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어막혔던 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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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005 책머리에 인간에 대한 예의
제1부 문학의 종언 이후
019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2000년대 시와 근대문학의 종언
036 쓰레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김승일의 시에게
049 취향의 헤테로토피아-황인찬의 〈희지의 세계〉 읽기
065 진정성을 대리보충하기-안미옥 시를 경유하는 질문들
083 젊은 예술가의 초상 -배수연?문보영?장수진의 시와 ‘예술의 죽음’에 대하여
제2부 가면의 고백
107 2층과 3층 사이에서
117 가면의 고백-‘미래파’의 기원으로 여성시 다시 읽기
126 퀴어비평은 어떻게 ‘클리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황병승과 김현의 시
140 종언, 종말 그리고 미러링
152 틀어막혔던 입에서-임승유의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다시 읽기
제3부 고통의 좌표들
167 카메라 옵스큐라, 그리고 고독의 냄새들 -이현승?송재학?김수복의 시
176 역원근법 세계의 풍요로움-홍일표론
188 쓸쓸한, 고통의 신비-유안진?최승자의 시
198 그가 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고영민의 시
208 인간이라는 악몽에 대한 반성-허수경론
218 참을 수 없는 ‘돼지’의 불편함-김혜순의 〈피어라 돼지〉
226 여성, 새하다-김혜순의 〈날개 환상통〉 읽기
제4부 시가 되지 못한 것들의 시
243 시가 당신을 쓴다
249 눈먼 사람들
258 파편화된 신체와 완성되는 전율
266 시적 언어와 내파되는 상징
276 ‘슬픔의 근원’을 횡단하기-이수명론
책 속으로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2000년대 시와 근대문학의 종언
1990년대 문학은 비로소 ‘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 ‘나’란 허위에 다름아님을 직면하면서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1990년대 들어 문학의 위기니 죽음이니 하는 과격한 예언들이 난무했던 것도 이러한 딜레마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의 시는 이러한 가운데서 탄생했다. 하지만 이들이 무슨 “진정한 ‘나’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라깡의 주체 이론으로 온전히 포섭되지 않는 2000년대 이후 시의 독특성은 그들이 이제 막 세계의 부조리에 눈을 뜬 사춘기적인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파’ 시를 대표하는 김행숙과 황병승의 첫 시집에는 그 어떤 전망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반항하는 태도가 나타난다.
*쓰레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김승일의 시에게
2000년대에 출현한 ‘미래파’ 시인들의 시가 다소 때늦은 아방가르드였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반드시 와야만 했던 존재들이었지만 그들이 당도한 현실은 이미 그들이 파괴할 만한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쓰레기장이었다. 그렇게 세계의 공통 지반이 이미 파괴되어 버린 한국 사회에서 미래파 시의 정치성은 발휘될 기회조차 잡지 못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후의 시들은 어떤 식으로 창작될 수 있는가.
*취향의 헤테로토피아-황인찬의 〈희지의 세계〉 읽기
2000년대 미래파 시인들이 ‘나’를 분열시키거나 우연한 ‘나’를 발명하는 방식으로 이질적인 것을 환대하는 양상을 보여 주었을 때 이는 ‘나’에 대한 심급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하지만 미래파 시가 이질적인 것을 도입함으로써 끌어냈던 파괴성이 ‘낡은’ 것이 되어 버린 것은 그것이 일종의 ‘유행’으로 인식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를 유행으로 인식하는 ‘낡은’ 현실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아방가르드는 파괴력을 가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미래파’의 전위성이 시와 (시가 읽히지 않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적극적으로 상기시키는 데서 발휘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황인찬의 〈희지의 세계〉는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신해욱이 강박적으로 ‘나’를 탐구하며 “‘잃어버린 나’를, 더 나아가면, ‘잃어버린 나를 잊어버린 나’”를 탐구한다면, 황인찬은 ‘잃어버린 시’를, 나아가 ‘잃어버린 시를 잊어버린 시’에 대한 애도사를 쓰고 있다.
