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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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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현해 대종사의 삶과 수행의 발자취《오대산 노송》 출간!
작가정보
저자(글) 연암현해
스님은 1935년 경남 울산에서 9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나, 1958년 월정사에서 만화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0년 탄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6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64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종비생 1기로 입학해 1968년에 졸업하였으며, 1973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초청 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 고마자와대 박사과정을 마치고 와세다대, 다이쇼대에서 동양철학과 천태학을 공부한 후 귀국, 중앙승가대와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오랫동안 《법화경》을 강의했다. 1992년부터 2004년 1월까지 월정사 주지 소임을 맡았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조계종 제3ㆍ7ㆍ10대 종회의원을 지냈으며, 2007년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 및 대종사로 추대되었다. 1996년 《법화경요품강의》를 펴냈으며, 2006년에는 산스크리트본, 한문번역본, 영문번역본, 한글번역본 등 4개 국어 대조본 《묘법연화경》을 3권으로 완간했다.
현재 (재)불교문화진흥조계종 성찬회 이사장, 월정사 및 법종사 회주로서 월정사 서울포교원 법종사에서 대중을 만나고 있다. 법문집 《아프니까 더 살 만한 세상》 등이 있다.
목차
- 머리말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제1장 | 기독교 집안에서 피어난 법연(法緣)의 꽃
태몽, 출가 인연의 징조
선천과 후천이 공존하는 습성
병치레 잦았던 유년 시절
부처님 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
어려운 시험 통과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다
부친의 죽음으로 삶에 대한 의문을 품다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난 8·15 해방의 기쁨
경주공업중학교에 입학하다
경주공업고등학교에서 쫓겨나 부산으로
북부산 고등학교 시절
결핵으로 의가사제대를 하다
기독교 교리에 회의를 품다
제2장 |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하다
도인스님을 찾아 월정사로
스승과 제자는 일기일회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경전을 읽으면서
세간의 길과 출세간의 길이 서로 달라
맹장염,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완치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하루
약사여래불의 의미를 되새기다
만화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다
내증(內證)의 체험은 평생의 자산이 되고
돈, 명예, 권력에 초극한 대자유의 삶
수행의 지남이 된 한암 스님의 삶
제3장 | 만행과 운수 행각의 길
외상으로 사 먹은 꿀
해인사 강원에서 만난 교회 제자
공부 원력을 세운 까닭
인과를 믿지 않으면 인과에 떨어진다
불안한 마음과 욕망을 버려야
절도와 강도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다
흥복사 주지 직무대행을 마치고 행장을 꾸리다
제4장 | 동국대 종비생 1기, 희망의 꽃을 품다
문수사에서 대입 준비를 하다
동국대학교 1기 종비생이 되다
화계사 앞 요정을 정화한 종비생들
대학 다니는 승려에 대한 편견을 딛고
동국대학교 정화의 주역이 된 종비생들
석림회를 창립하다
대학 졸업 후 탄허 스님을 시봉하다
수행자의 삶이 그대로 열반의 지름길
제5장 | 나의 스승 나의 은사
범룡 스님께 배운 수행자의 진면목
무장공비에 맞서 보초를 서다
은사 만화희찬 스님 석방을 위하여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길을 떠나다
은사스님이 다시 월정사 주지가 되다
석주 스님의 배려로 칠보사에 머물다
청담 스님의 조계종 탈종, 승풍을 바로잡다
석주 스님의 덕화로 여러 도움을 받다
감동을 준 벽안 스님과의 인연
제6장 | 만학도, 현해탄을 건너다
《법화경》으로 석사학위를 받다
만학도, 현해탄을 건너다
추억으로 남은 일본 홍법원에서의 공동생활
순탄했던 일본 유학시절
신도들의 도움으로 자립하다
빨갱이 대장을 만나 논쟁하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문화 차이
내 인생의 소중한 자산
일본 학계에서 검소함과 치밀함을 배우다
제7장 | 회향, 수행자로 사는 법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
삶(生)에 집착이 없으면 죽음(死)도 두렵지 않다
사찰 주지는 지역포교의 파수꾼
수행자는 흘러가는 물도 아껴 써야 한다
불자가 된 조폭 두목
불교계 상처만 남긴 10·27법난
은사스님 원적에 들다
한암문도회 다시 월정사를 되찾다
월정사 3대 숙원을 해결하다
성보박물관 개관과 《한암일발록》 출간의 기쁨
월정사 주지 재임 동안 많은 송사에 휘말리다
일복 많은 동국대학교 이사장 시절
제8장 | 낙엽귀근(落葉歸根), 돌아갈 자리를 생각하며
청정승가의 수행 가풍, 한국불교의 새로운 희망
낙엽귀근, 조계종 종통을 되새기다
4개 국어 대조본 《묘법연화경》을 출간하다
상불경보살의 자비행에 경도되다
뒤바뀐 두 견해가 다르지 않다
월정사와의 법연, 무량한 은혜를 입다
한 줄기 바람처럼 한 가닥 햇살처럼
책 속으로
자다 일어나서 훌쩍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서 아버지가 물었다.
