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
미술 교육의 현장에서 교사들은 끊임없이 근본적인 문제들과 부딪힌다. 쉽고 재미있게 미술을 가르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림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림들의 순위를 정하는 일이 과연 가능하고 또 꼭 필요할까? 창의성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그것은 과연 길러질 수 있는 것일까? 미술 수업에서 학생과 어떻게 교감해야 하고, 교사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초점의 대상이 아동에 맞춰지면 고민은 한층 깊어진다. 아이들의 그림을 즐거운 놀이의 측면으로 보아야 할까, 예술적 감각과 능력의 측면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발달 과정상의 자연스러운 표현 측면에서 인정해야 할까? 그림에 나타나는 아동의 마음 상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어느 하나 좋은 답을 찾지 못해 갈등하면서도 문득 종이가 찢겨지도록 문질러 구멍을 내는 아이나 전혀 그림을 그려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면 당혹스런 감정을 느끼곤 한다.
대부분의 미술 교사들은 대학에서 익힌 미술교육 이론이나 실기 경험이 실제 교육 현장, 특히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역자들 또한 근 40여 년 동안 아동미술 교육계와 중등 및 대학 교육의 현장에서 똑같은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고심하고 연구한 끝에 만2세~7세까지 그리기 표현 방법을 개발하고 이를 교육 현장에 적용하기도 하였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리기 표현력 면에서 눈에 띄게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아이들의 그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난감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늘 갈등이 컸던 역자들에게 언제부턴가 강렬한 빛으로 다가온 것은 빅토르 로웬펠드(Viktor Rowenfeld)의 미술 이론이었다. 처음에는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 호감 정도만 갖고 있었으나 그의 저서를 깊이 파고들수록 본질을 꿰뚫는 탁월한 통찰력에 전폭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의 두뇌 발달 특징을 명쾌하게 반영하고 있는 그의 묘화발달단계 이론은 아동의 심리와 정서, 인지력의 향상에 따라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이해를 제공하고 있어서 미술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지침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의 창의적 성장 개념 또한 역자가 교육 현장에서 생생하게 만난 아동미술의 진수를 탁월하게 규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고전은 역시 고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Ⅱ
본서는 로웬펠드와 W. 램버트 브리튼의 공저인 The Creative and Mental Growth의 8번째(1987)이자 최종 판본의 완역본이다. 국내에서는 4번째 판본(1964)이 번역되어 1993년에 출판되었고 그 후 일부 보완된 바 있으나, 현재는 절판되어 그마저 구할 수 없는 형편이다. 로웬펠드의 책은 1947년에 초판이 나왔고, 그가 1960년에 사망한 이후 4판부터는 브리튼에 의해 개정이 이루어져 왔다. 특히 마지막 8번째 판본에서는 새로운 챕터가 상당 부분 추가되고 참고문헌이 보완되어 가히 아동미술 교육 분야 최고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로웬펠드는 현대 아동미술학의 이정표를 세운 거목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아동의 연령별 단계에 따라 신체적·지적 성장이 반영되는 미술 표현의 발달 단계를 구체적으로 체계화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아동미술에 심리학을 접목시켜 유아기부터 청소년기에 이르는 시기를 여섯으로 나누고 각 단계별로 나타나는 특징적인 발달상태를 규명하였다. 최근에는 여러 교육 여건의 변화에 따라 취학전 아동의 발달이 1년 정도 앞당겨진 경향이 뚜렷하지만 그의 이론의 전반적인 틀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또한 아동의 창의성과 자기 동일화 등을 매우 중시하여 특히 자기를 표현하는 미술 활동을 통해 모든 어린이에게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고 피력하는 한편, 아동의 발달을 총체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지적 정서적 발달, 사회적 미학적 발달 등을 유기적으로 아우르며 창의적인 인간으로 길러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던 바, 그는 오늘날 가장 영향력이 큰 미술 교육자로 인정받고 있다.
