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에 방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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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는 시간성에 대한 각별한 경험과 그에 대한 기억의 구성이라는 양식적 특성을 지닌다. 그만큼 기억의 흐릿하거나 선명한 양상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서정시는 그 원리를 따라 삶의 원초적 경험에 대한 상상적 복원을 수행해 간다. 관조와 고백이라는 태도와 방법을 통해 이러한 기억의 원리를 실현해 가는 서정시는, 우리로 하여금 시인이 발견해 낸 따뜻하고도 깊은 삶의 이치를 새로운 밀도로 경험하게끔 해 준다. 물론 그 안에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이 담길 때가 많지만, 그것을 공공의 기억으로 승화해 내려는 시인의 욕망이 동시에 포개져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유한자(有限者)인 우리의 삶에 대한 불가피한 승인과 고백이 형상화되기도 한다. 한영수의 세 번째 시집 『눈송이에 방을 들였다』는 이러한 기억의 원리가 잘 구현된 미학적 소산으로서, 깊고 예리한 시선과 언어로 대상에 대한 관조와 성찰을 이어 간 시인 자신의 내밀한 고백록이기도 하다. 가령 시인은 “소소했으므로 계속 기억했다/기억 하나하나가 눈송이에 방을 들였다”(「시인의 말」)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시작(詩作) 과정이 결국 ‘기억의 현상학’에 크게 빚지고 있으며, 그 결실이 소소한 것들로부터 보편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선연하고도 빛나는 기억들을 갈무리한 세계임을 토로하고 있다.”(유성호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작가의 말
누군가 웃어 정오였다
소소했으므로 계속 기억했다
기억 하나하나가 눈송이에 방을 들였다
칠월에 폭설이었다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숨은 신 ― 13
어둠상자 ― 14
분수 ― 16
한계령 ― 18
방 ― 20
늑대 ― 22
타인의 삶 ― 23
굴뚝새 ― 24
마리오네트 ― 26
슬픔을 모시러 간다 ― 28
초침 소리 ― 30
백 년 ― 32
제2부
민어(民魚) ― 35
라면 ― 36
껍질이 아니면 ― 38
목련의 겨울 ― 40
전문가 ― 42
소여도 ― 44
치자 ― 46
복숭아의 세계 ― 47
앵두가 왔다 ― 48
부분일식 ― 50
맹꽁이요 ― 52
검은 수련 ― 54
제3부
만질 수 없는 분홍 ― 57
대꽃 핀다 ― 58
봄나무 위로 굴뚝 ― 60
자유로 ― 62
소녀와 노랑나비 ― 64
오월의 뒷면 ― 66
시민 K ― 68
뒹구는 것들의 숨을 모아 ― 70
기린이 아닙니다 ― 72
타이항산(太行山) ― 74
다금바리 ― 75
정오의 휴식 ― 76
전쟁과 평화 ― 78
제4부
동동 ― 81
거울 속으로 ― 82
해석에 반대한다 ― 84
파랑과 파랑과 ― 86
국수의 속도 ― 88
시래기 한 봉지 ― 90
반올림 ― 92
흙 다시 만져 보자 ― 94
소릉 ― 96
한강포차 ― 98
한 아이 ― 99
여행비둘기 ― 100
밤새 자작나무를 탔다 ― 102
해설
유성호 사랑과 신성(神聖)으로 번져 가는 ‘흰빛이 된 말’들 ― 103
책 속으로
분수
너를 바라볼 수 있게 가슴을 두고
꽃이 열리듯
발을 들어 올린다 허리 높이로
어깨 높이로 머리 위로
너를 부르는
최초의 높이로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네가 있는 쪽으로
정점을 향해 가던 분수는 순간,
정지한다 온몸을 움직여
저를 저버린다
가지 않는 것 또한
가고 있는 것
비는 모를 거다
내리기만 하지
빗방울은 모를 거다
꼭 쥔 주먹은 매달릴 줄만 알지
그 하루 눈을 뜨고
솟구치며 쏟아져 내리는
눈물
완성하기 위해서
있어야 하는 중간
저를 독재하는 짐승의 포효
은하를 그린다
제때에 얼굴을 돌리는 것
분수는 아는 거다 ***
방
눈송이에 방을 들였지
떠오르고
떠오르다 잠이 들었네
구석으로 구석을
업고 업힌 방
철없이 겨울이 내렸어
방은 어디에 있나
구름의 눈동자에 묻어난다
반달이 반을 읽고
새가 돌아본다
깊은 오후
깊은 숨이 숨는 방
수소폭탄 서른 개의 폭발 에너지를 가진 손이
하나로는 만들 수 없는 눈송이
눈송이에 방을 들였네
새끼손톱만 했네
주춧돌은 없었지
손톱으로 긁어 파낸 바닥은 있었지
일 년에 두 번 정도 울어도 좋은 방
바람은 계산하지 말자
손을 모았지
눈송이, 세계를 떠다닌다
봄 가지 어디에도 주저앉지 않고 ***
굴뚝새
우리가 동의하는 높이
굴뚝 위에 새는 있다
아니오
아니오
최소한으로 운다
물 한 모금 세 걸음에
굴뚝 한 바퀴
검고 가는 발목이다
단독자의 맨발이다
벌써 굴뚝의 일부가 되어 있는 새
왜 정확하게 새가 아닌가
날개는 짧고
굴뚝은 계속된다
새 이야기를 이야기하다가
갇혔다
불뚝, 추운 높이
굴뚝 쪽으로 더 가 버린 새
아니오
아니오
굴뚝이 돈다
울울한 굴뚝을 돈다 ***
기본정보
ISBN | 9791187756231 |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8월 20일 | ||
쪽수 | 127쪽 | ||
크기 |
129 * 212
* 11
mm
/ 179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파란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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