“배고프냐?”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버지가 어둑한 부엌에 들어가더니 오래지 않아 밥상을 들고 나왔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남자들도 가사노동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대단히 부끄러운 일로 평가되었다. 아버지는 내 앞에 밥상을 내려놓은 뒤 나를 보며 엷게 웃었다. 아버지의 그 엷은 미소는 평생 동안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35쪽)
연화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함께 어울려 놀던 벗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부처님이니 나한테 절해라.”
초등학교 5학년 때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갔는데도 나는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집안의 가풍 때문에 내게는 불상(佛像)이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40쪽)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자 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던 날, 광복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더 이상 일본어로 말하지 않아도 되고, 일본어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일제가 망하는 것을 보고서 어린 마음에도 세상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게 되었다. 중국은 물론이고 필리핀까지 침략한 일제가 그렇게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45쪽)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녀석에게 의도적으로라도 져 줬다면 집단으로 매를 맞는 일은 없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소수라는 이유로 집단에게서 따돌림을 당하고, 폭행을 당하는 일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6개월 만에 미군부대 목공부 일을 관둬야 했다. (54쪽)
인간 심연의 탐구가 치밀했던 《죄와 벌》을 읽고 선악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웃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기생하는 노파와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한 라스꼴리니꼬프 중 누가 더 악한가 하는 의문에 나는 선뜻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제도적 범주의 죄와 윤리적 범주의 죄를 두고, 스스로 재판관이 되거나 신의 입장이 되어 개인적 차원의 죄와 사회적 차원의 죄를 저울질했지만 판결은 날마다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70쪽)
그러던 중 우연히 내가 다녔던 교회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교회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회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내 얘기를 듣더니 목사는 대뜸 “오대산 월정사에 가서 도인(道人)을 만나 보라”고 권했다. 그 도인이 바로 유불선(儒佛仙)에 두루 능통했던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이다. (75쪽)
산길을 걷다 보니 멀리 가람이 보였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는 우리에게 동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준다. 저기서 새로이 공부를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월정사에 들어갈 때까지도 나는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공부가 진여(眞如)를 찾는 것임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막연하게나마 학교 공부나 교회 성경공부 등과는 사뭇 다른 공부일 것이라고만 짐작했을 뿐. (78쪽)
나는 보배보다 값진 그 마음을 알고 싶었다. 만약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을 접하지 않았다면, 계속 일만 하다가 지쳐서 그만 절을 내려왔을지도 모른다. (94~95쪽)
한암 스님, 탄허 스님, 희찬 스님으로 계승되는 오대산 문중은 계율 청정을 강조했던 터라 지금도 출가하겠다고 찾아오는 이가 있으면 가급적이면 만류한다. 수행자의 길이 멀고도 험하기 때문이다. 잘만 하면 한없이 좋은 길이나, 잘못하면 이중의 죄를 짓는 게 바로 중노릇이다. (112쪽)
예나 지금이나 사기꾼들은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과 욕망을 이용한다. 사기꾼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불안한 마음과 욕망을 버려야 한다. 사람들은 몸 건강을 많이 생각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 건강이다. (150쪽)
“1주일 동안 큰스님께 법문을 듣고 중노릇 잘하는 수업도 받으려고 왔습니다.”
내 말을 듣고 성철 스님이 못 이기는 척 우리의 청을 들어주면서 단서를 달았다.
“그럼, 조건이 있다. 너희는 학교에 등록금을 내고 다니지. 나도 너희한테 등록금을 받아야겠어.”
“등록금이 얼마입니까?”
“등록금은 부처님 전에 삼천배를 올리는 거야.” (187~188쪽)
범룡 스님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홀로 고요히 앉아 참선을 하였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범룡 스님의 모습을 보면 시공간을 초월한 경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저 모습이야말로 수행자의 면목이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특히 범룡 스님은 조금도 자랑을 하지 않았다. 범룡 스님이 종종 말버릇처럼 “내가 평생 중노릇하면서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을 모시고 있을 때가 수행을 가장 잘한 것 같다. 그때는 몰랐어. 그저 야속하기만 했지”라는 말씀을 하곤 했다. (200쪽)
“스님, 중생을 구제하려면 푸근한 마음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요? 중생마다 그 근기의 층계가 나뉘어 있고, 성정이 가지가지이니 그 각기 다른 중생을 제도하려면 드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중생들이 스님 옆에 와서 의논도 하고 위로의 말도 듣고 할 테니까요. 그런데 스님 옆에 가면 찬바람만 붑니다.”
