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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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한겨레신문 > 2020년 7월 3주 선정
차상찬, 암울한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역사에 서광을 비추다
《개벽》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며, 새로운 100년을 기약
작가정보
기획 강원문화교육연구소
강원문화교육연구소는 역사, 사회, 문화 등 인문학 전반에 대한 연구와 교육, 그리고 지역학과 지방문화의 발전과 변화에 대응하는 문화콘텐츠를 개발, 운영함으로써 사회와 소통하고, 학문의 대중화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5년 12월에 발족하였다.
목차
- 책머리에
총론_ 식민지 조선의 항일 문화운동과 개벽 / 정진석
1. 근대사상 선도, 민족주의 이념 추구 2. 민족운동: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3. 문학사에 남을 작품들 4. 문화운동, 여성, 어린이 5. 잡지 언론 역사에 이정표
1부 천도교와 개벽사
청오 차상찬과 천도교 / 성주현
1. 머리말 2. 천도교 입교와 청년단체 활동 3. 천도교 문화운동과 ‘조선문화’ 조사 활동
4. 맺음말
청오 차상찬의 개벽사 활동 / 박길수
1. 들어가는 말 2. 시대 구분으로 본 차상찬의 생애 3. 청오 차상찬과 강원도 4. 나오는 말
2부_ 문화와 문학
차상찬의 민족문학 발굴 공적 / 심경호
1. 머리말 2. 차상찬의 인문지리지와 세태 보고서 작성
3. 《개벽》의 김삿갓 시 모집과 차상찬의 김삿갓 평설 4. 차상찬의 야사 편찬과 야담 소설
5. 맺는 말
차상찬의 지방사정 조사와 조선문화 인식 / 김태웅
1. 서언 2. ‘조선문화의 기본조사’의 추진과 내용상 특징
3. 조선문화 인식의 기조와 현실 비판 4. 결어
식민지 조선의 문화기획자 차상찬 / 송민호
1. 들어가며 2. 《개벽》을 지나 《별건곤》으로
3. ‘조선문화’에 대한 ‘취미’ 담론의 구축 4. 독물(讀物)과 야담(野談) 5. 나가며
차상찬의 민요 수집과 유형 연구 / 유명희
1. 머리말 2. 차상찬과 『조선민요집』 3. 《개벽》과 《별건곤》 수록 민요 목록 비교
4. 춘천 지역 민요와 현실 인식 5. 맺음말
차상찬의 아동문학 / 오현숙
1. 머리말 2. 아동문학 작가로서 차상찬과 논쟁점 3. 아동서사의 분류와 체계
4. 복원의 특수성 5. 맺음말
1920-1930년대 언론계와 차상찬의 위치 / 야나가와 요스케
1. 들어가며 2. 개벽사의 문화운동과 차상찬 3. ‘신문 발달사’ 서술과 그 특징
4. 나오며
차상찬 필명 연구 / 정현숙
1. 들어가며 2. 필명 확인 3. 나가며
부록
1. 차상찬 연보 2. 차상찬 글 목록(《개벽》) 3. 차상찬 관련 기사·연구 목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일제강점기 35년 사이에 발행된 잡지 가운데 가장 혹독한 탄압을 받고 큰 희생을 치른 잡지는 《개벽》이다. 《개벽》은 세 차례에 걸쳐 죽었다 살아나는 과정을 되풀이하였다. 제1차는 창간되던 1920년 7월부터 1926년 8월까지 72호가 발행된 기간이다. 3·1운동의 열기가 뜨겁던 1920년대 전반에서 후반으로 넘어오던 6년 사이에 수많은 압수, 삭제 처분과 정간과 벌금을 한 차례씩 당하는 가시밭길을 걷다가 폐간의 비운을 맞았다. (13쪽)
청오 차상찬은 1887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여 1904년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중략) 1910년대 천도교 기관지 《천도교회월보》에 학술적 글을 게재한 이후 천도교단에서 발행한 《개벽》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여 제72호로 폐간될 때까지 일관되게 편집인으로 활동하였다. 이 외에도 《제일선》, 《혜성》, 《어린이》, 《조선농민》 등 천도교 관련 출판물에 많은 글을 기고한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1922년 3월 천도교청년회 간무로 선임되어 청년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38쪽)
(청오 차상찬은) 왕성한 집필 활동과 함께 중요한 것이 일제의 탄압에 맞서 언론 자유 활동을 전개하는 일이었다. 1924년 언론인 단체인 ‘무명회’ 등 31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언론집회압박탄핵회’ 실행위원으로 참여한 이래, 1925년에는 전조선기자대회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이러한 활동과 필화사건으로 차상찬은 1926년에는 6.10만세 관련 예비 검속16된 데 이어, 1927년 개벽지 필화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85쪽)
해방이 되자 잇달아 지인들이 청오를 찾아와 잡지의 발행에 관하여 협의했다. (중략) 김기전은 기적처럼 생환하여 《개벽》 복간과 천도교청우당 복당을 주도하여 마침내 1946년 1월 호로 복간의 기치를 올렸다(1949.3까지 통권9호). 그러나 청오는 《개벽》지 발행과 일제 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몸을 상할 대로 상한 이후 이미 1945년 말경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병약해졌다. 그해 연말이 되자 언어장애가 왔고, 겨우 겨울을 넘기는가 싶더니 1946년 3월 24일(음2월 20일) 저녁 7시 10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로 떠나고 말았다. (106쪽)
