 전시의 일상적 위험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결합하여 비상사태 시기의 마을 생활을 그려낸다.
웡윤와는 주위를 둘러싼 밀림의 신화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열대 우림을 주인공으로서 전면에 내세우며 오랜 세월에 걸쳐 농촌 중국인이 그곳에 적응한 결과물인 난양 향토를 묘사한다. _「냉전 시대 말라야의 강제 재정착에 관한 생태적 서사」 85쪽
재정착에 따른 뿌리 뽑힘은 발전 서사로 정당화되어, 이처럼 서로 얽힌 삶의 양식을 무시한다. 농촌 중국인을 일시적 점유자로 규정하는 식민주의자의 묘사와는 달리, 웡윤와의 문학적 민족지학에서는 그곳에 터를 잡고 정착한 농촌 중국인과 주위 동식물의 관계를 구체화한다. 그렇지만 재정착과 발전은 고무 같은 자원에 대한 전 세계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농촌 중국인과 영국의 경제활동과 아울러 원시 밀림의 변형으로 이어졌다. _「냉전 시대 말라야의 강제 재정착에 관한 생태적 서사」 96~97쪽
출판사 서평
특수하고도 보편적인 냉전 시대 서사
이 책은 두 편의 글 「만주와 거제도의 접경지 서사」와 「냉전 시대 말라야의 강제 재정착에 관한 생태적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글의 분석 대상은 한국전쟁 시기 중국 인민지원군으로 복무한 체험을 르포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장편소설이며, 두 번째 글이 비평하는 작품은 말라야 비상사태 시기 게릴라와 농촌 중국인의 결탁을 막기 위한 영국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이 시행되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자전적 시와 수필이다. 서로 다른 공간의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며 장르도 서로 다르지만, 두 편의 글에서 다루는 주요 작품은 냉전 시대의 경계지역을 배경으로 중국인의 운명을 그렸다는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냉전 시기는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이념적 갈등이 첨예화되었기에 작품 속에 재현된 갈등 역시 복잡하고 다층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저자 류저우하우는 조선과 청과 일제가 토지 소유권을 다툼에 따라 주민들의 생계가 위협당하는 접경지 만주, 돌아갈 국가가 확정되지 않은 한국전쟁 포로들이 수감된 중간지대 거제도, 영국 식민정부가 중국계 주민을 대상으로 강제 이주를 단행한 말레이 농촌 취약지에 주목하는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땅과 맺는 관계,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개별적인 장소의 특수성을 넘어 이주와 정착을 둘러싼 서사의 보편성까지 획득한다. 특정한 국가나 이념지향에서 비껴나 삶의 터전인 땅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땅에서 소외되고 단절되며 훼손당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국가의 국민도 아닌, 경계에 놓인 사람들
첫 번째 글은 국가 간의 정치적 분쟁에 휘말린 인물들이 살아가는 경계지로서 만주와 거제도라는 장소를 조명하면서, 먼저 한국과 중국의 지리적 국경인 압록강과 계속해서 주인이 바뀐 만주를 둘러싼 역사적 갈등을 다룬다. 먼저 1930년대에 쓰인 최서해의 단편소설 「탈출기」와 리훼이잉李輝英의 소설 『완바오산萬寶山』에 나타난 접경지 만주의 의미를 살피고, 이어서 하진Ha Jin(哈金)의 2004년작 장편소설 『전쟁 쓰레기War Trash』를 통해 국가 정체성을 잃은 포로들이 정치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중간지대로서 거제도를 살피며 경계지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고찰한다.
주된 논의는 한국전쟁에 뛰어든 중국 인민지원군을 주요 인물로 삼은 『전쟁 쓰레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압록강을 넘어 남의 나라 전쟁에 뛰어든 중국인들이 생존 위기를 겪고 신분을 속인 채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이후 중국 본토와 타이완 중 택일을 강요당하며 겪는 다양한 갈등 양상이 땅이나 신체와 관련되어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논의는 국가적 서사를 개인의 경험으로 재구성하고, 전쟁이 생태에 미치는 영향, 공간과 상호작용하지 못하는 단절된 신체를 부각하며 특정 국가의 국민 개념에 포함되지 못하는 개별 인간이 치르는 대가를 강조한다.
식민 정부가 아닌 생활인의 시각으로 다시 쓰는 생태 서사
두 번째 글에서는 1948~1960년 말라야 비상사태 기간에 농촌 거주 중국인 소수민족 50만 명을 대상으로 시행된 강제 이주를 다룬 문학작품을 분석한다. 당시 영국 식민 정부는 농촌 지역 게릴라와 중국인이 결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인을 새로운 터전으로 이주시키고 강력하게 통제했다. 그럼에도 이곳을 ‘새마을’이라 이름 붙인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인프라 보급과 경제적 향상,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성과를 앞세우며 ‘민심'을 얻었다는 표현으로 정책을 정당화했다. 이런 태도는 영국이 만든 소책자 『페르마탕 팅기 새마을 이야기The Story of Permatang Tinggi New Village』에서 잘 나타난다. 이 책자는 농촌 중국인을 역사가 없는 원시 민족이었으나 이주 이후 생산적이고 충성스러운 시민으로 탈바꿈한 것으로 소개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유년 시절 강제 재정착을 경험한 작가 웡윤와Wong Yoon Wah(王潤華)가 쓴 수필과 시, 그 속에 녹아든 구전 역사와 문화적 산물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중국 본토 남동부 사람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동남아시아 해안지역을 '남쪽 바다'라는 의미로 '난양南洋'이라 부르면서 오갔는데, 웡윤와는 난양 사람들과 그 환경 사이에 신비로운 공생관계가 있어왔음에 주목한다. 2012년 출간된 시집 『새마을The New Village(新村)』 속 웡윤와가 그리는 열대 우림은 신화적이고 영적이다. 중국인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말라야의 토착식물처럼 번성한 고무나무와 비슷하게 이식된 존재로서 뿌리내렸고, 영국인이 주석 광산을 파내고 남긴 상처인 웅덩이에서 사는 가물치처럼 생명력 넘치는 존재다. 그런데 비상사태의 혼란이 생태에 교란을 일으키고, 향토에서 중국인 정착민을 몰아낸다. 땅으로부터 소외된 기억을 우화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원시와 낙후를 동일시하고 파괴와 성장을 동일시한 새마을의 수사修辭에 분명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89652906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1월 30일 | ||
쪽수 | 120쪽 | ||
크기 |
142 * 217
* 18
mm
/ 31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교차하는 아시아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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