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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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벌인 절멸 작업이 독일을 위한 것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스스로를 도덕적 존재로 생각했던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자식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부쳤다.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의 모습밖에 모르던 나치 전범의 가족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과연 이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책에서는 홀로코스트 설계자 하인리히 힘러, 제국 원수 헤르만 괴링, 총통의 후계자 루돌프 헤스, 크라쿠프의 백정 한스 프랑크, 히틀러의 오른팔 마르틴 보어만,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회스, 악마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 생체실험가 요제프 멩겔레의 부자 혹은 부녀 관계를 다루고 있다.
몇몇 이들은 아버지가 나치즘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정도를 최소화하기로 선택했고, 어떤 이들은 아버지를 완전히 긍정하거나 완전히 부정하는 편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나치의 자식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언제나 아버지의 운명이 따라다니는 나치의 아이들은 아버지의 범죄를 부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지만, ‘역사’는 아버지의 행위를 부인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타냐 크라스냔스키
저자 타냐 크라스냔스키는 파리 출생으로 독일인 어머니와 프랑스계 러시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독일과 뉴욕, 런던을 오가며 살고 있다. 글을 쓰기 전에는 형사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현재 파리 변호사협회 회원이다.
역자 이현웅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출판기획자와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느와르』,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 『2030 미래희망』,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혁명의 한가운데로의 여행』, 『그들이 세상을 지배해왔다』, 『생텍쥐베리의 르포르타주』, 『야만의 스포츠』 가 있다
목차
- 들어가기에 앞서
들어가는 말: 괴물보다 무서운 건 평범한 사람들이다
홀로코스트 설계자 하인리히 힘러의 딸, 구드룬 힘러
제국 원수 헤르만 괴링의 딸, 에다 괴링
총통의 후계자 루돌프 헤스의 아들, 볼프 뤼디거 헤스
크라쿠프의 백정 한스 프랑크의 아들, 니클라스 프랑크
히틀러의 오른팔 마르틴 보어만의 아들, 마르틴 아돌프 보어만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소장 루돌프 회스의 아이들
악마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의 아이들
생체실험가 요제프 멩겔레의 아들, 롤프 멩겔레
나오는 말: 침묵을 끊고 역사와 대면하라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
기록 보관소 자료들
참고문헌
책 속으로
아돌프 히틀러 휘하에서 외무부 장관을 지낸 폰 리벤트로프의 아들 중 한 명은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행했을 뿐이다. 만일 우리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아버지와 동일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 ‘역사’는 아버지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는 왜 아버지가 자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니클라스, 나는 범죄자이고 그런 내가 죽는 것은 정상이란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일에 연루되어 있단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후회한다.” 그는 아버지가 후회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마음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어 했다.
-본문 중에서
총통은 구드룬의 유년기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두 해가 지난 1935년, 이 어린 소녀는 잠이 오지 않던 어느 저녁에 어머니에게 불안한 태도로 묻는다. “히틀러 삼촌도 언젠가 죽게 돼?” 그녀의 어머니가 총통은 적어도 100년은 산다고 확실한 어조로 말하며 그녀를 안심시키자, 구드룬은 걱정을 덜었다는 듯이 어머니에게 대답한다. “아니야, 엄마. 그 분은 200년을 살 거야.” (p.43)
마르가는 남편이 제1전범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걸 알고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제 남편이요? 히틀러가 총통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죠?" 결국 앤 스트링거는 힘러가 고문하거나 독가스를 이용해서, 아니면 음식과 물 등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수백만 명의 무구한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런 다음 마르가에게 이런 사실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끼는지 질문하자, 그녀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모든 것은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죠”라고 진술한다. 이 여인은 아무런 연민도 보이지 않았다 (p.53)