보살의 조언을 듣고 보니 지당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더 큰 공부를 하고 더 큰 깨달음을 얻어서 중생들에게 더 큰 자비행을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215쪽)
어찌된 영문인지 탄허 노스님은 모인 대중들에게 《신화엄경합론》을 한 질씩 배부하면서 손상좌인 내게는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치를 보니 책은 책값을 내야 받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노스님에게 여쭤 보았다. “노스님, 책값이 얼마입니까?” 그러자 노스님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10만원이야. 나는 절대로 책을 공짜로 주는 일은 없어. 그러면 책의 소중함을 모르는 법이거든.” (265쪽)
‘처염상정’의 뜻은 더러운 곳에 처하더라도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한 연꽃처럼 살라는 것이다. 석주 스님은 이 글씨를 써준 뒤 가르침을 주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수행자는 중생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진흙 속에 뿌리를 두더라도 아름다운 향기를 퍼뜨리라는 것이 바로 《법화경》의 가르침입니다.” (275쪽)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배 권력의 힘은 실로 쇠방망이처럼 무서운 게 사실이다. 권좌에 앉은 이에게는 그 누구도 대놓고 바른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무서운 철권정치에 맞서는 것도 결국은 쇠방망이와 같은 직언이다. 이처럼 직언은 쇠방망이가 되어 상대를 내려친다. 지성인이라면 모름지기 곡학아세(曲學阿世)하여 출세하려고 하지 말고, 올곧게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 (297쪽)
나는 그때까지 의식도 거의 없고 정신이 혼미했는데 “어려울 것 같으니 각오하셔야겠습니다”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오면서 ‘아, 나는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 자신이 생사에 대해서 초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찌해서 혼수상태에 있다가 ‘어렵습니다, 각오하셔야겠습니다’ 하는 말, 즉 ‘의사의 회생하기 어렵다는 말, 죽음이 가까웠다는 말이 귀에 들어오는가? 지금까지 나의 수행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또 혼수상태에 들어갔다. (298쪽)
범룡 스님은 어떤 초청에도 응하지 않으셨는데, 한암 스님 법문집인 《한암일발록》을 출간했다고 하니 직접 서문을 써 주시고 법문 서두에 “나는 산문 밖을 나가지 않는데, 한암 스님이 오셔서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346쪽)
상노스님(한암 스님)이 종통관에 대해 연구한 까닭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상노스님의 종통관을 연구한 이유도 내 뿌리를 찾기 위함이었다. 고희(古稀)가 지나고 나니 상노스님(한암 스님)에서 노스님(탄허 스님)으로, 노스님에서 은사스님(희찬 스님)으로 계승된 오대산의 법통을 이어받아 수행자로서 한평생 살아온 것이 그야말로 불은(佛恩)이자 법연(法緣)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되면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 내가 돌아가야 할 뿌리는 오대산의 법통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388쪽)
나는 《법화경》을 읽을 때마다 상불경보살에 주목하곤 한다. 상불경보살은 만나는 사람마다 합장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젠가는 부처님이 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항상 존경합니다.” (395~396쪽)
출판사 서평
“나는 보배보다 값진 그 마음을 알고 싶었다.”
스물네 살의 청년이 무작정 월정사를 찾았다. 전쟁 이후 혼돈의 시대에 머리를 깎고 수행자가 되었다. 지난한 세월 속에 청년은 어느덧 구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오대산 월정사 회주 연암현해 대종사. 한국불교의 산 역사이자 대표적 학승으로 종단을 떠받치고 있는 현해 대종사의 삶과 수행의 시간은 우리 근현대사 속에서 스스로 주인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초인(超人)의 길이 어떠했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돌아보니 자신이 마치 구부러진 오대산의 병든 노송(老松)과 같아서 타인들에게 그늘이나 좋은 쉼터를 주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전하지만 누구나 알게 되듯이 무수한 비바람에도 결코 쓰러지지 않고 꺾어도 꺾이지 않는 무수한 노송들의 그 힘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불교는 거대한 숲이 될 수 있었다. 누구에게라도 조금의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의 언약을 지키며 살아온 오대산 노송의 나이테 속에서 부처님이 전하신 진리의 법문이 감동으로 파고든다.
