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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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네 편의 강의를 통해 소수자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개념언어, 정치언어라는 말의 두 가지 경향을 다루는 사전 강의와 청년 담론을 분석하는 1강은 문제 제기에 해당하는 강의로, 한국 사회에 농후한 ‘개념 없음’의 상태를 비판한다. 2강 ‘소수자 사회’ 및 3강 ‘시민성의 재구성’에서는 약자의 고통을 논의할 수 있는 공동체의 언어를 본격적으로 구상한 뒤 구체적인 정치전략을 세운다.
작가정보
저자 박이대승은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앙리 베르그손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에라스무스 문두스-유로필로소피’ 프로그램을 따라 벨기에 루뱅 가톨릭 대학교, 체코 프라하 카렐 대학교, 프랑스 툴루즈-장 조레스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질 들뢰즈에 대한 논문으로 두 번째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툴루즈-장 조레스 대학교에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소수화전략에 관한 철학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동시에, 한국의 동료들과 함께 ‘불평등과 시민성 연구소’를 운영하며 다양한 학술적,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목차
- 들어가는 말 6
사전 강의: 개념과 정치 15
‘개념언어’와 ‘정치언어’: 말의 두 가지 사용법 17 | 개념: 표준 없는 다양성은 왜 불가능한가 25 | 정치언어: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도구 33 | 개념의 부재, 정치언어의 과잉 42 | ‘혐오’: 정치언어의 극단 52
1강. 누구를 위한 ‘청년’인가? 65
1. ‘청년’은 개념이 아니다 72
‘불쌍한 청년’의 탄생: 청년은 경제적 약자인가 74 | 왜 하필 ‘청년’인가: 청년 정책의 인위성 81 | 청년할당제 논란: 청년의 역설적 지위 90
2. 정치는 왜 ‘청년’을 좋아할까 97
‘청년’의 정치, 역사, 문화적 기원 99 | ‘청년’을 둘러싼 의미 투쟁: 88만 원과 아픈 청춘 107 | ‘청년’ ‘불평등’ ‘경제’: 정치언어의 진보 혹은 퇴보 114
3. 부를수록 배제되는 이름, ‘청년’ 121
‘청년 특별기획’: 청년이라는 이름의 잡동사니 상자 122 |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정치전략의 가능성 129 | 공감은 어떻게 가능한가: ‘불쌍한 청년’에서 권리 주장으로 135
2강. 소수자 사회 147
1. 소수자는 누구인가 153
종속계층과 헤게모니: 안토니오 그람시 155 | 다수자와 소수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 163 | 종속계층과 소수자: 표준을 변주하는 생성의 힘 173
2. 표준 없는 사회 182
표준권력은 어떻게 작동할까 183 | 서구를 번역하기: 표준 없는 사회의 소수 문화 191 | 이념 없는 정당: 정치는 감동이 아니다 199
3. 소수자의 정치전략 208
분노한 청년은 짱돌을 들 수 있다? 210 | 다수화전략: 헤게모니와 포퓰리즘 216 | 소수화전략: 최저임금위원회의 사례 226
3강. 시민성의 재구성 235
1. 시민성이란 무엇인가 242
시민 개념: 거주민을 넘어 구성원으로 244 | 참여와 권리: 시민성의 두 가지 모델 249 | 평등을 위한 조건, 시민성 257
2. 권리 개념 이해하기 264
권리 주장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 세월호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266 | 권리란 무엇인가: 개념과 정당성 270 | 권리를 둘러싼 몇 가지 미신들 279
3. 평등을 가로막는 세 가지 요인 288
참여하지 않아도 인간이다: 시민의 참여에서 인간의 권리로 290 | ‘국가’라는 족쇄: 개인 없는 가족공동체 297 | 경제 담론 비판: 평등 없는 불평등 논의 304
나가는 말: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제안 310
책 속으로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고통받는 피해자들 앞에서 수많은 물음을 던졌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왜 억울한 죽음이 끊이지 않는가? 국가는 무얼 하고 있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을까? 왜 우리는 저항하지 못하는가? 그러나 쏟아지는 질문에 비해 ‘사회적 대화’라는 것이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습니다. 수많은 말이 오가는 것 같지만, 대부분 고통의 호소나 증언일 뿐입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한 공동체의 언어는 없고, 오로지 ‘나 살기 힘들다’는 외침만 가득합니다” - 6쪽, 서문
“2017년 한국 사회가 목격한 거대한 정치 스캔들은 지배집단이 다수성을 거부하며 생존하는 범죄집단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일관성 있는 지배 체계를 구성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체계 자체를 파괴하며 자신과 친족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요컨대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다수자의 지배가 아닙니다. 한국은 다수성 없는 사회, 소수자가 또 다른 소수자를 지배하는 사회, 소수성의 다양한 형태가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는 사회입니다. ‘개념 없는 사회’는 이런 일련의 의미를 함축하는 말입니다.” - 10쪽, 서문
