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마술을 보여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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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만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삶이 비범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쉽사리 그렇게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시에서만큼은 다른 숨을 쉬고 다른 눈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라며 이장근 시인이 일상에서 발휘하는 입체적인 시어들에 주목했다.
“머리에 밥 쟁반을 이고 가는 여자”나 아파트 경비를 서던 “오다리 아저씨”, 말 한마디 천근만근 목구멍으로 올리던 “옆집 형”처럼, 거대한 도시 속에서 잊히거나 묻힐 뻔한 존재들을 시인은 자주 호명해낸다. 고도화된 문명사회 속에서 우리가 갈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향한 그리움과 공동체 의식을 섬세한 시인의 안테나를 통해 잡아내고, 독자에게 송신해 준다.
“얕은 의식을 경계하며 표리부동한 언어를 밀쳐내려는 시인의 긴장감”을 토대로 쓰인 이장근 시인의 시는 “화려하게 이어지는 기다란 수사의 문장들을 찾아보긴 힘들지만, 단형의 아담한 문장들의 서까래와 바람이 통할 수 있는 너끈한 여백들 사이로 한 층 한 층 쌓아놓은 시어의 집” 혹은 “하나하나의 사연들이 쌓여 만들어진 이름 없는 돌탑처럼 보이기도 한다.”(조대한 문학평론가)
작가정보
작가의 말
잠이 오지 않으면
잠을 기다리는 대신
막차가 끊긴 버스정류장에 앉아
첫차를 맞곤 했다.
첫차를 타러 나온 사람들 눈빛에서
시를 읽곤 했다.
그들을 싣고 가는 버스를
몰고 싶었다.
2019년 가을
이장근
목차
- 1부 어제 본 사람과 오늘도 서서 간다
바닥을 모시는 자들
공중 바닥
악어 입에 머리를 넣듯
오메가쓰리
멀쩡한
구역
선녀네 만둣가게
임대 아파트
체인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평화를
초록을 뒤집어쓴 신호
서서 가는 사람
마네킹의 오장육부
손톱의 미소
달의 평면도
복개천
낙법
2부 나를 모르는 내가 가장 아프지 않았다
어항1
눈물을 삼키던 버릇
거품에 대한 명상
헤비메탈
오다리 아저씨
입술을 만드는 입술
뜨거운 눈동자
시외버스터미널
소라
막니
영, 너는
자체검열
멍
달래는 내가 지은 이름이다
매듭
어항2
3부 당신은 마술을 보여 달라고 한다
오월 소풍
사이역
바람 집
섬
낮달
차비
벽돌 한 장
마우스피스
은하철도 999
부부
마술쇼
여명
단칸
오막살이
당신의 남자에게 하는 약속
수평선
4부 아픈 사람들은 이름 없는 별을 찾는다
수요일의 주사위
식구
환절기
뒤돌아보는 병을 앓는다
밤새 앓는 섬이었다
목련 신호등
육교 커피숍
사과 고양이
여관
나를 인화하면 ‘너’가 된다
별일 없이 서툴다
틈새 집
네가 만드는 작은 바람
오늘 잘한 일
진주 목걸이
나방
해설
사이에 지은 집_조대한(문학평론가)
추천사
-
삶이 비범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쉽사리 그렇게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시에서만큼은 다른 숨을 쉬고 다른 눈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사는 것을 넘어서는 시를 만지거나 가져보려 한다. 그러니 애쓰는 촉감과 구상조차도 자신의 분신이 아니던가. 확신컨대 이 시인은 지금 사람이 사람의 편이 되게끔 속이는 희소한 마술을 벌이고 있다. 구상과 연출은 그의 것이지만 그 성취를 시인에게 눈빛을 빌려준 이들에게 도로 내 놓는다. 입체적인 시들의 향연을 보노라면 발랄한 웃음이 일고 맑은 눈물이 솟고 아이들이 달려와 안기고 식구들이 밥상 위에 모이는 울다가도 웃는 저녁이 온다. 이렇게 은근하니 좋은 실감과 작품으로서 미더움이 밀려오는 연유는 무엇일까. 