*진정성을 대리보충하기-안미옥 시를 경유하는 질문들
이전 세대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의 성취감을 결코 느껴 보지 못하리라는 열패감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2010년대 시에 극도의 조심성을 장착시킨다. 황인찬, 송승언 그리고 안미옥의 시들에 나타나는 간결하고 정제된 표현의 이면에 세계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으리라는 추측은 젊은 세대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비관적인 전망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체험도, 사유도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그러한 사실을 부끄러워하면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리라 여겨지는 자기 이야기를 읊조린다. 독백과 같이 이어지는 시적 발화에는 이 세계를 어쩔 수 없다는 무력한 우울감이 깊이 배어 있으며, 그렇게 변화 없이 진창과 같은 세계에 고여 있다는 사실을 몹시 끔찍해 한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배수연?문보영?장수진의 시와 ‘예술의 죽음’에 대하여
최근에 시집을 낸 세 명의 시인들 역시 ‘시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는 가볍고 발랄해졌으며 거기에서는 “뭔지 모를 해방감”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대신 이들은 삶이든 열정이든 광기든 어떠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완성도 있는 최상의 (쓸모없는) 상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근대적 예술관과는 영영 이별을 고하고 있다. 이들은 ‘이런 것도 시가 될까’를 의심하면서 시를 쓰거나 메모장에 써 보니 시였다거나 자신은 시인이 될 운명이 아니었다고 전한다. 이들은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심각할 게 뭐 있어, 그냥 즐기면 되지.’ 그런데 이 말을 과연 문맥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다음은 이 질문에 대한 조금 긴 해설이 되겠다.
*2층과 3층 사이에서
페미니즘은 비-정치의 영역에 있던 억압들을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방식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선을 의문시하며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장을 가시화함으로써 말이다. 아무리 전위적인 정치나 미학일지라도 그것이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공회전에 그칠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근본적인 질문과 계속해서 부딪혀 나아갈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낡고 식상한 반격에 허물어져 버리지 않도록 날선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예술이 계몽의 역할을 자임하던 시대는 한참 전에 끝났다. 하지만 예술의 종언은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하는 초대장이기도 하다. 우리 앞에 도래한 페미니즘은 기존의 틀에서 배제되었던 몫 없는 자들을 그 싸움터에 불러 모으고 있다. 이제 정치와 미학의 새로운 연대를 고민해야 한다.
*가면의 고백-‘미래파’의 기원으로 여성시 다시 읽기
이러한 논쟁점을 화자와 주체에 대한 문제로 옮겨 가 보자. 화자를 시인이 쓴 가면으로 인식해 온 기존의 담론 안에서는 그 가면이 지니는 수행성의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화자에 의해 어떠한 균열도 없이 매끄럽게 전달될 수 있다는 형이상학적 전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시적 주체’에 대한 담론은 화자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출현했다기보다 발화 행위 자체가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는 수행성 자체에 주목한 것이다. 가면의 안과 바깥이 없다면 서정시의 화자가 거주하는 장소로 상상되었던 ‘내면’의 존재 여부 역시 문제시될 수밖에 없다. 젠더에 대한 논의는 서정시의 본질을 의심하며 그것의 범주를 열고 재의미화하여 봉합되지 않은 문제로 만든다. 여성에 대한 대상화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자기동일성의 미학이 무엇을 억압하고 있었는지가 의문시된 것도 이에 따라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젠더 문제는 ‘여성들만의’ 문제이므로 시에 대한 논의 일반을 전개할 때는 제외되어야 할 것처럼 이야기해 왔다. 젠더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것은 소수자의 일부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것으로 여기거나 혹은 다른 맥락에서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미학적 자율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치부되어 온 것이다.
*퀴어비평은 어떻게 ‘클리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황병승과 김현의 시
2016년 이래 페미니즘과 함께 퀴어에 대한 비평적 기획이 문예지마다 앞다투어 다루어지면서 거의 폭발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이에 대한 구체적 논의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시적인 기획으로 소모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과 퀴어비평이 기존의 문학과 문학성을 해체하고 재정립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되리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렇다면 퀴어문학이란 무엇인가/무엇이어야 하는가. 퀴어는 성적 소수자, LGBTIQQA(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gender), 퀴어(queer), 퀘스쳐닝(questioning), 그리고 그 동맹(allies)) 등과 바꾸어 사용될 수 있는 용어이자 규범적인 질서와 안정적인 정체성에 저항하는 실천을 가리키는 의미 역시 지닌다. 여기서 퀴어의 정치적 효능이 결코 ‘정체성 정치’를 공고히 하면서 성적 규범의 경계를 구획 짓는 데 달려 있지 않다는 점에서 후자의 의미는 전자를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즉 퀴어는 LGBTIQQA 중 어느 하나의 정체성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집단을 협소하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들의 구역’이고 그 구역은 아직 정연하게 표현될 수 없는 잠재성에 의해 항상 변화하고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종언, 종말 그리고 미러링
더구나 자칭 ‘리버럴’ 예술가들 못지않게 정치적 올바름을 자처했던 소위 ‘진보’라고 불렸던 인물들까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은 이 사태를 보다 다층적으로 사유해야 할 필요를 일으킨다.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자신들의 덕행과 뛰어난 취향에 대해 연민의 눈물을 흘리면서 뒤틀린 도덕적 거울의 미로를 헤매고 있”음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전까지 이들이 주장해 온 정치적 올바름의 범주 안에 젠더 감수성이 포함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이들이 말하는 ‘민중’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좌파’나 ‘진보’이기를 자처하는 이들이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정치적 올바름에 타격을 입지 않았다. 페미니즘 의제에 동의하는 이들을 ‘메갈’이라며 마녀사냥하는 일에는 ‘진보/보수’가 없다. 어쩌면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의조차 좌파 진영 내에서 일관되게 통용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부터가 문제적인지도 모른다.