“사람들은 절망스러운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명쾌한 해답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해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해답에 도달하기 위한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질문은 항상 역설과 충돌을 포함합니다. 이런 역설과 충돌을 다루는 방법은 오로지 실천 속에서 모색할 수 있습니다.” - 11~12쪽, 서문
“청년 실업자의 고통은 그들이 청년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실업자라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청년 주거 빈곤층의 고통 역시 나이대가 아닌 주거 빈곤층이라는 사실에서 발생합니다. 즉, 고통의 원인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입니다. 그렇다면 인구집단을 나이대가 아니라 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고용 및 노동 조건, 주거 조건, 소득과 자산 수준, 교육 수준, 거주지 등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 75쪽, 1강
“요컨대 ‘88만 원 세대’는 정책적, 이론적 개념이 아니라 정치언어입니다. 특정 연령층을 정치적 주체로 조직하기 위한 전형적인 이름 붙이기죠. 만일 더 큰 정치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면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지칭하고, 《88만 원 세대》 대신 ‘프레카리아트의 등장’ 을 다루는 책을 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이론적 타당성이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입니다.” - 77쪽, 1강
“청년 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청년을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옮겨놓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차별받는 집단임을 설명할 합리적 근거가 없으므로, 청년이 얼마나 불쌍한지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한편 청년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청년 정책을 일종의 ‘특혜’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요즘 청년들”로 시작하는 훈계를 늘어놓기 일쑤죠. 이렇게 합리성이 결여된 논의는 결국 감정의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정책의 일관성과 타당성을 검토할 공간은 사라지고, 정치언어의 잔치만 벌어집니다.“ -95쪽, 1강
“한국의 지배권력은 겉보기에는 강력합니다.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거대 재벌,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지식인이 한 덩어리가 되어 나라를 주무릅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해져 부와 권력이 상위계층에 집중됩니다. 국가기구의 권위주의는 여전하고, 시민과 인간의 권리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위험 요소 역시 국가권력입니다. 하지만 표준권력이 한국의 지배계층을 지탱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국가기구는 절대권력을 휘두르지만, 대형 안전사고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합니다.” 186~187쪽, 2강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소수 문화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온라인을 지배하는 언어유희는 다수 언어와 개념을 놀이 대상으로 삼아 끝없는 변이를 생산합니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소수 문화가 아니라 ‘소수화-되기’의 문화입니다. 사전 강의에서 분석한 신조어의 탄생이 이런 소수화-되기의 결과물이죠. 한국의 소수 문화가 창조하는 수사법은 독보적입니다. ‘헬조선’이라는 말의 힘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각성을 다룬 학술 논문 수백 편에 버금갑니다.
표준 개념을 수립하려는 노력이 부재하고 소수 문화가 팽창하는 상황에서 사전 강의에서 말한 ‘개념의 부재, 정치언어의 과잉’ 현상이 발생합니다. 심지어 주류 언론도 표준 지식 체계가 아니라 소수 문화에 의존하죠. 온라인의 언어유희로 태어난 신조어를 주류 미디어가 자기 언어로 차용하고, 그것이 다시 온라인에서 언어유희의 소재가 되는 순환
출판사 서평
약자의 존재를 ‘삭제하는’ 사회에 던지는 질문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사건부터 각종 정치 문제까지,
억울한 죽음은 왜 반복되는가?