어떤 서사일지라도 뻔한 전개와 귀결에 이르지 않으려는 시인의 도도한 품새 때문일까, ‘도덕을 공중분해하며 피고 싶’은, ‘악취를 잃어버린 하루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 는 선생으로서 고해를 뱉을 때 내 목구멍도 같이 탔던 탓일까? ‘입체를 평면으로 바꾸는’ 얕은 인식을 경계하며 표리부동한 언어를 밀쳐내려는 시인의 쫄리지 않는 긴장이 떨림으로 전해져 온 탓일까? 그는 어느 편이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지만 어느 편임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폐지를 가득 싣고 달리는 노인을 나도 모르게 믿게 된 미신’이라고 말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일컬어 ‘한 점 부끄럼 없는 우상’ 이라 떠받드는. 한편의 눈빛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첫 친구는 뇌성마비 옆집 형이었고 혼자만 입학한 게 괴로워 도망쳐 달려온 일곱 살 이장근, ‘꾸물꾸물 대청마루로 기어와 내 몸속에 들어오던 뜨거운 눈동자’를 잊지 않는 그의 ‘바닥’을 알기에 우리는 ‘바닥을 모시는 자들의 단합’에 불가피하게 연루된다.
책 속으로
머리에 밥 쟁반을 이고 가는 여자
손으로 잡지도 않았는데
삼층으로 쌓은 쟁반이
머리에 붙은 것 같다
목은 떨어져도
쟁반은 떨어질 것 같지 않은
균형이 아닌 결합이 되어버린 여자
하늘 아래 머리 조아릴 바닥이 있다면
바로 저 여자의 머리
머리를 바닥으로 만든 머리
바닥에 내려놓고 파는 물건이
대부분인 시장통을
그녀가 간다
채소 가게 앞에 다다르자
주인 내외가 다가와
쟁반 하나를 내려놓는다
바닥을 모시는 자들의 단합이랄까
그녀의 바닥에서 그들의 바닥으로
따끈한 밥 쟁반이 옮겨 간다
- 「바닥을 모시는 자들」 전문
흰자위 같은 아내와 나는
노른자 같은 아이들과
방이 두 칸인 집에서
아직도 잘 때는
방 한 칸으로 모인다
몸 비비며 자다 보면
몸에서 닭똥 냄새가 난다
삼십 년도 더 된
내가 아이들만 할 때
맡고 자던 냄새
언젠가 방 한 칸을 깨고
아이들은 떠나겠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내와 나는 아이들에게
냄새를 옮기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징한 냄새를 만드는 단칸
징한 사랑도 징한 아픔도
단칸에서 시작되고 끝난다는 것
살면서 단칸만은
빼앗기면 안 되고
빼앗아도 안 된다고
- 「단칸」 전문
카페 벽에 걸린 빨간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는다
마지막 말을 하려다 끊긴
그때의 통화가 이어질 것 같아
먹통인 걸 알면서도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른다
마지막 번호는 별표와 우물 정자 사이
영, 너는 젊었고
영, 너는 가난했고
영, 너는 우물에 별이 뜨면 물고기가 되었다
먹통 귀로 별을 따먹을 때마다
비늘이 되었다
잊지 못한 번호가 있다는 건 슬픈 일이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동전을 만지작거린 손에서는
비린내가 났다
- 「영, 너는」 전문
첫 시집 『?투』에 이어 비대한 세계의 크기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삶에 여전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이장근 시인. 그것은 세계의 위기에서 제일 먼저 깨지고 버려지는 이들의 유리 바닥 같은 삶(「공중 바닥」)이자, 바닥에서 바닥으로 이어지는 생활 속에서도 서로를 모시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바닥을 모시는 자들」)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89128524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10월 30일 | ||
쪽수 | 150쪽 | ||
크기 |
125 * 201
* 14
mm
/ 17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걷는사람 시인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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