로웬펠드의 이론은 그의 사후에 램버트 브리튼에 의해서 상당 부분 보강되며 새롭게 변화된 환경과 진보적인 교육 이론들을 반영해 왔지만, 이와 동시에 일정 부분 비판에도 직면하였다. 가장 큰 논점 중 하나는 미술 교육을 창의성 발현의 차원으로 보아야 할지, 지식학습 차원으로 보아야 할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창의성을 미술 교육의 본질로 본 로웬펠드가 아동이 스스로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미술 교사는 적극 개입을 자제하고 다만 동기부여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비판이 그것인데, 결국 이러한 방침이 미술 교사의 역할을 소극적이거나 방임적인 상태로 약화시켰다는 지적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교사가 적극적인 지도를 통해 아동의 인지적 발달을 도울 수 있다는 비고츠키(Lev S. Vygotsky, 1896~1934)의 근접 발달 영역 이론(Zone of Proximal Development Theory)과 대조되었고, 20세기 후엽에 이르러 아이스너(E. W. Eisner, 1933~2014) 또한 적극적인 지도를 통한 작품이라는 결과와 학습으로서의 미술을 중시하면서 수업을 통해 지적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미술교육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의 문제는 우리나라 미술 교육의 방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로웬펠드의 견해는 1963년의 2차 교육과정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여 1987년의 5차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유아의 내면세계 표출과 잠재된 창의력 발달에 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며 미술 교육의 일반화를 이끌었고, 그 이후로도 큰 영향력을 유지하며 미술 교육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한편, 1992년의 6차 교육과정부터는 지적 개발에서의 미술의 독자적 역할을 강조하는 아이스너의 이론 또한 무게 있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여, 작품의 이해 교육과 감상 교육 등 적극적인 훈련 학습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었고, 교육과정과 수업의 중요성이 한층 강조되는 방향으로 교육의 변화가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논쟁과 관련하여, 역자들은 로웬펠드가 교사의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주장은 편협성을 띠고 있으며, 결국 그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탁월성이 약화되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자들이 보기에 아동의 자연적인 성장과 그를 위한 동기 부여의 중요성을 강조한 로웬펠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의 저서에서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바로 ‘아동’이었다. 그는 ‘미술’이나 ‘교육’보다 아동 자체를 중시했으며, 따라서 미술을 아동 스스로 발달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여겼던 것이다. 강조점을 ‘아동’과 아동의 ‘자발적 성장’에 두다 보니 그 과정에서 주체는 아동이 되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필요한 단계에서 관찰하고 조언하며 동기 부여에 힘쓰는 교사의 역할이 강조되었을 뿐이다.
아울러 로웬펠드가 이렇게 동기 부여의 역할을 부과했을망정, 교사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은 전혀 아니다. 아동의 심리가 표상 활동에 반영된다는 점을 주목한 그는 특히 취학전 아동과 초등학교 저학년의 시기에 발문법을 활용한 동기 부여를 통해서 사고 활동을 적극 촉진하고 격려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처럼 교사와 아동 간의 상호교감을 통하여 창의적 표현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그가 거듭 단언한 점과, 민감한 교사가 아니라면 이러한 역할은 불가능하다고 분명하게 지적한 점을 볼 때 그는 오히려 교사의 막중한 역할을 충분히 강조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로웬펠드가 한 세대 후의 아이스너와는 반대로 결과(작품)보다는 과정(표상 활동)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점 또한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아동의 작품을 미학적인 관점에서의 발전 여부로 평가하려는 시도를 단호하게 거부함으로써, 아동미술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였다. 아이들은 조화나 통일, 구성과 같은 것에는 관심 없이 단지 알고 있는 것(생각, 정서)을 그려낼 뿐이므로, 아동의 그림을 어른의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그의 주장에 역자들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작품이라는 결과를 중시하고 미술을 독립적인 교과로써 간주해야 한다는 아이스너의 견해 또한 적절한 시의성을 지녔다고 여기는 바, 이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사고가 가능해지는 중등학교부터에서나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Ⅲ
역자들은 교육 현장에서 늘 로웬펠드 이론에 깊이 공감하며 그의 저술이 지닌 진가를 거듭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이 책의 번역서에 대한 아쉬움은 매우 컸다. 국내 유일의 번역이 4판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지금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상태라는 점 외에도, 원서와 대조하며 살펴보던 중 번역이 난해하고 삽입된 그림이 원서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번역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8판이 나온 이후로 상당히 시기가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망설이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역자들이 서두에서 언급했던 미술교육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이 책이 여전히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미술 활동은 반드시 아동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하며 미술이 아이들의 성장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로웬펠드의 견해는 미술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큰 울림을 준다. 그는 미술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이 자신감 있고 창의적인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라고 아예 못박고 있다. 아이들은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하고 사람과 자연에 민감하며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생산적인 개인이기 때문에, 단순히 재료를 나눠주는 미술 수업이 아니라 고민하고 생각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