이들의 고통을 은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저항할 수 없는가?
고통을 드러내는 공통언어의 가능성을 말하다
“한국 사회는 약자의 피를 먹고 전진하는 기계입니다. 그 전진 뒤에는 거대한 피해자집단과 억울한 죽음이 남습니다.”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 2016년 4월의 가습기살균제 사건, 그리고 2016년 겨울부터 시작된 차마 입에 담기 수치스러운 사건까지,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는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외침으로 가득했다. 이 목록들은 그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대기업 공장들에서 일어난 각종 산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많은 죽음까지 헤아리면 “약자의 피를 먹고 전진하는 기계”라는 말은 결코 비유도 과장도 아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사실 자체다.
이 일련의 일들은 피해자들에게는 물론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충격과 고통을 안겨준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 모두가 종결되지 않은 채로 여전히 사회를 맴돌고 있다.
하지만 사건 자체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피해자들의 고통이 공동체의 ‘언어’로 논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는 고통에 대한 공감 부족 내지는 사회적 무관심을 말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껏 수많은 시민들이 피해자의 슬픔에 공감하며 애도 행위에 동참했고, 특히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애도가 전국적 범위로 확대되면서 사회의 정상적인 운영과 시민들의 일상적 삶이 한동안 유예되기도 했다. 따라서 단순히 공감 부족이라는 현상으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개념’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공감 부족이 아닌 사회적 공통언어의 부재에서 찾는다. 갖가지 매체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공감’에 기초한 무수한 말들이 쏟아졌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이 고통을 호소하거나 증언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에 이 책은 주목한다. 심지어 공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적대’로 변했다. 피해자들이 보상의 권리를 주장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기 시작하자 ‘그들이 억지를 부려 한몫 챙기려고 한다’는 식의 여론이 훨씬 우세해진 것이다.
흔히 사회는 소수자에게 어서 짱돌을 던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짱돌을 던졌을 때,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등 돌리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소수자가 저항할 수 없는 이유를 묻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저항하는 소수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묻는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약자란 언제나 ‘불쌍한 사람’이며, 불쌍하기 때문에 우리가 시혜를 베풀어줄 수 있는 무기력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개념 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소수자들에게 정치전략이 필요한 이유, 지극히 당연하고 뻔한 시민의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소수자는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이다. 소수자는 불우이웃이 아닌 ‘시민’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총 네 편의 강의를 통해 소수자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개념언어, 정치언어라는 말의 두 가지 경향을 다루는 사전 강의와 청년 담론을 분석하는 1강은 문제 제기에 해당하는 강의로, 한국 사회에 농후한 ‘개념 없음’의 상태를 비판한다. 2강 ‘소수자 사회’ 및 3강 ‘시민성의 재구성’에서는 약자의 고통을 논의할 수 있는 공동체의 언어를 본격적으로 구상한 뒤 구체적인 정치전략을 세운다. ‘소수자’와 ‘시민’이 바로 그런 공통언어의 가능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정치언어가 난무하는 사회, 무엇이 문제인가
이 책은 고통에 대한 이런 식의 응답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고민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공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 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문제 제기 방식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논의할 ‘공통언어’가 공동체 내에 부재하는 상황을 ‘개념 없는 사회’라고 부른다. ‘개념 없는 사회’가 뜻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개념’의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개념’은 단순히 사전적 정의에서처럼 분명하게 정의된 이론적 용어를 뜻하기보다는 언어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한 가지 ‘경향’으로 이야기된다. 이 경향이란 곧 말과 의미 사이의 관계를 고정시키려는 경향으로, ‘정치언어’라는 이와 상반되는 또 다른 경향과 맞물려있다. 즉 ‘개념’이 말과 의미 사이의 관계를 고정시키려는 반면 ‘정치언어’는 의미하는 바가 수시로 바뀌는 말로, 선거 승리 같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존의 말에 새로운 의미들을 덧붙여 의미를 끊임없이 변형시키고자 한다.