*틀어막혔던 입에서-임승유의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다시 읽기
출간된 지 5년 정도 지난 지금 이 시점에 임승유의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를 다시 읽어 보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임승유의 시집은 2015년에 출간되었음에도 미투 운동의 문제의식을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이 시집에는 발화의 자리를 빼앗겼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군데군데서 재생되며,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공동체의 억압이 폭로된다. 피해자성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주체성을 모색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은 시집 출간 당시에는 오히려 부각되지 않았다. 다시 강조컨대, 이는
출판사 서평
다시 읽고, 쓰고, 말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제 시작이다.
“페미니즘은 비-정치의 영역에 있던 억압들을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방식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선을 의문시하며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장을 가시화함으로써 말이다. 아무리 전위적인 정치나 미학일지라도 그것이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공회전에 그칠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근본적인 질문과 계속해서 부딪혀 나아갈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낡고 식상한 반격에 허물어져 버리지 않도록 날선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예술이 계몽의 역할을 자임하던 시대는 한참 전에 끝났다. 하지만 예술의 종언은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하는 초대장이기도 하다. 우리 앞에 도래한 페미니즘은 기존의 틀에서 배제되었던 몫 없는 자들을 그 싸움터에 불러 모으고 있다. 이제 정치와 미학의 새로운 연대를 고민해야 한다.”(「2층과 3층 사이에서」)
“제1부 ‘문학의 종언 이후’는 활기를 잃어버린 문단에서 시인들이 느끼는 위기의식과 불안감, 그리고 그 속에서 방향을 타개해 보려는 노력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춘기적 반항, 찌질한 ‘병맛’ 감성, 마니아 혹은 오타쿠적인 것으로 평가절하되는 것들이야말로 망가져 버린 이 세계에서 망해 가는 주체들이 ‘다른’ 세계를 모색하고 있는 증거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진보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린 시대에 ‘실존하는 기쁨’(황인찬)을 지켜 내기 위해서는 혐오와 불안을 넘어 미지의 취향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제2부 ‘가면의 고백’은 강남역 사건 이후 스스로를 여성 평론가로 정체화하면서 쓴 글들이다.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문학 텍스트를 독해한다는 것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구속되거나 ‘정체성 정치’의 한계에 갇혀 남성에 대한 혐오와 문학에 대한 편견을 표출하는 행위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주의적 이슈를 무분별하게, 소모적으로 이용하는 태도를 경계하면서 페미니즘을 통해 정치와 미학의 새로운 연대를 고민하였다. 우리가 젠더 이분법의 해체를 도모하는 텍스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야 하는 근거를 밝히는 한편으로, 피해/가해 이분법으로 해결될 수 없는 폭력의 구조적 측면을 직시하고자 했다. ‘틀어막혔던 입에서’라는 책의 제목은 제2부에 실린 글에서 가져왔다.