괴링의 모든 생활은 ‘에달라인’이라는 애정 어린 별명이 붙은 아기를 중심에 두고 재구성되었다. 아기는 그 부모에게 있어서 ‘태양빛’이었다. 이 어린 주인공의 위상을 강조하는 일화들은 사람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라이히 고속도로가 폐쇄되었다는 걸 들었나?”, “아니. 무슨 일이 있나?”, “에다가 거기서 걸음마를 배우고 있다네.” (p.75)
헤르만 괴링은 보석을 과도하게 좋아했다. 한 술 더 떠 그는 외모를 과시하는 걸 극도로 즐겼고, 때로는 하루에 5번이나 옷을 갈아입으며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을 좋아했다. … 이탈리아의 외무부 장관을 지낸 갈레아초 치아노는 1942년의 일기에서 괴링이 “고급 창부가 오페라에 입고 가는 것과 비슷한” 모피 망토를 기이하게 차려 입고 있었다고 쓴다.(pp.78~79)
구드룬 힘러와 마찬가지로, 에다도 히틀러만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괴링은 딸에게 “훌륭하신 아버지”로 남았다. “나의 아버지는 광신자가 아니셨어. 누구나 그분의 눈을 들여다보면 평화를 읽을 수 있었지…. 나는 그 분을 무척 사랑했고, 그 분이 나를 사랑했다는 것도 누구나 알 수 있었어.”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성姓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자부심을 지니고서 그 성을 달고 다녔다. (p.100)
출판사 서평
아버지의 범죄와 대면한 나치의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치 전범이었던 아버지들의 역사와 그 자식들의 역사를 만나다
홀로코스트 설계자 하인리히 힘러, 제국 원수 헤르만 괴링, 총통의 후계자 루돌프 헤스, 크라쿠프의 백정 한스 프랑크, 히틀러의 오른팔 마르틴 보어만,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회스, 악마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 생체실험가 요제프 멩겔레. 절대악을 저지른 이들이 누군가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역사는 기억할까? 부모의 범죄는 아이들의 인생 여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떼어낼 수 없는 가족의 역사와 대면하여 각자 답을 찾아야 했던 나치의 아이들의 삶을 통해, 전쟁의 원인과 처리에 침묵했던 전쟁 세대와 진실을 갈망하고 죄를 단죄하려던 전후 세대의 역사를 읽는다. 역사는 역사와 만난다.
알고 보니 내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면?
최악의 범죄와 관련된 가족의 역사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었던 할아버지가 사실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할아버지가 그랬을 리 없다며 사실을 부정하거나, 그때에는 시대 상황 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하거나, 가족들이 숨겨왔던 할아버지의 진실에 대해 분노하는 등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우리는 가족의 역사에 대해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가 힘들다. 그것도 범죄와 관련된 무거운 역사라면 판단을 내리기가 더 복잡해진다.
여기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사람들이 있다. 특정 인종을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절멸시키고자 했던 나치 전범들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희대의 악마 같은 이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자식이 있었다는 것을 역사는 기억할까? 사람들을 대량 학살하러 가거나 그런 명령을 내리러 나가기 전에, 자기 자식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나치 전범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이 벌인 절멸 작업이 독일을 위한 것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스스로를 도덕적 존재로 생각했던 나치 전범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자식들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부쳤다.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의 모습밖에 모르던 나치 전범의 가족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끔찍한 진실을 목도했을 때, 이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독일, 프랑스, 러시아라는 세 개의 국적을 지닌 이 책의 저자 타냐 크라스냔스키는 특히 독일의 역사가 자신의 인격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직업군인으로 활동한 할아버지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으며, 어머니는 독일인이 아닌 프랑스인으로 살기를 원했다. 주변의 대부분 사람들은 역사에 침묵했으나, 저자는 그러한 과거를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세계에서 주체가 되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 설계자 하인리히 힘러, 제국 원수 헤르만 괴링, 총통의 후계자 루돌프 헤스, 크라쿠프의 백정 한스 프랑크, 히틀러의 오른팔 마르틴 보어만,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회스, 악마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 생체실험가 요제프 멩겔레의 부자 혹은 부녀 관계를 다룬다. 나치 전범들의 가정환경과 성장 환경, 국가사회주의 내에서 맡았던 역할, 종전 후 행적 등을 살펴보고, 이들의 자녀들의 가정환경과 당시 사상을 받아들이던 방식,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 등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그럼으로써 전쟁 중에는 특권층의 자식으로 부유한 생활을 누리다가 전쟁이 끝난 후 전범의 자식이 되어 생활이 180도 달라진 나치의 아이들의 삶의 변화를 추적한다.