이 책이 언어 활용의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청년’이라는 말로 개념언어-정치언어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청년을 통계적 개념으로 쓸 경우 ‘만 15~34세 미만의 인구집단’ 등으로 정의내릴 수 있고 이때 청년의 의미는 만 15~34세라는 나이구간에 속하는 사람들로 고정된다. 하지만 정치언어로 쓰면 ‘사회 진보를 추구하는 개혁적인 청춘’ ‘청년 실업에 고통받는 젊은이’ 등등의 무수한 의미가 ‘청년’이라는 말에 결합될 수 있다. 한때 큰 화제를 모은, 이제는 아예 청년을 지칭하는 고유명이 되어버린 《88만 원 세대》(2007) 역시 바로 이렇게 ‘청년’을 정치언어로 활용함으로써 특정 세대를 정치적 주체로 불러낸 작업이었다.
말의 정치언어적 활용 예시는 비단 ‘청년’만이 아니라 다양한 말들에서 발견된다. 정치적, 경제적 이슈와 관련해 우리가 언론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단어들이 하나의 개념이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의미들을 덧붙여 유동성을 극대화하는 정치언어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혐오’는 정치언어의 극단을 달린다. 저자는 ‘혐오’를 사회적 현상이 아닌 ‘말’ 즉 정치언어로 다룸으로써 독자들에게 새로운 논의를 제시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혐오hate speech, misogyny’가 분명한 정의를 갖는 이론적, 법률적 개념인 반면 한국 사회에서 혐오라는 말은 어떤 고정된 의미도 갖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여성혐오’라는 말이 차별, 폭력, 공격을 비롯해 성차별과 성 불평등이라는 상이한 범주들을 모두 의미하게 되는 기묘한 상황이 펼쳐진다. 결국, 현재 인터넷상에서 쓰이는 ‘여성혐오’는 개념 정의가 불가능한 정치언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언어는 그 자체로 그릇된 것일까? 하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어를 구성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고 참된 모습이다. 따라서 정치언어를 활용하는 것은 정치적 활동의 필연적인 과정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정치언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념’은 없고 ‘정치언어’만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다. 결국 ‘개념 없는 사회’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가보면, 이 말은 곧 ‘개념’이 부재한다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개념’이 전무한 상황에서 ‘정치언어’만이 횡행한 현실을 문제 삼는다. 개념이라는 언어는 고정성을 갖고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사회적 표준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한다. 고정된 규칙 체계를 지닌 표준어 덕에 사람들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것처럼, 개념은 의미를 고정시킴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의 소통을 가능케하는 ‘표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념은 없고 정치언어만 존재하는 상황은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소통되지 않는 무수한 말들이 쏟아지는 상황과 다름없다.
약자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논의할 공통언어가 없다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들의 고통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공감을 넘어서 고통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합의와 토론에는 결코 이르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물론 누군가의 고통을 다른 이들이 해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고통 대부분이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 저임금 노동 등 거대 권력에 저항할 수 없는 소수자의 위치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한 사회는 기본적으로 제도와 정책 수준에서 이들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점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것만으로 충분한 건 아니지만, 단 1%의 변화라도 만들어내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 ‘최소 조건’마저 마련하지 않는 곳이 한국 사회다. 지금 한국 사회는 바로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다. 사회 문제에 대한 모든 논의는 공감의 수준에서 걸음을 떼지 못한다. 그렇지만 공통의 ‘개념’을 전제로 한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 어떤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청년’에 집착하는 이상한 사회
이런 문제를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 보여준 사례가 바로 한국의 독특한 ‘청년 담론’이다. 최근 몇 년간 청년을 둘러싼 각종 정치언어는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 일일이 나열하기에도 벅찬 지경이다. ‘청년 실업’ ‘청년 정책’ ‘청년할당제’부터 책 제목이었으나 아예 청년에 대한 고유 수사가 되어버린 ‘88만 원 세대’ ‘아프니까 청춘이다’까지 수많은 말들이 떠돌아다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모든 말들이 이른바 ‘불쌍한 청년’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런 수사들에는 ‘요즘 청년/젊은이들은 참 불쌍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고, 이에 기초해 ‘그들에게 이런저런 시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동정적 여론이 지배하고 있다.