차상찬은 1920년 《개벽》 시절에 전국의 역사 유적을 탐방하여 많은 논저를 남겼다. 이후 민족문학과 민족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조선사천년비사(朝鮮四千年?史)』를 비롯하여, 『해동염사(海東艶史)』,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 『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등을 집필하였다. 차상찬은 일제 어용학자 아오야기 쓰나다로(?柳綱太?)의 『조선사천년사(朝鮮四千年史)』(1917)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비체계적, 사건 중심, 인물 중심의 역사서인 『조선사천년비사』를 엮으면서,「역대인물열전」 20인 가운데 제17인으로 김삿갓을 다루었다. 야담의 세계에 머물던 김삿갓이란 존재를 역사적 인물로서 적극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146쪽)
‘조선문화의 기본조사’는 한국인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한국인 경제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주안을 두었다. 즉 조선 경제에서 한국인 경제를 분리하여 통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조선 경제 발전 담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다음 같은 호에 실린 논설 「조선 내에 재(在)한 제외인(諸外人)의 경제적 세력」은 조선 내 농업, 공업, 상업, 광업 등 전 산업 부문에 걸친 외국인의 침략 실태를 통계로써 보여주었다. 이어서 개벽사는 일제의 통계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현지답사를 통해 각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자 하였다. (160~161쪽)
차상찬의 신문 발달사가 가진 언론사적 의미란 무엇인가? 《한성순보》에서 시작되는 차상찬의 신문 발달사는 미국계 신문시대를 거쳐 황성·제국 병립시대, 전성기와 암흑기, 기미년 이후의 민간지 정립 시대라는 순서로 서술되었고 그 구조는 이종수, 안재홍의 신문 발달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차상찬은 그 역사를 선구적으로 정리한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재홍의 신문 발달사는 기사를 통하여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는 경향이 있지만 차상찬의 경우, 발행인과 창간 배경 등 기초적 정보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는 서술자의 역사 인식과 관련되기도 하지만 안재홍이 1차 신문 자료를 직접 열람한 결과라 할 수 있다. (288쪽)
이 글에서는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차상찬의 필명 71종을 확인하였다. 기존 연구에서 언급한 37종 중 22종을 확인하였고, 15종은 차상찬의 필명이 아니거나 더 정확한 근거가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49종의 필명을 새롭게 찾아냈다. (중략) 71종을 확인하였지만 아직까지 차상찬의 필명이 몇 종인지 그 전모를 알 수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쌍S’(雙S, SS생, 雙S생), 성서인(城西人), 삼산인(三山人), 삼산생(三山生), 산삼인(山三人), 은파리 등을 포함하여 확인해야 할 필명이 20종이 넘는다. ‘쌍S’와 ‘삼산인’은 방정환 사후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더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성서인(城西人)도 방정환 필명으로 알려져 왔으나, 더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 (중략) 차상찬의 글 중에는 일기자 또는 필자를 밝히지 않고 발표한 경우도 적지 않다. 《개벽》과 《별건곤》 등에는 일기자(一記者) 또는 무기명으로 발표된 글이 매우 많다. 이 글들은 주로 개벽사 기자들이 익명으로 쓴 것인데, 이 중 상당 부분은 차상찬의 글로 추정된다. (중략) 필명도 확인하기 어려운데 익명으로 숨어 있는 글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331~332쪽)
출판사 서평
일제강점기 35년 사이에 발행된 잡지 가운데 가장 혹독한 탄압을 받고 큰 희생을 치른 잡지는 《개벽》이다. 《개벽》은 세 차례에 걸쳐 죽었다 살아나는 과정을 되풀이하였다. 제1차는 창간되던 1920년 7월부터 1926년 8월까지 72호가 발행된 기간이다. 3·1운동의 열기가 뜨겁던 1920년대 전반에서 후반으로 넘어오던 6년 사이에 수많은 압수, 삭제 처분과 정간과 벌금을 한 차례씩 당하는 가시밭길을 걷다가 폐간의 비운을 맞았다. (13쪽)
청오 차상찬은 1887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여 1904년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중략) 1910년대 천도교 기관지 《천도교회월보》에 학술적 글을 게재한 이후 천도교단에서 발행한 《개벽》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여 제72호로 폐간될 때까지 일관되게 편집인으로 활동하였다. 이 외에도 《제일선》, 《혜성》, 《어린이》, 《조선농민》 등 천도교 관련 출판물에 많은 글을 기고한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1922년 3월 천도교청년회 간무로 선임되어 청년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38쪽)
(청오 차상찬은) 왕성한 집필 활동과 함께 중요한 것이 일제의 탄압에 맞서 언론 자유 활동을 전개하는 일이었다. 1924년 언론인 단체인 ‘무명회’ 등 31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언론집회압박탄핵회’ 실행위원으로 참여한 이래, 1925년에는 전조선기자대회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이러한 활동과 필화사건으로 차상찬은 1926년에는 6.10만세 관련 예비 검속16된 데 이어, 1927년 개벽지 필화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85쪽)