제3부 ‘고통의 좌표들’은 문학은 고통에 대해서 증언한다는 명제에 충실한 작품들을 쓴 시인들에게 공감과 경의를 표하며 쓴 글들이다. 한국 문단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시인들이 굳어진 관념과 낡은 관습을 갱신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2018년 세상을 떠난 허수경 시인의 시를 비롯해서, 고독과 죽음의 쓸쓸함에 매료되어 이들의 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성속(聖俗)이 교차하는 일상의 순간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이들 문학의 원동력은 세상과 불화하면서도 냉소적 나르시시즘으로 쉽게 모순을 해소해 버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계를 깊이 사랑하기에 가능한 도저한 허무주의는 내가 오랫동안 안고 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제4부 ‘시가 되지 못한 것들의 시’는 최근의 문학이 어떻게 형질 변환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시론적 성격의 글을 모았다. 2000년대 이후 서정시의 문법을 갱신해야 한다는 당위와 마침내 그 당위를 성취했다는 열광이 한국 시단을 지배했다는 것은 알려진 바와 같다. 나는 과연 이러한 진단이 적절한 것인지를 성찰하며 ‘시적인 것’의 의미를 재맥락화해 보았다. 이를 위해 황지우나 김수영의 시론을 다시 읽으며 ‘시적인 것’이 이동해 온 궤적을 추적하고, 무엇보다 시 쓰기의 수행성에 강조점을 두었다. 시가 정치적일 수 있다면 시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그 시를 쓰는 자의 신체에 어떠한 변용이 일어나는지를 논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책머리에-인간에 대한 예의」)
안지영 평론가는 서울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천사의 허무주의〉를 썼고, 〈부흥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를 함께 옮겼다. 현재 청주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틀어막혔던 입에서〉는 안지영 평론가의 첫 번째 평론집이다.
[책 머리에]
이렇게 참담한 마음으로 서문을 시작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문단에서의 경력이 쌓일수록 무력감과 열패감만 늘어 가는 것 같다. 2015년 표절 사태와 2016년 10월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2018년 2월 미투 운동을 통해 한국문학계에도 일정 정도 자정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리라 예상한 것은 오판이었던 모양이다. 2020년 2월, 이상문학상의 불합리한 저작권 계약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 윤이형 작가가 절필을 선언하고, 7월에는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창작으로 문제가 된 김봉곤 작가의 「그런 생활」과 해당 작품을 출간한 문학동네와 창비의 부적절한 대응이 논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이슈화된 일련의 사태들이 아니더라도 나는 문단 내 적폐가 청산되지 못한 현실을 순간순간 체감하였다. 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세력들이 의외로 적지 않았고, 문학?출판계의 잘못된 ‘관행’ 역시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이 때문에 비평 활동을 하는 내내 나도 모르게 내가 비판하는 비윤리적 구조에 연루되어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공포감과 싸워야 했다. 2014년 등단할 당시 나는 세 명의 시인을 묶어서 주제론을 발표했는데, 그중의 한 시인이 2016년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폭로 이후 문단을 떠났다. 이 시인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많은 남성 작가, 평론가들의 이름이 언론과 SNS에 오르내렸고, 문단에서는 피해자가 전면에 나서지 않은 이들 가운데도 곤란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단 전반의 반성과 변화가 필요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 및 피해자와 연대한 이들이 문학을 버리고 떠난 이후에도 가해자들은 여전히 문단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 가해자를 옹호하며 2차 가해를 하거나 슬슬 주변의 눈치를 보며 가해자를 다시 문단에 불러내려는 이들로 인해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시효 만료된 문학을 붙들고 과거로 역행하려는 세력은 공고하고, 무엇보다 어디까지를 적으로 돌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지쳐 간다. 그 모든 연대와 선언과 투쟁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단의 백래시(backlash)는 현재진행형이다.
2020년 7월은 공교롭게도 한국 사회 전반의 분위기 역시 한국문학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준 시기였다. 7월 6일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이 불허된 날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모친상 빈소에 정치인들의 근조 화환이 늘어선 풍경을 마주해야 했던 날이기도 하였다. 이날만 해도 정신을 온전히 붙들고 있기가 어려웠는데, 고작 삼 일 후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추행 피소 후 죽음을 택했다.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리트머스 시험지라도 되는 양 이 사태에 대한 반응을 통해 여성 문제에 대해 시대착오적이고 그릇된 태도를 지닌 일군의 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인이 소속된 민주당의 대표는 성추행 의혹 대응 여부를 묻는 데 ‘예의’가 아니라며 도리어 화를 냈고, 50만 명을 훌쩍 넘긴 청와대 청원 동의와 코로나 19 전염병 사태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대규모의 추모 의례는 죽은 후에도 지속되는 위력을 실감케 했다. 성범죄에 대한 미온적인 처벌과 가해자 감싸기가 반복되면서 안전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한의 권리조차 부정당했다는 모욕감과 분노, 절망감은 한국 여성의 공통감각이 되었다.
이 나라는 여성들이 지르는 비명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과 2018년 미투 운동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지극히 선별적이고 차별적으로 작동한다. ‘K방역’에 대한 외신의 보도에는 우쭐하면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코로나’가 아니라 ‘성폭력’ 팬데믹을 조심해야 할 판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역사에서 여성의 존재가 삭제된 것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권을 탄핵하고 ‘촛불 민심’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도 여성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것 같다. 현 정권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이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의 기억을 ‘훈장’처럼 달고 있는 장본인들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납득이 되기도 한다.