이쯤 되면 여러 가지 의문을 던져볼 수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각종 미디어는 청년에 대한 보도를 쏟아내고, 정치인들은 청년을 위한 정책 시행을 약속하는 것일까? 또한, 왜 다른 세대가 아니라 하필 ‘청년’인가? 모든 세대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초점은 왜 항상 ‘청년’을 향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정치적 목적에 있다. ‘실업’ ‘불안정 노동’ 따위의 말보다 ‘청년’이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적 목적을 위해 특정한 말을 가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당한 정치적 행위다. 청년을 둘러싼 정치언어들이 문제적인 진짜 이유는 그런 말들이 실업과 불안정 노동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마치 청년세대에만 해당하는 문제인 양 제시한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88만 원 세대》의 성공은 역설적이다. 실업·불안정 노동 문제를 청년에 한정함으로써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가?’라는 시혜적 물음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청년’이라는 정치언어의 직접적인 역효과는 언론, 정치, 사회정책 등의 영역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청년’이 합리적으로 구성된 개념언어가 아니다보니 청년 문제는 매번 ‘특수 범주’로, 혹은 ‘부록’으로만 등장한다. 대부분의 언론이 청년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도 항상 ‘특별기획’으로만 구성하는 것도 이런 인식에 기초한다. 청년 문제를 특수 범주로 분류한다는 것은 언뜻 청년에 대한 특별대우로 보이지만, 실상 그것을 가끔 한번 씩만 신경 쓰면 되는 문제쯤으로 취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각 정당의 청년할당 역시 표면적으로는 ‘청년 문제를 위해 청년 정치인’의 자리를 만든다는 그럴싸한 논리를 내세우지만, 이것은 곧 ‘청년 문제는 청년 정치인에게만 맡기고 당과 해당 분야 전문가는 손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결국 그 어떤 말도 청년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그로 인한 고통을 정확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모든 말들이 죽어라고 청년을 외치지만, 정작 현실의 청년들은 그 말들에 의해 더욱 배제되는 꼴이다. 청년들의 실제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청년’이라는 말을 정치언어로 써먹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소수자’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한국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통 ‘불우이웃’ 정도로 생각하거나 아예 그들을 없는 존재로 삭제해버리기 일쑤다. 다른 한편에서는 약자가 저항해야 한다는 것 혹은 저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간주한다. 청년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짱돌을 던지”라고 말하듯 말이다. 저자는 ‘소수자가 왜 불쌍한 약자에 머물러야 하는지’ ‘우리는 왜 약자에게 불쌍하게 남아있기를 요구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짱돌을 던지는 대신 왜 체제에 더 순응할 수밖에 없는지’를 물음으로써 약자에 대한 지배적 통념들을 해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 일종의 개념/공통언어를 제시하는 것이고, ‘소수자’와 ‘시민’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들뢰즈, 과타리의 ‘소수자’ 개념, 그람시의 ‘종속계층’ 개념을 참조하면, 소수자는 다수자가 수립한 표준에 의존하는 상태, 다수자의 지배에 저항할 때조차 다수자의 표준언어를 빌려올 수밖에 없는 상태로 이야기한다. 즉 스스로 독립적 표준을 창조하지 못한 채 다수자의 표준에 종속된 상태를 소수자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정의가 다소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전혀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를테면 여성은 저항할 때조차 남성의 언어 혹은 가부장 사회의 언어로 말해야만 하는데, 이는 남성 언어가 곧 사회의 표준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떤 주장이 배제되지 않으려면 그것은 표준 언어로 발화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소수자는 통합된 조직을 구성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과도 차별화되는 존재다. 굳이 말하자면 일관된 정체성을 갖지 않아 동질적인 계급을 구성할 수 없는 프레카리아트(불안정 노동자 집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수자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이들은 항상 사회적 약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가? 사람들은 흔히 사회적 약자가 저항하지 못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곤 한다. ‘약자는 짱돌을 던져야 한다’는 식의 사고가 얼마나 강력한지 증명되는 대목이다. 사실 약자가 저항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다. 약자가 약자인 이유는 그야말로 고통받으면서도 쉽게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자를 ‘다수성의 표준을 끊임없이 변주하고 뒤흔드는’ 생성과 변화 과정 자체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은 소수자를 파악하는 또 다른 방식이며, 저자는 이 경우 소수자를 ‘소수화-되기’라는 하나의 상태로 볼 것을 제안한다. 소수자의 고유한 정치전략은 바로 여기서 시작될 수 있다.