거목은 하룻밤에 크지 않는다
동국대학교 이사장과 조계종 종회의원, 2007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 및 대종사로 추대되었다. 《법화경요품강의》를 펴냈으며, 2006년에는 산스크리트본, 한문번역본, 영문번역본, 한글번역본 등 4개 국어 대조본 《묘법연화경》을 3권으로 완간했다. 와세다 대학·다이쇼 대학에서 동양철학과 천태학을 연구했으며 2004년 미국?LA 서래대학과 일본 대정대학에서 각각 명예 불교교육학박사와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불교의 대표적 학승으로 칭송받으며 후학들이 수행하고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들을 수 있도록 수많은 불사를 이뤄냈다. 그렇게 한국불교의 거대한 숲이 되기까지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단 한순간도 ‘불제자의 길’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현해 스님의 올곧은 기상은 깊은 감동을 넘어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제1장 기독교 집안에서 피어난 법연(法緣)의 꽃’은 스님의 출가 전 이야기이다. 해방 이전의 어려운 생활상과 가족들의 이야기, 또한 학교 진학의 어려움과 공부에 대한 열망,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품고 방황하는 청년기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제2장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하다’는 은사 희찬 스님을 만나 출가하여 수행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경전을 읽으며 수행 정진하였으며, 돈과 명예와 권력에 초극한 대자유의 삶을 살았다고 회고한다. 한국전쟁 때 오대산 상원암을 지켜낸 한암 스님의 삶은 현해 스님이 수행하는 데 지남이 되었다고 한다.
‘제3장 만행과 운수 행각의 길’에서 흥복사 주지 직무대행을 하면서 겪은 일화를 소개한다. 비구-대처의 갈등 속에서도 묵묵히 불사를 일으켰으며, 절도와 강도 사건을 만난 이야기와 더불어 인근 초등학교 교장과의 마찰 등의 이야기가 있다.
‘제4장 동국대 종비생 1기, 희망의 꽃을 품다’는 청년기 공부에 대한 열망은 출가 뒤에도 이어졌고 다시 대학 진학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종비생(宗費生, 종단이 부담하는 학비로 공부하는 조계종 스님) 제도가 생겨 제1기 종비생으로 동국대학교에 입학한 뒤 종비생들이 중심이 되어 불교정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친 이야기도 있다. 대학 다니는 승려는 환속 준비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딛고 묵묵히 학업에 정진하는 모습과 동국대학교 재학 승려들을 모아 ‘석림회’를 창립하고 정진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제5장 나의 스승 나의 은사’에서는 은사 희찬 스님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삶과 수행의 길잡이가 되었던 범룡 스님, 석주 스님, 청담 스님, 벽안 스님 등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특히 벽안 스님의 휘호 ‘고해보벌(苦海寶筏,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보배로운 배)’은 일본 유학길에 오른 현해 스님을 배웅하기 위해 벽안 스님이 김포공항에 직접 나와 격려하며 전해주었다고 했는데 평생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제6장 만학도, 현해탄을 건너다’에서는 일본 유학 생활의 면면과 함께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짚어보게 한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이를 소개하며 일본 학계에서 검소함과 치밀함을 배웠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 유학 생활은 ‘내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현해 스님은 평가한다.
‘제7장 회향, 수행자로 사는 법’에서는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들어선 직후 중앙승가대학 부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와 10·27법난의 아픔 등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와 더불어 월정사 주지, 동국대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느낀 수행자의 삶에 대한 깨달음과 가르침이 담겨 있다.
‘제8장 낙엽귀근(落葉歸根), 돌아갈 자리를 생각하며’는 조계종의 어른으로서 청정승가의 수행 가풍이 한국불교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강조한다. 조계종 종통관(宗統觀) 문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며 대한불교조계종 대종사 법계 품수를 받은 이후 불교계 원로로서 한국불교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월정사와의 법연으로 입은 무량한 은혜를 회고한다.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
지나온 시간을 담담하게 전하는 현해 스님의 말씀은 때로는 박장대소로 때로는 눈물로 읽힌다.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한국불교 역사를 보는 시간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불교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일 수 있다. 현재 자신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에 따라 현해 스님의 이야기는 다른 깊이와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지금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충실히 보내고 있는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가? 현해 스님의 이야기는 나를 비춰주는 밝은 거울이다.
가을이 되면 낙엽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땅과 나무에게 꼭 필요한 거름이 된다. 현해 스님의 이야기에 녹아 있는 노송들의 가르침은 이후 한국불교를 튼튼하게 키우는 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 곁에 남아 두고두고 깨달음의 길잡이가 될 소중한 법문이 될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89269463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3월 07일 |
쪽수 | 416쪽 |
크기 |
161 * 234
* 32
mm
/ 806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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