소위 586이라 불리는 1960년대생 엘리트 남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도덕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을 뿐더러, 한국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수혜를 입고 “학력과 전문지식, 직업, 경제적 지위가 맞물린 테크노크라트에 가까운 집단을 대규모로 창출”한 상태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계층 지위를 자식들에게 세습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는 점에서 ‘불평등한 민주주의’라는 불가능한 이상향을 지향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1980년대적 진정성은 진정성대로 폐기 처분하지 않으면서 성공과 치부(致富)를 추구하는 이중적 면모를 보인다. 김은하는 이들이 “공적인 자기와 사적인 자기의 괴리를 좁힐 수 없어 위장과 가면 쓰기에 능하거나, 속으로는 깊은 분열을 겪는 병리적 인간의 계보에 속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성’은 1980년대라는 이념의 시대가 추방했던 욕망 혹은 억압된 무의식이 귀환한 증거”로, 이들 세대가 여성 혹은 여성성을 신성한 대의를 위협할 수 있는 세속적 욕망으로 분류하면서 감시 혹은 억압의 대상으로 삼아 왔던 까닭을 설명해 준다.
분열적 양상을 띠는 진정성 레짐이 한국문학을 지탱해 온 주요 기제였다는 사실은 불행한 진실이다. 김홍중에 따르면, 1980년대적 진정성은 “개인의 충분한 성찰에 근거한 사회운동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책무나 책임의식이 선행하면서 개인들을 도덕적으로 동원하는 양상을” 띠었고, 이에 따라 권위주의적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체들을 대량으로 양산해 냈다. 이는 문학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비단 1980년대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문학사를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으로 구분해 온 오래된 ‘관행’은 다분히 도덕적으로 선한 ‘우리’와 그렇지 않은 ‘저들’로 이분화하여 후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식으로 귀결시켜 온 유구한 이분법적 세계관에 근거한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 문학사를 ‘내면으로의 침잠’이 두드러진 ‘여성문학’이 융성한 시기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들 중에는 여성을 ‘비정치적 주체’로 단정 지으며 ‘여성문학’을 비하하려는 의도를 은연중에 표명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런 유의 문학(사)과 작별할 수 있게 된 것은 주지하듯 ‘페미니즘 리부트’의 영향 덕분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문학사를 탈구축하는 기획들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었던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시각을 교정할 수 있게 되었다(이 책 역시 이들 기획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을 외쳤던 이들은 이런 식으로 한국문학(사)의 부흥이 가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령 최근에 읽은 최은영의 「몫」(2018)은 배제되었던 여성들의 투쟁의 역사를 불러오면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폭력으로 인식되지도 못했던 시절의 지난한 싸움을 그려 내고 있다. 1996년 고대생들의 이대 난입?난동 사건, 교수 성희롱 문제, 가정 폭력, 기지촌 여성 문제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한 현실을 문제 삼으며 해결을 모색한 정치적 주체는 여성이었다. 2010년대 한국문학의 가장 큰 성취는 주변화되었던 주체들의 목소리를 복원시킨 것과 더불어 신성시되었던 문학-문학성에 의문을 품고 재현의 윤리를 재정립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김초엽 소설가의 말은 한국문학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해 준다.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서 확인되듯, 피해자와 연대하며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에 저항하고자 한 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강요를 당하던 이들이었다. 2016년 발표된 고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생 연대 ‘탈선’의 성명서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고발자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앗아간 ‘문학’은 어디에 있는가. 가해지목인이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엮어 시집을 출간할 때, 가해지목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 ‘문학’은 어디에 있는가. 문학이라는 이름, 그것이 오로지 가해지목인이 고발자와 피해자들을 성적 착취하는 수단이자 명목으로 다루어졌다. 누가 문학을 자기 목소리의 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목인의 목소리는 증폭되었고, 우리의 목소리는 침잠했다. 이에 우리는 분노한다. 왜 우리는 문학성을 정의받아야 하는가.” 이들의 용기 있는 고발 덕에 우리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폭력을 직시하고 폭력을 용인?은폐?재생산하는 데 기여했던 ‘문학성’과 단절할 수 있었다.
기본정보
ISBN | 9791187756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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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출시)일자 | 2020년 09월 20일 |
쪽수 | 290쪽 |
크기 |
140 * 210
* 22
mm
/ 451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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