해방이 되자 잇달아 지인들이 청오를 찾아와 잡지의 발행에 관하여 협의했다. (중략) 김기전은 기적처럼 생환하여 《개벽》 복간과 천도교청우당 복당을 주도하여 마침내 1946년 1월 호로 복간의 기치를 올렸다(1949.3까지 통권9호). 그러나 청오는 《개벽》지 발행과 일제 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몸을 상할 대로 상한 이후 이미 1945년 말경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병약해졌다. 그해 연말이 되자 언어장애가 왔고, 겨우 겨울을 넘기는가 싶더니 1946년 3월 24일(음2월 20일) 저녁 7시 10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로 떠나고 말았다. (106쪽)
차상찬은 1920년 《개벽》 시절에 전국의 역사 유적을 탐방하여 많은 논저를 남겼다. 이후 민족문학과 민족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조선사천년비사(朝鮮四千年?史)』를 비롯하여, 『해동염사(海東艶史)』,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 『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등을 집필하였다. 차상찬은 일제 어용학자 아오야기 쓰나다로(?柳綱太?)의 『조선사천년사(朝鮮四千年史)』(1917)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비체계적, 사건 중심, 인물 중심의 역사서인 『조선사천년비사』를 엮으면서,「역대인물열전」 20인 가운데 제17인으로 김삿갓을 다루었다. 야담의 세계에 머물던 김삿갓이란 존재를 역사적 인물로서 적극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146쪽)
‘조선문화의 기본조사’는 한국인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한국인 경제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주안을 두었다. 즉 조선 경제에서 한국인 경제를 분리하여 통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조선 경제 발전 담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다음 같은 호에 실린 논설 「조선 내에 재(在)한 제외인(諸外人)의 경제적 세력」은 조선 내 농업, 공업, 상업, 광업 등 전 산업 부문에 걸친 외국인의 침략 실태를 통계로써 보여주었다. 이어서 개벽사는 일제의 통계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현지답사를 통해 각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자 하였다. (160~161쪽)
차상찬의 신문 발달사가 가진 언론사적 의미란 무엇인가? 《한성순보》에서 시작되는 차상찬의 신문 발달사는 미국계 신문시대를 거쳐 황성·제국 병립시대, 전성기와 암흑기, 기미년 이후의 민간지 정립 시대라는 순서로 서술되었고 그 구조는 이종수, 안재홍의 신문 발달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차상찬은 그 역사를 선구적으로 정리한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재홍의 신문 발달사는 기사를 통하여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는 경향이 있지만 차상찬의 경우, 발행인과 창간 배경 등 기초적 정보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는 서술자의 역사 인식과 관련되기도 하지만 안재홍이 1차 신문 자료를 직접 열람한 결과라 할 수 있다. (288쪽)
이 글에서는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차상찬의 필명 71종을 확인하였다. 기존 연구에서 언급한 37종 중 22종을 확인하였고, 15종은 차상찬의 필명이 아니거나 더 정확한 근거가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49종의 필명을 새롭게 찾아냈다. (중략) 71종을 확인하였지만 아직까지 차상찬의 필명이 몇 종인지 그 전모를 알 수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쌍S’(雙S, SS생, 雙S생), 성서인(城西人), 삼산인(三山人), 삼산생(三山生), 산삼인(山三人), 은파리 등을 포함하여 확인해야 할 필명이 20종이 넘는다. ‘쌍S’와 ‘삼산인’은 방정환 사후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더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성서인(城西人)도 방정환 필명으로 알려져 왔으나, 더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 (중략) 차상찬의 글 중에는 일기자 또는 필자를 밝히지 않고 발표한 경우도 적지 않다. 《개벽》과 《별건곤》 등에는 일기자(一記者) 또는 무기명으로 발표된 글이 매우 많다. 이 글들은 주로 개벽사 기자들이 익명으로 쓴 것인데, 이 중 상당 부분은 차상찬의 글로 추정된다. (중략) 필명도 확인하기 어려운데 익명으로 숨어 있는 글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331~332쪽)
기본정보
ISBN | 9791188765898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7월 01일 |
쪽수 | 368쪽 |
크기 |
152 * 225
* 23
mm
/ 550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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