나치 전범의 자식으로 산다는 것,
나치의 아이들이 떼어낼 수 없는 가족의 역사를 마주한 방법
유년기의 기억은 한 사람의 준거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치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정립한 규범적, 도덕적 틀에서 아버지의 행위를 판단했다. 대개 아버지로부터 듬뿍 사랑 받은 아이들은 아버지의 범죄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하인리히 힘러의 딸 구드룬 힘러는 언젠가 과거 독일군이었던 사람이 아버지의 무죄를 증명해줄 것이라 믿었으며, 전범들을 돕는 ‘침묵의 원조’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루돌프 헤스의 아들 볼프 뤼디거 헤스는 아버지가 평화사절이었으며, 그를 전범으로 판결내린 것을 부당하다고 여겨 평생 헤스를 옹호하는 단체를 이끌었다. 루돌프 회스의 딸 브리기테는 “만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생존자들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아버지가 고문을 당해 살인을 자백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들이 애지중지한 아이들은 이후에도 아버지를 경배하며 나치즘의 지지자로 남았다.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보류하는 이들도 있다. 마르틴 보어만의 아들 마르틴 아돌프 보어만은 사제가 되었는데, 그는 아버지가 잔혹한 일을 저질렀지만 아버지를 판단하는 건 그가 할 일이 아니고 신이 할 일이라 생각했다. 요제프 멩겔레의 아들 롤프 멩겔레는 아버지를 두 번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 롤프가 아주 어렸을 때 멩겔레는 생체실험에 열중해 있었고, 롤프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을 때에는 추적을 피해 도피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롤프는 아버지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그를 증오할 만큼 그를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아버지를 끝없이 증오하는 사람도 있다. 폴란드 총독 한스 프랑크의 아들 니클라스 프랑크는 자신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아버지가 교수형을 당한 것이 너무 기뻐 그 장면을 상상하며 자위를 했다는 충격적인 글을 쓰기도 했다. 루돌프 회스의 손자인 라이너 회스는 “만일 제가 할아버지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안다면, 저는 그의 무덤에다 오줌을 눌 겁니다”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한순간에 특권층에서 불가촉천민으로 전락한 나치의 아이들은 나름의 방식을 통해 자아를 다시 정립해야 했다. 몇몇 이들은 아버지가 나치즘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정도를 최소화하기로 선택했다. 어떤 이들은 아버지를 완전히 긍정하거나 완전히 부정하는 편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나치의 자식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는 숨겨지지 않는다
침묵을 끊고 역사와 대면하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주 오랫동안, 독일에는 침묵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많은 독일인들이 “책임은 히틀러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다. 몇몇 전범을 제외하고 나치 이력이 큰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 전후 독일의 도덕적 의식으로 여겨졌던 작가 귄터 그라스는 ‘과거와 대면하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며 나치 독일을 주제로 삼은 책들을 써냈다. 하지만 2006년에 그는 자신이 17살 때 나치의 무장친위대에 가입했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파문을 일으킨다. 전후 독일의 정신적인 스승으로 간주되던 작가가 나치 이력을 갖고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귄터 그라스의 예는 독일이 침묵을 끊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과거를 받아들이기 위해 직면했던 어려움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저자 타냐 크라스냔스키는 나치즘에 대한 사실을 후세에 완벽히 전달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참상은 언제든지 다른 형태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라이너 회스는 현재 극우조직들이 히틀러의 독일 때보다 더 잘 조직되어 있고, 국가들이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지난 8월 12일, 수천 명의 백인우월주의 시위대는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나치 깃발을 흔들며 폭력 시위를 벌였다. 히틀러는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를 집권하게 했던 것과 유사한 사건들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7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전범들과 희생자들은 차츰차츰 줄어들고 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치 체제 고위급 인사의 이름들이 미래에 대한 경고처럼 울려 퍼질 필요가 있다. 언제나 아버지의 운명이 따라다니는 나치의 아이들은 아버지의 범죄를 부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지만, ‘역사’는 아버지의 행위를 부인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나치의 과거는 우리의 기억에 현존한다. 그와 관련해 증언할 수 있는 희생자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되더라도,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나치들을 쫓는 일이 종결되더라도, 그들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반향을 이끌어낼 것이다. 이 책은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극단주의에 대한 방지책으로서 역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나치의 아이들의 역사는 ‘역사’와 만난다.