소수자의 저항은 다수자가 수립한 고정된 체계를 끊임없이 뒤흔들고 변형시킴으로써 가능하다. 다수자가 어떤 중심으로 힘을 집중시킨다면, 중심을 계속 변화시키면서 집중된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 소수자의 정치전략이다. 불안정집단을 시사하는 청년유니온 같은 단체의 존재 방식이 바로 이런 정치전략을 시사한다. 이런 단체들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기존 노동운동의 고정된 정체성과 체계에 균열을 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불안정집단의 존재는 그런 균열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
소수자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소수자’가 약자의 존재를 새롭게 정치화하는 이론적 개념이라면, ‘시민성’ 개념은 소수자의 권리를 말하기 위해 시급히 필요한 개념 중 하나다.
한국은 서구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수용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시민성 개념만은 오랫동안 소개되지 않았다. 이 개념이 한국 사회에 소개된 지 불과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볼 때, 시민성이 사회적 표준 개념으로 수립되는 것을 방해하는 모종의 요소들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국민 개념은 가장 큰 방해물 중 하나로, 식민지배와 군사독재 경험과 함께 한국에서는 인간, 시민, 인민, 국민 등의 개념들이 모두 국민으로 통합되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시민, 인민, 인간의 범주를 정교하게 구별하는 반면 한국은 이 각각의 개념들을 전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다룬다. 저자는 시민성을 국민 개념으로 뭉뚱그려 취급하는 경향을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족주의에서 발견한다. 국가와 사회가 가정 내에서 가부장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위계 구조를 통해 운영되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는 국가가 기본적으로 ‘지도자가 국민을 보살펴주는 거대한 가족’이라는 발상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한국에는 애초부터 정치공동체가 아닌 가족공동체만이 있었을 뿐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시민의 권리 역시 항상 ‘의무’와 결부된다. 한국의 권리 개념은 말하자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로 이루어져 있다. 권리를 의무와 연결짓는 5공화국 시대의 이해불가능한 헌법 조항은 수정되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이런 논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한국과는 달리, 시민의 권리는 의무와 어떤 연관도 없다. 유독 한국만이 ‘권리를 주장하려면 의무부터 수행하라’는 논리를 강요하며, 따라서 그 자체로 정당한 시민의 권리를 ‘특혜’나 ‘특권’ 따위로 간주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쏟아진 따가운 시선들에서 그런 경향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했지만, 이들이 진상 규명과 보상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자 공감은 ‘떼를 써서 보상(돈)을 받아내려 한다’거나 ‘단식한 유가족이 좋은 아버지였는지’를 추궁하는 적대로 돌변했다. 이처럼 적법한 정치권 행사에도 별도의 자격과 의무를 요구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다. 사람들은 피해자가 정치적 권리의 주체가 아닌 그저 피해자로서 가만히 있기를 요구한다. 약자/소수자가 자신이 권리의 주체임을 말하는 순간 약자의 위치를 이용해 무언가를 얻어내려 한다는 불쾌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소수자’ ‘시민성’ ‘권리’ 같은 정확한 개념과 그 개념을 기초로 한 실질적인 제도와 정책이 시급히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공감’은 타인의 내적 경험을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공동체 내에서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정확한 개념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감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소수자를 ‘불쌍한 약자’가 아닌 시민이라는 ‘권리 주체’로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공감을 향한 첫 걸음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87373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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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출시)일자 | 2017년 03월 20일 |
쪽수 | 324쪽 |
크기 |
141 * 211
* 22
mm
/ 413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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