[책속으로 추가]
“헤스는 미쳤습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미쳐 있었습니다. 그가 영국으로 날아갔을 때,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를 알아봤습니다. 당신들은 히틀러가 그런 임무를 위해 아무런 준비 없이 라이히 제3서열의 인물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히틀러는 진상을 알았을 때 ‘폭발’했습니다. 당신들은 당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의 광기가 알려지는 것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합니까? … 그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비행기를 타고 떠났습니다….”(p.118)
니클라스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이 찾아낼 수 있던 서류들을 아주 세밀하게 검토한 뒤 다음의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 탐욕과 광적인 출세주의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리고 그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행한 그 잔혹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이 선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또한 진정한 반유대주의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히틀러가 프랑스인이나 중국인을 대상으로 같은 일을 하라고 요구했다면, 마찬가지로 그는 니체, 실러, 괴테, 코르네유를 인용하며 그들을 상대로 광기어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p.174~175)
마르틴 보어만은 1943년에 단 한 번 기숙 학교에 있는 아들을 방문한다. 아이는 이 때 자신이 아버지에게 어떤 질문을 했었는지 완벽하게 기억한다. 그가 아버지에게 “국가사회주의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을 때, 대답은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이 대답을 통해 나치 운동에는 깊은 이데올로기적 토대가 없으며, 아버지가 총통에게 집착과 절대적인 충성을 보이는 모습과 관련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판단한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맙소사, 국가사회주의, 그것은 총통의 의지다!” (pp.200~201)
그는 할아버지의 미용사였으며 수용소의 생존자인 요제프 파친스키도 만났다. 라이너 회스는 이 사람과 건설적이고 선의 어린 대화를 나누기를 바랐다. 그런데 파친스키는 라이너 회스에게 그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일어서 달라고 부탁한 다음, 그를 주먹으로 때리며 “네 할아버지와 판박이구먼”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있어도 그는 할아버지에 관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말한다. “만일 제가 할아버지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안다면, 저는 그의 무덤에다 오줌을 눌 겁니다." (pp.253~254)
한 달에 한 번 30분간 진행되는 이 면회는 지루했고 냉기가 감돌았다. 슈페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아이들을 면전에 두고서 몸이 뻣뻣해졌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애써 다
양한 대화를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그의 무뚝뚝한 질문에 아이들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는 “혼잣말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아이들을 “수감 기간 동안에만 잃은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잃게 된 것인지를” 자문한다. (p.278)
연합군에게는 완전한 전범 리스트가 없었다. 그래서 연합군은 겨드랑이 아래에 문신으로 새긴 혈액형으로 SS를 식별했다. 그런데 자신의 용모에 대단히 집착하던 멩겔레는 다른 SS들처럼 문신을 하는 걸 거부했다. 겉멋을 중요시했던 그는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 그는 맞춤복만을 입고 다녔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자신의 부드러운 살결에 감탄하며 몇 시간씩을 보내곤 했다. (p.311)
롤프는 이 인간의 내면에 한 치의 인간성도, 연민도, 뉘우침도 없다고 느낀다. 그가 15일 정도 지나 떠날 때, 롤프는 이 만남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라 직감했다. 멩겔레는 아들이 방문한 이후 평화롭게 죽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마치 죽기 전에 유일한 자식에게 자신이 괴물이 아니라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인 인간으로 인식되고 싶어서, 자식에게 자신을 정당화할 필요를 느꼈다는 듯이.(pp.320~321)
기본정보
ISBN | 9791187038221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08월 23일 (1쇄 2017년 08월 21일) |
쪽수 | 372쪽 |
크기 |
146 * 216
* 25
mm
/ 504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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